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아젬구구절절

후회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2)

헤르아젬

“여기 당장 반출 가능한 비행 생물 있습니까?”

멀리서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연구원이 급하게 헤르메스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생물들을 살피던 헤르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반출? 무슨일이길래….”

숨차게 뛰어온 연구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구조 요청이 들어왔는데…. 어휴, 골짜기에 빠졌는데 지반을 이루는 암석이 에테르를 흡수하는 성질이라고 하네요. 그런 지형은 보고받은 적 없는데…. 아, 아무튼. 그래서 이동 마법도 불가해서 구조바란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마법이 안통하니 직접 가는 수밖에 없어서, 비행 생물 반출을 허락받으려고요.”

“뭐? 그거야 문제는 없…. 아니, 잠깐. 그거 설마”

헤르메스의 경악하는 얼굴에 연구원은 그 짐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네, 아젬님이요. 곧 14인 위원회 정기 회의도 있을텐데 큰일났어요. 이미 떨어진지 며칠 지났는지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보이셨거든요. 에테르를 흡수한다는 게 신체에도 적용되는거면, 서둘러야해요.”

이러다 아젬 자리를 다시 뽑게 생겼다는 뒷말이 거슬렸지만 당장 그 말에 딴지를 걸기엔 상황이 급박했다. 헤르메스는 이어지는 연구원의 말을 끊었다.

“다들 상황이 답답해서-”

“내가 갈게.”

“네? 소장님이 직접이요?”

“응, 당장 반출 가능한 비행생물은 많은데, 제일 빠른 녀석은…아마 나 말고는 못다루는 데다가 아직 심사가 안끝났어.”

“어, 괜찮으시겠어요?”

“응, 한시가 급하잖아. 어떤 앤지 알지? 허가 좀 부탁할게.”

“아, 네, 네. 바로 출발하시게요?”

“부탁할게.”

순식간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 연구원을 뒤로 한 채 헤르메스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엘피스의 한자락 텅 빈 부지에서 홀로 쉬고 있는 생물체가 하나 보였다. 끝이 뾰족한 날개와 다른 생물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몸집을 가진 그 생물은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였다. 눈 앞의 생물을 부를 방법이 없던 헤르메스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자, 생물은 고개를 들고 몸을 작게 털었다.

“쉬고있었구나, 미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생물의 뺨을 헤르메스는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생물은 그 손길이 좋은 듯 가만히 눈을 감고는 숨을 내쉬었다.

“조금 급한 일이 생겼는데, 도와줄래? 네게도 좋은 경험이 될거야. 어쩌면, 너가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될지도 몰라.”

헤르메스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생물은 가만히 눈을 뜨고 헤르메스를 바라봤다. 그런 생물을 향해 마주 웃음지어주자, 몸을 한 번 더 털어낸 생물이 날개를 활짝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단한 여섯개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헤르메스는 짐승이 제 앞에 서서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을 보고 기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헤르메스가 등 위로 올라타자, 생물은 힘차게 발을 굴러 날아올랐다. 오로지 빠른 속도에 치중해 만들어진 생물 답게 엘피스의 상공을 벗어나는 것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아젬이 고립되었다는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헤르메스는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구조요청이 언제 들어온건지 물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런 불안이 더욱 헤르메스를 재촉했다. 생물은 헤르메스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매섭게 불어 뼛속까지 시렸지만 그런 감각조차 의식에서 멀어졌다. 오로지 드는 생각은 아젬의 안위 뿐이었다.

오로지 헤르메스만이 영겁이 지났다고 느낀 시간이 흐르고, 헤르메스는 마침내 아젬이 고립된 장소에 도착했다. 골짜기는 지진에 의해 생긴 듯, 우거진 풀 숲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나무와 중간중간에 솟아오른 바위들이 골짜기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조심히 내려가자”

헤르메스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생물은 조심스럽게 날갯짓하며 골짜기 사이로 내려앉았다. 비행을 유지하기에 틈이 그리 넓지 않아 헤르메스는 결국 중간에 튀어나온 큰 바위 위에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골짜기 사이로 보이는 인영은 없었다. 헤르메스는 아래로 내려갈만한 길을 파악하고는 생물을 향해 말했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 위험해질 것 같으면 위로 먼저 가있어도 괜찮아. 너마저 다치면 큰일이니까.”

생물은 푸르륵거리며 소리를 한번 내고는 헤르메스의 손에 고개를 들이밀 뿐이었다.

