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양시백 생축글

"어우, 춥다, 다녀왔습니다."

밖은 한창 겨울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도장 불은 꺼져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종종 관장님이 곤히 낮잠을 자는 경우가 있어서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그러려니 하며 인사했다. 어쩐지 유독 어두워 보여 잠시 머뭇거렸다.

"다녀왔습니다!"

"엥?"

"아, 아니, 새, 생일 축하합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가 멍 때리는 동안 정정되어 터지는 폭죽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곧바로 불이 켜졌고, 도장 안에 생각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에 얼떨떨함과 놀람을 엑, 하는 한 마디로 축소했다. 생일? 도장 바닥을 둘러보니 웬일로 부드러운 카페트 같은 게 깔려 있고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길고 큰 상에는 음료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생일 초에 불을 붙인 케이크가 있었다. 관장님이 촛농 떨어지기 전에 얼른 불어 끄라며 손을 잡아 끌어 자리에 앉혔고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얼른 불을 껐다. 폭죽이 몇 번 더 터지면서 색색의 종이 끈들이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생일 축하 인사를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야, 양시가 그렇게 인사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폭죽을 든 유상일이 관장님을 특유의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아까의 뚱딴지 같은 외침의 주인은 관장님이었던 모양이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 바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자 내 옆에 앉은 아빠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시백아, 생일 축하한다."

"고마워, 아빠. 근데 이젠 애도 아니고 생일 축하 깜짝 파티 같은 거 살짝 부끄러운 거 아닐까..."

"그런가..아, 이번에는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다. 초코 무스 좋아하지?"

"완전 좋아해!"

정작 난 아빠 생일은 못 챙겨줄 때가 많았는데 -내가 미처 깜빡해서 챙기지 못 한 때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빠가 생일날에는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는 그간 내 생일날이 돌아오면 빠지거나 깜빡하는 일 없이 꼭 함께 있어주었다. 일은 어떻게 하고 그러느냐고 물으니 그런 날들을 위해서 휴가나 연차가 있는 거 아니냐고 너무나도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아빠의 모습에 내가 다 -안 어울릴 만큼- 뻘쭘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생일 선물을 마땅한 걸 봐 둔 게 없어서 케이크만 사 왔는데, 뭔가 갖고 싶은 건 없고?"

"음..지금도 괜찮으니까. 갖고 싶은 건 아니고 바라는 거라면...내년 아빠 생일에는 어디 가지 말고 나랑, 관장님이랑, 아빠랑 이렇게 셋이 같이 있는 거."

"내 생일날에?"

"응. 아빠는 내 생일은 매번 챙겨줬었는데, 난 아빠 생일을 자주 챙겨주지 못 한 것 같아서. 약속하자."

아빠는 약속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나나 관장님과 약속을 하면 십중팔구는 약속을 지켰다. 무엇보다도 아빠에게 약속하자는 의미는 반드시라는 의미라고 관장님이 슬쩍 이야기 해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한 뒤 아빠는 케이크를 나눠먹자며 준비해 둔 케이크 칼로 케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해요, 시백 씨!"

"생일 축하해요, 오빠."

"고마워요, 권혜연 씨. 오늘은 근무하신다더니?"

"마침 시간이 비어서요."

"설희도 고마워."

"이거, 부족하지만 저랑 설희랑 준비한 거에요. 나중에 뜯어보세요."

반짝거리는 연녹색 포장된 상자를 건넨 권혜연 씨는 설희와 함께 생일상의 반대편에 앉았다.

배고픔을 참지 못 하고 간식거리를 몇 개 집어먹다가 앞에 음료수가 담긴 컵이 놓이는 것에 고개를 돌리니 재호 아저씨가 가볍게 눈을 찡긋했다.

"양시백이, 생일 축하해."

"뭘요, 감사합니다."

"약소하지만 여기 선물. 생각해 보니 자네 생일 챙겨본 적이 별로 없더군."

"저도 아저씨 생일 많이 못 챙겨드렸으니 피장파장이죠. 안에 든 건 뭐에요?"

"남자의 로망, 지포 라이터라네."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농담이야. 벌써 알려주면 재미없지 않나?"

"아저씨가 말하면 진짠 거 같이 느껴져서요.."

"자네 담배 안 피는 줄도 모르고 그걸 줬으리라고."

남자의 로망을 이야기 한 거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선택이라고 덧붙이려다 그만 두었다.

"있다가 같이 뜯어볼 게요."

"자, 그럼 케이크 커팅도 끝난 거 같으니 다같이 먹어보자고."

재호 아저씨는 상 반대편 쪽으로 가서 권혜연 씨와 설희의 옆에 앉았다.

"근데 양시 식성 생각하면 이거 먹고 나서 그냥 2차를 고깃집으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게 좋으려나..."

"아니, 보통은 생일상에 2차라는 개념이 없지."

"하지만 이거 가지고 성에 찰까?"

"..아니 저도 이렇게 똑 부러지게 가득하면 만족하거든요?"

"주인공이 그러시니 건배들 하자고, 양시백이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건배!"

달콤한 케이크, 달콤한 음료.

적당히 왁자지껄한 분위기속에서 생일을 축하해주는 소중한 사람들.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한 기분이라 마음 속으로 이런 날들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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