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T의 유령

아마히코의 학창 시절 / 조각글

나의 고교 시절은 유령처럼 투명하고 조용했다. 이런 비유를 들으면 세계를 분명한 분류로 구획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들이 확신하듯 되묻곤 했다. “그러니까 창가에 앉아 조례부터 종례까지 입을 다무는 것이 일과인 아웃사이더 귀가부였다는 말씀이시지요?” 빙빙 에두르든 단정적으로 비웃든 내용은 전부 동일했다. 따라서 내가 그들에게 내미는 답도 같았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물론 목끝까지 잠근 교복을 걸치던 시기에는 나도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숨을 쉰다거나 심장이 뛴다는 것 따위는 생존의 증거로 턱없이 모자랐기에. 고교 시절의 나는 유령이었고 아주 가끔 사람이 되었다.

여기까지 들은 질문자라면 대개는 입을 비죽거리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손을 내저었다. ‘뭐야, 내가 맞잖아’ 라는 듯이. 그럴 때는 나도 다시 정해진 답을 건넸다. “절반은 다른 뜻이라서요.”

“다른 뜻이라니요?”

“그 시절 자체가 지금의 제게 유령이 되어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투명하고 조용하고 산 자에게 손대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 열여섯부터 열여덟까지의 삼 년, 관에 들어가 삶과 유리되어 있던 삼 년이 이제 와 나에게는 그런 의미가 되었다고. 지난 계절을 스쳐 간 유령과 같이 아득해졌다고.

질문자의 반응은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재미없군요.”라고 투덜거리며 다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다른 쪽은 못내 궁금하여 몸이 단 기색으로 캐물었다. “그래도 하나쯤은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요?” 내가 과장되게 신비주의를 고수한다고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이 뻔했다. 구미를 맞추어 주기는 쉬웠지만 그들의 무례한 속단을 듣고 나면 내 기분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하곤 했기에, 태반은 못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요…….”

“빼지 말고 어서 말해 봐요.”

“동급생 중에 T군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T군은 명실상부한 학급의 인기인이었다. 내로라 하는 명문가의 아들이자 손에 꼽는 우등생이기도 한 그는 교사의 아낌을 받으며 주변과 사교적으로 어울렸고, 뽐내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보기 좋은 정도로 가문에 자부심을 가졌다. 실로 이상적인 인간. 샛길 따위에는 눈도 돌릴 줄 모르는, 성실하고 결백한 소년. 부모에게 그는 자랑이자 보배, 학교를 졸업한 손윗형제에게는 그 빛나는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착한 동생이었다.

나는 유령으로서 학창 시절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갈구하며 열렬히 삼켜 댔다.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당시 나의 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양가적이고 모순이 득실거렸다. 나는 그를 열렬히 동경하면서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미워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닿고 싶었던 동시에 그와 가능한 가장 멀어지고 싶었다. 애타게 그를 갈구하다가도 내가 그를 닮아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진저리가 났다.

그와 나는 고교 시절 내내 서로를 짝사랑했고 사랑하는 만큼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와 다투어 이기는 순간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반대로 내 쪽이 꺾여 버리는 날에는 나의 관이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그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흥미진진하게 듣던 질문자들이 꼭 던지는 말이 있었다. “T군도 당신이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알았나요?”. 혹은 “당신은 T군을 질투했군요?”.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T군도 나를 사랑했어요. 갈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내가 그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리고 단언하건대 T군이 되는 상상을 수없이 했을지언정 그를 질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바라는 대로 서로가 이어지기까지는 요원했으나 그럼에도 T군과 나는 매일 매시간을 함께했다. 내가 단추를 채우는 것을 잊기라도 한 날에는 T군이 손을 뻗어 내 옷깃을 여미고 교복을 잠가 주었고, T군이 바쁜 아버지를 만나는 날이면 내가 그의 매무새와 말씨를 점검해 주었다. 우리는 자주 서로를 바라보고 시선으로 탐했는데, 비는 시간에만 행하던 것이 열여덟 들어서는 몹시 잦아져 수업시간까지 침범했다.

“몸을 탐한 적은 없고요?” 탐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발음하면 간혹 짓궂은 질문이 날아들기도 했다. “T군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열여덟 겨울, 졸업식까지 반 계절 가량을 남겨 둔 시기에 이변은 찾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였는지는 너무 오래 전에 잊었다. 나이든 교사였던가, 집에 새로 들어온 어린 고용인이었던가, 학원의 젊은 선생이었던가, 동급생이었던가.

네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 너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야.

슬그머니 나와 손을 잡고는 몸을 붙여 오며 비밀스럽게 속살거리던 목소리. 뒤통수를 감싸 오는 부드러운 힘.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은근한 움직임. 잠긴 교복 단추를 하나둘 끌러내는 손. 뜨겁게 파고드는 입술.

나는 무엇도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밀어내지 못한 모든 것이 나를 생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관 속의 유령이 아니라 마땅한 생명을 부여 받은 사람으로서 존재했다. 투명해지려야 투명해질 수 없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시끄러운.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을 안고 사람에게 안기자 비로소 삶이 내 몸을 충동질했다. 충동이 나를 관 밖으로 완전히 끄집어 냈다.

“그 순간 T군을 죽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질문자가 술잔을 떨어뜨린다.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그는 허세 섞인 폭소로 되묻는다.

“농담이 심하시네요. 진짜 죽이신 것도 아닐 거면서.”

“아뇨. 죽였습니다. 졸업식 날 목을 조르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부수어서, 그 아이의 교복과 함께 커다란 나무 아래 묻어서요.”

선득한 정적. 언제나처럼. 그러나 이번의 질문자는 유난히 집요한 모양인지.

“정말로 죽였어요?”

답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짧다.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T군은 그날 죽지 않은 모양이에요. 종종 나를 찾아와서는 바라보고 간단 말이죠. 깨끗하게 죽어 버리면 속이 후련할 텐데.”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유령은 투명하고 조용하고 아득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T군도 죽지 않을 것이다. 고교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다 꾸며낸 이야기인 거 압니다.”

이번의 질문자도 마지막 한 마디만은 앞선 이들과 똑같았다. 나는 가만히 웃었다.

“그럴까요? 아마히코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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