“미안, 고마워.”

헤르메스는 생물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골짜기 아래로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위는 하나같이 불안정했고 무엇보다 물이 묻어있어 미끄러웠다. 자칫하면 떨어질 수 있겠다 생각하며 헤르메스는 조심히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아젬!”

외침이 골짜기를 울렸다. 헤르메스는 자신의 외침이 되돌아온 후 들려오는 소리가 있는 지 귀 기울였지만, 따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아젬! 여기있어?”

목소리가 불안하게 갈라졌다. 불안함에 뻗은 발걸음에 바위가 부서졌고, 쿠르륵 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한 바닥에 헤르메스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아윽…!”

“헤르메스?”

겨우 튀어나온 바위를 붙잡고 섰을 때,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르메스는 번쩍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워낙 작게 들려온 목소리라 확신이 가지 않았다.

“아젬!”

“나 여기…!…어!”

“기다려! 금방 내려갈테니까…!”

목소리에 약간 안심한 헤르메스는 무심코 마법을 쓰려다 멈추고는 주변을 침착하게 둘러봤다. 바위가 박힌 흙 주변에 튀어나온 나무 뿌리가 보였다. 헤르메스는 그 나무 뿌리를 헤집어 꺼내 밑으로 길게 늘렸다. 뿌리가 꽤 굵고 튼튼했지만 물때문에 미끄러워 불안했다.

“후….”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뿌리를 더 길게 끄집어내 허리에 감았다.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자 점점 더 시커멓고 깊은 골짜기가 눈에 들어왔다. 떨어지면 아마도 목숨을 유지하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헤르메스는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냐, 힘이 빠지는 게 아니라….’

몸에서 에테르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며칠이면 완전히 목숨을 잃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오싹한 기분에 헤르메스는 조금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곳에 이르자 그제서야 아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헤르메스….”

“아젬, 괜찮아?”

“대체 어쩌다 네가 온거야.”

아젬은 어딘가 다친 모양이지 한 팔로 복부를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헤르메스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아젬이 있는 곳에 발 끝이 닿자, 헤르메스는 팔을 뻗어 아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

아젬은 무언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지쳐서 그런건지, 혹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던 헤르메스는 그저 아젬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렸다. 잠시간 헤르메스의 손을 노려보던 아젬은 말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조심”

“아윽….”

아젬의 나무 뿌리를 잡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통증때문인지, 그저 힘이 빠졌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헤르메스는 조심히 아젬의 허리를 둘러 안았다.

“…!”

“아젬, 내 목덜미에 팔 둘러. 다친데 안 건드릴게.”

“너….”

“빨리”

의도적으로 닿지 않으려는 아젬의 고집이 보였기에 헤르메스는 더욱 단호히 말했다. 그제서야 아젬은 한 풀 고집을 접고는 헤르메스의 목에 팔을 둘러 안았다. 조여오는 힘이 너무나 미약했다. 불안정하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헤르메스는 서둘러 나무뿌리를 아젬의 허리에 묵었다. 자신과 고정된 것을 확인한 헤르메스는 위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런건 또 언제 배운거야.”

“생물들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곳으로 가니까. 조심히 접근하려면 마법을 쓰지 않아야 했거든.”

“그래….”

위로 올라갈수록 자신에게 붙어오는 아젬이 느껴졌다. 헤르메스는 자신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아젬에게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며 나무뿌리를 다시 움켜쥐고 오르기를 반복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처음 도착한 그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왔어. 이제 내려도 괜찮아.”

어느새 눈까지 감고 있었던 모양인지 아젬이 슬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눈 앞의 비행생물을 본 아젬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젬?”

“너…”

아젬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헤르메스를 바라봤다.

“걔잖아. 네가 만든 제일 빠른 생물.”

“어…그렇지.”

헤르메스의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젬이 물었다.

“대체 뭐야?”

“뭐?”

당황스러웠다. 아젬의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젬은 오랜 시간 지쳐있었기에 암울한 감정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 골짜기에 있으면서 계속 네 생각을 했어. 왜 난 네 세상에 들어가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 왜 넌, 네 생각을 전부 들려주지 않을까. 너는 왜 함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걸까. 생각하다보니 너무 미안한데, 또 끝도 없이 화가나는거야.”

아젬은 하고싶은 말을 전부 내뱉지 못하고 우물거리다 기 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화를 삭히지 않은 채로 헤르메스에게 따지듯 물었다.

