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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메이커/재호시백 조각글

양시백이를 보며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준혁이에게 습격당한 이후 병원에서 절대안정 딱지가 붙은 채 의식을 차리지 못 하고 있다가 사건이 끝나고도 남은 한참 뒤에야 내가 함께할 수 없어 결락된 부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찾던 최재석 관장과의 재회, 그리고 죽음, 준혁이와 상일 형님, 박근태 의원의 최후, 하태성 경위의 일, 무사히 구출된 두 아이의 일까지 모두.

만날 수 없었던 상일 형님.

이번에야말로 누명을 벗겨드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이뤄지지 못 했고, 형님을 잃은 슬픔과 오랜 시간 가져온 미련과 안타까움은 해소될 길이 영영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시백이를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좌절한 과정들과 닮은 일들을 겪고도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 은인을 잃고도 선을 넘거나 하지 않았다. 슬픔을 제 안에서 녹여낼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건만 그 유지를 잇기 위해서 멈추지 않았다. 은인이라는 단어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현석 형님이었다. 내게는, 옛 동료들에게 너무나 큰 존재였기에 상일 형님의 수감에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진 갑작스러운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 했다. 당장 일어서지도 못 했었고, 지독한 환멸감이나 무기력함을 떨치기에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시백이는 나와 다르다.


주어진 상황이 비슷하지만 다르듯이. 스스로의 강함 이전에 긴박했던 상황에 몰아붙여져 주저앉을 것 같음에도 멈추지 못 했던 것일수도 있다. 과거의 나보다도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단시간 내에 그런 성질의 상처에 딱지가 앉을 리가 없다. 실제로도 준혁이의 사무실에는 들어가지조차 못 하고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지 않았었나. 성인이긴 하지만 아직 한참 어린 녀석이다.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처지에 기댈 곳이 되어주고 싶다. 내 코가 석 자기는 해도.

"...그러니까, 잘 좀 자. 양시백이."

침대에서 웅크리고 자는 시백이에게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설희를 혜연이에게 맡긴 채 도장에서 두문불출 하는 거에 걱정이 되어서 몇 번 찾아가다가 앓듯이 끙끙거리며 자는 걸 안 시점에서 -그 몇 번을 찾아갈 때마다 절반 이상 잠든 모습이었다- 문득 세상 살기가 싫어지면 잠이 는다는 말이 스쳤다. 해야할 일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최재석 관장님에게서 상일 형님으로 이어진 '부탁' 의 연장으로 내 경우처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지 모르는 것이었다. 시백이는 삶의 의지를 잃거나 하지 않았고, 분명 강한 점이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가 발하는 아릿한 통증과는 별개일 것이었다. 그래서 지켜보는 것을 그만 두고 자는 걸 깨워다가 뭘 좀 먹이고 앞으로의 행동방향 및 지침을 세우자고 집으로 불러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여전히 졸음을 떨쳐내지 못 하는 기색에 자고 일어나서 이야기 하자며 재웠다. 잠이라도 편히 자라고 데려온 건데 관장실 안에서처럼 웅크리고 자는 모습에 짠한 기분도 들었다.

"...관장님..."

꿈꾸는지 중얼거리는 시백이의 목소리에 뻗은 손을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묻었다.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내게 조금이나마 기대게 하고 싶다. 내가 없는 새 짊어진 많은 짐을 덜어서 함께 져주고 싶다. 잠든 녀석이 그걸 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관장님' 에 비하면 나는 그런 것들을 털어놓을 정도로 믿음직스럽지 못 하다는 걸까. 하긴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도 벅찼었는데 누굴 위로하기 쉬울 리가 있나.

"..그래도, 잘 자라고, 양시백이."

길기도 한 앞머리를 쓸어넘겨 이마가 드러나자 굿나잇 키스를 하듯 그 위에 짧게 입술을 갖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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