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7

네버 다이 맨 양시백

"시백 씨!"

"양시백이!"

위험한 일에도 발 벗고 나서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똑똑히 아는 이상 모른 척 할 순 없었다.

그저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섬뜩하게 헤집어지는 감각과 함께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아주 짧은 시간 주마등을 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죽지 않는다.

***

날붙이로 헤집어지던 감촉도, 눈앞이 시뻘겋게 물들었던 것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누운 채로 익숙한 관장실 천장이 올려다보일뿐. 양시백. 27세. 부모님은 없고 대신 아버지나 다름 없는 최재석 관장님이 계시고 그 관장님이 차린 양지태권도장 사범이다. 달력을 보니 관장님이 붉은 싸인펜으로 표시해 둔 날짜가 보였다. 6월 15일. 생일. 머릿속에 흐릿하게 떠오른다. 저건 엊그제 날짜다. 대체 누구 생일이냐고 관장님께 물어보았다가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던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관장님 생일은 봄이고, 내 생일은 12월 겨울이라 둘 중 누구도 아니었다)

"하아...."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정확히는 죽으면 27세가 되는 해의 랜덤한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이번에도 죽지 않고 되돌아 온 것처럼. 죽지 않고 한 해를 잘 넘긴 적도 있었지만, 죽으면 도로 27세였던 어느 날로 튕기듯 되돌아왔다. 지난번엔 11월이었고, 이번에는 6월이다.

권혜연 씨, 그리고 재호 아저씨는 처음엔 모르는 사이였지만, 이 1년 안에 공통된 목표로 행동을 같이하는 사이가 되었다. 왜 27세일 적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한 해에,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난다. 지금은 또 없었던 일이 되었겠지만, 관장님이 완전히 잠적해 버리거나,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리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왜 이런 반복이 계속되는지,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관장님의 죽음을 막으면 끝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관장님의 생사와는 상관없이 죽으면 27세의 1년으로 내팽개쳐졌다. 죽어서 끝이 나도 문제지만, 왜 반복되는지 알지 못 하면 평생 휘둘릴 거라는 게 큰 문제였다.

***

"관장님."

"어, 그래. 양시. 잘 잤냐? 오늘따라 여엉 늦게 일어나더라."

"아, 꿈을 좀 길게 꿔서...아침 드셨어요?"

"어지간하면 깨우려고 했지만 곤~히 자길래 먼저 먹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안 깨우실 만도 하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내 주변에 계속해서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걸 내가 막을 수 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면 보다 더 단호한 정공법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15일에 표시된 생일, 누구 생일인지 궁금해서요."

"아...."

"혹시나 관장님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의 생일이라면 말해주셔도 된단 의미에요. 매년 달력에 손수 표시해 놓으시면서..누구 생일인지 저도 물어볼 수는 있는 거잖아요."

이번에 알아보기로 마음먹은 건 관장님의 친구라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물러났지만, 관장님이 말도 없이 사라진 것에 이 친구의 일도 있을 거라 생각되므로,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

"그랬구나. 15일은..친구 생일이야. 유상일이라고..나랑 친한 놈이었지. 예전엔 곧잘 만났었지만...지금은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는 마음에 달력에다 생일만 표시해 놨던 거다."

"지금은...연락이 전혀 안 되는 건가요?""

"뭐..그렇지.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걸수도 있고."

"죄송해요. 그냥,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이길래 관장님이 매번 챙겨주시는 건지."

"알아 알아. 궁금할 수도 있다는 거. 자 이제 알았으면 아침 먹고 대청소 할 준비를 하자고!"

"알겠어요."

라면을 끓여먹은 뒤 관장님과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유상일. 유상일이다. 관장님 친구라면 적어도 30대 후반에서 동갑으로 추정되는 남자. 서울에서 사람 찾기 힘들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아동반은 금요일에는 운영되고 있지 않아서 야간 성인반을 제외하면 돌아다닐 시간이 충분했다.

재호 씨, 그리고 권혜연 씨는 어떤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이 찾는 사람도 유상일이거나, 그와 관련된 누군가일지 모른다.

아저씨가 직접 찾아나선 것, 권혜연 씨와 동행하게 된 것, 관장님이 잠적했던 날짜가 거의 일치한다. 살아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못 만나는 거라면 실종일까? 그게 아니면 한국이 아닌 해외에 있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범죄에 연루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말 못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해.

"일단 들쑤셔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

"네..수고하세요."

일단 경찰서에 유상일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다, 혹 실종자 명단에는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근방에선 가장 큰 경찰서인 데다 뒤에서 위협을 가할 정도라면 의도는 몰라도 유상일을 찾고 있다는 게 속셈 구린 놈의 귀에 날아들 것이다. 늦으면 이삼일, 빠르면...

"네가 양시백인가?"

오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유상일을 찾는지는 몰라도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다."

한적한 공원인데다 일부러 등을 보인 상태였기에 상대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꽤 낮았다. 중년의 남자. 살기는 없었지만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기세는 가히 칼 같았다. 입을 막을 요량이었다면 사실 등을 보였을 때 달려들어 끝을 낼 수도 있었다. (오늘 전의 죽음이 달려든 칼질에 맞았던 것처럼) 그러나 언제고 반격할 수 있게끔 경계하며 뒤를 빠르게 돌아보았다. 검은 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다.

"왜, 계속 알아보면 날 해치기라도 할 생각인가?"

"그 반대다. 알아보면 네가 다쳐."

"당신은 유상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지?"

"알아도 네게 이야기 해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자박.

"알면 다친다, 는 판에 박힌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필요하거든. 정보."

자박. 자박.

"아무래도..좋게 끝낼 생각이 없나."

"친히 경고하러 올 정도면, 가르쳐주는 건 어때?"

"뻔뻔하군."

자박.

단번에 거리를 좁혀 근접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여전히 살기는 없지만 무감해보이는 눈동자인데도 유상일과 관련된 일에서 확실하게 손을 떼게 해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먼저 덤벼라, 태권도장 사범."

"그럼, 사양 말고!"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계속 27세로 살 수는 없기에,

단숨에 거리를 좁혀 중년 남자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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