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현힐데] 사랑의 발명3. 추가

연애 할 생각? 없었다!

힐데베르트 탈레브는 맹세코 예현과의 연애를 생각하지 않았다.

근래들어 아끼던 사람들이 너무 벅차기 사랑스러워서 무슨 일인가 싶긴 했다. 사랑스럽고, 지켜주고싶고, 먹여주고싶었다.

나자신보다 그 사람들이 더 좋았다.

원래도 제 몸보다 그들이 더 안타깝고, 지켜야 할 것 같긴 했다. 몸이 그들을 지키려 했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더 소중해졌다. 이게 맞나? 싶을 만큼. 거의 그들을 제가 낳은 것 같았다!

“으아악!”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를 질렀지만 예현은 당황하지 않았고, 힐데는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실거라 생각했지만요….”

“연애, 연, 연애?”

“싫으세요?”

몇몇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서 내가 낳은 것 같다고 생각이 들던 찰나, 대자인 예현에게 드는 감정이 한 층 더 심각해졌다. 내가 낳은 사람이 아닌데 내 대자야. 자식같은 사람. 그래서 이 이상한 기분과 감정에 대해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 온 것인데….

“싫지 않으실 거예요.”

기묘한 확신을 담은 목소리가 명령처럼 흘렀다.

예현은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는 타입이었다. 옳은 방법, 옳은 길, 옳은 선택. 그것에 대한 확신. 그 확신을 말 할 때 저렇게 말하곤 했다. 힐데는 머리를 감싸쥐고 어? 어? 하는 소리를 내며 혼란스러워 했다. 이 감정이 연애감정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연애감정을 느꼈던건가? 아닌가? 예현만 다르게 느낀건가?

“모르, 모르겠어.”

“당신이 희대의 난봉꾼이라고 하는게 아니예요.”

“… ….”

“그냥 지금, 당신이 저를 사랑하고 있는거라고 말씀드리는거예요.”

“내가…? 예현을?”

“그러니 가볍게 연애부터 시작 해 볼까요?”

***

“그래서 사귀게 되었어.”

예현은 먼저 윤과 아미에게 말했다.

“기어이 네가 꿰차는군.”

“…근데 괜찮겠어?”

“… ….”

예현은 아미의 말에 답할수 없었다.

“힐데가 느끼는 감정은 조작된거잖아. 지금도 완전히, 나를, 자기가 나를 낳은 것 처럼 본다고…?”

환장하겠다는 양 말하는 아미가 손을 퍼덕거렸다. 말이 돼? 힐데가 우리를 되게, 그렇고 그렇게 봐. 그런데 연애를 시작한다고? 괜찮겠어?

그거, 거짓말이잖아.

“…상담을, 하러 온 것 같긴 했어.”

“내게 오는 편이 좋았을텐데.”

윤이 삐죽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었다. 예현은 윤을 째려봤다. 윤의 이마 한가운데가 조금 빨갰다. 봐준다. 흥.

“그럼 그참에 많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을텐데.”

예현은 가운데 손가락을 엄지에 걸어 윤의 이마에 튕겼다. 딱! 소리가 났지만 윤은 이마를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예현도 윤도 알고있었다. 사실은 윤이 힐데에게 아무런 실험도, 채취도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실험당한 기억때문에 PTSD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더 할 만큼 윤은 힐데를 아무것도 아닌 취급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힐데를 실험대에 올리겠다는 소리를 줄였다. 이따금 장난 칠 적에야 그런 말을 내뱉는 모양이지만, 실제로 실험실을 예약하는 일은 없었다.

“내 노고를 그놈이 알아야 해.”

“그러니까 내가 나아.”

“누구라도 낫지 않아.”

윤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 감정은 거짓이야. 호르몬의 농간이고, 오래가지 못 할거다.”

“… ….”

“호르몬은, 특히 사랑에 관련한건 30개월을 채 가지 않아.”

알고있잖아.

윤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현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다른 사람들한테 휘둘리는 것 보다는 나을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설명을 했어야지. 네가 이런 상태라고.”

“… ….”

“간만에 비겁한 선택을 했군.”

“…비겁해?”

“그럼 정당하겠냐?”

윤은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그래도 네 선택이니 네 책임이지. 잘 해 봐라.”

최악의 결말이 아니길 빌어줄게.

윤은 윤이었다.

