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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조 5인방 회식

"그간 일들을 돕느라 고생이 많았지. 많이들 먹어."

김성식의 상냥한 말에 입을 다물었다.

보통 당근과 채찍이라고 하던가. 김성식은 본인 비유대로 그렇게 야박한 성격이 아니라서 성과급 같은 건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허나 아무리 조심한들 무의식중으로 김성식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점, 장단에 맞춰야 춤이라도 출 텐데 김성식은 특히나 그 폭이 좁고 까다롭다는 점,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언제 수상하답시고 잡아 죽여 쏴 죽일지 모른다는 점들이 한 자리에 있을 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마찬가지리라.

"딱딱하게 앉은 꼬라지들 하고는...난 생각 없으니 알아서들 즐기고 와."

김성식은 장벽같이 늘어선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카드를 툭 던지곤 자리를 떴다.

김성식이 문을 닫고 몇 분이 흐르자 겨우 후욱,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웬일이래냐? 저번처럼 술이라도 따라야 하는 거 아닐지 걱정했는데."

"내가 아냐."

"자, 그럼 형님도 가셨겠다, 좀 가벼운 기분으로 고기나 뜯어보자고!"

나, 최재석, 유상일. 이렇게 한 테이블이었고, 소 형과 주정재가 그 옆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최재석은 언제 집게와 고기 접시를 든 건지 이미 비계를 조금 잘라서 판에 기름을 칠하곤 고기를 올리고 있었다. 김성식이 안 갔으면 대체 어쩔 생각이었던 건지. 참 천연덕스러운 놈이다. 이 상황에선 자리를 뜰 수도 없는데 알아서 고기 구워준다니 얌전히 먹는 게 나았다.

"그쪽은 제사 지내? 안 굽고 뭐해?"

"주, 고기 안 구워?"

"왜, 소, 댁이 굽지 그래?"

"둘 다 말을 이상하게들 텄네."

"은창이, 넌 이게 말 튼 걸로 보이냐?"

"이거 왜 이래, 이쪽이 서울 선배라고 이쪽이."

"내참, 동렬 항대구만 무슨 선배야, 선배가. 이봐 주, 모르나 본데...형님이 주신 카드, 내가 갖고 있다고?"

"개처럼 부려먹어주십시오."

"그래야지. 카드 든 사람이 물주라고 물주. 어때, 은창이. 이 형님의 처세술이?"

"....하나도 안 존경스러워."

주정재는 투덜거리면서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그래서, 저쪽 엉님이랑은 꽤 절친하다면서?"

유상일이 소 형쪽을 흘끗 보더니 내게 물었다.

"소 형? 그렇게 절친할 정도로 친밀하지는..."

"은쫭이, 형님 섭섭하다...?"

"악연이야. 악연. 아주 촉새처럼 사흘 밤낮을 떠들어도 다음날 또 늘어놓을 양반이라고."

"근데, 그렇게 넌더리를 내는 것치곤, 형이라고 부르는 건 저기, 소완국 씨밖에 없잖아?"

"엇."

"그러고보니..."

"그렇네?"

최재석을 제외하고 눈빛이 순간적으로 확 쏠렸다.

"야, 정은창! 너 나한테는 형님 소리 터져죽어도 없다더니!"

"아니, 별로 소 형도 좋아서 부르는 건..."

"역시 점마 신고식 때 빠따 맛을 보여줬어야 했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와서...어흐흐흑..!"

"..형이 나 키운 적은 없거든?"

"사이 좋아보이네."

"아니, 전혀, 전혀."

"주정재, 거기 고기 탄다. 아줌마, 여기 냉면 하나 추가요!"

최재석은 언제 제 밥그릇을 비웠는지 벌써 냉면을 시키고 있었다. 주정재는 재빨리 고기를 뒤집었고, 최재석은 곧 석쇠 위에서 익은 고기를 집게로 집어 큼직하게 잘랐다. 유상일은 상추 하나를 집나 싶더니 무쌈 위에 고기, 그 위에 마늘, 그 위에 파채까지 야무지게 얹어서 한 쌈 크게 먹었다.

