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y Vacuity
Owen Crawford _ 1019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온전히 나의 선택인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타적인 동시에 이기적이며, 순종적인 동시에 무척이나 반항적이기 짝이 없다. 나는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부모님의 일을 도왔고, 내 동생들의 희망에 따라 내 물건들과 시간을 양보했으며, 친구들의 희망에 따라 놀이에 어울렸다. 그것이 온전히 내가 원해서 한 일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만사에 호불호와 동기를 느끼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은 맞지만 불행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에는 행운 같은 일이다. 그 어떤 일에도 호오好惡조차 불분명한 자신보다 좋고싫음이 확실한 사람들이 기쁘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것이 나의 행복일 것이다.
몇 살 무렵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는 거울로 스스로 살피는 것이 어색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와 똑닮은 애가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애의 눈은 읽기가 어렵고, 도대체 무얼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조차 알 수가 없고, 그저 너는 내게 바라는 게 뭐냐며 내게 은근히 다그쳐 묻는 것이…… 지켜보고 있노라면 영 불안해지기만 했다.
딱히 명쾌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오직 인내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그것은 셋째 동생에게 저녁을 조금 더 양보하거나, 혹은 아버지를 도와 벤 나무들을 수레로 옮기다가 비탈길로 굴러 생긴 상처의 고통을 참거나 할 때에 든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명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도 만족스러울 만도 한데, 이 노고에 대한 찬사는 대체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 영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세면대 안에 뱉어 놓은 거품이 아주 조금 거울에 튀어있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오른손을 뻗어 거울을 마구 문대었다. 그 행동으로 거울 안의 그 아이가 흐릿해지고 나면, 그제서야 평소처럼 웃을 수 있었다.
그런 비슷한 느낌을 꼬박 십년이 거의 지난 지금 느낄 줄은 차마 몰랐다.
잘못된 신앙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의 칼은 방향을 가리지 않으며, 혹은 과거 또한 가리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독실했던 부모님을 마을에서 쫓아 내 동사시킨 후, 내 동생들마저 학대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무섭다. 믿을 수 없으며, 위선적이고, 모순적이다. 그러나 그런 내게 더 무서운 것은,
그들처럼 변하는 자기 자신이다.
느릿느릿 져가는 노을의 마지막 햇볕이 창문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내 크지 않은 가방 안에는 그것보다도 더 많지 않은 내 동생들의 유품들이 있었고, 내 가족들의 흔적이 있었고, 그들의 몸은 내가 막 떠나온 그 저주스러운 곳의 공동묘지에 있었다. 영원히 추운 곳에 있을 그들에 반해, 나는 지금 더도 없이 안온하고 평화롭다. 이는 누구를 위한 단죄이며 속죄인가.
어느새 수도로 출발해 덜컹거리기 시작하는 기차 안, 노랗게 물들어가는 창가.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 내려앉는 먼지들. 고요함. 평안함. 참을 수 없는 적막. 그렇다, 지금은 기도하기 딱 좋은 시간.
우리의 형제 자매가 태초의 빛 아래 진실로 회개하며 나아가,
끝까지 나의 신앙을 바라던 부모님 앞에서 택하는 최초이자 마지막일 나의 온전한 선택.
그의 신성한 발등에 입맞추며 용서를 구하니 위대하신 태초의 빛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시옵시고,
또는 허망하게 저문 동생들에게 하는 사죄.
우리의 안식과 평온을 위해 기꺼이 그 저뭄을 허하여 주시옵소서.
태초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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