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완성
꼰윤
이병곤이 생각하기에, 윤현석은 사랑이 많았다. 아닌 척을 하지만, 윤현석은 지나가는 어린 애들 보이면 슬쩍 미소 지었고, 작은 동물에 사족을 못 썼고, 사람을 좋아했다. 어찌나 좋아했는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정도로. 어린 윤현석의 꿈은 히어로, 영웅이었다. 형, 나는 어른 되면 히어로 할래.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이런 거. 그럼 이병곤은 말했다. 웅, 파이팅. 윤현석이 말하는 히어로는 허상이고, 그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세 살 많은 이병곤은 알았지만, 이병곤보다 세 살 어린 윤현석은 몰랐으니까. 이병곤은 그냥 응원을 해준다. 현석이 히어로 되면 멋있겠네. 그러려면 형보다 키 커야 해. 할 수 있어? 아직 이병곤보다 작은 윤현석을 내려다보며 이병곤이 말하면, 윤현석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 형보다 많이 클 거야.
그리고 윤현석은 그 말을 지켰다. 형보다 키가 커지겠다는 말도, 히어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다만 문제가 있다면, 윤현석이 이병곤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은 이병곤도 알고, 윤현석도 알고, 모두가 알았지만, 윤현석이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은 윤현석만 몰랐다. 윤현석은, 제 목숨을 걸고 사람을 지킨 덕분에 그토록 바라던 영웅이 되었다. 영웅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윤현석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신이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을.
영웅의 완성
이병곤과 윤현석은 이병곤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윤현석은 다섯 살일 때 만났다. 이병곤의 옆집으로 이사 온 윤현석네 가족과 이병곤의 가족은 쉽게 친해졌고 덕분에 형 하나 있고 동생 없던 이병곤도 동생이 생겨서 나쁘지 않았다. 남한테 물건 빌려주는 거 싫어하던 이병곤은 윤현석한테는 너그럽게 굴었다. 형아, 나 이거 타도 돼? 하면 이병곤은 쉽게 대답했다. 응, 그래. 그럼 윤현석이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었다. 제대로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형아, 고마워. 하고. 하여간 어릴 때부터 웃기는 잘 웃었다. 눈을 접어가면서, 보조개를 만들어 가면서. 윤현석의 웃는 모습은 이병곤의 기억 속에도 수없이 많이 존재했고, 이병곤의 휴대폰 속 사진첩에도 꽤 존재했고…. 윤현석은 정말로 많이 웃었다. 윤현석을 떠올리면 웃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이병곤이 열여덟, 윤현석이 열다섯일 때 이병곤이 물었다. 현석아, 넌 커서 뭐 할 거냐? 그럼 윤현석은 대답했다. 형, 나는 소방관 할래. 윤현석은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현실 속의 영웅이 되기로 한 모양이다. 시민과 가까운, 불과 싸워가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병곤이 대답했다. 오, 멋진데. 그럼 윤현석은 또 눈 접어가며, 보조개 만들어 가며 쑥스럽게 웃는다. 이건 이병곤의 기억 속에 남은 수많은 윤현석 중 하나.
윤현석은 열다섯이 되었어도 어릴 때처럼 이병곤을 보면 환하게 웃었고, 같이 놀자고 조르기도 했고, 같이 밥 먹으러 가면 입 짧은 이병곤이 남긴 음식을 윤현석이 다 먹어 주기도 했고, 어느덧 이병곤 만큼이나 키가 컸고…. 애들은 빨리 큰다더니, 쟨 진짜 너무 빨리 크는 거 아닌가. 고작 세 살 많은 이병곤은 볼 터질 만큼 음식 밀어 넣은 윤현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나 했다. 잘 먹어서 많이 크는 듯….
어느덧 이병곤이 스물하나, 윤현석이 열여덟이 되었을 때, 윤현석은 말했다. 형, 나 대학 안가려고. 어릴 때부터 윤현석이 한다고 하는 일엔 전부 그래, 파이팅. 할 수 있다. 외치던 이병곤이 처음으로 물었다. 왜?
“빨리 소방관 되려고.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되니까. 대학 갈 돈으로 소방관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데?”
“음, 처음에는 조금 반대했는데, 이제 그렇게 하래.”
