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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백은 사람이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사람들은 양시백을 마주할 때 선입관을 갖고 그것을 강요했다. 그저 그가 타고난 눈매가 매섭다는 것만으로도 째려본다느니, 싸움을 건다느니 시비를 걸었다. 원래 눈매가 이렇다,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그쪽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길이었다, 시비는 지금 당신이 걸고 있는 게 아니냐. 난 상관없다.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었고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항상 끝은 비슷했다. 신고도 해봤지만 경찰은 양시백의 말 같은 건 들어주지 않았고, 흐지부지한 대응에 보복으로 흠씬 얻어맞는 적도 적지 않았다. 눈매를 뜯어고칠 수도, 지속적인 시비와 폭력에 굴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양시백은 주먹 쓰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키는 멀리서도 보일 만큼 컸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몸은 빼빼 마르기만 했다. 주먹은 매서운 구석이 있었으나 다부진 몸과 같은 힘은 없었다. 결국 또 같은 결과였다. 나이를 먹고 몸이 좀 더 탄탄해지고 살이 붙을수록 시비가 걸리는 일이 조금 줄었다. 줄었다는 건 없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한심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똑같이 길바닥을 헤매는 또래일 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분풀이 목적으로 갈곳없어 보이는 청소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폭력을 휘두르는 성인이었다. 전자는 똑같은 처지에 비관할 수도 있겠다 싶어 치고박으면서도 이해할 여지가 있었지만 후자는 달랐다. 어른이 되어서 자기 분노를 가누지도 못하고 자신보다 어린 약자에게 분풀이하고 저 혼자 억울해하며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이라니. 저런 놈도 자식이라고 잘도 미역국을 먹었을 거라는 폭언에 당신 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쏘아주기도 아까웠다.

"어른들 일은 어른들이 해결했으면 좋겠다, 좀."

내리는 비가 상처에 닿아 따가웠다.

***

"양시. 양시! 밥 먹자."

"흠, 쩝...알았어요."

양시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앞에 놓인 작은 상이 보였다.

쌀밥그릇 둘에 김치, 김, 나물, 계란 프라이가 차곡차곡 올라와 있었다.

"혼자 차리셨어요?"

"비도 오고 잠도 곤히 자길래 혼자 차렸지. 자, 먹자, 먹어."

"잘 먹겠습니다."

"오오냐."

최재석에게 거둬진 뒤로 양시백은 커다란 변화를 느꼈다.

반듯한 지붕 아래에서 일주일 넘게 지내는 것, 밤새워서 일하지 않는 것, 매일같이는 아니더라도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먹는 것, 주말에는 쉬는 것. 최재석은 양시백이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릴 때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쁜 놈들 투성이라며 한탄했다. 사실 양시백에게 제일 놀라운 점은 최재석 그 자체였다. 주먹도 잘 쓰고 -태권도 도장 일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저 못지않게 인상 얘기를 많이 들었을 법한데도 사람들에게 서글서글 잘 다가가고 호감을 잘 샀다. 양시백에게 부리부리한 눈매가 사납다고 말은 했지만 농담 섞어 말하는 것이 퍽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딱 잘라 말해서, 최재석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양시백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살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응원해주는 등 나름대로 배려해주었다. 늘 그랬다.

"계란 맛있어요."

"그치? 고루고루 익히면서도 끄트머리만 바삭바삭하게~ 내가 계란후라이 하나는 기가 맥혀."

"그나저나 반찬이 왜 이렇게 많대요?"

"은지 아주머니한테 짐 나르는 거 도와주고 받았어."

"말을 하시지. 저도 나를 수 있다고요."

"양시, 너는 일단 살부터 찌워야 해. 아직도 비리비리 해가지곤...그러다간 짐 나르다가 떨어뜨려요."

"체, 많이 먹고 살 찌워서 관장님보다 더 힘세질 거라고요. 걱정마세요."

"자자, 든든하게 먹어둬라. 이제 또 관원들 가르쳐줘야 하니까."

양시백은 아이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소 무서워했지만 금세 경계를 풀었고 작은 손발을 가르침에 따라 뻗었다가 거두고 자세를 잡는 모양이 귀엽기까지 했다. 최재석은 관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때론 응원하고 띄워주기도 했다. 적당히 웃음 넘치고, 의젓하고, 듬직한 사람. 호감을 쉬이 사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대범하고도 섬세하게 다가가는 사람. 양시백은 자기도 이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최재석과 100% 똑같지 않더라도 좋으니까.

"양시. 밥 안 먹고 뭐해?"

"잠깐 딴 생각 좀 했어요."

***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하잖아!

양시백은 그 말에 어울리는 자신이 되었는지 가끔 되돌아보곤 했다. 제가 스물일곱이 되고, 최재석은 마흔이 되었지만 심적으로는 최재석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사건은 그런 양시백을 비웃듯 최재석을 앗아갔다. 마냥 이전처럼 의지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제서야 홀로 서서 대등하게 그를 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 묻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들이 잔뜩 있는데. 하지만 켜켜이 쌓인 최재석의 가르침은 양시백에게 깃들어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친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관장님. 설희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자꾸 났어요. 어른들이 싫다고, 사람들이 싫고 밉다고 생각했던 때요. 설희가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다가 관장님이 저한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잘 대해주신 게 생각나더라고요. 아, 관장님도 이렇게 무섭고 떨리는 마음이었구나. 이렇게 슬프고 화가 났구나...하는 거요."

양시백은 코를 훌쩍였다.

"관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설희에게 열심히 다가가 보려고요. 지켜보고 싶고, 잘 자라줬으면 좋겠고, 어른들이 마냥 나쁜 놈들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어요. 도장 닫아서 제 코가 석 자긴 한데."

빈 소주잔 두 개. 양시백은 채워놓기만 한 잔과 비어있기만 한 잔을 보았다.

생전 사진을 액자에 끼워두고 비우기만 했던 잔이었다. 딱 한 잔 따라놓았던 잔을 들어서 입으로 삼켰다.

"...응원해 주실 거죠?"

액자 속 최재석에게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양시백은 주먹을 꾹 쥐었다.

"사랑해요, 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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