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성, 카페 가자." "그럴까요?" 둘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적당한 카페를 골라 들어가 잠시 노닥거리곤 했다. 카페는 몇몇 사람이 있었지만 대체로 아늑한 분위기였고 또 적당한 사람소리가 났다. 인사와 함께 주문받을 준비를 마친 종업원이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먼저 물었다. "혹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아이스 초콜릿 라떼, 주문하실까요?" "아,
-출소를 앞두고 발송되었어야 할 무명의 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상일이 출소했다. 10년 전 비리로 몰락한 경찰 영웅이었던 그의 출소 소식은 생각보다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자리를 떠나기 전 줄곧 기다리던 옛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조금 나눈 게 전부였다. 밥을 먹고 나니 무어라도 할 것이 없었다. 적당히 자리를 파하려는 유상일을 붙잡은 친구
아저씨. 아저씨는 경찰이죠? ..저를.......주세요. 그는 칼잡이다. 아직 칼로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칼을 써서 누군가를 위협하고 협박해 먹고 사는 사람이므로 칼잡이였다. 누군가는 왜 칼잡이가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도 처음부터 칼잡이가 되기를 소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는 제 아버지가 범죄
토요일이면 이른 오전에 빠른 아침을 마치고 집안일에 뛰어들었다. 지금이야 방학이니 주말에도 쉴 수 있는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개학하고 나면 이 여유도 사라질 게 분명했다. 다행히 둘 다 아침잠이 없어서 일어나는데 용을 쓸 필요는 없었다. 외려 하태성이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할 때가 있어서 경찰 일을 할 때도 저렇게 부지런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꺄하, 하고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놀이터에 울렸다. 있는 힘껏 그네를 타고 노는 두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속도를 천천히 낮추면서 그네에서 내린 뒤에는 -또래 애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속도가 적당히 낮아지면 뛰어올라 모래밭에 착지하는 것을 즐겼으나, 어머니들이 제지하자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벤치에 앉아있는 어머니들에게 인사하곤 시소도 타고 계단을 타
"오랜만." 서재호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인사했다. 당연하지만 오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 같이 일하던 시절에도 오미정에겐 기가 죽곤 하는 서재호였는데, 지금의 오미정의 모습은 서슬이 푸르다 못 해 서늘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다고 해서 웃는 얼굴로 무마하거나, 져 주는 듯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미정은 유상일에게 동조해 죄 없는 아이를 죽
"...저, 작은 형님." 쭈삣거리는 기색이 역력한 조직원이 김성식에게 다가왔다. 김성식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잘못한 놈마냥 빌빌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으스대는 놈은 더 질색인지라 제 성격을 누르며 고개를 까딱하는 걸로 대처했다. "뭐야. 도진 형님이 부르기라도 해?" "아, 아뇨. 그..새로운 신입놈을 뽑는 것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똑똑- 노크 소리에 배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익숙한 얼굴. 양시백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오세요." 배준혁이 문을 연 채로 물러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양시백이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양시백은 종종 근처를 지날 때마다 배준혁의 사무실에 들러 이런저런 것들을 건네기도 했고, 일을 도와주기도 했으며, 안부를
"모두...꼭 이래야만 했던 겁니까?" 으득, 남자가 이를 갈았다. 육신의 상처만이 모든 상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입각한다면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죄다 엉망진창이었다. 죽어가는 자와, 그의 옆에 선 자. 그 이전에 마주 보았던 자들 모두가.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는 중년의 말과 함께 철커덕 하는 쇳소리가 강압적으로 눌린 침묵에 울려퍼졌다.
딩동~ "나가요~" 최재석이 성큼 현관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봉투를 들어올린 채 가볍게 흔들어보이는 유상일과 살짝 뚱해보이는 -누가 보면 심통나거나 짜증난 것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이게 평소 표정이었다- 정은창의 모습이 보이자 최재석은 방긋 웃었다. "야, 일찍 왔네. 둘 다 저녁 아직이지?" "저녁은 뭘. 야자도 안 하는데 당연히 아직 안 먹
"준혁 선생님, 손 놓으시면 안 돼요!" 투명한 눈물. 그리고 붉은 피가 방울져 배준혁의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둘 모두 배준혁의 것은 아니었다. 까마득한 백색 심연으로 떨어지려는 자신을 꼭 붙잡고 있는 양시백의 것이었다. 배준혁은 위기감도, 두려움도, 슬픔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양시백이 저토록 간절하고 급박하게 말하는 데도 하나도 와닿지
"...리." "....." "...나리." "....게 늑장 부리는 것도 오랜만..." "대장 나리!" 하태성은 근 3일간 들어온, 자신을 가리키는 익숙한 호칭에 눈을 떴다. 머리를 꿰뚫는 듯한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켜 멋쩍은 듯 목 뒤를 긁는 김주황과 제 앞머리를 집으며 손장난 중인 허건오를 바라보았다. "대장 나리, 많이 피곤했나 봐.
"건배~" 다섯개의 소주잔이 부딛혀 가볍게 짜장, 하는 소리를 냈고, 찰랑이던 소주들은 첫 술을 기념해 빠르게 사라졌다. "크아, 소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네..그보다 다들 잘은 지냈냐? 특히 거기 경찰 2인조." "우리야 뭐..아직까지 별 일은 없어." "최재석이 저놈 저거, 꼭 경찰 일 안 해본 것처럼 얘기한다니까." "별일도 없다면서 왜 얼굴을 통
"이야, 으리으리한 저택이네." "확실히, 죽은 이경환이네 임대 건물이나 고상만이네 공장보다는 훨씬 나아보이네." "조용히 하십시오. 소란 피우다 상대가 알아채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하태성이 제지에 김주황은 쩝하며 입을 다물었고, 허건오는 그러거나 말거나 으쓱이면서 열린 대문으로 걸어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여-보-세-요." "...혹시, 없는 걸
08:58:00 08:59:00 09:00:00 관장님이 돌아오지 않은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에 용역업체 직원이라는 어깨들이 관장님을 내놓으라며 우르르 몰려와 도장을 한바탕 뒤엎고 갔다. 걱정되는 마음, 정말로 10년 넘게 알아온 날 배신한 거냐는 마음. 어느 마음이 우위에 놓여있는지 분간도 하지 못 한 채 아침에 눈 뜨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관장
"..기사, 봤어요." 양시백은 서재호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굳어진 얼굴로 그리 말했다. 서재호는 평소와는 달리 인상을 찡그린 채였다. "..백석 쪽에서 손 쓴 거지. 예상은 했었지만 저렇게 뜨자마자 즉각 대응할 줄은..." "이제부터 어쩔 작정이에요? 그 제보자는?" "달라지는 건 없어. 편집장님과 다른 분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서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