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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파로 흘러들어간 양시백

"...저, 작은 형님."

쭈삣거리는 기색이 역력한 조직원이 김성식에게 다가왔다.

김성식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잘못한 놈마냥 빌빌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으스대는 놈은 더 질색인지라 제 성격을 누르며 고개를 까딱하는 걸로 대처했다.

"뭐야. 도진 형님이 부르기라도 해?"

"아, 아뇨. 그..새로운 신입놈을 뽑는 것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뭔데. 짧고 간결하게 말해. 쓸데없는 거면 나한테 조져지고 싶어서 노래 부르는 의미로 알아들어줄 테니까."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온 놈이..."

조직원의 말이 이어지자 김성식은 작게 미간을 좁히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도진 형님께도 말을 전했나?"

"아닙니다. 다른 녀석들에게 잠깐 잡아두라고 해놓고 지금 바로 작은 형님께 온 겁니다."

"아, 잘했어. 그 특이한 신입놈은 내가 한 번 봐 놓고 도진 형님께 따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거든. 안내해."

"예!"

***

김성식은 특이한 신입을 붙잡아 놓은 방으로 자신을 안내한 조직원을 돌려보낸 뒤 손을 세워 문에 노크를 똑똑,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키는 컸고, 몸은 마른데다 떡 벌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몸 좋아서 조폭 하는 놈들은 별로 없었기에 신체적 조건은 보통 이하만 아니라면 상관이 없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암록색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머리를 덮고 있다는 것 정도. 김성식의 인기척에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서 등을 돌렸다. 김성식은,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으나, 안면이 있다 못 해 눈엣가시인 백석 경호원을 꼭 닮은 어린 청년의 얼굴을 보니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함께 심사가 꼬였다.

-빼다 박은 듯 닮았다. 정말로.

하지만 그것을 저보다 어린 놈에게 내보일 만큼 허투루 살아온 김성식도 아니었다.

"그래, 우리 선진화파에 들어오고 싶다고?"

"예...예!"

"이름이 뭐지?"

"양...시백이라고 합니다."

양시백. 양 씨다. 그 눈매 흉흉한 백석 경호원의 이름은 양태수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혈육이 아닌 이상 이렇게 닮을 수 있을 확률은 낮은 편이다.

혈육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었다. 엿만 먹일 수 있다면야. 무엇보다, 사람 피를 묻힌 적 없고, 지레 몰려서 온 놈들은 잘만 얼러주면 알아서 넙죽거릴 게 눈에 선했다. 쓰기 좋은 놈을 걷어차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 올려다 보기 그러니 일단 앉자고."

"예.."

김성식은 책상을 끼고 앉았고, 양시백 역시 김성식의 맞은편, 제가 앉았던 자리에 도로 앉았다.

"가볍게 호구조사부터 해 보자고. 가족은?"

"아, 저..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었다?"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흠, 그래?"

김성식은 어쩌면 제 눈 앞에 있는 이 어린 청년 양시백이 진짜로 양태수의 혈육, 아들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얼추 떡두꺼비 같이 장성한 아들 한 명쯤은 없는 게 더 이상한 나이대였으니.

"왜 선진화파에 들어올 생각을 했지?"

"...시설을 나오고 나서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얼굴 때문에 호된 꼴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주먹도 많이 휘둘렀고, 많이 얻어맞고, 그렇게 자랐었고요. 평생 당하면서 사느니, 차라리 되갚아 주자고, 얻어맞기 전에 먼저 때려눕혀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딱히 우리 쪽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지 않았나? 이래봬도 우린 물관리에 철저하다고."

"..서울을 꽉 잡고 있는 곳이니까요."

"호, 길바닥 생활 전전하던 놈이래도 눈은 높다 이건가?"

"건방지게 말할 생각은 없었습니다..죄송합니다."

"아, 아. 누가 보면 내가 화라도 낸 줄 알겠어. 쫄지 말라고. 근데 양시백이, 그거 알고는 있어?"

김성식은 큭큭 웃으면서 검지 끝으로 책상 위 유리를 딱 소리 나게 한 번 두드렸다.

"선진화파에 들어올 때는 신고식이 있어. 이불을 뒤집어 쓰게 하고 그 위로 퍼부어지는 집단구타를 견뎌내는 거지. 물론, 여기서 팔다리 하나 제대로 부러지고 뒤틀려서 병신 되어 나가는 놈들도 많아. 이걸 얘기해 주는 건 면접관으로서의 최소한의 호의 정도. 자, 어때?"

"......"

"밥 빌어먹고 살기 힘들대로 조폭 일 하려면 그만한 배짱과 맷집은 있어줘야 한다는 거지."

"...가볍게, 마음 먹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당장 신고식 치른다고 하면 그건 또 싫지?"

"......."

"면접은 불합격이야. 하지만, 네놈은 재미있게 써먹고 싶어졌어. 어때, 어울려 주지 않겠어?"

"..무슨.."

"흠씬 두들겨 팬 다음 내보내도 상관은 없지만 샌드백으로 칠 생각은 아냐. 적당한 곳에 데려다 주지. 거기서 한 번 난리를 된통 부려보라고. 눈에 띄면 거두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양시백은 이 아저씨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긴장해 침을 꿀꺽 삼켰다.

따라나와, 그 한 마디에 얼른 일어나 김성식의 뒤를 따랐다.

"백석에 갈 준비는 다 됐겠지?"

"예, 애들 다 태웠습니다."

"이놈, 이놈도 태워서 데려가."

"예?"

"거기, 그 경호원 놈에게 잘 보이게끔 앞세우고, 경찰이 엮이게 되면 얼른 버려. 만약 경호원 놈이랑 얽히지도 않고 경찰도 없으면 나한테 조용히 다시 데려오고. 알겠어?"

"..저 출처 모를 놈을 마구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도진 형님이 없으면 내 말을 잘 따라야지. 귓구멍 따이고 싶어?"

"죄송합니다. 어, 얼른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김성식은 조직원에게 귀엣말로 낮게 지시를 일러두었다. 양시백은 듬직한 체구의 조직원이 김성식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보고는 더욱 긴장했다.

그 긴장한 눈빛에서 양태수의 얼굴을 덮어씌워 읽어낸 김성식은 그 본인을 당황케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엿을 먹인 뒤 잘 협박하고 후려쳐서 장희준의 뒤를 캐낼 수 있다면 좋고, 수틀리게 되어도 선진화파와 김성식 자신이 손해보는 일은 없었다. 그 깔끔함이 기분 좋은 것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자, 그럼 잘 다녀오라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면 받아들여주지."

양시백은 조직원의 지시에 뒤따라가면서도 비웃듯 웃어보이는 김성식에게 시선을 주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만 조폭패거리를 택한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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