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2부) Repositioning 0

유학이후 프로 X 고졸 얼리 프로

안내사항

*본 창작물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 의 2차 팬 창작으로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 원작에서 안나오는 가상의 모브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본 창작물에서 나오는 프로 농구 및 구단 설정은 현실과 상이합니다. 단 참고 자료로 각 구단 채널 / KBL 채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탈자 비문 수정은...진짜 천천히 합니다. 아시죠?

D - 30 신인 드래프트

 

농구 판이 좁긴 좁다. 어딜 가든 다 아는 얼굴이라는건 고등부 감독을 맡았을 적 첫 대회서 느낀 감상이었는데 더 상위로 올라 갈 수록 더 그런 것 같았다. 고등부에 봤던 애들 대학부에 올라가고 그리고 그중 살아남은 애들이 프로로 갔으니까. 그래서 그 아는 얼굴들 사이로 2년 연속으로 제 제자들이 처음으로 좁아지는 등용문사이로 이름이 불리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고졸 얼리로 2라운드에 뽑힌 상호나, 대학에서 주전으로 활약을 하여 작년 풍년이라 하는 드래프트에서 뽑힌 준수와 재유. 이번에는 3학년에서 얼리로 나가 뽑힌 태성과 다은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다. 숙소에서 한솥밥을 먹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사회에 나가서 당당하게 프로 선수로 뽑히다니. 물론 지금 애들 얼굴봐도 아직도 애 같지만.

박수를 여러번 치면서 눈가가 시큰해지고 아무도 이름을 안부르는 쓸쓸한 시간이 끝나니 서로 아는 얼굴들 끼리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우리 반가운 얼굴들은 어디에 있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정장을 입은 훤칠한 남성이 이현성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이거 누구야. 완전 성공한 고등부 감독 이현성 아니야.”

“고등학교 성적가지고. 다들 애들이 잘 해준 덕이죠.”

“짜식 내빼기는”

몇년 전만 해도 같은 팀 소속이었던 선배는 선수에서 코치로 직함을 바꾸고 서로 바뀐 직함으로 부르면서 악수를 나눴다. 이전에는 제 앞가림 하기에 급급해서 할 말이 자기 이야기밖에 없는데 이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보니 내 이야기 보단 남 이야기로 대화가 이루어지는게 당연했다. 작년 드래프트에 뽑힌 선수들의 이야기라던가 이번에 뽑힌 새 얼굴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구단에 있는 제 제자들의 이야기.

“거 상호랑 준수는 비시즌때 잘 합니까?”

“열심히 하는 애들이지.”

상호는 잠깐 집 문제인지 뭔지 아침연습 좀 늦은 적 있긴 하지만 둘이 먼저 나와서 끝까지 있다 간다니까. 너 닮아서 그런지 연습은 독하게 헤. 괜히 세워주는 말인지,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보아하니 독하다는 말은 맞나보다. 어휴 저야 2부 대학 리그 출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안하면 못 쫓아갔죠. 물론 그 결말은 씁쓸했어서 전에는 그 이야기도 꺼내기가 싫었는데 세월에 탓인지 아니면 농구라는 필드에는 붙어서 이렇게 당당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이젠 1년동안 프로선수라는 직함을 단 이야기는 웃으면서 내뱉을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 감독님 한테 가봐야 하니까. 나중에 또 연락 하자.”

네, 코치님도 잘 들어가고요. 꾸벅 인사를 하며 떠나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는것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다른 곳이라면 적당히 키 큰 얼라 찾으면 애들이었는데 이곳은 죄다 키가 커서 제자 찾는것도 일이었다. 대체 우리 애들은 어디 있는고.

“감독님”

그리 찾다보면 가장 먼저 어른들을 많이 찾았던 성준수가 이현성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어이구, 우리 프로선수가 여까지 오네?”

“감독님 온다고 하니까 상호랑 같이 오후 연습 빼고 왔어요.”

“어휴 뭘 그렇게까지 하나.”

“이때 아님 시간 잘 안맞아서 못보잖아요.”

