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花

흐드러지게 피어난, 어여쁜 꽃(샘플)

"군주님!"

복스 아쿠마는 저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멀리 던져두었던 시선을 거두었다. 눈앞에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그 어떤 때보다 평화롭고 활기가 넘쳤다. 400년 전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아보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옅은 바람이, 아스라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눈을 감고, 날씨를 즐기던 저를 배려하려 조곤조곤 떠들며 봄을 즐기던 권속들, 그리고 따스한 봄볕이 제 눈을 간질거렸었다.

'그 날도, 분명 매화꽃이 흩날리던 날이었지.'

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따랐고, 사랑해주었으며 한 치의 의심 없이 자신을 믿어주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감정은 가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감정이었으리라. 권속이라는 이름 아래에, 그 무엇보다 강하게 뭉친 사람들은 가족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유대감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복스 아쿠마라는 악마는 이 집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자신과 어느 만큼의 시간을 보냈든, 그에게 있어 그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전쟁전, 그는 한 아이에게 두렵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인간이니, 분명 두려울 만도 하지. 인간에게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있을까. 하지만 아이는 다른 대답을 하였다. 두렵지만, 당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기꺼이 싸울 수 있다고. 

아,

 그 순간 목소리의 악마는 자신이 그들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분명 두려움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이들은 한 존재를 위하여 이리도 용기를 가지고 적에게 맞서 싸우려고 하는가.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기에, 그 또한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치려는 도쿠가와에게 대항해보고싶었다. 이것은 더 이상 가족 놀이가 아닌 어쩌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투쟁에 가까웠다.

 자신의 소중한, 522명의 권속을 지키기 위한 투쟁.

그렇기에 복스 아쿠마는, 검을 들어 아직은 오지 않은 적들을 기다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만개한 매화꽃이 제 시선을 이끌었다. 그들은 분명 수가 압도적으로 많겠지. 하지만 우리들의 연대감은 그 무엇에 지지 않을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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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매화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찢어질 듯이 들리는 비명, 쓰러지는 권속들, 나의 소중한 사람들. 그들은 쓰러지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나를 삶의 길로 밀어 넣으려 애를 썼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것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들의 목숨을 부지하는것이 더 높은 가능성일텐데. 부질없는 행동이라 생각한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들은 사내를 위해 검을 든 사람들이며, 터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것이었다.

새카만 밤을 닮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던 황금빛 눈의 아이는 도쿠가와의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추락하였으며, 어여쁜 벚꽃을 닮은 분홍 머리카락의 아이는 어린아이를 감싸고 쓰러졌다. 자신의 호위무사들은 가장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맞서싸우고 있었지만, 이젠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했다. 더 이상의 권속들을 죽일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란 무릇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넋을 놓고 있던 자신을 낚아챈건 다른 권속들이었다. 

 

"군주님!!!"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들이 제 손목을 낚아채고 성의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다른 아이가 뒷문을 열어 자신과 다른 두 아이를 밀어 넣는다. 도망가서 살아남으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문을 잠가버린다. 복스 아쿠마는 불타는 성을 가만히 쳐다본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불꽃이 사내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리 아름답던 불꽃이, 한순간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더 이상 닿지 않을 자신의 성을 향해 손을 뻗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기필코, 자신의 권속들을 되찾아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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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님! 꽃좀 보세요! 그만 주무시구요!"

 가만히 감고있던 눈을 떠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을 쳐다본다. 그 때와 같이 활짝 만개한 매화가 자신을 반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권속들은 즐거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활짝 핀 꽃들의 축제를 온 몸으로 즐긴다. 더 이상의 고통도, 슬픔도 없을것이다. 우리에게 남은것은 이제 행복한 하루하루만이 남을것이다. 그저, 화려하게 만개한 매화꽃 아래에서 꽃비를 즐기며 축제를 즐기는 것. 그것 뿐이다. 

"무슨 일 있으세요?"

복스 아쿠마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인다. 잔잔한 웃음을 얼굴이 띄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제는 강해진,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권속들을 바라본다. 

더 이상의 슬픔은 없다. 

"아니, 별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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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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