“왜 네가 직접, 이 아이를 타고 여기에 온거야?”

“지금 그게 무슨….”

“대답해.”

헤르메스는 멍하니 아젬을 바라봤다. 아젬의 눈빛이 확고했다. 저렇게 지칠대로 지친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한다는 소리가 왜 자신이 여기왔냐는 질문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당연히 네가 걱정되니까-”

“걱정. 그래, 친구사이에 그럴 수 있지. 근데 네가 정말 오직 친구사이이기 때문에 이렇게 달려온거야?”

“무슨 소리야?”

헤르메스가 당황한 사이, 아젬이 갑작스레 성큼성큼 걸어와 헤르메스의 팔을 잡았다.

“안아봐”

“뭘 하는…!”

“아까처럼 안아보라고”

아젬은 억지로 헤르메스의 팔을 자신의 허리에 둘렀다. 헤르메스는 손을 어찌하지 못한 채 아젬을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젬은 분노했다.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

아젬은 다른 팔로 헤르메스의 목을 두르고 끌어당겼다.

“그럼 방금 전 내가 느꼈던 건 대체 뭔데?”

“나는….”

당황스러웠다. 헤르메스는 코앞에 있는 아젬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여전히 손을 어찌하지 못해 주먹을 쥔 채 헤르메스의 팔은 어정쩡하게 아젬의 허리에 둘려져있었다.

“대체 우린 왜 이렇게 멀리 있어야 하는거지?”

아젬의 손이 떨렸다.

“방금 우린 같은 걸 느낀 게 아니었나? 그냥 그렇게 같이 있을 순 없는거야?”

그 말이 헤르메스의 신경을 건드렸다. 방금의 순간에 머무르고 싶은 건 아젬 혼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물 수 없게 한 건 분명히 당신 아니었던가. 헤르메스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주먹을 꽉 쥐었던 손을 펴고 아젬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아윽…!”

“우리가 같은 걸 느꼈다고?”

아젬의 눈빛이 흔들렸다. 헤르메스의 슬픔과 분노가 섞인 눈이 그를 마주봤다.

“내가 바라는 게 어떻게 너와 같을 수 있어. 내가 이렇게 바라면, 그걸 가질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헤르메스가 아젬의 한쪽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젬이 다욱 가까워졌다. 그의 밭은 숨이 지척에서 느껴졌다.

“네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난 살아갈 수 없단 걸 알잖아.”

“같이, 으…같이 있으면서, 네 고민은, 해결할 수 있어.”

“우리가 어떻게 같이 해결할 수 있겠어. 너는 세상을 사랑하고 나는 세상을 증오하는데.”

"윽…!“

아젬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헤르메스의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난 이걸 바란적이 없다. 아젬은 그 눈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헤르메스가 울분에 젖은 채 말했다.

“너는 나와 같이 싸워주지 않을 거잖아.”

“나는 이미, 노력하고 있어.”

아젬은 한 번 숨을 들이마쉬고 대답했다.

“내가 왜, 정기회의마다 창조생물에 관한 안건을 내는데, 사람들이 왜 널 파다니엘의 자리에 앉히려 하는데? 너도 그 이유를 알잖아”

“그 짓거리를 얼마나 오래 해왔는데?”

아젬은 답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헤르메스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

“그 오랜 시간 계속해왔지, 셀수도 없을만큼 긴 시간동안 수도없이 많이 안건에 오르고, 토론해왔어. 그런데 아직도, 아직도….”

헤르메스는 숨을 들이켰다. 분노에 찬 눈빛이 떨리며 눈물이 떨어졌다.

“다들 이 건이 중요하다 생각했다면 진작에 들어줬겠지. 파다니엘이 내게 그 자리를 추천하지도 않았을거야. 하지만 아니야. 아니었어. 다들 이 문제는 가볍게 생각하고 있어. 그 시간동안 나는 계속 너무 많은 걸 잃었고, 심지어 여기 오기 전에도 나는”

헤르메스는 아젬의 안위보다 그의 빈자리를 걱정하던 연구원을 떠올렸다. 자신은 추억 하나에 절절매는 사람이다.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없어, 아젬.”

헤르메스가 여전히 눈물지으며 웃었다.

