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5

유상일 생축글

"생일 축하드려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경위님, 국장님!"

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어 끈 오늘의 당사자 유상일과 박근태는 환호하며 축하해주는 동료들에게 인사하며 웃어보였다. 유상일에게는 이번 생일이 남달랐는데, 경찰로 복귀한 뒤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널린 조폭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아도 받은 것 같지 않았던 잠입요원 시절의 설움과 분노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두 분 기념으로 오늘 회식 가는 건가요?"

"하하, 아연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는 못 있을 것 같아."

"아, 그렇죠..제가 아연이 생각을 깜빡했어요."

"아냐, 괜찮아 미정 형사.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즐거운 마음으로 회식하겠어. 하지만 당분간은 아연이랑 술 안 마시고 일찍 들어오겠다고 약속했거든."

"소탕 작전의 영웅님이 생일날 일찍 개선하신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국장의 이름으로 허락하지."

"나 참, 근태 형...아니, 국장님도 오늘 생일이시거든요?"

"아, 그랬지."

"가끔은 상일이보다 국장님이 더하다니까."

"내 나이쯤 되면 생일은 별 거 아니니까 말이지."

생일 케이크는 단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체크해 알뜰히 종이컵에 담아 나눠먹었고, 유상일은 생일 턱이라며 몇몇 팀원들이 기꺼이 그의 업무를 분담해 준 덕에 조기 퇴근을 명 받을 수 있었다.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국장실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퇴근 전 인사하러 온 유상일이었다.

"이거 나만 이렇게 밝을 때 퇴근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아니야. 다른 잠입요원들에 비해 일찍 신분 전환 수속을 밟았지만 늘 완전 소탕을 위해 제일 먼저 나서고 무리를 한다고 생각했어. 나뿐만 아니라 현석이와 다른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오늘은 아연이보다 일찍 들어가서 깜짝 놀래켜 주라고."

"고마워, 근태 형. 그런데...나만 축하받고 배려받는 것 같아서 미안한 걸. 형도 오늘 생일이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내 나이쯤 되면 큰 감흥 없이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싶으니까. 승진한 만큼 열심히 일해야지."

"우리 근태 형도 쉬어야 하는데, 국장직이 문제로구나. 알았어. 그럼 감사히 돌아가도록 할게."

"아, 잠깐. 상일이. 줄 게 있어."

"응?"

박근태는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작은 상자를 책상 안쪽에서 끌어올려 유상일의 앞에 내밀었다. 동그랗게 장식된 종이손잡이. 안이 들여다보이는 흰 종이상자 안에는 다같이 나눠먹은 케이크보다 더 화려한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전달하기 전까지 냉장 보관한 것인지 받아든 종이상자는 생각한 것보다 차가웠다.

"이게 다 뭐야?"

"팀원들에겐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준비했지. 아연이랑 같이 먹으라고."

박근태는 온화하게 웃었고, 유상일은 작게 눈물을 글썽이다가 정말 고마워, 라고 대답하며 국장실을 나왔다.

하늘은 맑고 햇볕도 그리 따갑지 않았다. 생일이라서 그렇게 느끼는지 몰라도 몹시 화창하고 좋은 날이었다.

***

유상일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케이크를 넣어두고 손을 씻은 뒤 냉장고 상태를 재점검했다. 케이크랑 같이 먹을 우유도 사야했고, 계란도 떨어져갔고, 반찬거리도 사야했다. 딸 유아연이 오면 깜짝 놀래켜 준 뒤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

"다녀왔습니다."

"아연이 왔어?"

"아, 아빠!"

책가방을 멘 유아연이 신발을 얼른 벗고 유상일에게 달려들었다.

넘어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상일은 하교한 딸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빠, 아직 저녁 아닌데 집에 있어?"

"오늘은 아빠 생일이라서 일찍 들어왔지. 아연이랑 맛있는 거 먹으려고."

"아빠 생일이야?"

"응."

"생일 축하해, 아빠!"

"고마워, 아연아. 근태 삼촌이 아연이랑 같이 먹으라고 케이크도 주셨어."

"정말?"

"응. 냉장고에 들어있어. 먹고 싶어?"

"응! 케이크 먹자!"

"자, 그럼 손 씻고 오자. 아연아. 아빠가 꺼내고 있을게."

작은 접시와 작은 포크. 여러 색상의 생일초, 케이크를 상자에서 꺼냈다. 생일초 3개를 케이크 위에 꽂고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런 유상일 옆에는 어느새 유아연이 다가와 있었다. 유아연을 안아 높은 의자에 앉힌 유상일은 케이크를 보며 말했다.

"아연아, 생일 노래 부를까?"

"응, 생일 축하할 때는 노래 꼭 불러야 해,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후.

후우~

연기를 매단 초에서 촛농이 떨어지기 전 불어 끄고 한쪽에 치워둔 뒤 동봉된 플라스틱 칼로 큼직하게 한 조각씩을 덜었다.

"아, 우유. 우유 가져올게!"

"그래, 컵은 아빠가 가져갈게~"

아장아장 걸어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내오는 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러웠다.

"나중에 근태 삼촌이 오시면 케이크 사주셔서 감사드린다구, 우리 아빠 잘 부탁드린다고 해야 한다?"

"응, 그럴게. 근데 아빠, 이제 먹어도 돼?"

"그럼, 천천히 먹어, 우리 아연이."

***

"되게 맛있었다, 아연이는?"

"맛있었어. 고기."

"역시 고기인가...아연이도 날 닮아서 고기를 좋아해."

"고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그..있지 않으려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빠, 빨리 가자."

"안 피곤해?"

"안 피곤해. 시장 가자. 시장."

"그래. 계란이랑, 우유랑, 아침에 같이 먹을 빵도 사가자."

"좋아!"

딸의 손을 잡고 시장에 걸어가는 아빠의 모습.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광경이었지만 유상일은 그런 흔한 일들을 딸과 함께할 때마다 가끔씩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해서. 이런 행복을 영영 잃어버릴 뻔했어서, 다시는 딸을 만날 수 없게 될지 모르는 순간들이 선명했어서.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생일날 딸의 손을 잡고 울 순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빵, 딸이 좋아하는 빵, 답례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팀원들에게 간식으로라도 먹으라고 나눠줄 빵 등을 담았다. 큼직한 봉투 속을 빵빵하게 채우니 어찌나 넉넉하고 푸근해 보이는지. 버스를 타고 동네까지 걸어와 달이 살풋 보이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는 길 역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빠가 생일인데 아연이가 더 즐거워하네?"

"아빠는 안 즐거웠어?"

"아니, 즐거웠어. 다다음 달은 아연이 생일 있으니까 그때는 아빠가 아연이보다 더 즐거워해야지."

"피, 내 생일인데 아빠가 더 좋아해?"

"농담 농담. 아, 피곤하다 집에 가서 씻고 일찍 자자. 9시 되어버리겠어."

"내일도 출근해?"

"응, 오늘은 생일이라 특별하게 일찍 온 거야."

"아빠가 맨날맨날 생일이면 좋을 텐데."

"그럼 다른 사람 생일하고 맨날 겹치잖아."

"그런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딸을 얼러 재우고 혼자 남는 짧은 시간.

유상일은 내년 생일도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낼 수 있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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