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5

상근상 생축글

"상일이. 생일 축하해."

유상일은 자신을 부른 박근태가 옅게 웃으며 던진 말에 어? 하고 어리둥절한 소리를 냈다. 어린 시절이 지난 뒤에는 생일을 그렇게 꼬박꼬박 챙기고자 하는 의지도 수그러들었고, 자신도 잊고 지내는 터라 생일이 지나갔구나 하는 정도였다. 올해의 생일도 그렇게 보낼 뻔 했고. 그러다 문득 제 앞에 있는 사람 또한 생일이 같다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그래서 잊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도 덧붙이면서.

"근태 형도, 생일 축하해."

"그간 못 챙겨주었었지. 선물이야. 좋아했으면 좋겠군."

박근태는 푸른색의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유상일은 선물이라는 말에 처음으로 박근태가 제 생일을 챙겨주었을 때를 떠올렸다. 성인이 되고, 경찰대를 졸업하고, 어엿한 한 사람의 경찰이 되기를 원했다. 궁지에 몰렸던 무력한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의 옆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 내고 싶어서. 그 감정은 동경이었고, 열망이었다. 박근태가 진두지휘하는 팀으로 배속되던 날, 신상 서류를 살펴보던 박근태가 저와 생일이 같다는 걸 안 뒤로 이렇게 종종 생일 선물을 건네곤 했었다. 회상에서 빠져나오며 포장 없는 상자를 열자 반듯하게 각 잡힌 넥타이와 넥타이 핀이 들어있었다. 유상일은 가볍게 웃었다.

"나 넥타이 안 하는 거 알면서 넥타이를 주다니..형님도 참 엉뚱한 데가 있어."

"마음에 안 든다면..."

"참..형 앞에선 농담도 못 하겠어. 근태 형이 내가 반듯하게 넥타이를 한 걸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잘 알겠다고."

"..꿈보다 해몽이군."

"해석하기 나름이지. 현석이 형이랑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할까? 근태 형 말대로 무척이나 오랜만이고."

"상황 봐서 비워두도록 하지. 현석이에게도 물어보고."

"매번 받은 기억밖에 없어서, 근태 형에게도 뭔가 해주고 싶은데 말야."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됐어."

유상일은 빈말인지 진심인지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는 그 말에 새삼스럽게도 입이 딱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이만 나가보겠다며 상자를 안고 후다닥 뛰쳐나오듯 자리를 떴다.

***

"현석이 형, 이만 들어가. 시간이 늦어서 혜연이가 걱정하고 있을 거야."

"상일이 너는?"

"보시다시피 근태 형이 술에 많이 취해서.. 택시도 잘 안 잡히니 집까지 바래다 주어야 할 거 같아. 형보다는 힘 센 내가 하는 게 맞잖아?"

"누구 동생인지 힘 세서 좋겠네."

"들어가, 형."

"그래. 너도 집에 가면 연락하고."

만취한 근태 형을 부축하며 현석이 형을 먼저 돌려보냈다. 간만의 셋뿐인 술자리에 흥겨웠던 것인지 답지 않게 많이 마셨는데, 그 중 제일은 근태 형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그나마 집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걸을 때마다 두 발걸음이 겹쳐지는 소리, 천과 천이 쓸리는 소리, 오늘 받은 선물상자가 담긴 봉투가 흔들리는 소리가 조용한 밤길을 장식했다. 가까이 닿은 근태 형의 얼굴이며 취기 섞인 숨이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라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이 상황이 기분 나빠서도, 불편해서도 아니었다. 마치 귓가에 숨을 불어넣는 것 같이 느껴져서, 그렇게 느낀다는 게 이상해서였다.

"근태 형."

불러봤지만 끙, 하는 소리만 날 뿐 대답이 없었다.

한숨을 쉬며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근태 형의 집에 가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부는 형의 성격에 알맞게 깔끔했고, 필요한 것들은 모자람 없이 갖춰져 있었지만 어디서 오는지 모를 삭막함이 쌔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근태 형은.

"아."

술에 취해서 그런가. 평소에 안 하던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부축한 팔을 풀고 근태 형의 양 어깨를 흔들었다.

"집에 다 왔어. 정신 좀 차려봐, 근태 형."

근태 형이 시간이 지나 술이 조금 깼는지 끙끙 앓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오랜 시간 닫혀있던 눈이 열렸다.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평소의 절도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 짙은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아까부터 느낀 이상스런 기분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상일이."

"그, 래..다 왔어. 근태 형. 답지않게 많이 마시니까 데리고 오기 힘들었다고."

내 취기는 완전히 가셔버린지 오래였는데도 괜히 말이 떨렸다. 별 거 아니겠거니 너스레를 떨었다. 근태 형이 마주한 내 뺨으로 손을 뻗었다. 거친 손끝이 뺨에 닿은 것은 순간이었고, 곧 손바닥이 꾹 눌러졌다. 뺨을 어루만져올리는 손길에 많이 취했으니 들어가서 쉬라고 말하려 했지만,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뺨을 만지작거리던 손길을 거두고 팔로 목을 휘감았다. 당황스러워하기도 전에, 어떻게 행동하기도 전에 입술을 갖다댄 것에 누가 못 박아 고정한 듯 몸이 뻣뻣해졌다. 맞물린 입술새로 꼬인 혀가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것에 사고회로가 턱하고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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