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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 권혜연 if

아저씨.

아저씨는 경찰이죠?

..저를.......주세요.

그는 칼잡이다.

아직 칼로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칼을 써서 누군가를 위협하고 협박해 먹고 사는 사람이므로 칼잡이였다. 누군가는 왜 칼잡이가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도 처음부터 칼잡이가 되기를 소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는 제 아버지가 범죄자와 맞딱뜨리는 경찰이라는 건 잘 알았다. 일찍 혹은 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지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생각조차 하기 싫었지만) 잘 알았다. 알았지만 그런 참혹한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머리에 총격을 당해 즉사. 그 후 자동차와 함께 한강바닥 아래로 가라앉혀졌다. 시체조차 온전치 못한 죽음에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 친구, 동료, 상사, 도움을 받은 다른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어주었지만 마음에 난 거대한 구멍은 채워주지 못했다.

***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 구멍이 어떤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알지 못해 고민했다. 또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지도 함께 고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녔던 학교는 졸업을 앞둔 뒤였다. 며칠 밤을 홀로 보내며 생각하고 생각했던 그는 비로소 긴 고민의 끝을 냈다.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었던, 연락처를 남겼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는 주정재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버지의 동료에게 아버지가 모시던 상관 밑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일할 수 있게 주선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버지를 죽일 정도로 적대하던 자 혹은 집단이라면 아버지의 상관 역시 적대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짧은 생각이 기초였고, 그 상관이 경찰복을 벗고 정계로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식 역시 짧은 생각을 기저에 깔기 시작했다. 주정재는 그런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은 뒤 눈에 띄게 어두워진 낯빛으로 물었다.

"..혜연아. 아버지 경찰이 되는 건 어떻겠냐? 그게 훨씬 나을지도 몰라."

"......"

경찰이 된다.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은 권현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의문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가볍게 말하자면 이대로 덮고 싶다는 의미였고, 무겁게 말하자면 단서도 없는 일에 인력을 배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영웅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렇기에 그는, 권혜연은 경찰에 몸담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침묵으로 답하자 주정재가 혀를 쓰게 찼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 거냐?"

"네."

"..알았다. 말은 전해보겠다만 상대도 안 해줄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둬라."

"..감사합니다."

"..내가 사과해야할 판인 걸. 만약 마음 바뀌면 언제고 연락해라. 알았지?"

박근태. 몰락한 유상일과 사망한 권현석과 더불어 경찰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

두 사람의 상관이자 백석 그룹의 권세까지 손에 넣은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만큼 주정재의 말대로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고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거절당한다 해도 지금 마음먹은 것을 꺾을 생각은 없었다. 권헤연은 제 볼을 찰싹 때리며 단단해지기를 소망했다.

***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칼잡이가 되길 소망했고, 칼잡이가 되었지만 권혜연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품는 복수심 다음으로 지키는 신념이었다. 다만, 그러고 싶다면 상대를 가차없이 확실하게 무력화 시켜야했다. 관절을 꺾고 팔을 비트는 것은 물론, 죽이지 않더라도 피는 크든 작든 보게 되는 방법들을 익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권혜연 역시도 자신의 피를 숱하게 보아야 했다. 손에는 날붙이에 베이고 찢긴 흔적에 칼을 잡게 되면서 따라붙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어느새 10년 째였다.

국회의원 박근태는 권혜연을 받아들이는 대신 권현석을 죽인 자를 찾아내겠다는 약속을 헀으나 성인이 되고서도 6년을 넘긴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하지만 권현석의 옛 동료들을 찾는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었기에, 그들에게서 정보를 입수하는대로 주정재를 통해 다시 한번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해야할 참이었다.

"..미행은?"

"없었어요. 여기, 물건이요."

"..고생했다."

"아저씨야말로 고생하셨죠."

주정재가 권혜연에게 호위 겸 붙여준 남자는 뺨에 흉터가 있는 중년 남자였는데, 주정재가 따로 부탁한 것인지 권혜연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곤 했다. 권혜연은 다소 부담스러워했으나 그 역시 주정재의 부탁으로 자신과 함께하는 것일 텐데 나름의 호의를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적당히 어울리곤 했다.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일'을 할 때가 아니면 나이프는 반납할 것. 주정재가 내건 조건이었다. 식칼도 과도도 아닌 것, 사람에게 겨눌 수도 있는 물건을 계속해서 소지하는 건 그리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권혜연은 주머니에서 고이 접혀있는 나이프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저녁은 어떻게..?"

"정재 아저씨한테 먼저 물어보고요."

"늦을 걸. 나한테 전화했어. 같이 먹으라더라."

"그래요? 저한텐 아무 말도 없었는데..."

"......"

"그래요, 오늘은 아저씨랑 둘이서 먹죠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남자는 고개를 숙여 짧게 그늘을 드리우다가 곧 표정을 바꾸고는 권혜연에게 맛있는 집을 소개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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