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4

재호시백/발렌타인 데이

"혜연 씨, 생일 축하해요. 이건 저랑 설희가 같이 고른 선물이에요."

"고마워요. 받아도 될까요?"

"언니, 대신 집에 가서 풀어보세요!"

"응, 그럴게. 고마워, 설희야."

권혜연 씨는 설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겨울이 막 가실 즈음의 생일이다. 주변을 둘러싼 것들은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막막한 느낌이지만 그렇게 처질수록 더욱 서로를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권혜연 씨의 생일을 순수하게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내 선물일세."

"고마워요, 재호 씨. 근데 혹시 오늘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초콜릿 선물하는 건 아니죠?"

"흠흠, 뭐라고 했나?"

"아니에요."

...안 뜯어봐도 알겠다.

손을 잡은 설희가 반대쪽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재호 아저씨는 머쓱한 듯 잠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도장을 나갔고 권혜연 씨는 제 손에 들린 상자를 보다가 나와 설희쪽을 돌아보곤 웃었다.

"..그나저나 발렌타인 데이라.."

권혜연 씨 생일 축하해주는 걸 잊지 않겠다고 달력을 체크하며 봤지만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애초에 무슨무슨 데이 같은 거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하지만...

***

"아저씨, 담배 잠깐만 핀다면서요?"

"냄새는 빼고 가야지. 좋은 날, 좋은 날씨에 담배 냄새 묻히고 어울리긴 그렇잖아?"

"어쩐지 담배 만들어서 피고 오는 것처럼 느릿느릿 하시더니만..."

"가끔 보면 우리 양시백이는 이 깊은 배려를 모르는 깍쟁이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깍쟁이가 뭐에요, 깍쟁이가."

아차.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괜히 또 휘말려 든 것에 고개를 붕붕 저었다.

기껏 마음 먹었는데 괜시리 부끄러워져 주머니에 꾹 넣고 꼼지락 거리던 손을 빼냈다.

"아저씨도 괜히 딴 말하지 말고, 이거나 받아요."

"...뭔가 이게? 자네가 날 존경하는 마음이 하해와 같아 단 둘이 있을 때 꼭 전하고 싶었던 건가?"

청산유수로 말을 잇는 게 오늘따라 더 놀리는 것 같아 얼굴은 보지 않고 직접 확인하라는 뜻으로 손에 든 것을 가볍게 내밀며 꾹 아저씨의 점퍼에 눌렀다.

"...이거..."

초콜릿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런 거 또 언제 챙겨보겠냐며 부랴부랴 거리로 나간 건 좋았는데, 권혜연 씨의 생일선물을 마련하느라 그간 모아놓은 돈의 대부분을 써 버렸기 때문에 내가 겨우 사 올 수 있었던 건 슈퍼마켓에서 파는 초콜릿 뿐이었다. (그래도 500원 짜리 말고 1000원 짜리로 샀다는 것에 조금 위안을 갖기로 했다. 포장지라도 써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저씨가 받는 낌새가 없어서 받을 생각이 없는 건가 싶어 결국 얼굴을 돌려 바라보는데 아저씨의 벙찐 얼굴이 보였다.

"아니, 자네가 초콜릿 줄 거란 생각을 못 했거든."

찔끔.

"혜연이가 발렌타인 데이 언급한 거에 급히 준비한 거겠지만..."

정곡!

"그래도 생각지도 못 한 걸 받으니 기쁘구만. 고맙네."

"다, 다음에는 예쁘고 좋은 걸로 드릴게요."

초콜릿을 받고 웃는 아저씨의 얼굴에 생각지도 못 했던 말을 했다.

"근데 말이야, 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우리 양시백이가 초콜릿을 줄 거라곤 생각을 못 해서..."

"?"

아저씨는 가방을 열어 그 안에서 포장된 상자를 하나 꺼냈다. 권혜연 씨에게 준 것과 꼭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준비했다, 이 말이지."

"엑."

"둘 다 준비했다지만 내가 먼저 받았으니 양시백이는 다음달 화이트 데이에 분발하게."

"주신 건 기쁘고 고마운데요..이게 그렇게 돼요?"

"그렇게 되는 거지. 자, 날도 춥고 다들 기다릴 테니 이만 들어가자고."

받은 상자를 괜히 점퍼 안쪽에 푹 감추고 아저씨의 뒤를 따라 도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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