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が来たらまた笑いましょう
월간린도 (5월)
夜が来たらまた笑いましょう
밤이 오면 다시 웃읍시다
피부에 내려앉는 냉기가 무거운 밤이다. 하이타니 란은 익숙하지 않은 골목에 들어선다. 같은 도쿄 23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아홉 시도 안 되었는데, 그는 손목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목적지를 가늠한다. 바스락, 걸음할 때마다 비닐 봉투가 부대끼며 고요한 골목에 소음을 만든다. 좀 더 두껍게 입고 다녀, 마주칠 때마다 그렇게 말했건만, 동생은 이 계절의 냉기가 신체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둔 모양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보자면 린도는 말을 잘 듣는 동생이었다. 그랬나? 란의 눈동자가 작은 호를 그리며 옮겨간다. 착각 아닐까? 늘 옆에 있고 특별히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자기주장이 없는 성격도 아니고 머리가 큰 뒤부터는 고집도 꽤 부리게 되었다. 감기 든 이유도, 란이 이런 알 수 없는 거리를 걷게 하는 것도, 전부 말을 듣지 않은 증거 아닌가?
란의 발이 멈춘 곳은 두 층짜리 아파트 앞이다. 그는 현관 위로 난 창의 불빛을 보고 있다. 미묘하게 다른 조도가 낡은 아파트를 더욱 볼품없는 것으로 만든다. 동생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가? 주차장도 없는 다 쓰러져가는 목조 건물, 객기도 적당히 부려야지, 란은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오른다. 붉은색 구두 바닥이 닿을 때마다 녹슨 철제 계단은 존재감을 뽐낸다. 복도에 들어서도 그 공허한 외침 같은 소리는 여전하지만, 굳이 발소리를 죽이지 않는다. 도쿄의 밤을 지배하는 범천의 간부나 되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해 살금살금 걷는 건 이상한 일이다. 물론 이런 싸구려 아파트에 사는 것도. 그는 204호 앞에 선다. 끝에서 두 번째 방이다.
린도가 잊지 않았다면 자신을 위해 열쇠를 잠그지 않았을 것이다. 란은 손잡이에 손을 뻗기 전에 잠시 망설인다. 아무리 동생이 주인인 집이라고 해도 벨도 누르지 않고 문을 여는 데는 저항이 존재했다. 이상했다. 란은 가끔 사람을 찾아 산즈 하루치요의 앞에 대령하는 시시한 일도 즐겼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집주인의 동의 없는 방문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잠긴 문을 비틀어 따는 것은 괜찮고 열쇠가 걸리지 않은 문을 여는 건 옳지 않은가? 그는 약간 기분이 상한다. 이 문 너머에 동생이 있는데도. 모순에, 그리고 동생이 만든 벽에, 타인과 같은 감각, 린도가 무엇을 흉내 내고 싶은지 도통 알 수 없다.
철컥, 작고 단순한 메커니즘이 내는 소리. 기분을 가라앉게 하는 망설임이 무색하게 문은 쉽게 열린다. 들어선 현관은 평범하고 좁다. 대충 놓인 눈에 익은 신발. 동생의 집이다. 란은 양해도 없이 바닥으로 올라 슬리퍼를 신는다. 이렇게 짧은 복도라면 필요 없는 거 아닐까, 현관과 중문 사이는 다섯 걸음 정도다, 앞으로 다섯 걸음이면 동생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화장실 문과 가재도구 하나 없는 살풍경한 싱크대, 작은 냉장고 옆을 차례로 지난다. 과연 냉장고 안은 궁금했으나 일단 삼가기로 한다. 삼 주 전만 해도 냉장고 안을 공유하던 사이였는데.
“린도-”
대답은 없다. 기다리지 않고 중문을 연다. 말이 좋아서 중문이지, 플라스틱의 싸구려 접이식 슬라이딩 도어로 소리만 요란하다. 적당히 낡은 느낌으로 전 입주자가 사용했던 것임을 짐작한다. 동시에 린도가 이 집을 꾸밀 생각이 없다는 것도, 이 반항이 일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자 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따뜻하다. 온풍기가 쉼 없이 바람을 내뱉고 있다. 온기가 아까워진 란은 얼른 제쳐놓은 것을 당겨 닫는다. 방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용케 이런 곳을 찾았다. 동생이 누워있는 더블베드가 이미 반은 차지했다. 란은 침대로 다가가 살짝 허리를 숙여 린도의 잠든 얼굴을 본다. 며칠간 좀처럼 보여 주지 않아 그리웠던 얼굴. 사랑스러운 동생의 얼굴. 그에게 닿고 싶다. 그 전에, 란은 다시 상체를 일으킨다, 방 한쪽에 놓인 행거에서 적당한 옷걸이를 골라 코트와 양복 재킷을 건다. 밖에서 묻혀온 냉기는 금방 가실 것이다. 고요했다. 가만히 있으면 린도의 깊은 숨소리가 들린다. 그는 아주 잠시 귀를 기울인다.