앞으로도 더 할거고요. 그리 말하니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사회인이라는것이 매번 원하는 때에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 뿔뿔히 흩어지게 될테니 더 만나기 힘든건 사실이었다. 희찬은 아직 수도권 대학에 진학중이고 태성이야 서울 LC에 뽑혔으니 수도권에 있는 선수들끼리야 잘 만날 수 있을텐데 김다은이는 이번에 강릉팀에게 호명되었고. 재유는 고향인 부산에. 아무튼 나름 뿔뿔히 흩어진 셈이다. 이제 말하면 입 아픈 쌍용기 우승의 멤버가 완전체로 모일려면 여러모로 만나는 장소나 날짜, 시간 고려할게 더 많아져서 1년에 한번은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쨋든 서울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애들 만날 몇 안되는 날이니 이현성은 성준수를 따라 아직 못 만난 제자들의 얼굴을 가까이 보러가기로 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 거대한 실내 체육관 안. 쭉 걸어가니 성준수와 같이 왔다던 기상호의 얼굴이 보여서 인사도 가볍게 나누고 이 날의 주인공인 공태성과 김다은을 마주했다. 정장 위에 유니폼과 캡 모자를 쓴 모습을 보니 여러 감상이 교차했다. 시간이 빠르다는 감상도 있었고, 이렇게 프로까지 가는 모습을 보니 애들 잘 키웠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이 더 커진 것도 있었고.

“자자 감독님이랑 한번 찍어줘요.”

은사를 알아본 사람들이 감상에 빠져 가만히 있던 이현성의 팔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김다은과 공태성의 사이로 끌고 갔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예전처럼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가 터지는게 아닌, 연속해서 찍는 사진들에는 미세한 움직임이나 표정의 변화가 다 잡힌다. 그렇게 찍기를 한번, 지상고등학교 멤버들끼리도 찍어보고. 친구나 친척들이 따로 사진을 찍는 잠깐의 시간동안에는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로 감독님 덕분에 우리 애들 여기 까지 온거 같아요. 아니요 부모님들도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많죠. 뭐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고 있으면 저 안쪽에서 호명된 선수들을 부르는 협회의 공지가 있었다. 이제 프로필 촬영도 해야하고, 구단 사람들과도 인사를 해야하니 주최즉에 선수를 보낼 시간이었다.

사실상 폐막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중에 보자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현성은 몸을 돌려 근처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나누던 기상호와 성준수에게 물었다.

“니들 저녁은 어쩔래?”

“저랑 준수햄 둘이서 먹고 숙소 들어가려고 했는데 감독님은 기차 시간 괜찮아요?”

“어. 밤 늦게 막차로 갈거니까 니들이랑 밥 한끼는 먹을 수 있다.”

“그럼 감독님 드시고 싶은걸로 먹자.”

솔직히 지방이라면 어디 명물이라도 먹어보자 할텐데 서울이니 메뉴를 고르기에는 애매했다. 그냥 적당히 유명한거나 먹자고 하니 기상호가 지도 앱을 켜서 음식점을 고르고 있었다.

“이 근처 식당에는 사람들 많이 몰릴거라 조금 걸어야 할 것 같아요.”

“그거야 당연하고. 일단 나가기나 하자. 사람들도 다 정리하고 치워야지.”

그래서 기상호와 성준수 이현성이라는 수원 ST 선수들 (한명은 1년 해먹은 출신 뿐이지만.)이 체육관 밖에 나와 도보로 걸어 간 곳은 그럴싸한 중식집이었다. 이러니 꼭 졸업식 같네. 이현성은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펼쳐보았다. 이제 어른들끼리 먹는 자리니 좀 기분 내자고 일반 식사류가 아닌 중화요리를 몇 골랐다.

“그나저나 준수 니는 직접 선수 뛰니까 어떻냐?”

“뭐, 별거 있나요. 매번 했던거 하는 건데.”

대학때랑 비슷하죠. 초반에는 출전시간 없었다가 그래도 몇번 기회 잡아서 슛 넣으니까 점점 출전 시간 늘어나긴 한데 아직은 부족하긴 하죠. 그래, 니들 그 벤치에 있는것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니까. 이현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애들의 물잔을 채워주었다. 사실 프로에 무사히 입단해도 모든 선수가 코트 위에서 뛸 수 있는건 아니었다. 벤치에 앉아서 출전시간이 0분일때도 있고, 겨우 몇분 잠깐 섰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들어올때도 있는데. 누군가의 대체선수로 체력보존을 위해서 잠깐 뛰는거라면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래도 니들은 잘 될거다. 술을 마실 수 있었다면 앞으로를 위해 건배라도 했을텐데 내일도 연습을 해야하고 몸관리에 신경써야 했으니 덕담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고보니까 감독님 있었을때, 세형 형은 있던가요.”

“아. 내 있을때는 상무에 있어서 같이 뛰진 못했고. 그래도 휴가 나오면 구단 찾아와서 인사하니까 얼굴은 안다.”

