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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님 드림 | 상황제시

언제부터인가, 당신을

추천곡 : 존 박 – 이상한 사람

1975년 12월, 때는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그리고 A가 처음으로 호그와트에 남은 첫 연휴이기도 했다. 본디 A가 크리스마스 때 호그와트에 남는다고 한다면 B이 호들갑을 빙자한 과보호를 말하며 당장 호그와트에 나타났을 법도 한데, A 본인이 어떻게든 B를 설득을 한 건지 아니면 그럴듯하게 속여넘긴 건지 몰라도 조용히 호그와트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C은 거의 그랬듯 이번에도 호그와트에서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더불어 올해 반장이 되면서 늘어난 책임감과 줄어든 공부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려면 연휴에라도 다음 학기 공부를 미리미리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친구인 D이 본가로 가버렸단 점이랄까. 그 외 호그와트에 남아있는 친구들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C에게 D은 정말 특별한 친구였어서, 더욱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D과 함께 한 오후의 티타임은 정말 포근하고 따스했었는데, 그걸 못 한다니 마냥 아쉬운 것이다. 물론 D은 집에 가서도 가끔 부엉이를 통해 간식과 편지를 보낼 테니 너무 개의치 말라고 상냥히 말해주었지만-... . D이 눈치를 챌 만큼 제가 티를 낸 건가 싶어 한 편으로는 아주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C는 A가 호그와트에 머무른다는 소식을 거진 그날 알았으나 후배님이 말해주기 전까지 기다렸다. A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결과, A는 자신에 대한 일은 C에게 직접 말하는 걸 그래도 흡족해하였기 때문에 기다리곤 했다. 어릴적부터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길 바랐던 것은 익숙했으니, 남의 말을 기다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고나 할까... . 저녁 시간, 후플푸프 테이블에 슬그머니 앉는 초록색 망토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A이었다. A는 C를 바라보면서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은 후 말했다.

“C.”

“응. 왜 후배님?”

“이번 연휴 때 제가 여기 머무른다는 것, 들으셨죠.”

“응, 네가 말해주기 전까지 기다렸어.”

C의 말에 A는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턱을 괴지 않은 다른 손으로 테이블을 톡, 톡 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이 말이다.

“C.”

“응?”

저녁 시간이 방해되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C는 티 하나 내지 않고 음식 먹기와 대화를 적절하게 조절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C의 친구가 없던데, 본가에 갔나요?”

“...응, 왜?”

“흐응... 그냥요. C가 심심하겠구나, 싶어서. C, 그러면.”

“응, 그러면.”

“우리, 스터디 할까요? 저도 그렇고, C도 이제 고학년이니 예습을 안 하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니까.”

C는 이미 제가 계획해 놓은 것, 그러니까 공부를 같이하자는 A의 제안에 눈을 멀뚱히 떴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A는 그런 C를 보면서 입꼬리를 다시 끌어올리고는 조심스레 C의 머리칼을 톡톡, 두드리며 살짝 흩트려 놓았다. 그렇게 스터디가 시작된 지 대략 3일째 되는 날, A는 하던 공부를 멈추고 C를 바라보았다. C의 뒤통수를 슬그머니 쓰다듬다가 살짝 누르면 꼭 책에 폭 파묻힐 거 같이, 아주 탐독하겠다는 것처럼, 책을 들여다보는 C를 말이다. A는 저도 모르게 그 장면을 보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고 이내 제가 한 생각에 그답지 않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귀엽다.’

