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히든 엔딩 이후

국회의원 살해 사건. 범인은 과거 서대문 인질극 사건의 피해자이자 박 의원의 부하였던 유 모 씨로 밝혀져...

딸을 잃은 슬픔과 자신을 비리 사실을 잡아낸 일로 박 의원에게 앙심을 품고...

"멋대로들 말하는군."

남자는 신문을 접었다. 직접 겪지 못했을 뿐 대강의 이야기는 접했기에 더 살펴볼 필요성을 못 느꼈다. 불쾌하기만 했다. 유상일이 10여 년 전 뒤집어 쓴 비리가 누명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난 건 지난 달 10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의원 살해 건으로 비리 건이 번번이 책 잡혀 떠오르곤 했다. 이 서울은 늘 그렇게 대처해 왔다.

남자의 행적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박근태와 주정재는 죽은 지 오래였다.

사실 그런 것을 가늠하기도 전에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다. 유상일이 죽음을 소망한다 해도, 유상일이 벌이려는 일이 남자의 의지와 기어고 상층한다 해도, 저를 뿌리치고 행방불명 되었던 남자가 사실은 살아있었노라고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위험 부담을 안고도 움직이려 했으나 발을 묶은 것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쪽이었다.

-실장님 지시입니다.

실장. 비서 실장. 강재인.

남자는 주정재의 맡은 일을 나눠하거나 대타로 나섰던 게 다여서 개중에 강재인이 신경 쓸 일이 있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 걸까 하는 비약에 잠시 이르렀으나 그랬다면 이렇게 미적지근한 접근방식을 취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왜? 주정재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그 단초를 남자에게서 얻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남자가 주정재를 죽였으므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귀는 잘 맞았다- 하지만 덕분에 유상일을 제 때 따라 나서지 못한 건 못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 최재석까지 사망한 뒤였다.

"...어쩔 생각이지?"

뒤따라오는 기색을 눈치챘으나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린 남자는 제게 꽂히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은 아이템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했다. 이 행위 자체가 강재인에게 특출나게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도 잠시였다.

***

톡. 톡.

길고 하얀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일을 시끄럽게 만드는 건 백석의 일처리 방식이 아니었고, 주정재의 실종은 그런 면에서 예상 외였다. 백석, 정확히는 박근태 아래에서 온갖 일을 도맡아 하던, 현직 경찰이기까지 한 주정재가 실종되면서 정해진 길을 이탈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거나, 자신을 거뒀던 박근태의 죽음에 저 역시 제거될 것이라 생각하여 죽은 듯이 잠적 중이거나. 목줄을 벗은 사람 죽이는 맛을 본 맹견은 처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면 굳이 손을 더 쓸 필요는 없었다.

강재인은 서류 안에 든 것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주정재 옆에서 알짱거렸던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의 것이엇다. 친구 내지는 직장 동료쯤 될까. 주정재의 실종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거나, 제가 실종되면 이러저러하게 움직여라 언질 받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정재의 일을 남자에게 인계해도 -경찰 업무를 맡기는 게 아니니- 사실상 달라질 것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남자에 대해서 털어볼 것은 죄다 털어봐야 했다.

10년 전에는 장희준의 명으로 발로 뛰어 사람 신상을 털고 협박해봤던 강재인이었으므로, 이 남자의 신상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고향조차 불분명. 얼마든지 말을 꾸며낼 수 있는 백지가 아닌가. 속이지 않은 것이 나이 하나뿐이라 한다면. 강재인은 10년 전 만났던 남자를 한 명 떠올렸다.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와는 모든 것이 달랐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을 무시하고 넘어갈 정도로 무디지는 않았다.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 강재인은 상대가 전화를 받자 용건을 말했다.

"그 놈한테 전해. 일을 하나 맡기고 싶으니, 보자고 한다고."

강재인은, 그럴 듯한 테스트를 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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