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가을을 닮은 사내

권현석 230901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보니 오빠는 생일이 언제예요?”

달력을 보던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어왔다. 

“갑자기? 웬 생일이야.”

“여름? 가을? 아니면 겨울이에요? 봄은 아닐 것 같고.”

“그건 또 뭐야… 6월이야. 6월. 28일.”

정은창은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가 먹던 감자 칩을 하나 뺏어 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그럼 혜연이 너는 생일이 언젠데?”

“언제일 것 같아요?”

“…봄?”

“와, 정답!”

아이는 까르르 웃다가 소금기에 짭짤해진 자신의 손가락을 핥았다. 

“2월 14일이에요! 외우기 쉽죠?”

“2월….”

정은창은 무심코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이제 잊히지 않으리란 직감이 들었다. 무시할 수 없는 화살과도 날카로운 직감은 자각하지 못한 채 휴지를 뜯어 아이의 손가락을 굳이 닦아준다. 그걸 왜 핥냐며 한마디를 내뱉는 그의 모습을 곰곰이 지켜보던 아이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는 참 다정하다니까요.”

“그렇지?”

똑 닮은 부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그 사이에서 정은창만이 이해하지 못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오빠, 저희 아빠 생일은 언제일 것 같아요?”

깨끗해진 손가락으로 아이는 다시 감자 칩을 집었다. 혜연아. 사내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닿지는 않았다. 얇은 과자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잘게 조각조각 났다. 정은창은 옆을 봤다. 

“가을?”

망설임도 없이 나온 말이었다. 

“와.”

짧은 감탄사와 함께 아이는 박수를 짝짝짝 쳤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다, 우리 아빠는 딱 그렇게 보이죠?”

“아무래도….”

누가봐도 가을을 닮은 사내에게 차마 다른 계절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의 색상도 연갈색이라 딱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계절은 ‘가을’뿐이었다.

“혜연아.”

아이를 말리는 듯 권현석이 다시 아이 이름을 불렀다.

“왜요, 사실인걸. 그러니까 옷이라도 좀 다르게 입고 다니지.” 

“녀석….”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눈을 한 번, 그리고 두 번 껌벅거린 정은창은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날짜는 언제인데?”

“그건 있죠~ 오늘이에요!”

아이는 손바닥만 부딪히며 박수를 쳤다. 금방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은창을 보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는 사내, 그 사이에서 박수를 치던 아이. 

“잠시만 기다려요!”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둘만 남은 거실, 정은창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거, 생일이시면 진작 이야기를 하시지.”

“아니,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거 때문에 은창이 널 부른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가 그를 다시 보고 싶어 했고,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겠다 싶어서 날짜를 잡다 보니 우연히 오늘이었을 뿐이었다. 미리 아이에게도 굳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는데 마음이 다정한 아이는 가족의 소중한 날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나 보다. 

“자자, 케이크 나갑니다~.”

아이는 작은 케이크가 올려진 접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 위로 촛불이 일렁거린다. 탁자 위로 올라간 케이크를 보고 있으려니 아이가 정은창을 툭툭 쳤다.

“빨리 박수 쳐요!”

“어, 어. 그래.” 

“생일~ 축하~ 합니다~”

아이의 노랫소리에 맞춰 정은창이 삐거덕거리면서 박수를 쳤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노래는 짧게 이어졌다. 생일 축하- 합니다- 하는 말과 동시에 권혜연은 폭죽을 터트린다.

펑!

그것은 작은 권총의 발포음과도 같았고 그저 폭죽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허공에 흩날리고 권현석이 고개를 숙여 촛불을 끈다. 후, 하고 내뱉어진 숨이 불을 꺼트리고 다시 아이는 신나게 박수를 친다. 

정은창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펑!

다시 폭죽이 터진다.

펑! 

아니 이건 발포음인가?

탕!

이건 발포음이다.

깨닫는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입모양은 계속 벙긋거리고 있는데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닿지 않는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뒤로 밀려난 그는 곧 어둠 속에 혼자다. 아, 그랬다. 그는 그 자리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행복의 순간에 그 자리에 있기를 감히 허락된 적이 없다.

꿈은 짧고 여운은 길었다. 누런 천장을 가만히 바라만 보다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떡 하니 걸린 은행명이 박힌 커다란 달력을 찢는다. 9월. 9월 1일. 가을을 닮아 태어난 그 사람의 날. 그러나 이름을 버린 남자에겐 관련이 없는, 그저 9월의 시작하는 날이다. 

깨어난 남자는 곧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간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에 머리를 박는다. 

생일 축하합니다. 권현석 경감님. 아니, 권현석 경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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