“재호 형도 감독님 이야기 하던데.”

“얼씨구 그 형은 팔팔하네”

같은 팀의 소속감이라는 건 결국 장소도 있었지만 사람얘기로도 느낄 수 있어서 좀 신기했다. 같은 구단이다보니 사람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튀김요리나 볶음 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그래서 그 지훈이는 있더냐? 경기 챙겨볼 때는 명단에 없더만.”

“저 있을때는 부상 때문에 저번 시즌은 시즌아웃 되고 이번 시즌에 복귀할거에요.”

“어휴, 니들도 부상 조심해라. 잠깐 경기 못나오는건 다행이지 시즌아웃까지 가면 큰일이니까.”

1년밖에 없던 곳이지만 그래도 동기가 애들한테는 선배가 되고 몇년 선배는 주요인사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만났다는 이야기, 혹은 씁쓸한 결말을 듣기도 하고. 여러모로 좁은 농구판이다보니 다 아는 얼굴이라는게 이럴때 쓰는 말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성준수와 사람 얘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가 잠깐, 이현성은 가만히 맞은 편에서 멍하니 밥을 먹는 기상호를 바라보았다. 애가 조용하긴 해도 이런 자리서는 말 하나 안 할 놈은 아니었는데 뭔 일인지.

“근데 상호. 니 멍타냐?”

“네?”

“닌 뭐 할 얘기는 없나?”

“아이 뭐, 제가 할 말 다 준수햄이 다 해줘서.”

기상호는 헤실 웃고는 옆에 앉은 성준수에게 눈빛을 보냈는데 그는 그냥 코웃음 한번 치고는 밥을 먹을 뿐이었다. 그럼 밥이라도 잘 먹어라. 이현성은 상호의 접시 위로 새우 튀김을 한점 더 올려주었다. 밥 잘 먹던 놈이 왜 깨작깨작 먹는지. 입맛이라도 없나. 잠깐 이야기꽃을 피우던걸 멈추고 기상호의 먹는걸 바라보던 차,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아 잠시만요. 저 전화 좀 와서. ”

기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바깥으로 나왔다. 뭐 중요한 전화인가. 그래도 당사자가 나간 참이니 이현성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 성준수에게 가까이 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상호 뭔 일 있나?”

“내년이면 FA잖아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세월 참 빠르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탕수육을 한점 먹는 성준수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간 기상호를 한번 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짜피 구단에서는 재계약 진행 할텐데 쟨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요새 멍타더라고요.”

“얼씨구, 그것도 확신이 있어야 안심하는거지.”

계약 만료가 되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FA자격. 사실 모두가 시장에 내놓아졌다고 다른 구단을 가거나 재계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음에는 계약을 할 수 있을지, 그 계약이 몇 년이나 될지. 당당하게 제 연봉을 요구할 수 있는게 아닌 이상은 ‘누가 저를 불러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다들 전전긍긍할테고.

“그러게요. 사실 형들이 괜히 겁주니까 더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겁줘?”

“흔히들 하는 말 있잖아요. FA다가오면 더 잘한다는 말.”

“상호는 그런거 없어도 잘 하더만”

분유버프라던가 신혼버프라던가 등, 뭐 클러치 능력같이 낭설처럼 퍼진 이야기다. 사실 기량을 잘 보여줘야 할 때니 더욱 집중해서 하다보니 그런 이야기가 퍼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현성이 아는 기상호는 언제나 꾸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선수였으니. 굳이 그렇게 애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될텐데. 그렇지만 이젠 제 손을 떠난 제자이니 같은 선수들끼리의 일에 참견할 수는 없어서 입맛을 쩝 다시며 물을 한모금 머금었다.

“중간에 최종수랑 컨텐츠 찍고 하다보니까 헤이해질까봐 애 잡은 것도 있고.”

“최종수?”

“감독님 못보셨어요? 이번에 유튜브에 뜬거 있잖아요.”

아 쌍용기 그거. 이현성은 약 한달 전 그 영광의 결승전 관련으로 담화를 나눈 영상을 떠올렸다. 결승전때만 해도 살벌했더만 별 접점 없어보였던 둘이 이젠 서슴없이 말 하고 지내는 걸 보니 어느새 이 둘이 친해졌나. 의외의 조합에 놀라서 눈뜨고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뭐 다른 팀 선수랑 이야기 나누는건 흔한 일이고 친해질 수도 있지. 뭘 그리 애 잡고 그래. 결국 막내가 만만해서 그런거겠지. 새우를 하나 집어먹으면서 그리 생각하고 있자면 막 연락을 끊고 온 기상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까 성준수에게서 들은 말 때문인지 여전히 맹한 얼굴로 음식을 집어먹는 모습이 영 불쌍해보였다.

