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MET

[텽블] Only You

※ 캐해는 잘 모르겠고 보고 싶은 걸 씁니다. ※

※※ 본문은 펜슬 내에서만 감상해주세요 🫶 ※※

  아역부터 시작해 어엿한 배우가 된 태영과 한때 기타리스트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정모의 첫 만남은 그들이 8살, 11살이 됐을 때였다. 

  정모는 태영을 만나기 4년 전 국민 프로그램에 기타리스트 신동으로 출연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아기가 똘망하니 떡잎부터 생김새가 잘났기도 하고, 그 실력이 꽤나 친다는 기타리스트들을 능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 TV에 나오며 매스컴을 불태우던 정모는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뚝 끊겼다. 끊긴지 반년도 안 되어서 세상은 소수의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빠르게 정모를 잊었다. 이따금 그 영앤핸섬 기타 천재는 뭐 하고 지낼까 하는 글이 올라와도 몇 분이면 다른 글에 밀려 내려갔다. 

  돌연 잠적의 이유는 뻔했다. 워낙 내향적인데다 7살이면 아직 유치원 다니는 어린 나이. 쏟아지는 관심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정모를 그의 아버지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기타리스트이고, 때문에 정모가 자랑스러웠지만 인기보다 아들이 중요했다. 

  정모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홈스쿨링을 선택했다. 집안 대대로 재력이 있어 교육적인 부분이야 상관 없었지만 아들의 사회성이 걱정되던 찰나, 한 제안이 들어왔다. 8살 아역 배우에게 알기 쉽게 기타를 가르쳐 줄 수 있냐는. 그 아이의 이번 배역은 정모처럼 기타리스트 신동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르치는 현장에 제 아들도 데리고 가도 될까요? 

  단번에 받아들여진 조건에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그 아역 배우를 가르치기 위해 등 뒤에 쭈뼛거리는 정모를 달고 연습실에 들어서던 날. 씩씩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태영을 본 정모의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우리 정모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태영은 어린 애가 다 그렇듯 집중력은 조금 부족했지만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가르칠 맛 나는 제자였다. 기타 잡는 자세와 계이름 운지법을 가르쳐주는데 태영의 눈길이 자꾸만 기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제 아들, 정모였다. 통성명 하고, 형이고 동생인 걸 알려준 이후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둘이었다. 보아하니 태영은 말을 걸고 싶은 듯 한데 정모는 낯가리며 들고 온 자신의 기타를 조율하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제사도 설렁설렁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제삿밥에 관심 있는 건 사실이기에 정모의 아버지는 태영에게 쉬는 시간을 주고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든 정모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버지는 온데간데 없고 방안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낯선 남자아이, 태영과 단 둘이었다. 정모는 몸을 움츠리며 기타를 끌어안았다. 눈을 꾹 감았다 뜨니 바로 눈앞에 태영이 다가와 있었다. 화들짝 놀란 정모가 입을 벌리고 굳어있자 태영이 활짝 웃었다. 정모 형, 사탕 먹을래?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손에 블루베리맛 사탕이 떨어졌다. 주머니 속에 있어서 살짝 녹은 사탕이 정모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태영은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친해지고 싶었다는 얘기, 형 잘생겼다는 얘기, 형도 기타 잘 치냐는 얘기, 이번에 맡은 역할에 대한 얘기,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 

  태영은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쳐 타임'이라는 애니메이션과 블루베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어쩐지 사탕도 블루베리 맛이더니. 형은 뭘 좋아해? 그 질문에 한마디도 없이 입 꾹 다물고 듣기만 하던 정모의 입이 터졌다. 태영이 애니메이션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그 단어는 정모의 수다 버튼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송 출연을 그만 둔 이후로 정모의 낙은 온갖 애니메이션을 섭렵하는 것이었기에. 태영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 정모에 당황하면서도 나름 친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유루세'라던가 '넨'이라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는 못 해도 열심히 호응했다. 

  그 이후로는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정모 아버지-이 아닌 정모에게 헷갈리는 계이름 운지법를 물어볼 정도로 친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무서워 하던 정모가 오늘 처음 보는 태영과 웃으며 대화할 정도로 친해진 것을 본 정모의 아버지는 자신의 선택을 뿌듯해했다. 다만 태영과 정모가 각각 21살, 24살이 된 지금, 약간의 오류와 부작용이 있었다.

