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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은 최근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 일전의 사건 이후 줄어버린 관원들을 재모집하고, 주위 태권도장 관장들과 어울리며 근황을 주고받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유상일과 양시백이 함께하는 시간도 길었다. 양시백은 비록 유상일을 용납할 수 없었지만 최재석이 용인하는 이상 일방적으로 적의를 표할 수도 없었다. 최재석이 있을 때는 적당히 대화를 주워섬겼지만 그가 없으면 식사 때가 되면 2인분을 차리고, 말없이 먹는 등 서로에게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양시백이 종종 유상일을 흘끔거리는 반면, 유상일은 양시백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본디 가진 반감과는 별개로 기분 나쁜 일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이었다. 그 날도 최재석은 없었고 양시백과 유상일은 매트를 놓고 TV를 보았다. 유달리 재미없는 프로였다. 관장실에서 책을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양시백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유상일의 시선이었다. 고개만 빙글 돌리니 깊게 패인 눈이 양시백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제까지 유상일이 죽 그러했듯 양시백 또한 눈으로 대충 물었다. 왜?

"도복. 널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양시백이라고. 그나저나 입에 거미줄이라도 친 줄 알았는데."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네 얼굴을 보면 자꾸 그 녀석 생각이 나."

딸이 있었다고 들었다. 어투로 봐서는 최재석이나 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유상일의 눈빛이 드물게 부드러웠다. 양시백이 호기심을 갖고 저를 지켜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위기의 순간 도움을 받았고 마음이 약해지려 했을 때 나름의 위안을 받았던 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라고 생각했던 점.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까지도. 양시백은 특유의 눈매와 길거리 생활로 이제까지 친구라 할 만한 관계를 깊게 다지지 못했다. 하지만 권혜연이나 서재호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소중한 친구였네."

"..그래. 재석이만큼이나."

"..어쩌다가?"

"죽어가는 몸뚱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가 면회를 왔었어. 마지막이었지."

"......"

"내 딸의 복수, 형님의 복수, 그 친구의 복수까지 해 주고 싶었어. 실패하고 말았지만."

"네 복수에는 지금도 동의할 수 없지만, 관장님만큼이나 소중한 친구라고 하니...그 마음만은 알 것 같아."

최재석을 잃을 뻔했던 기억은 양시백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빈사 상태의 그를 보았을 때 눈이 뒤집힐 듯 분노했던 기억. 살의. 문득 그 감정들이 생각나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양시백이 유상일을 바라본 것처럼, 유상일 역시 양시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의는 여전할 테지만, 최재석에게처럼 유상일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진 않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경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허기를 부르짖는 소리만이 도장을 가득 채웠다.

***

"아이고, 춥다. 다녀왔습니다~!"

최재석은 어깨를 털며 도장 안으로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대번에 풍기는 낯선 음식 냄새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관장님, 다녀오셨어요?"

"왔냐, 재석아."

"엉, 그나저나 웬일이야? 둘이 한꺼번에 날 반겨주고."

"배고파서 같이 먹을 치킨이랑 피자 좀 시켰어요. 방금 왔으니까 관장님도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양시백은 배달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최재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양시백이 유상일과 같이 먹을 요량으로 배달 음식을 시키는 건 또 처음인지라 말은 안 했어도 짜식들, 이제야 좀 친해졌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

"흐흥, 무슨 피자 시켰으려나?"

"하와이안 피자."

"겍, 진짜?"

"농담이다."

"상일이 너 임마, 농담도 하고 많이 풀렸다."

"누구 덕분에, 말이지."

"오호, 그래?"

최재석은 흐흥, 콧소리를 내며 양시백에게 언제 이렇게 친해졌냐고 눈으로 물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양시백은 시치미를 떼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웃고는 세팅을 마친 작은 상으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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