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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님 드림 | 상황제시

평범한 크리스마스
추천곡 : DEPT – AUGUST RUSH

창문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햇살은 부스스한 짧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과 긴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함께 끌어안고 자는 것을 몰래 커튼 뒤로 쳐다보는 듯 하다. 한동안 곤히 자던 갈색머리 여성은 뒤척이다 잠결에 상대방을 더욱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상대가 깨버렸긴하지만. A는 B를 안고 B의 짧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제 손에서 흘러내리
는 투박한 머리칼을 A는 사랑했다. 커튼을 비집고 들어와 시호에게 닿는 햇살에 질투라도 난 것인지, B를 더욱 감싸 안았고 조심스레 B의 이마에 입술을 닿았다 떼었다. 손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마에 닿은 온기 때문이었을까, B의 눈꺼풀이 느리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B, 잘 잤어?”
“A 상... .”
항시 냥량하거나 무표정으로 생활하는 B의 모습을 아는 이들이 만약 지금, 눈가가 느슨하게 풀어지고 눈꼬리가 쳐져있으며, 입꼬리조차 느슨하게 풀린 B의 얼굴을 본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냐, B가 어디다 납치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에 의심을 할 터였다. B, 아니 그러니까- 한 때는 C였던 사람. 영화에서 나오는 사람인 것 마냥 그녀의 이름은 두 개였다. 하지만 C는 이름은 지금 B와 함께 사는 A와 D, 그리고 ‘E’과 아마도, ‘F’만이 기억하고 있을 이름이었다. ’C‘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은 현재 다시 되찾은 ’B‘의 이름 아래 거의 없어졌으며 그녀는 C가 아닌 B로 살아가고 있다. B는 A의 눈빛에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품에 다시 파고들었다. 정확히는 A의 심장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왼쪽 가슴쪽으로. A와 B는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다만, A는 ’B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 거였고, B는 그저 ’A의 심장이 나로 인해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면 내가 사랑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라는 이유에서였다. A는 그런 B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짧은 머리칼을 다시금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중, 또 다시 둘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A와 B가 다시 일어난 것은 오후 3시 경즈음이었고, 다행히 크리스마스였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D은 지금쯤이면 꼬맹이들-아니, 지금쯤이면 고등학생이 되었을 녀석들- 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시고 계실 것이었고, 다행히 A의 직장 또한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쉬었으니, 둘 모두 꽤나 오랜만에 즐기는 휴일이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말이다. A야 B가 원하는대로 하는 쪽이었고, B는 의외로 ’인도어파‘였기에 주말에도 이렇게 늦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미적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A는 B를 향해 이제는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냐고 B에게 말했다. A의 말에 B는 더 미적대고 싶은 걸 참고 부스스한 머리칼을 하며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크리스마스인데 더 자면 안 될까, A 상.”
“그러다가 밤에 아예 못 자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B.”
“... ... 알겠어.”
’온 몸‘을 침대 밖으로 빼낸 B는 마치 엄마를 기다리듯 마이가 침대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A는 그런 B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침대에서 나와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A가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B는 슬그머니 다가와 A의 뒤에서 백허그를 했다. 구태여 떼어놓지 않은 채 느리게 방 밖을 나가자, B는 또다시 수동적으로 무언갈 요구하기 시작했다.

“A 상.”

“응?”

“우리 텔레비전 보면 안 될까.”
만약 A가 B를 안고 있었다면 분명 B는 A를 올려다보며 특유의 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A는 그런 B가 상상되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그러자고 했다. 대신 백허그는 일단 풀고, 라고 덧붙였다. B는 그 말을 듣고 백허그를 풀었고 둘은 자연스레 한 쪽의 무릎을 베고 소파에 앉았다. 물론, A가 무릎을 대주었고, B가 그 위에 살포시 머리를 기댄 터였다. A는 텔레비전을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고 마침 크리스마스인지라 ’러브 액츄얼리‘ 영화를 하고 있었고, B는 슬픈 영화보다는 그걸 보자고 했다. A로서는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고 B가 슬픈 영화를 통 보지 못 하는 터라 그걸 안 볼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아직 시작도 안 한 영화였으니 처음부터 볼 수 있어 더 좋았고. A는 제 무릎에 기댄 B의 머리칼을 슬슬 쓸어내렸다. 그러다 문득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슬쩍 B에게 말을 물었다.

“N.”
“응?”
“뭐 먹고싶은 거 없어?”
“으음, ...나 그거. 땅콩버터잼하고 블루베리 잼 바른 토스트... . ”
“또 그거야? B는 정말 그거 좋아하는 구나.”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
“솔직히 나는 이거 영화 봤... .”
“누구랑?”
말이 다 채 끝나기도 전에 불쑥 들이밀어진 B의 대답에 잠시 A는 입을 다물었다. 그야 B를 만나기 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애인과 본 영화였다. 그냥 그 시절 겨울이 떠올려지는 영화라 그나마 기억하고 있었을 뿐. B가 계속 흘끔거리며 대답을 재촉하자 A는 정말 그럴듯한 대답을 말했다.

“친구랑 예전에 봤어. 걔가 워낙 이 영화 팬이라.”
“...진짜?”
“응.”
다소 뻔뻔스럽게 대답했으나, N가 제 사생활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B가 제가 연애 한 번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진 않지만... . A는 B가 더 캐묻기 전에 슬쩍 몸을 빼고 B의 머리에 쿠션을 대주고 주방으로 빠져나왔다. B가 워낙 토스트를 좋아하는지라, 집에는 토스트 빵은 항시 구비되어 있었고, 잼들도 마찬가지였다. A는 빵들을 꺼내 토스트기에 빵을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토스트 냄새에 B가 어느새 일어나 앉은 걸 보고는 A가 픽 웃었다. A는 접시를 꺼내고 막 익은 토스트에 잼들을 발랐다. 솔직히 제 몫까지 챙기고 싶진 않았으나 B가 걱정할 것이 눈에 선해 제 것까지 챙기고 거실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두었다. 타이밍 좋게 시작한 영화와 함께 B는 제 몫의 토스트를 해치웠고 A는 제가 먹던 부분을 제외하고, 잘라 B에게 넘겨주었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말소리, 흘러나오는 노래, B가 토스트를 먹는 소리까지 A는 잠시간 눈을 감고 그 고요와도 같을 순간을 즐겼다. 각자의 손을 포개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말이 없던 둘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서로에게 눈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둘은 이내 환하게 웃었고, 서로의 이마에 각자의 이마를 맞대고 작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늦은 인사를 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하지 못 할, 그런 평범한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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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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