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30

누아남 생축글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자를 아는 누군가가 그 모습을 봤다 해도 말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에 눈길을 주거나 다가서지 못 하고 등을 돌렸을 것이다.

"야, 오늘이 생일이라고 했지?"

주정재는 일할 때 빼고는 남자와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일단 대외적으로 형사였기 때문에 제게 맡겨지는 일을 처리해 나가느라 바빴고, 그 일을 할 때에도 서로 맡겨진 타겟을 각각 제거하거나 맡겨진 일의 분야가 달라 갈라설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어찌됐건 주정재가 속해 있는 박근태 라인에 몸을 두고 있는 자였고, 그 라인 속에서 나름의 친밀함을 구축할 수 있는 연배는 남자밖에 없었다. 서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장기말이라는 것에 각별함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데."

"그런데, 가 뭐냐? 네가 지갑 털어서 술이나 죽여주게 산다거나, 어디 좋은데 소개시켜준다거나 그런 건 없는 거냐? 시시하게시리."

"누가 더 시시한지 모르겠네...생일이 별 거냐? 마흔 살이나 먹었으면서 애들처럼 굴기는..."

"네 녀석이 애들마냥 꺅! 생일이다! 정말 좋아~! 같이 안 굴 거 같으니까 내가 몸소 이렇게 대신 해 주는 거 아냐."

"아주 눈물나는구만."

주정재의 '애들 흉내' 에 남자는 웩, 소리를 냈다.

"그래서, 일 없으면 술이나 같이 마시자고 하는 거냐?"

"그래, 새꺄. 평소엔 칼 같이 딱딱 자르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잔말이 많은지...어휴, 가끔 속 터지겠는 거 알긴 하냐?"

"왜, 만두 속 좀 보여주지."

"난 가끔 내가 너랑 왜 같이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거의 다 타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빈 뒤 그대로 두고는 덧붙였다.

"...나도 모르겠다."

***

생일의 주인공인 남자보다 주정재가 만취해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줄여나가기는 했어도 주정재의 주량이 원체 엄청났던 탓에 다리가 꼬이거나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그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집 삼아 머무르는 단칸방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함께 택시에 탈 수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만취한 주정재와 한 택시를 타는 건 남자에게 어지간히도 고역이었다. 한두 차례의 비가 쏟아붓고 난 뒤의 여름밤 공기는 겨울밤과는 다른 서늘함을 지니고 있었다.

남자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생일이랍시고 축하를 받기는 했으나 남자는 예전부터 쭉 자신의 생일에 별 감흥이 없었다. 무엇보다 제가 생일이라고 밝힌 날인 오늘은 아무 것도 아닌 날이었다. 남자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남자인 것처럼. 없는 사람의 아무 것도 아닌 날을 생일이라고 이름 붙여 축하한 주정재는 오늘 얼마나 부질없는 짓을 연이어 한 것인지.

'생일 축하해.'

희끄무레한 인영이 말을 붙이는 것에 남자는 공원 외곽을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남자는 혼자 있을 때면 그런 인영을 보곤 했다. 꿈속에서 악몽의 형태로 여자아이를 접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인영들은 남자를 증오하고 미워해 용서하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사지를 찢으려 든다거나, 남자가 품었던 살의를 거울처럼 반사해 드러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가끔 희미한 기억속에서 현실 위로 범람해 말을 붙이거나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님까지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날을 축하하려 하지 말아요. 부질없잖아."

남자의 말머리는 제 은인의 모습을 한 인영에게 꼬투리라도 붙잡힌듯 흐릿했다.

상쾌한 여름밤 공기에 매캐한 담배 연기가 섞였다. 인영과 같이 희끄무레한 연기였다. 이윽고 연기에 그림자가 덮여 사라졌다.

'넌 잘 해낼 거야. 내가 보증하잖아.'

'..행복하냐?'

하지만 담배 연기로 덮고 덮어도 덮이지 않는 인영들이 또 다시 물음을 던졌다.

은인 다음에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남자의 버석한 웃음이 담배를 문 잇새 사이로 후두둑 떨어졌다.

"..만나러 가지 못 한다고 이런 식으로 모습 보이지 마라. 그 잠깐의 꿈속에서..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행복했으니까."

각자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만 파악했을 뿐, 정확히 어떤지는 알지 못 했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녀석들이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 건 그리움이 죽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는 것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 남자는 물고 있던 담배에서 머금을 연기를 허공에 내뱉어 흩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해라. 둘 다."

둘 중 남자의 걱정이 기울어진 건 유상일이라는 이름의 친구였다. 딸을 잃고 10년 동안 자유마저 박탈된 채 복수하기만을 바랐을 친구.

올해 말 출소하게 되면 그가 행할 복수를 염려해 다시금 자유를 제한당할 위기 -혹은 목숨을 잃을지 모를 위기- 에 놓인 친구.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해서..내년의 내 생일을 축하해 줘."

남자는 너희들 때문에 실없는 소리를 다 했다며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고는 멈춰 서 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이제까지처럼 홀로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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