“헐…. 그래 뭐, 너가 많이 고민하고 선택한 거겠지.”
“형은 반대 안 해?”
“나는 대학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뭐 그게 꼭 스무 살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너 말대로 하고 싶은 거 확실히 있으면 그거 하면 되지. 고민 많이 했을 거 아냐.”
윤현석이 씩 웃었다. 형밖에 없네. 하고. 아파트 앞 놀이터 그네에 다 큰 남자 애들 둘이 앉아서, 다 꺼져가는 가로등이 웃고 있는 윤현석의 하얀 얼굴을 비춰주는 걸 보면서, 이병곤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이병곤은 괜히 머쓱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뭘, 이런 걸로. 웃고 있는 윤현석 눈빛에서 다른 감정을 엿본 것 같아서, 그런데 그 감정을 지금은 모르는 체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윤현석은 잘 웃었지만, 제 감정을 밖으로 잘 보여주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병곤의 눈치가 윤현석이 감정을 숨기는 속도보다 빨랐다. 이건 타고난 이병곤의 천성이라서, 감정을 읽어내는 건 습관이라서, 눈치 빠른 이병곤은 모른 척을 했다. 이것도 이병곤의 기억 속에 자리한 수많은 윤현석 중 하나.
이병곤이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윤현석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일 년간의 준비 끝에,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이 되었다. 이병곤은 파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 윤현석의 소방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훈련, 시험을 이겨내고 윤현석은 수석으로 졸업을 했다. 입학도 수석으로 했다던데, 진짜 하겠다고 한 건 기어이 해내는구나. 윤현석의 가족들 옆에 앉아서 이병곤은 제복 입고 경례를 하는 윤현석을 눈에 담았다. 하도 어릴 때부터 봐서 언제 봐도 윤현석은 어린 애 같았는데, 오늘은 좀 멋있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열심히 박수를 치고 밖으로 나와서 윤현석 가족들 옆에 끼어서 한 컷, 그리고 윤현석이랑 단둘이 한 컷 찍었다. 제복 입고 가족들이랑 인사하던 윤현석은 옆에 있는 이병곤이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또 환하게 웃었다. 쌍꺼풀진 예쁜 눈을 접으면서, 보조개를 만들면서, 늘 그랬듯이.
이병곤도 웃으면서 꽃다발을 전해줬다. 야, 이거 형이 고른 거다. 그러자 윤현석이 눈 크게 뜨더니 다시 환하게 웃었다. 진짜? 형, 고마워. 하고. 이제 더 이상 이병곤을 형아라고 부르지 않는, 이병곤보다 훨씬 키가 커진 윤현석은 여전히 잘 웃고, 이병곤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이병곤은 또 머쓱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하, 야 형이 이 정도는 하지. 별것도 아닌 걸로 고맙다고 하냐. 윤현석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이제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는 감정을 읽어낸 이병곤은 늘 그랬듯이 모른 체를 했다. 아직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윤현석이 3년 차 소방관이 되고, 이병곤이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때, 작곡과를 간 이병곤이 졸업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임에도 윤현석의 오프 날이면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윤현석은 여전히 잘 먹었다. 아니, 어릴 때보다 더 잘 먹는 것 같기도…. 삼겹살에 쌈 야무지게 싸서 크게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키랑 덩치만 컸지, 어릴 때랑 다를 게 없어서 이병곤은 웃었다. 익숙함은 나쁘지 않다. 평온함을 증명해주기도 하니까.
“일은 어때.”
“음, 할만하지, 이제는. 나 이제 막내 아니고 선배야.”
“오, 드디어? 와, 많이 컸네. 윤현석.”
“나 이제 삼 년 차잖아. 시간 되게 빠르지.”
“그니까, 네가 벌써 소방관 된 지 삼 년이나 됐네. 난 이제 대학 졸업하고….”
“대학 다니는 건 어땠어? 형 죽으려고 하더만.”
“아 진짜, 개빡세…. 그래도 재미는 있더라.”
