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ity

드라큘라

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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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rVRAmXoejU?si=B4gq-8gyqHPsiJZl

미나 머레이의 일기

xx월 xx일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누구보다 애틋하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애원하듯이 부르고 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만 나는 그 부정한 존재를 감히 이 일기장에 남기고 싶지 않다. 기록이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가 읽기 위하여 남기는 것이고 그 읽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읽는 자가 부정에 타지 않도록 나는 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려 한다. 혹여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나의 일기장을 줍게 된다면 다시 덮어 이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한 사람이라도 더 적게 어둠에 대해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께 기도하고 있으니, 그것이 지금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누군가가 아니길 바란다.

나도 원하여 그와 얽히는 관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지만…. 수많은 우연은 운명이라고 하던 이전의 나에게 이야기하던 루시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탓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렇게 얽히게 된 것도 루시의 덕…, 이라고 해야 할지. 몽유병으로 인해 항상 밤길을 홀로 돌아다니는 루시가 걱정되어 따라 나갔더니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낮에 잠깐 마주쳤을 때도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처럼 느껴지는 그리움에 이질감이 느껴져 되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외면하더라도 그가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맴도는 달콤함은 차마 내가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못하게 했으며 어떤 사유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와 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영원한 삶,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 나에게 모두가 바라는 것을 줄 수 있다며 그것만이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라며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나는 두려웠다. 과연 두렵기만 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답하지 않겠다. 그런 감정은 결혼한 사람을 둔 여인이 일기장에 담기에는 불건전한 내용이 될 테니 말이다. 진실은 아주 오랫동안 끝까지 나 홀로 끌어안고 갈 터이다. 온전히 나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어 하는 그 눈빛은 달콤한 순간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나는 환상에 홀리 듯 자신을 맡기고 말아버렸을 거란 생각이 든다. 

조나단을 만나기 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일기장을 펼친 것이고 잠도 오지 않으니 그가 말하던 영원한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을 멋대로 펼쳐보려고 한다. 그가 이야기하던 영원한 삶은 어떠한 형태이며, 그것을 얻음으로써 사람은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의 견해를 표하자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돌출한다. 사람의 수명이라는 것은 신이 점지하여 주신 정해진 시간인데, 그것을 거스르는 것을 신의 뜻을 배반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신의 품을 벗어나는 것이 몹시나 두렵지만 잠시 비춰진 그의 모습으로 추측하건대 그는 감히 신이 두렵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 검푸른 남색을 띄던 하늘의 색이 옅은 하늘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니 벌써 동이 트는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는다면 얼굴빛이 좋지 않을 테고 안그래도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조나단에게 나에 대한 염려를 안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루시의 일기

xx월 xx일

결혼식의 전날이라 그런지 마음이 괜스레 나비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울렁거린다. 오늘도 결국 몽유병이 도져 잠에 든 채로 걸어 다녀 미나와 가족의 걱정을 사고 말았다. 또 돌아다니게 되어 두 번이나 미나가 나를 찾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밤을 새울 생각으로 오랜만에 이 일기장을 펼쳤다. 가장 최근에 글을 쓴 것이라고는 미나가 약혼자를 따라 잠시 떠났을 때 편지를 주었을 때 인 데, 그것도 일기의 형식이 아니어서 나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언제나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다만 결혼식의 전날이지만 왜 생각나는 것은 아더의 얼굴이 아니라 낮에 스치듯이 보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인 걸까. 그는 잠깐 보아도 미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미모. 이런 말을 적기에는 미안하지만 세 남자가 나를 한 번에 찾아오지 않거나, 결혼의 상대를 정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의 팔이라도 붙잡아 고개를 돌리게 하여 그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딱 그 정도의 생각이 오늘 낮까지의 나의 생각이었지만….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그의 생각과 모습이 떠오르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치 그의 기억이나 생각이 나한테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묘하게 뒤 섞인 기억에 위화감을 느끼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미나보다 더욱 미화된 모습 같은 것들이 내 머릿속에 있었고, 미나인 줄 알았던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인 여자의 모습도 머리 속에 들어와 있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내가 미나를 사랑하던,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하지만 원하는 것은 그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아더인데, 결혼을 약속한 것은 그인데. 