  정모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무서워 했다. 아니, 이제는 조금 나아져서 무서워한다기보다는 좋아하지 않았다. 예외는 오직 태영이었다. 새끼 오리가 처음 본 생물을 엄마라고 생각하며 따라다니듯 정모는 처음 사귄 친구인 태영과만 다녔다. 그 당시 11살, 결정적 시기는 지난지 한참인데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반면 태영은 정모를 제외하고도 많은 친구가 있었다. 정모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태영이 다른 애들과 놀고 있다고 할 때마다 조금 우울해졌다. 태영이 다른 친구와 노는 날이 일주일에 삼일이라면, 정모와 노는 날은 일주일 중에 오일인데도 그랬다. 집에서 같이 놀자고 전화를 걸 때마다 같이 있는 친구가 바뀌어서 그렇기도 했다. 어느 날은 동현이, 어느 날은 민석이, 또 어느 날은 우빈이. 그리고 뒤에는 꼭 전혀 고맙지 않은 물음표가 붙었다. 형도 같이 놀래? 정모는 다른 누군가와 같이 놀고 싶은 게 아니라 태영과만 단둘이 놀고 싶은 거였다. 가만히 앉아 애니 보는 게 좋은 자신에게 동적인 활동을 같이 하자고 해도 태영이면 다 좋은데.

  정모는 안고 있던 쿠션에 얼굴을 박았다. 태영이 오늘은 민희랑 노는 중이라고 했다. 민희는 또 누구야. 입술 삐죽거리며 우울해 하고 있던 정모의 옆에 정모의 아버지가 앉았다. 태영이 무슨 프로그램 한다던데. 새 작품 하나보죠. 아니 연기 말고, 그 왜 있잖아. 너한테 들어왔는데 네가 깐 거. <도전, 아이돌!>이던가. 네??? 

  정모는 뜻밖의 소식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름부터 구린 그 프로그램이라면 배우, 가수, 운동선수 등 각종 분야의 또래를 모아다가 아이돌 그룹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 성격에 무슨.. 그리고 방송 안 나간지가 언젠데, 하며 정모가 거들떠도 안 보고 거절한 프로그램. 김태영 네가 이걸 왜 해? 경악 이후에 밀려오는 건 서운함이었다. 태영이는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해줬지. 다른 친구들이랑 논다고 나는 맨날 뒷전이네. 나는 너밖에 없는데.

  정모는 생각했다. 방송 나가는 거 싫은데, 정말정말 싫은데, 내가 몇 년동안 모은 피규어랑 카드 다 버리는 것보다도 싫은데, 그것보다 태영이가 또 다른 애들이랑 만나고 친해지는 게 더 싫어. 정모는 방송에서 태영의 베스트 프렌드가 자신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리고 싶고, 태영 절친 = 정모라는 공식을 확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결심한 정모가 선언했다. 저 나갈래요. 정모의 아버지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귀를 후빈 후 몇 번이고 다시 되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했다. 정모의 강경한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든 정모의 아버지는 프로그램 PD에게 전화를 걸면서도 정모를 흘깃거렸다.

  출연 확정 기사가 나가고, 이제 무를 수도 없는 시점에 정모는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 태영이 때문에 무작정 한다고 했는데 프로그램 포맷을 받아 보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춤 같은 거 춰본 적 없는데. 촬영 날짜가 다가오는게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이런 거 촬영할 시간에 볼 수 있는 애니가 몇 편인데. 나루토는 다 못 봐도 강철의 연금술사는 구십 몇 환가밖에 없어서 다 볼 수 있을 텐데.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The Rose의 You're Beautiful. 요즘 태영이 좋아하는 노래이자 정모가 태영 전용으로 설정해놓은 벨소리였다. 지체없이 받은 전화 너머에서 태영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형, 형도 도전 아이돌 출연한다며? 괜찮아? 어투에 담긴 걱정은 정모가 방송 출연을 그만 둔 이유를 알기 때문일 터였다. 태영의 말에 정모는 방금 전까지도 하던 후회를 날려버렸다. 하길 잘 했다. 태영이가 걱정도 해주고. 정모는 비져나오는 웃음기를 애써 숨기며 말했다. 나 아는 사람 너밖에 없으니까 네가 나 챙겨줘야 돼. 난 너밖에 없어.


모든 애니 용어, 애니 제목 및 애니 편수 제공(출처 - 스테이션 제트, 버블 라이브)해주신 모타쿠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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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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