귀엽다, 라고? 내가? C를?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려던 찰나, C는 아무 생각 없이 제 머리칼을 한 손으로 귀 뒤로 넘겼다. 은색인 듯 회색인 듯 묘한 경계선을 가진 머리칼 색, 그에 비해 제 미들네임처럼 별빛처럼 찬란히도 빛나는 금색 눈동자. 그와 더불어 따라오는 다정한 손길, 따스한 미소, 조곤조곤한 목소리... . 늘 당연하다 생각하리만치 익숙했던 모든 것이 그 평범한 손길 하나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심장은 널뛰기 시작했고 옅은 시냇물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깊은 우물가의 물만큼 꽤 깊어진 뒤라는 것을 깨달은 A는 아주 짧게 탄식했다. 똑똑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왜 이것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C, 당신을 눈에 담고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그토록 당연해졌기에 그랬을까, 애당초, A 자신에게 ‘당연한 것’이란 ‘블랙 가’밖에 없었는데. 땅으로 치자면 아주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는데도, 그 척박한 땅을 당당히 비집고, 한 그루의 가막살나무가 자란 것을 저, A는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심지어 그것이 막 새잎을 돋기 시작한 때에서야 말이다. 제가 이렇게 곱씹는 동안에도 단 하나도 눈 깜짝하지 않고 그저 공부에만 집중하는 당신이 얄미워 골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왜’ 당신인지 생각하니까, 시간이 잘 흘러갔다. A 인생에서의 가장 빠른 시간이었고 또 가장 느린 시간이었다. 왜 C여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에는 그저, ‘C’니까, 라는 답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A는 안다, 사랑에는 명백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제 형, E가 저를 사랑하지 않고 제 친구들을 사랑하는 이유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성 간의 사랑은 원래 그렇다. 괜히 ‘수수께끼’를 풀려고 ‘검은 것과 같은 밤’이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가장 어두운 1등성은 그저 황혼의 시각에도 떠 있는 것이 당연한데 구태여 그 이유를 찾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날 이후로 A의 시선은 종종 C를 쫓았다. A가 C를 볼 수 있는 시각, 즉 연회장에 있는 시각이라든지, 아니면 수업이 겹치는 복도에서라든지.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자 그저 물 흐르듯 절로 시선이 C에게로 향했다. 그가 얼마나 C만을 바라봤는지 아주 둔하다고 소문난 친구 녀석까지 어렴풋하게 눈치채버렸다. 그러니까, 정말 슬리데린 기숙사 아이들은 다 아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끔 복도에서 둘이 스치듯 지나가면 괜스레 손을 한 번 꽉 쥐었다가 놓기도 하고, 점심때 함께 쉬러 가자고 하며 은근슬쩍 손깍지를 낀 적도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줄을 잘 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더불어 춥지 않냐며 괜히 끌어안아 보기도 했다. 물론 그럴수록 암암리에 A이 C을 좋아하는 것 같다, 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또, 만약에 C가 누군가에게 친절히 대하면 괜히 질투가 나는지 그 상대를 빤히 쳐다보았고, 암암리에 누가 언제 C에게 고백할 예정이라더라, 하면 그날 콕 집어 C와 호그스미드에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러 갔다. 그 외 등등 ‘질투’로 보이는 행동으로 C와 남자아이들을 격리하듯 떨어뜨려 놓은 지도 한참, 이제는 C의 곁으로 남자아이들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는 경우가 잦아졌지만, C는 의구심을 품다가도 제 옆에 서 있는 A를 보며 고개만 애매하게 갸웃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A는 그런 C를 보고 그저 싱긋 웃으며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볼 뿐이었다. A가 가진 감정의 크기를 안다면 아마 그런 질투들은 정말 아주 귀여운 수준이라고들 하겠다. 무엇보다도 A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제가 유일하게 욕심이 나기 시작한 C만큼은 죽어도 뺏기지 않을 예정이었다.

제 따스한 황혼이 부디 가장 어두운 1등성인 저를 계속 따스하게 품어주길 바라면서, 언젠가 황혼과 별이 같은 온도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A는 C와 발을 맞춰 걸어갔다. 과연 그 둘의 발걸음이 언제까지 함께일 수 있을지 미지수인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 점점 더 깨닫는 감정의 이름은 분명히 ‘사랑’이라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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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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