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의 탄생
소완국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2023 08 26
* 다소 폭력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늘 있는 일입니다. 가볍게 써본 글이라 가볍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하늘 색깔이 더럽게 우중충하다. 금방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구름도 죄다 시꺼먼데 기분마저도 진흙탕을 구른다. 뺨을 툭툭 쳐대는 손길이 정신을 깨운다.
“야, 소완국.”
“예, 예.”
“대답은 한 번만 해.”
“예.”
삐죽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뺨을 툭 치던 손길은 금방 투박한 폭력으로 바뀐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체가 휘청거렸다. 두꺼운 손바닥이 뺨을 치면 ‘짝’이 아니라 ‘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
입을 벌리니 어디가 터졌는지 피가 흘렀다. 그것에 정신 팔릴 틈은 없었다. 소완국은 다시 몸을 바로 세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태를 바로 했다. 시뻘겋게 달아올라 고통을 호소하는 뺨은 아무것도 아니다.
“불만 있냐? 눈을 왜 좆같이 뜨냐고.”
“아닙니다.”
“왜, 평소처럼 촐랑거리며 나불거려보지?”
소완국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불거리면 나불거린다고 긁을 거면서.’
평상시에도 자신을 좋게 보지 않은 놈이었다. 남자 새끼가 말이 많다고 지나갈 때마다 시비를 걸더니 좋은 건수 하나 잡았다고 신나서 손을 휘두르고 있는 꼴이 망나니 새끼 딱 그 꼴이다. 지긋지긋하긴.
“야, 거기까지만 해. 배고프다.”
“넌 뱃속에 거지새끼가 들었냐?”
“너보단 낫네요.”
구시렁거리는 남자들의 목소리에도 소완국은 그저 끝났다는 안심으로 몸에 힘을 풀었다. 그게 방심이었다. 얼굴 위로 끈적이는 액체가 날아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운 좋은 줄 알아 새끼야.”
침이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목 아래까지 역겨움이 올라왔다. 그런데도 남자들이 밖으로 나가 인기척이 없어질 때까지 소완국은 움직일 수 없었다. 1분, 그리고 2분. 속으로 그쯤 시간을 세고 나서도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급히 화장실로 뛰었다.
“씨이이이이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세수를 하다못해 고개를 세면대에 박고 머리까지 물에 적셨다. 비누로 거품을 내서 얼굴을 벅벅 문질렀지만, 여전히 기분 더러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개씨발놈이!”
애꿎은 화장실 벽을 쿵쿵 쳤다. 당연히 벽은 멀쩡하고 손과 발만 욱신거렸다. 소완국은 빠르게 거울을 바라봤다. 물기가 촉촉한 얼굴은 한쪽만 붉다 못해 푸르딩딩하게 붓고 있었다.
“잘난 얼굴을? 어? 이거 세계적인 손실인 것도 몰라!”
분에 찬 목소리가 화장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휴지를 돌돌돌 두껍게 말아 물에 적셔선 제대로 물기를 짜지도 않고 얼굴 위로 턱 하니 올려둔다.
“더러운 새끼. 개 불알보다 더 못난 면상이, 어! 만들어지다 만 진흙 찰흙 새끼가!”
이를 박박 긁었지만 소완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분풀이밖에 없었다. 거울 속의 자신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진짜 씨빨이었다. 시발이 아니라 ‘씨빨’. 차라리 울산 지부에 있을 때가 훨씬 나았다. 마산 지부 새끼들은 다른 지부에서 온 그를 스파이 내지는 굴러 들어온 돌로 생각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러니까 촌 동네는 싫은 거야!”
울산에서 그가 놀고 뛰어다녔던 세월이 몇인데, 아직도 그곳에 가면 자기 아래에 형님! 하고 대가리 박을 새끼들이 몇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마산으로 굴러와서 이게 대체 뭐 하는 꼬라지인줄 모르겠다.
“젠장, 젠장, 젠장.”
싫증이 났다. 울산도 척박한 도시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곳엔 적어도 자신을 배척하고 쓸데없는 걸로 꼬투리 잡는 놈은 없었다. 험악하게 생겼지만 소형 하면서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놈도 있었고, 마냥 좆같진 않았는데….
“이게 다 경남지부만 멀쩡했어도…….”
짭새새끼들이 경남지부를 초토화한 덕분에 그 아래, 경남 내의 지역들이 유독 폐쇄적인 상황이 된 건 이해를 했다. 하지만 그 피해를 자신이 받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다.
“차라리 보낼 거면 경북으로 보내던가.”
거기도 처지가 비슷한 건 매한가지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마산이 지긋지긋하니 싫었다. 머리가 울렁거리는 느낌에 코를 훌쩍거리니 누린내만 맡아졌다. 청소하고, 또 해도 지워지지 않는 찌른내.
“안 되겠어….”
소완국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런 아랫동네에서 계속 처박히며 못 볼 꼴을 겪을 수 없었다.
“이 소완국이 어떤 사람인데.”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나, 소완국이야. 소완국.
“이런 곳에서 이런 취급으로 살 놈이 아니라고.”
자켓 주머니를 뒤졌다. 꾸깃꾸깃하게 접힌 영수증 뒷면에 적힌 전화번호를 외울 듯이 중얼거렸다.
“집안 풍비박산 한 번 더 난다고 해서 무슨 일 있겠어, 그 꼴 안 보려면 아버지가 상경을 마셨어야지. 그러니까 집안 꼴이 이렇게 된 거 아니겠어.”
중얼중얼, 혼잣말을 계속 이어가면서도 거울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않는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이듯,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듯, 변명하듯─이유가 어떻든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변명을 한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 소완국이가 못해낼 리가 없잖아.”
하하, 하, 소완국이 웃는다. 거울 속의 그도 웃는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곧 서울로 올라가는 티켓이 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것이고, 만들 수 있었다. 더러운 짭새새끼들한데 몸을 좀 굽혀주는 것으로 그는 저런 떨거지들과 다른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의미없는 휴지 덩어리를 떼어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보라, 쥐새끼의 탄생이다!
생일 축하한다. 소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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