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2

조용호 생축글

시작은 아주 작은 초인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냥 무시했어야 했는데! 조용호는 문을 열자마자 지독하게 후회했다.

"이야~! 오늘 이 친구 생일이라지 뭐야? 다 같이 축하해주자고!"

"안녕하세요. 홍설희에요."

"아유, 거 생일 축하드립니다 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조용호 씨라고 하셨죠? 권혜연이라고 해요. 재호 씨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생일 축하드려요."

"아 예...아니, 들어오지 마! 안 나가?!"

"어이, 생일상 받아라!"

"서재호 너 이 자식!"

서재호와 그의 지인들은 조용호에게 정신없이 말을 붙였고, 그들은 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집안에 입성했다. 생일상을 받으라고 외친 말을 책임지려는 듯 다들 양손에 뭐 하나씩을 꼭 들고 있었다. 피자, 치킨, 케이크, 갈비찜, 잡채, 초밥, 샐러드 그 외 기타 등등. 거실 가운데 놓여있던 테이블에 차곡차곡 배치되었다. 방금 막 조리가 된 것인지 김이 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자, 생일 주인공님 한 말씀 부탁해!"

"......."

"싫어도 해. 젊은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설희야, 많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라."

"..치사하게 나오는군."

"아, 빨리 해. 나도 배고프다고."

"..아..그..보나마나 이 자식이 졸라서 왔겠지. 어쨌든 생일 축하하러 와 줬다니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흠흠, 노래도 불러야지. 생일 노래."

"작작 좀...!"

조용호가 성을 내기 전에 서재호가 먼저 선수를 치며 생일 노래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하하, 머슥하게 웃으면서도 생일 축하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노래가 끝나자 폭죽이 퍼벙, 요란하게 터졌고 조용호는 빠르게 체념하며 적당히 어울려 주고 빨리 내보내자고 마음먹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먹어라..먹어."

"좋은 날에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그치?"

서재호에 대한 반박만 빼고.

***

생일 축하한다며 음식을 사들고 와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일.

조용호가 이 집을 얻은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게 하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서재호가 주도했다는 게 큰 문제였지만 같이 따라온 사람들 (아이까지 있는!) 을 생각하면 마냥 화만 버럭 낼 순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러 2층 계단 난간에서 1층을 내려다볼 즈음이었다.

"많이 좀 먹었나?"

"적당히 먹었지. 덕분에."

"뭐가 예쁘다고 먹을 거 싸들고 와서 이러고 있나 싶지?"

"...그래.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잘 아네. 근데 천년만년 그렇게 살 순 없잖아? 세상엔 악우라는 것도 있는 법이고. 생각해 보니 좀 웃기지 않아? 난 나름 경찰일 관두기 전까진 고분고분하게 잘 지냈는데 늘 한발 먼저 빈정거리고 말야. 내가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싫은지 말이라도 해주지."

"....."

"그런 거 얘기하자고 온 거 아냐. 솔직히 말해 뒤틀리고 때늦은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으면 지금보다 더 좋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잖나. 굳이 나랑 친구 먹지 않더라도 말이지."

서재호는 콜라가 든 잔은 작게 흔들며 말했다. 조용호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친구라고 하지 않아도 적당히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나이를 먹어서 바뀐 걸지도 모른다.

"권혜연이라고 했던가."

"팀장님 딸이야."

"..그랬군. 많이 닮아서 물어본 거야."

"더 놀라운 걸 알려줄까? 저기 홍설희 어린이는 박근태 양반 딸이야."

".....믿기지 않는군."

"하나도 안 닮았지? 검사지를 애지중지했지만 애를 직접 볼 줄은 몰랐을 거야. 애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라.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어."

"..고개를 못 들겠는데."

"앞으로도 못 들겠지. 그래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처럼 아저씨 소리 들으면서 좀 멀리 사는 아는 사람 정돈 될 수 있을지 몰라도."

"......"

"여튼 적당히 노가리 까고 내려오라고. 생일이잖아? 즐겨야지."

"내 생일은 이용당한 거 같은데?"

"아 노는데 끼워주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좀 받아봐라 좀!"

"참 나..."

조용호는 2층에서 내려와 왁자지껄한 세 명에게 무얼하는지 묻기나 하자며 다가갔다. 젠가. 나무블록의 탑에서 블록을 하나씩 빼면서 위로 쌓아나가다가 탑이 무너지면 패배하게 되는 보드 게임. 먹고 마신 뒤 적적할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가져온 게임이었건만...

"아저씨 파이팅!"

"전 재호 아저씨 이기는데 걸게요!"

"어..전 그럼 용호 아저씨한테!"

"그만 쓰러지지 그래?"

"너야말로."

어느새 조용호와 서재호의 일대일 싸움이 되어있었다.

"후후..이번 판에서 이기면 형님이라 부르게 해 주지."

"하, 누구 맘대로?"

"아~ 이거 내가 가져왔거든. 자신있단 말이지."

내일 모레 마흔인 아저씨들의 불꽃 튀는 승부에 유치하다며 놀릴법도 하다만, 세 사람은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엔 그마저도 괜찮다며 웃고 떠들다 못해 서로 누가 이길지 내기를 걸고 있었다. 조용호는 내일이면 도로 혼자가 될 텐데 쓸데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을 잊어버린 채 눈앞의 젠가 승부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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