"...야무지게 먹네."

"...므어?"

"맛있게 드시라고."

입을 꼭 막은 유상일은 양볼이 빵빵해져서는 오물거리는 게 어쩐지 흔히 애완용 쥐로 불리는 햄스터를 생각나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귀여웠다. 유상일은 티슈를 하나 뽑아 상추 물기를 닦더니 다시 상추 하나를 집어들곤 쌈을 싸기 시작했다. 식성 좋네. 밥을 깔짝이던 나는 내 앞에 흰 손이 하나 불쑥 내밀어지자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유상일이 쌈을 내 입에 들이민 거였다. 이 녀석, 사람 난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또 기껏 싸 줬는데 고개 돌리는 건 그래서 또 얌전히 받아먹었다.

"계속 안 먹길래. 재석이가 고기 다 먹는다?"

"구우면서 먹고 있거든?"

"네네..."

최재석은 깻잎을 들더니 냉면으로 고기를 싼 걸 집어올려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다 구웠으니까, 그쪽도 드셔. 소."

"그러지, 주."

"소 형이랑 주정재랑 잘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툭 던진 말이었는데 주정재와 소 형은 동시에 내 쪽을 휙 돌아보며 손사레를 쳤다.

"아줌마, 여기 비냉으로 하나 더 추가요! 아, 곱빼기로요!"

원체 입이 긴 편은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익은 고기 몇 점 먹고 있는데 최재석은 밥 한 그릇 비우고 냉면 두 그릇 째를 돌파하고 있었다.

"진짜 잘 먹는다..."

"소 형, 저거 괜찮겠어? 너무 많이 긁으면 형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설마 이런 걸로 조지겠냐? 뭣보다 덩치가 소만한 녀석들이 넷이나 있는데 이 인원이면 소도 해체 가능한 줄 알겠지 뭐."

"..왜 형은 슬쩍 빠지는데?"

"이 형이 좀 가녀리잖냐. 머리 더 기르면 여잔줄 알고 멋 모르는 애들이 쫓아와요 그래."

"허풍 떨지 말고 고기나 드셔."

"너나 잘 먹어."

소 형은 얼마 떠 먹지 않은 내 밥그릇 위에다가 웬일로 고기를 얹어주었다.

"많이 먹고 2차 가야지?"

"아니, 형이랑은 사양할래. 그러느니 형님께 가 있고 말지."

"와, 너무하네 진짜..."

소 형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더 안 먹어?"

"많이 잡수셔."

"왜, 쌈 한 번 더 싸 줄까?"

"아니. 입 터지는 줄 알았어."

"그러라고 싸 준 건데."

"입이 작아서 아파."

"정은창,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네."

"뭐, 난 농담도 못 할 줄 알았어?"

"못 할 줄 알았지."

유상일은 그렇게 말하곤 이번엔 제가 집게를 잡았다.

최재석은 엇, 하고 제가 하겠다고 말했지만 유상일은 마저 먹던 거 먹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내가 굽는다니까."

"마저 먹어. 그나저나 재석이 너, 냉면 좋아했던가?"

"면 종류는 다 좋아해. 그리고 고깃집에 냉면이 어떻게 빠져?"

"다들 고기에 집중해서 말이지."

"잘 먹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러는 정은창, 네가 제일 적게 먹었고 말이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서."

정말이었다. 주정재와 소 형은 육신 강림이네 젓가락으로 불꽃튀는 고기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고, 유상일은 적당한 야채와 입가심을 병행하며 고기를 착실하게 섭취했다. 최재석이야 사이드 메뉴로도 오늘의 최고 매상을 안겨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왕성하게 먹고 있었고.

"담배나 피고 올련다."

이런 날도 있는 게 맞지.

채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한 밥그릇을 뒤로 하고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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