이병곤이 윤현석한테 대학 시절 만났던 기상천외한 인간들 이야기를 들려주면 윤현석은 늘 그랬듯이 눈을 접어가면서, 보조개를 만들어 가면서 웃었다. 윤현석이 잘 웃는 게 보기 좋아서 이병곤은 괜히 더 말을 많이 했다. 이건 별것도 아닌 일이니까. 이병곤이 잘하는 일이니까. 술을 못하기도 하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삼겹살에 콜라를 마시면서도 둘은 즐거웠다. 여전히, 어릴 때처럼, 익숙하게.
그리고, 윤현석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이병곤의 기억 속 어떤 날처럼 둘은 아파트 앞 그네에 앉아 다 꺼져가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대화를 나눴다. 여전히 별것도 아닌 시시한 대화들. 그래도 즐거웠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시원하고, 아이스크림도 맛있고, 평소와 같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일순 말이 없어진 순간. 이병곤은 직감하는 것이다. 어, 윤현석이 어떤 말을 할 것 같아, 하고. 이병곤의 예상대로 윤현석은 입을 열었다. 형, 있잖아.
“어.”
“형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고백할 거야?”
어라, 이건 예상외의 말인데. 이병곤이 말했다. 갑자기? 응, 그냥 궁금해서.
“사람 따라 다르지…. 받아줄 것 같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고…. 근데 난 받아보기만 해서 모르겠는데?”
마지막 말은 웃기라고 한 말인데 윤현석은 안 웃었다. 그냥, 이병곤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평소처럼 웃었다. 그렇구나, 알겠어. 그리고 이병곤은 깨닫는다. 윤현석도 알았구나, 이병곤이 윤현석 마음을 눈치챘다는 걸, 고백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윤현석도 눈치는 빨랐으니까.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기를 한참, 이제 들어가자. 하고 윤현석이 일어나며 말했다. 이병곤도 순순히 응, 하고 답하며 일어났다. 놀이터를 벗어나 평소처럼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형, 잘 자. 어, 너도. 이병곤과 윤현석은 여전히 옆집에 사니까. 이병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오늘의 대화를 곱씹는다. 윤현석은 언제부터인가 이병곤을 좋아했고, 그 마음은 식을 줄을 몰랐고, 이병곤은 윤현석의 마음을 모른 체를 했고, 윤현석은 이병곤이 제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음을 알았고, 고백을 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았고….
이병곤은 생각한다. 윤현석은 왜 이병곤을 좋아하게 됐을까. 그럼 이병곤은 윤현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첫 번째 물음에는 답을 낼 수 없었다. 이병곤은 윤현석이 아니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쩌다 자신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두 번째. 이병곤은 윤현석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병곤에게 윤현석은… 여전히 동생이었다. 이병곤이 여덟 살, 윤현석이 다섯 살일 때 처음 만난, 잘 웃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하고, 한때 영웅이 되고 싶다고 했고, 커서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했고, 진짜 소방관이 됐고, 여전히 잘 먹고, 이제는 이병곤보다 키가 크고…. 윤현석을 보며 이병곤은 성애적인 감정을 느꼈는가. 이병곤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현석을 아꼈고, 좋아했지만, 윤현석의 감정과 같은 것 같진 않았다. 친한 형과 동생이라는 관계를 두고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아서, 익숙함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이병곤은 윤현석의 사랑을 모른 체를 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결국에는 윤현석이 알게 될 때까지. 윤현석은 이병곤의 마음을 눈치챘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니, 아마 앞으로도 이병곤과 윤현석의 관계는 평소와 같을 것이다. 종종 만나 밥을 먹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늘 그랬듯이, 익숙하게. 그걸로 된 걸까. 이병곤은 익숙함이 좋았기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자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병곤과 윤현석은 똑같았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가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 날의 대화는 잊은 것처럼, 서로 모른 체를 하면서. 이병곤은 윤현석과의 익숙함이 좋았으나, 한 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병곤의 졸업식 날에는 눈이 왔다. 하필이면 당직이라며 이병곤의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윤현석은 엄청나게 아쉬워했다. 다음날 만나면 되지. 그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형. 윤현석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다음을 약속하고, 가족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동기들, 가족들과 사진을 원 없이 찍고, 학사모도 던져보고. 평범한 졸업식이었다. 윤현석이 없다는 것이, 이병곤도 아쉬웠다.
