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life

드라큘라

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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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DK_GeHY0KM?si=vM41m6uaIG3g-L60'

" 어떻게 찾은…, 내…. 사랑… 인데. "

무너진 성벽들 사이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그것이 마지막 숨을 내뱉자마자 내리는 것이 마치 드디어 구원받은 것을 축복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은 무심하리라. 그것에게서 사랑을 빼앗고, 죽음을 빼앗았으며 몇 백 년을 그리 고통 받았음에도 구원이라며 마침내 만난 제 사랑과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어찌 이것이 구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미나는, 그것의 사랑은. 그것이 잠든 관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신을 원망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를 위해 살겠다며 마침내 굳게 다짐하였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모두 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됐나요…? '

미나 머레이가 드라큘라 백작에게 물었었다. 백작은 몇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오직 자신만을 기다려왔다. 진실의 두렵고 씁쓸한 맛이 입안에 흘러넘쳤다. 나 또한 잊어야 하지만 잊지 못했던 것들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두 손이 마지막 희망인 것처럼 간절히 붙들고 있던 온기라곤 한점 없는 차가운 손길. 그런 손을 내치고 단출하고 급하게 치렀던 조나단과의 결혼식. 내가, 그를 내쳤었다. 이 이야기에 해피엔딩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인가. 이것이 해피엔딩인 결말이라면 누구를 위한 행복한 결말인 것일까. 

신이시여, 그가 가엽지 않으신가요. 

신이시여, 정녕 이제라도 그를 굽어살피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오…, 신이시여.

미나의 머리가 하얗게 샌 것처럼 눈이 쌓이고서야 흩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들 상처투성이에 꼴이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끝끝내 우리는 괴물을 물리쳤으니,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기쁨이 깃들어있었으면서도 몇몇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저 기뻐만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잃은 것이 많았다. 모두. 모두가 사랑을 잃었다. 연인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렸으며, 친우를 향한 사랑을 잃어버렸나니 남은 것이라고는 누군가를 더 잃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가능성일 뿐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것은 자연 불변의 법칙이니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고, 그 괴물로써 사람이 제 때에 죽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단지 가능성만을 위해. 당장 우리가 그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잃어가며 드라큘라 백작을 죽이는 것이 정녕 올바른 일이었을까? 의문은 이미 백작을 죽이고서야 길게 늘어지니 답할 이 신 말고는 아무도 없어, 그저 이 모든 것은 신의 뜻이리라 믿는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시련이고 우리를 시험하기 위함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돌아가는 마차 속에서는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는 숨 막히는 고요함이 지속되었다. 그 고요함은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계속되었으며, 간간히 기력이 쇠해진 듯한 미나가 잠에 들었다가 비명과 함께 울면서 잠에 깰 때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조나단은 제 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때마다 품을 내어주고 달래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나. 

" 쉬이 미나…, 괜찮아. 꿈이야. 내가 옆에 있잖아. "

그 눈물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괴물을 향한 것을 짐짓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에게 머무르고 있는지 물어야할지, 당신은 빛에 남아있기로 한 건지. 조나단 하커는 자신이 없었다. 그녀를 달래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제가 토닥이는 어깨가 어느 순간 그 괴물의 몸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듯한 착각에 한번은 제 품에서 밀어낼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녀를 향한 애정은 그럼에도 건재했으므로 간신히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미나 하커는 악몽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드라큘라 백작이 다정히 제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잠시 눈가를 훔치면 제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제 얼굴가에 느껴지던 감각은 온데간데도 없이 칼이 박힌 채 관 속에 누워있었고, 자신의 양손에는 피가. 피가…. 누구의 피일까. 머릿속의 목소리가 물어왔다. 그야 당연히 드라큘라 백작의 것일 거라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니 제 발치에는 조나단이, 루시가, 반 헬싱 교수님이 모두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무한한 검은 공간 속은 통 속인 것처럼 피가 점점 차올라 제 정강이 부분까지 닿기 시작할 때 루시의 시체가 제 발목을 잡았다. 