“쌍호 많이 먹어라. 다음 시즌도 잘 뛰어야지.”

그래도 갑자기 힘내라고 할 수 없는 타이밍이다보니 해줄거라곤 덕담밖에 없었지만. 넵. 단답형의 대답을 들으며 이현성은 다시 물을 한모금 머금으며 입가심을 했다.

 

 

D-10

 

재석이의 데뷔를 축하하며. 이번에도 컵대회 리그 탈락자들끼리의 저녁식사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어째 전원이 다 모였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아니라 컵대회라 분위기가 그렇게 무겁진 않았단게 다행이랄까. 메뉴는 언제나 그렇듯 고기였다. 사실 식단 아닌 음식 중 그나마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한정되다보니 어째 익숙한 멤버끼리 익숙한 식당에서 모인 꼴이였다.

“진짜 죽을맛이에요.”

“내가 뭐랬냐. 넌 이제 앞으로도 걔 계속 볼거라고.”

이규가 여전한 웃음기를 지닌 채로 조재석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조별리그에서 기상호가 있는 수원 ST를 마주한 조재석은 울상이었다. 수원 ST에 있는 기상호와 수원 ST의 새로운 팀 컬러인 빡빡한 디펜스를 마주한게 통곡의 벽을 뚫는 느낌이라나 뭐래나.

“그러고보니 승대네 전력공사는 본선 진출할 줄 알았는데 탈락했네.”

“뭐 승패보다는 점수차로 본선 떨어진거니까. 저기 부산에서 경기마다 80점 90점 하는걸 어떻게 이기냐.”

“아, 형석이 형 완전 날아다니더라.”

조재석의 한탄과 선배들의 위로 이후로 나올 이야기는 이번 컵대회때의 경기 이야기였다. 컵대회때 같은 조 였던 강인석과 임승대가 같은 조에서 경기를 했던 부산 티렉스 얘기를 한번 하다 입술을 삐쭉이면서 고기를 먹고 있는 조재석을 한번 보았다.

“재석아 너도 힘내서 보여줘야지.”

“아 진짜로. 형들 일부러 그러는거죠?”

“왜 이번 드래프트때 형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 보여준다고 했잖아.”

만만한게 막내지. 화제는 돌고돌아 다시 재석이를 놀리는 쪽으로 가, 최종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았다. 원래 이런 자리에서 직접 얘기하는 쪽보단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오는 질문에 답하는 그런 쪽인지라 재석이가 놀림받는 광경은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어느샌가 시선이 집중되어 잠깐 눈썹이 위로 올라왔다. 니들은 갑자기 왜 그래.

“근데 종수는 왜 기 빨린 표정이냐?”

“이번에도 본선 진출 못해서 그런거냐? ”

“아니면 이번 신인이 별로야?”

“왜. 그냥 가만히 있었잖아.”

“아니 종수 형 오늘따라 많이 다운된 것 같아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쵸?”

조재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최종수에 집중하였다. 대체 무슨 표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아까 애들이 말한 이유는 전부 아니었으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 하며 얼버무렸다. 본선진출? 그래도 2승 1패의 성적으로 탈락한거라 잠깐 패배했을 때 빼고는 괜찮았다. 감독님이나 선배들도 이쯤이면 그래도 나아진거지. 하고 만족했고. 신인이라. 이번에 드래프트로 입단한 공태성과 어색하게 선후배 사이로 묶이게 된건 맞지만 3년 내내 신경전을 벌인 누구보다야 괜찮았다.

“정말로?”

“어. 밥이나 먹어. 너희들 신경쓰는 그런거 아니니까.”

그렇다면야. 다들 어깨를 으쓱하면서 잠깐 집중되었던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 이후로 할 이야기라곤 뻔했다 다음 시즌 준비라던가 이번 전지훈련 이야기라던가. 매년마다 반복할 레퍼토리. 그중 고충이 섞인 말들도 있었다.

우리 이번 시즌 사진 구리다. 프론트 일 안한다 등등. 사회인이라면 한번씩 할 말들.

최종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이 녀석들 중 제가 가진 고충과 같은 고민을 안은 녀석이 있을까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야 형네 팀 사정 듣거나 짐작하게 될거 같은데다 저도 저 나름대로 팀 얘기할 거 같아서...’