근무 잘하는 중? 19:48
윤현석은 바쁜지 답장이 없다.
그리고, 다음 날. 이병곤과 윤현석이 만나기로 한 날.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이병곤은 집을 나선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패인 자국이 남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쥔 채로. 이병곤은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온 얼굴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고인의 이름에 익숙한 이름, 윤현석 세 글자가 쓰여있다.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나이가, 이병곤보다 세 살 어리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이병곤의 기억 속에 수없이 많은 윤현석의 웃는 얼굴이 작은 네모 칸 안에 갇혀있는 채로 이병곤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병곤은 결국 고개를 떨군다. 이 순간이, 저 웃음마저도 이병곤의 기억 속에 자리하게 될 것임을 알아서.
윤현석은, 영웅이 되었다. 뉴스에서도 윤현석의 죽음을 다루며 애도를 표하고, 윤현석의 이야기가 기사화 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토록 바라던 영웅이라는 칭호는 윤현석의 죽음 이후에야, 윤현석은 영원히 알지 못할 형태로 얻게 되었다. 이제야 이병곤은 후회한다. 하지 말라고 할 걸, 영웅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러지 말라고 할걸, 대학을 가라고 얘기할걸…. 그럼 네가 조금은 더 살지 않았을까. 이병곤보다 세 살이 어렸던 윤현석은, 앞으로 이병곤보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이 어려질 테니까. 이병곤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윤현석의 시간은 영원히 멈출 테니까.
이병곤의 후회와 윤현석의 말간 웃음과 놀이터에 앉아 나누었던 대화들이 이리저리 섞인다. 이병곤에게 익숙했던 것들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빼앗기게 되었다. 소중함을 알기에 지키고 싶었는데, 지킬 수 없게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아서 이병곤은 울었다. 장례식장의 수많은 사람처럼. 윤현석의 가족들은 이병곤을 붙잡고 울었다. 우리 현석이, 우리 현석이 어떡하니…. 이병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윤현석의 어머니를 마주 안고 이병곤도 울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윤현석은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소방사였던 윤현석은 한 계급 특진과 함께 소방교 윤현석이라는 이름이 적힌 비석과 함께였다. 여전히 세상은 윤현석을 영웅이라 칭한다. 건물 잔해에 깔리면서도 요구조자를 껴안아 살렸다고, 진정한 영웅이라고…. 윤현석의 죽음으로 비로소 얻게 된 영웅이라는 칭호는, 윤현석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그리고, 윤현석이 미리 써놓은 유서는 이병곤에게도 전달되었다. 윤현석이 이병곤의 졸업을 기념하며 주문해 두었다던, 이제는 시들어버린 꽃다발과 함께.
형, 나야 현석이.
영원히 형이 이 편지를 읽을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이 편지를 형이 읽고 있다면 나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거겠지?
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형 있잖아. 형 물건 빌려주는 거 싫어하는데도 나한텐 잘 빌려줬잖아. 그것도 너무 고마웠고, 맨날 나 놀아주는 것도 고마웠고, 나 소방관 한다고 했을 때 형은 바로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한 것도 고마웠고…. 나는 형한테 고마운 것밖에 없어.
그러니까 형, 나는 형에 대해선 좋은 기억밖에 없으니까.
형도 좋은 기억만 남겨.
형, 고마워.
현석이가.
윤현석은 유서마저도 윤현석다웠다. 윤현석은 이병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편지 속 윤현석의 글씨체로 꾹꾹 눌러 쓴 내용도 온통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익숙한 필체, 익숙한 감사 인사. 온통 익숙한 것들 뿐임에도, 이게 윤현석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것만큼은 익숙하질 않아서 이병곤은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제야 아는 것이다.
현석아, 나는 너를 잃는 게 두려워서 도망쳤던 거야. 우리의 관계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가 너를 잃게 될까 봐, 익숙함 뒤에 숨었던 거야. 그리고 아마, 윤현석은 이런 이병곤의 감정마저 알았으리라. 그렇기에, 이병곤을 향한 편지에 익숙함을 가득 담아 넣은 것이겠지. 이병곤은 이제 준비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윤현석의 부재가 익숙해지도록, 윤현석의 말대로 이병곤의 기억 속에 윤현석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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