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7
생일자축글/진단메이커로 재호시백
시백이가 설희를 돌봤고, 주말에는 혜연이가 설희와 함께 지내곤 했다.
딱 잘라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었다. 주말이라고 시백이의 일상이 확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도장을 청소하고, 부족한 잠을 자고, 고장났던 텔레비전을 얼기설기 고쳐 방송을 시청하는 정도였다. 내가 그렇듯이.
그러다 그 주말의 두세번쯤 내 집에 찾아와 일상거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사라진 하태성 경위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묻기도 했고,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고, 또 그러다 시간이 늦어지면 자고 가곤 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었지만 재우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 고기를 사왔지. 와야할 때를 찰떡같이 알아!"
"왠일로요? 편집장님께 드린 원고가 한 방에 통과되기라도 했어요?"
"...우리 양시백이는 참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이럴 때에는 생일이냐, 같은 걸 묻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아저씨 생일은 이미 지났잖아요. 혹시 제가 모르는 다른 사람 생일이에요?"
"아니."
그냥, 이라고 덧붙이자 시백이는 싱겁다며 피피거리는 소리를 냈다. 정말로 그냥이었다. 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1인분 이상을 혼자서 해치우는 왕성한 식욕은 없었다. 2인분 이상의 고기는 한 달에 두세번 찾아오곤하는 양시백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 사람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당사자인 녀석은 싱글거리며 웃기만 했다. 참 사람 속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자, 그만 웃고. 고기값 해야지?"
고기를 굽고, 두 사람 몫의 식사를 준비하고, 적당히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식사가 끝이 난다.
시백이가 몸 쓰는 육체파 답게 -원래 식성도 좋은 것 같지만- 많이 먹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천천히 먹는 편이었고, 보통은 다 먹을 때까지 그 앞에서 간간이 말을 건네는 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먼저 일어났다. 괜찮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머그컵에 믹스 커피를 하나 타면서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식사하기에 바쁜 등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
배는 부르고, 밖은 춥고, 안은 따뜻하다.
혼자뿐일 도장에 보내는 것도 마음이 썩 편치 않아 오늘도 자고 가라고 붙잡고야 만다. 권유나 호의에 약한 점을 이용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침대에 먼저 누운 시백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새근거리면서 자는 것에서 새삼 아직 젊은 녀석이라는 걸 느꼈다. 앞머리가 겹쳐져 감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에 잠든 와중에도, 나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도 눈을 찌르지 않도록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귓가에 살짝 넘겼다.
양시백이가 속내를 완전히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런 것들을 모두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나를 자주 찾아오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새삼스레 잊었던 외로움에 대해 위안받았는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도 했고, 검게 칠하듯 지워버리게도 했다. 그러나 자는 얼굴을 보면서 당장 떠올린 생각은 손에 꼽힐 것들이었다.
자기 몸은 돌보지 않은 채로 부탁 받은 일을 하겠다며 뛰어다니는 녀석을 돕고 싶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어느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갈피를 잃고 헤매는 순간이 온다면 천천히 손을 잡고 걸어가 이끌어 주고 싶다.
다시 기력을 회복해 뛸 수 있게 된다면, 나 또한 느리던 빠르던 같은 길을 함께 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네는 나를 주저앉게 내버려 두지 않지."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이끌려 살짝 감은 눈 위를 손으로 가리고 몸을 숙였다.
샴푸 냄새가 밤공기에 약하게 퍼졌고, 잠시 망설이다 볼을 스치듯 입술을 살짝 눌렀다 떼며 덧붙였다.
"그러니 나도 자네를 주저앉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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