안개빛 속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결혼식의 동이 트고 나는 오늘 행복한 새 신부이다. 미나의 작별을 하지 못한다. 미나가 떠난다. 그를 만나러? 미나, 너는….  

동이 튼다. 결혼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아더, 아더. 나의 아더. 당신이 이걸 읽을까?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신에게 맹세해. 진심이야. 위에 내가 적은 것에 대해 당신이 불안해할 것 같아서…. 사랑해, 나의 아더. 나는 오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부가 되는 거야. 당신이 있기에 행복한 삶이 될 거야. 나를 믿어줄 거지? 이건 유서가 아니야. 그저 오늘 단 하루 세상에서 제일 사랑과 축복을 받는 여인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일 뿐이야. 당장이라도 당신이 보고 싶어.

루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감에 취해갔다. 영원한 삶이란! 아, 아름다운 삶이다!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신을 배반한 배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고 온기라고는 한점 없는 그 목석같은 몸뚱아리를 어린아이가 첫 인형을 선물 받았을 때처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입안에 감도는 달큰한 것은 세상 그 어떤 미(味)를 가진 음식도 이것을 잊게 할 것은 없을 것이다. 

머리를 혼탁하게 하던 안개도 물러났다. 모든 것이 선명했고 해야 할 것, 원하는 것이 선명해졌다. 붉은색 물감으로 아더의 존재를 덧칠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새롭게 그려내면 그만이다. 아름다운 인생에 걸맞은 새 작품을, 작품명은 황홀로 해두었다. 검은색 배경에 붉은 물감을 흩뿌린 것 밖에 없지만 그것이 루시의 세상이 되었다. 오직 이 관능적인 향락에 제 몸을 온전히 맡기어 살아갈 것이다. 아더와 함께, 다른 이들과 함께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이내 이를 갈고 있는 짐승의 증오로 변모하였다. 그들에게 내어준다면 자신의 것을 빼앗아 들려고 할 것이다. 그래, 그들은 백작의 것도 빼앗으려 들었는데 어찌 자신의 것을 뺏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미나, 미나! 그들은 미나를 빼앗아갔다. 이 위대한 여정의 끝 오직 단 하나 미나만 있으면 되는데. 미나만 있으면 되는데….

루시를 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쳐져서는 세 남자가 그녀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끔 팔다리를 붙들었다. 자신들이 한 때 사랑했던 그녀의 입에서는 꽤고리같은 웃음소리가 아닌 짐승이 발악하는 흉측한 비명이 들려올 뿐이었다. 

" 아더, 날 사랑하잖아! "

발악이었다. 심장이 대못에 뚫려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괴물의 발악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심장에 못을 박아넣는 것은 그 누구라도 제 심장을 뚫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더는 슬픈 눈으로 망치를 하늘 높이 치켜든 채 한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발랄하게 뛰놀던 여인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은 여인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일 뿐이며 여기서 없애지 않는다면 자신들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가 또 다시 나올 뿐이다. 아더는 결심한 듯 망치를 못을 향해 내리쳤고 동시에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루시는 내질렀다. 

"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

다섯명의 남자가 붉은 수의를 입은 여인에게 신의 자비를 구하며 명복을 빌었다. 신이 자신을 등 돌린 자에게 죽은 후에라도 자비를 내려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곳에서는 괴물이 아닌 아름다운 여인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미나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나왔다. 이 곳에 오기 전 루시의 일기장을 미나는 읽었었다. 만약 루시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겪었던 일과 일어나는 변화를 모두 솔직히 고백했더라면 루시를 잃는 일은 없었을까. 드라큘라 백작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진심은 아니다. 아마도. 이 가슴 속에 남은 것은 스스로가 택한 방향인 것인지 혹은 그 이전의 삶의 기억이 길을 가로막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미워해야 하는데, 그를 원망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게 그 백작의 탓인데! 진실은 어찌하여 늑골을 파고들어 그곳에 시큰하게 자리를 잡는 것인지. 왜, 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고 외면하게 만드는지. 어찌하여 신께서는 거짓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진실을 가릴 수 있게 한 것인지. 아, 어찌하여 나는 진실하지 못하는가. 이 모든 건 되감을 수 없는 시계의 초침 속이었고 모두 늦었다. 루시는 없다. 덮어둔 진실이 루시를 땅속에 묻게 했다. 내가 루시를 땅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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