란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역시 동생이 지내기엔 형편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훨씬 넓고 야경이 멋진 롯폰기의 호화 맨션에서 뛰쳐나와 온 곳이 겨우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라니, 머리 위에 달린 전등은 곧 갈아야 함이 틀림없다. 얼굴을 비추기엔 어둡다. 그는 슬쩍 욕실을 둘러본다. 타인의 흔적을 찾는 행위다. 명백한 이질감을 지닌 소품의 존재나 꽂힌 칫솔의 개수 같은 것. 물론 란이 아는 린도는 이런 곳에 여자를 데려올 바에야 호텔로 가겠지만, 혹시 모른다. 마음만 맞는다면……. 그들은 일종의 경쟁자였다. 동생의 감정을 나눠 갖는, 란도 그 사이에 껴있었다. 고맙게도 동생이 끼워주었다. 입술을 들이밀었을 때 받아준 것이 란이 생각하는 그 증거다.
남자는 자신의 길동무였던 봉투에서 체온계와 해열 시트를 꺼낸다. 이 집에는 도통 있는 것이 없어 보이기에, 자신의 친절이 헛되지 않음을 확신한다. 사실 체온계까지 사려던 건 아니었다. 감기, 잠긴 동생의 목소리만 믿고 드럭스토어의 감기약 코너를 서성거리고 있었을 때, 부르지도 않은 점원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증세는 어떠신가요, 해열에는 이쪽이 강합니다, 성인은 두 알을 드시면 됩니다, 그런데, 체온계는 있으신가요? 란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의미였지만, 어느새 없는 것이 되어 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원하지는 않았으나 기왕 손에 들었으니 활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란의 손가락이 린도의 머리카락을 치워 닿을 자리를 만든다. 이마는 커다란 손에 가려지고 닿은 피부는 뜨끈뜨끈하다. 쉬이 가시지 않을 열이다. 린도는 옛날부터 건강 체질이었다. 적어도 란 보다는 훨씬.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지나치며 한 번쯤은 병을 얻어올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없었다. 이렇게 새삼 세월을 체감한다. 붉게 상기된 뺨이 동생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구석구석 관찰한다. 내려앉은 속눈썹이나 입술 선, 턱 끝, 삼 주는 너무 길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니 반칙이었다. 가혹한 벌이었다. 물론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란은 살짝 벌어져 있는 린도의 입술 사이로 체온계를 집어넣는다. 설명서를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에게는 작은 글자들을 읽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재빠르게 훑은 망할 집 다음은 동생이었다. 린도가 열기 섞인 숨을 내쉬며 지금 여기 누워 있다. 삑, 기계음 뒤, 란은 노란 불이 들어온 작은 창을 본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숫자인가? 란은 동생의 팔을 가볍게 흔든다. 린도, 일어나, 의사한테 가자.
“음…,”
잠긴 목소리, 린도가 거부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키스했던 날에도 이랬는데. 란은 침대 위를 침범하며 동생의 뺨을 쫓듯 가까이 다가간다.
“일어나라니까?”
“......”
“린도.”
같은 색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어째서 여기 있어?”
“네가 불러서 왔어.”
“내가?”
“전화했잖아. 그것보다 의사한테 가자. 네기시(根岸)의 늙다리에게.”
“그 사람은 외과 의사야.”
그렇군. 란은 린도의 사고가 그럭저럭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동생의 말대로 네기시의 불법의는 자상이나 총알구멍을 꿰매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기는 했다. (물론 그것밖에 시키지 않았다.) 주사 정도는 놔줄 수 있겠지만 범천의 사람들이 그런 시시한 이유로 찾는 일은 없었으니 약도 없을 것이다. 우연히 있다고 해도 소비기한이 끝나버렸을지도.
병원이나 의사는 잊기로 한다. 린도의 병세는 이 허름한 방으로 형을 부르는 전화를 했을 때보다 나아진 것이 확실했다. 형, 형, 보고 싶어. 열에 취해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까?
“저녁은? 에너지 젤리 먹을래? 약도 사 왔어. 먹고 다시 누워.”
“자고 싶어. 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게.”
“가.”
란은 자신의 입에서 멋대로 나오는 보살핌의 말이 어울리지 않아 웃긴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그저 어디선가 본 병간호의 흉내를 내는 기분이다. 린도는 란의 친절을 거절하며 몸을 웅크린 채 이불에 얼굴을 파묻는다. 동생은 살면서 원하는 건 뭐든 손에 넣었다. 란이 그렇게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정함을 보답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인생을 통틀어 단 하나였는데도.
“보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
동생이 다시 잠들지 않았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엉키고 섞일 생각들도 짐작되었다. 후회가 가장 크겠지. 란도 그랬다. 조금 더 참을성 있게 굴었다면 좋았다. 그럼 이런 말도 안 되게 작은 방에서, 건조한 온풍기 바람 아래에서, 동생의 등을 보고 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하면서 눈으로는 바보 같은 티비쇼를 보고 속으로나 동생의 안을 상상하고..., 그렇다, 그랬으면 좋았다.
“열 있잖아. 약이라도 먹어둬. 갈 테니까.”
“……, 키스하지 않겠다고 해.”
“응.”
옮잖아. 란은 동생의 잠겨 낮은 목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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