“내가 여기 오기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저 아이의 쓸모를 입증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저 아이가 살아갈 날을 하루 더 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젬이 숨을 죽였다. 격정적이었던 눈빛은 어느샌가 슬픔이 가득해져 있었다.

“네가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나는 안도했어. 온전히 하나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여기저기에 마음쓰기만 하는 그런 내가, 어떻게 너와 함께해.”

헤르메스가 고개를 숙였다. 차마 아젬의 품에 얼굴을 파묻진 못한채로, 끝끝내 그에게 닿지 않은 채로 말했다.

“더 오랜 시간 인내하며 살기엔 난 너무 지쳐있어, 아젬.”

“….”

“난 내 방법을 포기못해. 날 상처입히는 수많은 사람과 인내하며 살아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어.”

“그래서 나와 함께하길 포기하겠다고.”

“그래.”

아젬은 자신의 팔을 잡은 헤르메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여전히 이렇게 바라면서.”

“….”

두근거리는 심장이 원망스러웠다. 아젬은 차마 헤르메스를 더 끌어당기지 못했다.

“헤르메스, 넌 모르겠지만, 내가 널 처음 본 곳은 토론장에서야. 그때도 창조생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지.”

헤르메스가 손을 움찔거렸다. 아젬은 미동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그 때의 난 토론에는 참 미숙했어. 나도 창조생물이 스러지는 걸 봤을 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생태계를 해칠 생물은 내보낼 수 없다는 주장에 반박하진 못했거든. 하나를 위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는 건 나한텐 무서운 선택이었어.”

헤르메스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근데 넌 거기서 소리치더라. 그건 책임을 창조생물에게 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우리가 신중히 임하지 못한 결과를 가장 약한 것에 떠맡기는 거라고.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논의를 거치고 검증을 거쳐 창조생물을 만들어야 하는거라고 분노에 차서 소리치더라. 만들어내고 실험하는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

당시 그에게 공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그의 발언은 너무나도 쉽게 묻혔다. 아젬이 헤르메스의 젖은 뺨을 쓸었다.

“그때도 넌 울었어….”

아젬은 비통했다. 이미 깨져버린 마음을 붙여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아젬은 손을 내리고 헤르메스의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난 그날의 너를 보고 깨달았어. 누군가에겐 작은 것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커서 마음을 쓰게 만든다는 걸. 그래서 너처럼 그 수없이 많고 작은 것들을 소중히 대해야겠구나, 그들을 위해 싸워야겠다 생각했어. 궁극적으로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 될 테니까. 그날로 내 모험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지.”

아젬이 헤르메스를 밀어냈다. 헤르메스의 팔이 힘없이 풀어져 밀려났다.

“난 그날의 네가 깨우쳐준 진실과 방법을 포기할 수 없다. 헤르메스”

아젬의 눈빛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 결연한 눈빛에 헤르메스는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알았다. 창조생물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소멸시킨 그들조차, 그에겐 가치있는 무언가였다. 자신은 이미 포기해버린 것을 끝까지 쥐고 있었다.

“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거야.”

“…난 거기에 함께할 수 없어.”

“그럼 그런 너조차도 언젠가 함께할 수 있게 만들게.”

아젬은 헤르메스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살며시 웃는 미소가 자애롭다. 그 따스함에 본인은 속할 수 없음을 헤르메스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 넓은 품안에 자신은 스스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돌아가자.”

헤르메스는 창백해진 아젬의 낯빛을 바라봤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은 그는 아젬의 손을 놓고 그 손가락 끝만을 잡았다.

“미안해.”

헤르메스의 미약함에 아젬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젬은 그 손을 다시 고쳐잡고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내가 도발했는 걸, 내 죄지. 덕분의 네 생각을 전부 들었으니 됐어.”

하하 웃음을 터뜨려버리는 아젬에게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헤르메스가 만들어낸 생물을 타고 돌아가며 아젬은 그저 그에게 기대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냈다. 돌아가는 길 내내 대화는 없었다. 헤르메스가 아젬의 자세를 고쳐주려 고개에 손을 댔을 때 아젬이 딱 한마디 건넸을 뿐이었다.

“이 아이의 심사가 끝나면 이름은 내가 지어줄래.”

헤르메스의 대답은 없었다. 아젬도 딱히 답을 바라지 않았다. 둘의 대화는 또 다시 이어지지 않은 채 헤어졌고, 이후 헤르메스가 다시 아젬을 만나게 된 건 휘페르보레아 조물원에서의 사건이 터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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