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atea 01

재호상일

-그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 했기 때문에 현실이 아닌 곳에서 그의 이상을 찾아냈다.

단골 카페의 어느 한 구석에 걸린 초상화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린 사람의 이름도, 그려진 사람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현실의 사람을 모델로 그려낸 것인지, 그려낸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적인 남성미가 뒤섞여 구체화 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려진 사람이 몹시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니, 단순히 잘생겼다는 말로는 그 생김을 표현하기엔 모자랐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나 뚜렷하게 강조된 이목구비,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목 바로 아래에서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진 셔츠깃이 아이러니하게도 인상의 반듯한 느낌을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사실 어떤 말로도 그림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못 할 것이다.

얼빠지게 뚫어져라 그 그림을 바라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힐끗거리면서 초상화의 남자가 연애인이라도 되나 수군거렸고, 여자들은 저런 사람이 이 카페에 찾아온 적 있었냐며, 저런 그림이 언제부터 걸려있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림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감상평과 카더라 하는 이야기가 마구잡이로 섞여 오르내리며 공통적으로 한 생각은 내가 방금 한 생각과 거의 같을 것이다.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라면 그려진 사람 혹은 그린 사람은 카페 주인과 각별한 사이가 아닐까?

그리고 그 경우, 적어도 이 카페에 한두번은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닐까?

찰나의 순간 어느 하나에 깊이 매료된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질리기 쉽다는 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주문했던 라떼는 팍 식어있었다. 컵을 들어 마시며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계속 보면 질릴법도 한데 연예인들에게 으레 품는 선망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창백한 그림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까, 그려낸 사람의 상상력이 아름다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만에 하나 저 그림대로의 남자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그림에 대해 묻는 것은 어쩐지 지극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러운 감이 들어서 음료수를 조금씩 시키며 카페 안이 한적해지기를 기다렸다.

***

점심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침 두 시간 전에 시킨 커피는 동이 났다. -라떼에 이어 아메리카노라 속이 무지 쓰렸다!- 자연스럽게 자릿세 겸 다른 음료를 주문하며 슬그머니 그림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목을 가다듬다가 내가 단골이 되기 전부터 쭉 일했다던, 이 작은 카페의 하나뿐인 종업원의 얼굴이 얼마 전부터 바뀌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바보같이. 주인은 오래 발걸음한 나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가 있었다면 좀 더 편한 분위기로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곱씹으며 낯선 얼굴의 종업원에게 음료를 주문한 뒤 값을 계산하며 물었다.

"저기..저쪽 벽에 걸려있는 그림에 대해서 혹시 아십니까?"

"아, 저 그림이요? 다른 분들도 많이 물어보시던데..전 이 카페에 온지 며칠 안되어서 잘 몰라요. 누군지 몰라도 참 잘생겼지만요."

"예..그나저나 전에 다른 종업원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혹시 관둔 건가요?"

"아, 그 형이요? 갑작스레 건강이 나빠져서 때 아닌 병가를 냈는데, 카페 알바 자리 구하던 제가 단기로나마 대타로 나온 거에요."

몇 마디 주고 받다가 건네는 주스를 받아 그림이 제일 잘 보이는 바깥의 왼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

내 처지를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나쁘게 말하면 백수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집에서 통 집중을 못 하는 관계로, 일자리 혹은 일감을 구하거나 스펙 상승 및 취직에 도움이 될만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 카페에 들러 이런 저런 걸 시키고 붙박이처럼 있다 가곤 했다. 나는 새로 온 종업원이 내 얼굴을 빠르게 익힐만큼 자주 그 카페를 찾았다. 그는 심지어 내가 무엇을 시킬지 확실히 익히고 미리 준비해 줄 정도로 능숙하게 나를 맞이했다. 센스 있는 청년이었다

사실 주머니가 조금씩 위태로워지는데도 계속 찾아올 수밖에 없는 건 초상속의 남자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못 박듯 남긴 인상을, 그가 내게 준 영감을 어떤 식으로든 구체화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 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고, 대체 그가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찾아오곤 했다.

비어있는 왼쪽 자리에 노트북이 든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림이 걸려있는 일직선상의 거리에 앉았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마치 그 남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 같아서 -사실 그림이 조금 높게 걸려있어서 눈높이가 정확히 맞지는 않았다. 내가 서서 바라본다고 해도 조금 모자란 정도였다- 어쩐지 가슴이 뿌듯한 듯 당기고,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실제로 그를 마주하는 것처럼.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바라보다가 주문한 것이 나왔다고 알려줄 때쯤 과도하게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를 똑똑히 볼 수 있는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 아침조차 거르고 카페에 오게 된 것이 어느덧 일주일. 아침을 거르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 이제는 주스 뿐만 아니라 시럽이 뿌려진 토스트도 추가 되어있었다.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얼른 자리로 돌아가려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카페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

나는 신음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는 한 순간이지만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그 남자 얼굴이 더없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바라본 초상속의 남자. 처음 봤을 때부터 쭉 매료되다가 결국 멋대로 색을 덧입힌 환상을 보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빳빳하게 잘 세워진 머리카락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는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몇 가닥 휘날렸고, 아침 햇빛에 더 짙어보이는 눈동자는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웃는 얼굴이나 다름 없는 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저, 누구십니까?"

환상이 아니라는 것은 얼떨떨한 종업원 청년의 더듬거리는 물음으로 확실시 되었다. 쟁반을 잡은 손이 당장에라도 들고 있는 것을 떨어뜨릴듯 부들부들 떨렸다. 카운터까지 걸어온 남자는 벽에 걸린 것이 무색하게끔 환하게 웃어보이며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이 카페의, 유령 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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