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in Various days
Owen Crawford _ 1019
생각해보면 눈이 참 싫었던 것 같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도 그닥이었고, 녹고 나면 푹 젖게 되는 것도 별로였다.
그러니까, 그 때 당시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란 소리다.
몸이 감당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피곤해지면 쓸 데 없는 생각이 늘게 된다. 오늘따라 어깨에 걸친 황립 기사단 제복의 자켓이 묵직하고, 수도 중심지 근처에 구한 작은 집 현관문 열쇠가 힘겹게 돌아갔다. 몸이 축축 처질 뿐 아니라 슬슬 마음까지 지쳐가는 기분이 들고, 마음 한 켠에서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어쩌면 아카데미 재학 시절까지도 한 번도 걸려본 적 없는 감기 – 혹은 비슷한 한철의 질병 – 을 겪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우편함에는 언제나 광고 편지들이 가득했고, 괜히 그것들에 시간을 뺏기기 싫어 우편물은 한 번에 처리하곤 했는데 - 때문에 때때로 중요한 연락들이 늦곤 했다 – 최근에는 기다리고 있는 편지가 있어 바로바로 우편함을 비우는 편이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챙겨왔던 우편물 두 개를 소파 앞 작은 테이블에 툭, 하고 던져 놓으며 소파 위에 몸을 맡겼다. 푹신하기는커녕 오래 앉아있거나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등이 잔뜩 배길 것 같이 딱딱한 소파였지만, 현재 내 입장에 있어서는 이조차도 사치였다. 기사단 동료가 이사를 간다며 공짜로 주지 않았다면 손도 못 대보았을. 오늘은 특히나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하루였다. 술이라도 집에 있다면 한 잔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다.
생각보다 생활비가 쪼들렸다. 받는 봉급을 7할 이상 동생들에게 송금한 탓이었다. 그밖에도 동생들이 수도에 내려와 함께 살기 위해 좀 더 넓은 집을 구하는 비용이나, 생활비 같은 비용을 저축하느라 그 중에서도 몇 할이 더 빠졌고, 기사단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외비가 또 빠지면……. 물 먹은 솜 마냥 축 처지는 몸으로 겨우 이것저것 손가락을 꼽으며 습관적인 ‘어른’의 셈을 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산수와는 판이한 ‘어른’의 셈에 이젠 제법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질 수준이었다.
보호자 없는 동생들을 보살펴주는 조건으로 그들은 양육비를 요구했다. 우리 가족을 그렇게 만든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생들은 평생을 그 폐쇄적인 마을에서 살았고, 보호자인 내가 없는 외부를 두려워했다. 마을 사람들이 잘 해주느냐고 슬쩍 물어보는 편지에는 동생들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는 내용으로 답했지만, 빨리 나와 함께 살고 싶다는 그들의 마음이 편지에 묻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얼마 후면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곧 기다리는 편지가 오면, 혹은 동생들이 먼저 오면…….
혼란스러운 머리로도 시야에 들어오는 편지들을 집어 들었다. 봉투들을 돌려 확인해보니 루멘 전제국 유통의 우체국 인장이 찍혀있었다. 광고 편지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반가운 연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아 뜯어볼 생각으로 편지 봉투를 뜯는 칼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저 편지들을 발견한 이후로 답지 않게 두근대는 심장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어서, 빨리 확인하고 오늘은 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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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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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우리 지금 출발해.
형이 편지하라고 해서 하긴 하는데, 비슷할 때 도착할 거 같긴 하다.
이제 막 마차 출발할 거 같네.
내가 뭐랬어, 형. 아카데미 그만 안 두길 잘했지?
아카데미 졸업 안했으면 아마 이렇게 빨리 황립기사단이 될 수 없었을 걸….
형 덕분에 우리들의 신앙도 증명할 수 있었고…….
하여튼, 이제 우리끼리 새출발하자.
최대한 빨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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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로 편지드리게 되어 유감을 표합니다.
지난 x월 xx일, xx번 도로 산맥에서 마차 전복 사고가 발생하여
탑승자 전원 사망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족분들에게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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