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뒤틀린 행복

"...리."

"....."

"...나리."

"....게 늑장 부리는 것도 오랜만..."

"대장 나리!"

하태성은 근 3일간 들어온, 자신을 가리키는 익숙한 호칭에 눈을 떴다. 머리를 꿰뚫는 듯한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켜 멋쩍은 듯 목 뒤를 긁는 김주황과 제 앞머리를 집으며 손장난 중인 허건오를 바라보았다.

"대장 나리, 많이 피곤했나 봐. 어우, 아주 길바닥 벤치에서 곤히도 자더라."

"..그랬..습니까?"

"고릴라도 봤다고. 그치, 고릴라?"

"그래. 피곤하면 일찍 돌아가자고."

"오랜만에 할머니가 해 주는 밥 먹는 것도 좋을 거 같네. 안부도 전하고."

"애송이, 빈손으로 가면서 뻔뻔하게..이번에는 정말 주스라도 사 가."

"쳇, 이번엔 나도 좀 살 거거든? 하여튼 저 고릴라는 가만히나 있지 꼭 말꼬리를 잡는다니까."

집.

하태성은 속으로 그 단어를 곱씹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집. 초라하고 작지만 친근하기 그지없는 장소. 그 느낌이 빛 바래거나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묵직한 것이 마음을 묶고,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스스로 그런 이질감을 느끼자 혼란이 가중될 뿐이었다. 하지만 곧 김주황과 허건오가 뭔가 먹고 마실 것을 사러 가자며 재촉하는 것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뗐다. 하태성은 조금 전 느꼈던 것과는 달리 발걸음이 떨어지는 것에 놀라워했으나, 걸음을 옮길수록 묵직하게 내려앉던 것이 아주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에 마음을 차분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

저녁거리하자며 고기를 사고, 노래를 부르던 주스도 사고, 모처럼이니 산뜻한 선물도 하자며 꽃도 몇 송이 사고, 가는 길에 출출하다며 각자 핫바를 하나씩 사 먹었다. 산 것들이 꽤 부피가 있어서 김주황과 허건오뿐만 아니라 하태성도 양손에 짐을 나눠들어야 했다.

"아으, 손 떨어지겠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산 거 아냐?"

"나하고 하태성 형씨가 말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아, 몰라. 멀었어?"

"한두번 오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투덜거려라, 애송이."

"이 고릴라가 말끝마다 애송이, 애송이..."

"도, 도착했습니다."

하태성은 타이밍 맞게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앞서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태성이 왔니?"

"네. 어머니, 김주황 씨랑 허건오 씨도 같이 왔어요."

"아직 밥들 안 먹었지? 오늘은 저녁을 조금 빨리 준비해야겠구나."

"아이고...아, 할머니! 오랜만이예요."

"안녕하십니까."

"어서들 와요. 오랜만에 와 줬네요."

"진작 찾아와서 인사 드렸어야 했는데..요즘 좀 바빴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별일없이 다시 오셨으니 다행이죠."

"고릴라, 1절만 하고 이거나 좀 부엌에 갖다 드리자고."

김주황과 허건오는 짐을 챙겨 박재분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고, 부스럭부스럭, 찌이익, 텅, 하고 짐을 푸는 소리와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두런두런 들려왔다.

"태성아."

그리운 목소리.

멍하니 웃던 하태성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인자한 얼굴. 깊은 눈동자. 기억하던 때에도 병색이 짙고 말랐던 몸. 평상복을 입고 한 손에는 신문을 든 하성철이 제 아들을 애정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태성은 돌연히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와 잠시 신음을 토하며 자리에 덜컥 멈춰섰다. 가슴을 뭉개버릴 듯 짓누르는 무형의 압박에 기침을 토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엇을. 아니, 선택의 여지가 있던가. 이미.

"..내가 부족하여 널 힘들게 했구나."

"..아버지.."

하태성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려 했으나 말을 잇지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때까지 온전히, 원망한 적이 없었노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제 아버지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바람 역시-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지내자꾸나. 네 어머니, 나, 그리고 태성이 너까지..그 예전처럼 함께."

하태성은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고민했으나 대답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머리를 쪼개던 두통은 완전히 작별을 고하듯 다시금 번득이는 통증을 단발적으로 내리다가 곧 사라졌다. 하태성은 이제 더 이상 그 끔찍한 두통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자, 네 어머니를 도우러 가야지."

하태성은 뻗어진 하성철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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