아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예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빠른 시일 내에 말하는게 좋을것같아.”

예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그으래서 연애를 하게 되셨겠다~?”

어디서 샌걸까?

힐데가 예현의 앞에서 유난히 뚝딱거릴 때?

예현, 하고 부를 때 삑사리가 났을 때?

예현을 볼 때마다 한 걸음 떨어져서 귀와 목덜미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을 때?

예현이 손끝을 잡으려 할 때, 힐데가 눈을 질끈 감고 이마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뻣뻣하게 굳었을 때?

힐데는 포기했고 예현은 웃었다.

“티가 난다고, 티가~”

릭은 힐데를 놀리는데에 진심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눈매 어딘가에 불온함이 맴돌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힐데가 물었을 때, 릭은 별 일 없어, 라고 대답했지만 힐데는 아닌 것 같은데, 라며 뱁새눈을 떴다.

남 일에는 이렇게 눈치 빠를수가 없다. 제 일에는 너무 바보같이 무뎌서 문제지. 릭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놈은 이런 방면에선 쓸데가 없다. 제가 지금 무엇에 취해있는지도 모르는 어린양을 바라보는 릭의 눈에 착잡함이 깃들었다. 저놈 저거 아무리봐도 속고 있는건데….

“모르겠다. 예쁜 사랑 해라.”

“릭!”

저 멀리서 릭과 힐데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본 예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대부는 제 앞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블랙배저의 막내같은 모습은 어느순간 자취를 감출때가 많았다. 그런데 저렇게 선임들 앞에서는 어린 양처럼 군다. 어쩔줄 모르고, 금방이라도 투닥거릴 것 처럼 굴고, 입술을 조금 삐죽거리고, 콧김을 흥, 내뱉는둥.

귀여워.

제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해줬으면 좋겠는데 영 그러질 않는다. 최근에는 뚝딱거리고 있고 거리감도 생겼다. 붉어지는 걸 보면 그냥 단순히 부끄러움의 문제인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손끝 하나 만지기가 어려운건 서운했다.

“힐데.”

그런거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게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라는 티키타카를 나누던 두 사람이 자세를 고쳤다. 릭은 소태 씹은 얼굴이 됐고, 힐데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황금을 깎아놓은 것 같은 동그란 눈동자가 조명에 빛을받아 굴러다니는 모습은 퍽 아름다웠다.

“릭.”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 ….”

예현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 아무말도 안했는데.”

“얼굴에서 티납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두분 대화 나누십시오.”

“릭?!”

버려진 힐데가 가녀린 표정을 지었다.

“힐데.”

목막히는 소리가 났다. 힐데의 목이 뻣뻣하게 굳은 채 돌아갔다.

눈을거의 감은 채 고개를 예현을 향해 돌리는데 기름칠 안 된 기계가 돌아가듯 뻣뻣했다.

“에, 예?”

“다른 사람한테만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건 반칙이에요.”

“잘 못, 들었습니다?”

그놈의 약이 문제다. 왜 다른 사람까지 사랑한단 말인가. 호르몬 조절제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되는 그런 마법같은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를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이 과학도들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름에 정신이 팔려서 미친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까지 생각한 예현은 이마를 짚었다.

“어, 예현, 어디 아파?”

손을 잡아오는 온기, 머리카락이 들춰지는 이마와, 닿아오는 따뜻하고 매끈한 이마.

온도는 서로 비슷했다. 힐데의 체온은 그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따끈따끈해보이는 피부색과는 다르게 어느때는 조금 낮아서 놀랄정도인데 지금은 비슷하게 미지근했다. 조금전 열을 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소한 면 마저 질투가 났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아파하는 것 같자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는 힐데를 보며, 예현은 속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이마를 뗀 후, 드러난 힐데의 이마에 얕게 입맞췄다.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만큼 미약한 입맞춤이었다. 숨결처럼 스쳐지나간 입술에 힐데가 뻣뻣하게 굳었다.

“이제야 닿아주시네요.”

벌겋게 열오른 이마와 뺨이, 눈앞에 있었다.

“기다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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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고요한 카피바라

    "싫지 않으실 거예요." 크아악 질투하는 예현 크아아악 "이제야 닿아주시네요." 크아아아악!!!!! 장기연재 소취합니다🙏🙏222

  • 대단한 코알라

    장기연재 소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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