물론 이전에 들은 말 때문에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최종수는 잠깐 핸드폰을 들어 이번시즌 주장인 김인호가 보낸 메시지를 봤다. 대충 죽을 것 같다는 앓는 소리. 그리고 같은 팀 동기였던 이휘성이 팀 내에 있던 불화에 대해 사건 경위를 설명해주는 메시지가 보였다.

같은 팀 형들의 불화. 학교에 다닐 적에도 선배들이 기싸움 하고 신경전 하는건 있었다. 다만 그 때의 최종수는 농구하고 미래준비하느라 바빠서 남의 인간관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거의 불화의 끝 무렵. 그러니까 싸워서 갈라지거나 아니면 어찌저찌 화해를 한 다음 그나마 팀원이라고 챙겨주는 이규가 말해줘서야 그랬어? 뭘 그런거 가지고 싸운대? 하는 반응을 답으로 내놨을 뿐이지.

다만 프로에서는 좀 달랐다. 고등부 경기야 저 혼자 에이스로 뛰고 농구 잘 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장도고에서 득점 다 해먹었으니 상관 없는데 팀워크 잘 맞춰야 할 상황에서 누구 싸운다. 하면 그게 연습이든 경기에서도 나타나니 문제였다. 그것도 주전 선수 둘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니까. 그 광경을 보던 감독과 코치진은 한숨 쉬면서 주장에게 잘 해결해보라고 하고. 주장은 중재를 한다고 그 사이에 끼어드는데 서로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제발 좀 공사 구분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또 거기서 신경전이 발발하고. 여러모로 악순환이었다.

더해서 주장은 또 나름 중립이자 본의아니게 어느 편도 안드는 최종수를 찾아 하소연 하니 그거에 마음 쓰이는 것도 있고.

경기때는 묵묵히 경기만 하면 되는데. 경기 내에서도 본의아닌 신경전이 벌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해야할지. 에이스는 점수를 넣을 줄 알지. 조율의 과정은 몰라서 더 그런 것도 있었다. 주장? 중학생때와 고등학생때 3학년 막바지에 주장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농구 잘하니까 세워준거지. 거기서 조율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실력으로 찍어누르고 내가 하라는대로 하고. 감독님이 전달사항 말하면 전해주고 딱 그뿐이었는데.

최종수는 다시 짧게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짧은기간동안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함께한 동기들은 여전히 정규 리그 준비 이야기로 바빴는데 그 중 누구도 불화설을 제시하진 않고 서로의 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하기사, 기상호도 팀 내에 있던 자잘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이런걸 누가 이야기 하겠어. 최종수는 말없이 고기를 집어먹으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제 다 먹었지?”

“어.”

슬슬 일어날까. 잡담하면서 고기를 먹다보니 판에 있는 고기는 다 떨어지고 배도 불러왔다. 예전처럼 주류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다들 배만 채우고 헤어졌다. 이번에는 다들 멀쩡한 정신으로 집으로 가고,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최종수는 익숙한 도보를 걸었다.

데자뷰가 느껴지는 길, 그러고보니 이때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 기상호를 마주쳤었지. 최종수는 처음 마주쳤던 기상호를 떠올렸다. 나름의 슬럼프 때 만났던 기상호. 걔가 모든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안정감이 있어서 잠깐 문제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가까운 동네사람이 아니라 조금 먼 거리에 있는 타 구단의 사람인지라 전처럼 자주 만날수도 없고 연락도 뜸해졌다. 괜히 기상호가 떠올리는건 지금 끌어안은 남의 문제가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일까.

최종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기상호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았다. 거리가 멀어진 탓인지 약속을 잡을 수 없으니 언제 시간되냐는 그런 말도 없고 그 외에 시시콜콜한 잡담도 없었다.

최종수는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곤 가을의 산책로를 걸어갔다. 몇 안되는 가벼운 외출이 가능한 시기.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는 산책로에는 가로등 사이로 비추는 길을 거닐는 사람과 야외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야외 농구코트에서 가볍게 게임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그들을 보고 있자면 옛 기억이 떠올랐다. 기상호가 쌍용기 결승때 했었던 옛 말이 아닌, 동네 사람이니 여기서 한판 하자는 농담식으로 잡은 약속.

최종수는 잠깐 뒤를 돌아보다가 저 혼자 웃었다.

정신차려. 이젠 떠나서 여기서 더 볼 수 없는데 왜 그리 궁상인지.

누가봐도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행태가 한심해서 최종수는 고개를 저으며 산책로에서 벗어나 제 집으로 가는 길을 향해 쭉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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