' 모두가, 네가 나를 죽였어. '

눈에서 피를 흘리며 기괴하게 꺾인 그 목이 두렵기보다는 루시가 내비친 감정이 가슴을 깎아내렸다. 루시를 죽인 것은 드라큘라 백작이라고 탓하였지만 어쩌면 선택의 결과가 두려워 미루고 미루던 자신의 탓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드라큘라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누구도 더 잃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나단의 사랑의 방향은 누가 잡아줄까. 두 사랑은 미나가 감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몇 백 년을 걸쳐 자신만을 기다려 온 인연, 미래의 행복을 약속한 사랑 이 둘 중 누구를 택했어야 완벽한 결말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인가. 피가 제 머리 끝까지 차올라 숨이 막혀가며, 모두의 목소리가 내가 자신들을 죽였다며 원망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면서 들려올 때에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그가 눈이 되어 흩어지던 날, 그다음 날, 이틀, 사흘, 나흘… 매일 밤 악몽이 찾아왔다. 

잭은 자신의 병원에 미나 하커를 입원시켜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야말로 입원이 필요한 상태인 것이다. 말 그대로 정신…, 병원이니까. 조나단은 제 부인을 보기 위해서 매일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찾아왔다. 병원 안의 직원들에게는 그가 무척이나 애처가로 소문이 났다. 정신 이상자들이 모여있는 이런 곳에 아무리 부인이 입원했다고 하더라도 매일 찾아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미나가 처음부터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악몽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도 했으며, 허공을 바라보며 웃다가는 혼자서 춤을 추기도 했지만 그것도 새벽에 그랬을 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낮의 시간대에도 허공을 바라보며 웃으며 울기도 했으며, 하루종일 집안을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미나 하커가 정신이 나간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밝고 웃음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얼굴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고 의심 될 정도로 초췌해져 갔다. 윤기가 아름답게 흐르던 갈색의 머리칼은 푸석해졌으며 빗질도 하지 못해 잔뜩 엉킨 채였다. 이런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웃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괴로운 기억이 아닌 어떤 행복한 망상 속에라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속되는 악몽에 미나 하커는 말 그대로 메말라갔다.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조나단의 노력에도 눈 밑의 검은 그림자는 짙어지다 못해 눈이 푹 패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메말라가는 것에는 온전히 악몽 뿐이랴, 제 속에 남은 엘리자벳사와 드라큘라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기억이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축복하던 그 아름다운 날. 온기가 느껴지는 그의 손을 소중히 그려쥐고 있는 엘리자벳사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이 있었다. 눈동자가 붉지도 않으며, 이빨이 뾰족하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남이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달콤한 얼굴을 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엘리자벳사는, 아니 자신은 마주 웃으며 그 손을 소중히 쥐고 서로에게 영원히 사랑하리라 약조를 하였다. 마주 잡고 있는 손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어째서인지 눈물이 흘렀다. 다시는 이 손을 잡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영영 그 손을 놓지 않도록 강하게 힘을 주었다.

" 춤을 춰요…. 새벽을 향해서. "

엘리자벳사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는 당신이 원한다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어요. 다정한 목소리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것이라 애매하게 웃어 보이다가는 그의 품에 안기었다. 

미나 하커는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점점 미나 하커와 조나단 하커는 희미해져 가고 엘리자벳사와 드라큘라 백작만이 선명해져 갔다. 그녀의 웃음은 영원히 함께 춤을 출 제 연인을 향했고, 눈물은 이제는 맞잡을 수 없는 차가운 손을 그리워했다. 한 쪽이 죽고, 한 쪽이 미쳐버리게 되어서야 둘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라고 그 누가 생각할까. 답할 이 오직 신뿐이니 오직 그만의 유희거리라 하더라도, 원망할 자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 영원히 춤을 추리라 새벽을 향하여. 생명의 법칙을 벗어난 영원한 사랑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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