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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도시 전력60분/친구

"건배~"

다섯개의 소주잔이 부딛혀 가볍게 짜장, 하는 소리를 냈고, 찰랑이던 소주들은 첫 술을 기념해 빠르게 사라졌다.

"크아, 소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네..그보다 다들 잘은 지냈냐? 특히 거기 경찰 2인조."

"우리야 뭐..아직까지 별 일은 없어."

"최재석이 저놈 저거, 꼭 경찰 일 안 해본 것처럼 얘기한다니까."

"별일도 없다면서 왜 얼굴을 통 볼 수가 없냐 그래."

"그렇게 말하는 너는 잘 지냈고?"

정은창의 물음에 막 튀김을 집어먹은 최재석은 우물거리다 말했다.

"내 걱정해주는 정은창이밖에 없구만..뭐, 이쪽도 별 거 없어. 양시랑 같이 낮엔 애들 가르치고 밤엔 성인들 가르쳐."

"걱정이라면 나도 했는데?"

"완국이 형님이야 그 걱정해주는 마음 내가 잘 알지."

"재석이는 참 맞는 말만 한다니까."

"걱정해주다가 딴데로 새서 그렇지."

"얌마, 은쫭이, 그게 무슨 소리야? 엉?"

"말 그대로의 의미..으븝!"

소완국은 입을 삐죽이다가 떡볶이를 찍어 정은창에게 들이댔고, 정은창은 찡그리면서 거절하려 했으나 결국 입가에 양념을 듬뿍 묻힌 채 받아 먹을수밖에 없었다. 최재석은 킥킥 웃으며 잔을 보았고, 마침 유상일이 소주병을 들곤 눈가를 찡긋해보였다.

"다들 다치거나 아픈데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요즘은 이렇게 다섯이서 모이기도 힘들어 그래."

"주말엔 가끔 보기도 하잖아."

"아, 언제 너희 집에 놀러가서 아연이 얼굴도 보고 그래야하는데."

"빈손은 아니겠지?"

"여부가 마땅할까요."

"아연이하니까 생각나는데..그 애가 성인이 되면 저 유상일이처럼 여러 사람 홀릴 거야."

"주, 홀리긴 뭘 홀려?"

"이봐 소, 유상일이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부전자전이라고."

"그래?"

주정재나 최재석, 정은창은 가끔 유상일의 집에 방문해서 안부를 묻고 그 겸에 식사도 같이 하곤 했어서 이전에 유아연을 본 적이 있었지만 소완국은 유독 타이밍이 맞질 않아서 -갑자기 지방에 내려간다거나- 통 얼굴을 보질 못 했다. 유상일은 싱긋 웃으며 휴대폰 사진으로 찍은 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의 얼굴은 제 아빠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날씨 이야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다섯 남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그에 따라 잔이 채워졌다 비워졌다. 안주가 담긴 여러 접시들이 치워졌다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이윽고 하얀 배를 보일 즈음 술자리는 끝을 고했다.

"정 총무니임, 우리 예산은 괜찮아?"

"..아슬아슬하지만 괜찮아. 지금 다들 거나하게 취한 거 같으니 2차 갈 일은 없을 거 같고."

"야, 야, 정은창, 거기 유상일이부터 택시 태워 보내라."

"너는?"

"나는 그만큼은 안 취해서, 내가 잡아탈 거야."

포차를 기분좋게 나와 식후땡이라며 담배를 문 주정재는 입에 문 담배 끝이 아니라 허공에 대고 라이터를 틱틱거리고 있었다.

참 잘도 안 취했다. 그렇게 중얼거린 정은창은 유상일과 주정재를 한 택시에 태워보냈다.

"소 형은..."

"너희 집에서 자고 갈 거야!"

"난 아직 허락 안 했는데."

"허락 안 해 줄거야? 정말? 진짜?"

"......"

"뭐? 된다고? 짜식,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은쫭이 착하기도 해라."

"..제발 입 좀 다물어."

"나도 갈까?"

"..좀 참아줘..."

"농담이야, 농담. 총무일 고생했어."

"돈 걷어다가 계산하고 다음에 볼 때까지 모아두는 게 일이나 되냐..."

"어허, 투명한 내역과 철저한 관리는 제일 기본적인 만큼 어려운 거라고."

최재석은 취기에 붉어진 얼굴로 씩 웃으며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

최재석은 도장으로 가던 길에 편의점에 들러 콜라나 과자, 초콜릿, 찐빵 같은 것을 샀다. 기다리고 있을 양시백과 양태수 생각이 나서였다. (정작 양태수는 늦은 시간의 간식이나 야참 같은 것을 먹는 편이 아니었다.) 공기는 찬 편이었으나 마신 술이 불러일으킨 취기에 사그라들어있었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걷던 최재석은 문득 뿌연 입김이 한밤에 구름처럼 몽글거렸다가 흩어지는 것을 보다가 저 멀리 보이는, 불이 켜져있는 도장을 보고 씩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오셨어요?"

"잘 다녀왔냐?"

"엉,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니까 참 좋았어. 그 녀석들도 참, 얼굴 빼고 알멩이들은 별로 안 변한다니까."

"그건 재석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런가."

"그보다 관장님, 양손에 든 건 뭐예요?"

"뭐냐면..."

양시백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봉지 속의 내용물 -간식- 을 꿰뚫어 본 듯 했으나 최재석은 살짝 소리를 내고는 방석 하나를 끌어와 앉아 주섬주섬 짐을 풀었다.

"두 사람이랑 2차하려고 간식 사 왔지!"

"역시 관장님이라니까!"

"아저씨는? 오늘도 거절?"

"아니. 나도 먹을 거다."

"웬일이래?"

"아빠, 아까 라면 물린다고 영 미적지근하게 먹었거든요. 관장님 올 때까지 기다리게 되면 배고프니까 좀 더 먹어두라고 했는데, 참."

"덕분에 아저씨랑도 야참타임 가지니까 좋지 뭘."

"..야자타임?"

"야자타임이 아니라, 야, 참, 타, 임, 아저씨."

양시백은 텔레비전에서 곧잘 보던 개그 코드임을 깨닫고 푸흡, 하며 웃었고 양태수는 뜬금없이 두 사람이 웃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곧 미소지었다.

"아, 동창회 겸 친목회였는데 옛날 생각나네..."

"학교 다닐 때요?"

"아니..그보단 좀 뒤. 친구...친구하니까 아저씨가 나보고 친구없냐고 했던 거 생각나네."

"우와,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잘못 했네."

"..그, 그게 언젯적 일인데.."

"그러게. 한 10년 흘렀나...치, 그 때는 아저씨도 친구 나밖에 없었을 테니 쌤쌤이지 뭐."

"쌤쌤...됐다."

"아빠나 관장님의 학창시절이라..둘 다 영 상상 안 가긴 하네요."

"궁금해? 앨범 있는데."

양시백은 따끈한 찐빵을 호호 불며 베어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최재석은 관장실에 들어갔다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먼지를 얇게 뒤집어 쓴 까만 앨범을 하나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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