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주정재+누아남

주정재는 쉴 틈이 없었다.

경찰일을 할 때도, 표면적인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일, 일, 일. 계속 일이었다. 누군가는 저 놈만큼 느긋하고 뻔뻔하게 일하는 놈도 없을 거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본인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주정재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오는 날이면 네까짓 놈이 내가 하는 일들을 다 아느냐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주는 게 일상이었다. 10년. 짓거리라고 낮잡아 부를 만큼 멸시해온 세월은 어느덧 강산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서당 개 밥만 먹었다면 장원급제라도 했을 것이다.

욕을 구성지게 뱉으며 담배를 태웠다. 하루가 밝으면 또 하루 분의 일이, 추가분이 떨어진다. 목숨을 살려준 건 눈물나게 고마웠지만 주정재가 근 10년 간 해치워온 일들을 생각하면 박근태가 골수까지 빨아먹을 요량으로 살려뒀다는 것을 증명하기 충분한 세월이었다.

"일이다, 9시 반까지 사무실로 나와."

-...알았어.

간결하고 건조한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저만큼이나 바쁘고 골수까지 빨아먹히는 놈. 주정재는 그를 악우라 여기면서도 낮잡아 보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 박근태의 밑에 있으면서 심성이 옮은 것인지도 몰랐다. 사내 놈 골수 빨아먹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거보단 낫지 않겠느냐 중얼거리며 주정재는 자리를 떴다.

***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인성을 흉하게 만드는 짓이다.

그러나 죄를 범하더라도 살고 싶은 인생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인생들은 술과 친구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논리로 주정재는 일과를 끝내고 술을 곧잘 마시곤 했다. 중독은 아니지만 자주 즐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 뜨끈한 오뎅탕이나 먹으러 갈까?"

"멋대로 답 정해놓고서 권유하는 척 하지 마라."

"아 맨날 포장마차 가는 거보다 좀 번듯한데가 따뜻하고 좋잖아! 별식도 먹어야지 너는 밥만 먹냐?"

"귀때기 울리니까 앞장 서기나 해라."

"군말 안 붙이면 혓바닥에 뭐라도 나냐?"

"어."

"싸가지 없는 새끼."

"친구 없이 살아와서 그래."

"야, 옆에 있는 나는 또 친구가 아니냐?"

"친구지. 너 좋을 떄만."

나한테 이따위로 군 건 네놈이 처음이다. 주정재는 드라마에서 흔히 말하는 전개는 좋아하지 않았다. 악우인 남자가 다소 건방졌지만 실력은 확실하고 합을 맞춘 것도 한두 해가 아니므로 -결정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늘 자신이므로-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좋게 좋게 가자. 금요일인데."

"내일은 일 없는 거 맞지?"

"이렇게 부려먹으면 아무리 나라도 골병 나겠다고 영감한테 떼 써놨으니까 정말 죽도록 급한 거 아니면 아마 없을 거야. 있으면 재수 옴 붙은 주말 되는 거고."

"형사님이 제 몸 성할 날이 없네."

"지는 아닌 것처럼."

***

추운 겨울날 밤길을 걸어 도착한 오뎅탕집은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주정재가 이런 곳을 알아두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버너와 함께 세팅된 모듬 오뎅탕이 든 냄비에 불을 올리고 몇 분 지나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곤약, 나무 젓가락에 끼운 가래떡, 구불구불한 꼬치 오뎅, 매끈하고 길쭉한 오뎅, 유부주머니 등이 육수와 함께 끓으면 기가 막힌 냄새를 풍겼다.

"이모, 여기 소주 두 병!"

"네네~!"

"전에 왔었냐?"

"야, 기본 2인이라 나도 처음이다."

"같이 올 사람이 없나 보지?"

"누구 말마따나 친구가 없어서 모르겠네."

"째째하긴."

남자는 종업원이 들고 온 소주병 두 개를 건네받아 한 병은 테이블 위에 두고 한 병은 쥔 채로 빙글 돌리다가 뚜껑을 열고 주정재 앞에 놓인 잔에 따랐다.

"고생했다."

"오냐. 형님한테 꽉꽉 눌러 따라줘라."

"병나발 불고 싶냐?"

"나쁘진 않지만 분위기 괜찮으니까 얌전히 먹자. 얌전히. 엉?"

남자는 술잔에 가득 채워 따르고는 주정재에게 소주병을 건넸다.

주정재 역시 병을 건네받아 남자의 빈 잔에 가득 채워 따르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건배!"

"건배."

술잔이 짧게 부딪치고 입으로 가져갔다. 둘 다 단박에 원샷이었다.

국자로 오뎅탕 국물을 오뎅에 끼얹던 주정재는 조금 덜어 젓가락으로 콕 찔러보고는 후후 불며 입으로 가져갔다.

"익었네. 야, 너도 덜어먹던가 해."

"알아서 먹을 테니 알아서 잡솨."

포장마차에서 집어먹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다. 고급화 전략이니만큼 가격이 몇 배로 비싸기야 했지만 가끔은 사치를 부려도 될 정도로 맛은 괜찮았다. 공적인 대화도 사적인 대화도 나눌 만한 게 아니어서 주정재의 일방적인 뜬구름 잡기와 남자의 침묵 또는 핀잔이 간간하게 이어졌다.

***

"아~ 잘 먹었다. 다음에 또 오자?"

"비싸서 자주는 못 먹겠는데."

"어휴, 내가 사준다 새꺄. 애인도 없는 놈이...받는 돈 다 어따 쓰냐?"

"풀칠하는데 쓴다 왜. 너도 형사 봉급 따로 나올 거 아냐?"

"몸땡이 힘들어서 생명수당 받아도 벅차."

"거 참 글러먹은 놈들이네."

둘의 저녁 식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글러먹은 인생들이라 자조하면서도 자신 안의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

글러먹은 놈들을 글러먹은 놈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놈이 옆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주정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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