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금랑] #금랑님_울지마세요! (20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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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부터 금랑의 운은 최악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다이렉트 메시지로 금랑에게 온 악플과 조롱은 늘상 있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아침부터 실시간 검색어를 달리고 있는 단델의 열애설은 이야기가 다르다. 원체 유명인이고 가라르 사람들은 단델이라하면 그의 식단은 물론이오, 오늘 재채기를 몇 번 했는지도 관심이 많으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지만, 최근 배틀타워에 틀어박히고부턴 밖으로 나오는 일이 줄어 그에 대한 기사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무려 열애설이라니. 가라르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 이슈임이 틀림없다. 10년, 무려 10년이나 라이벌 길을 달려온 금랑은 짝사랑 경력만도 10년을 내리 달리고 있다. 상대야 말할 것도 없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로 가라르 사람들을 농락하다니 재주가 좋네. 그렇지만 그 녀석 최근 너무 바빠서 나님이랑도 못 만나고 있다고? 그런데 열애? 그런 게 이 금랑님 눈을 피해서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상대는 10년을 내리 짝사랑하는 상대. 그러니 아침부터 이런 조회수를 목적으로 한 낚시성 기사가 분명함에도 금랑이 기사를 클릭하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안에는 꽤 고급져보이는 식당에서 마주앉은 상대 여성과 웃으며 식사하는 단델이 찍혀있었다. 상대 여성은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 미인이다. 어라, 설마 진짜? 현재 배틀타워 측은 입장문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새로고침을 하면 댓글은 계속 늘어나고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떠드는 게 눈에 보인다.
'하하. 단델, 나님이랑 배틀할 시간도 없는 주제에 이런 사진이나 찍히다니 정말 너무하네.' 금랑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비집고 흘렀다. 진짜 딱 한 방울이니까 이것도 이해해주자!
* * *
금랑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출근해서 정신을 놓고 있는 금랑을 향해 트레이너들은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물었고 금랑은 몇 번이나 괜찮다며 웃었다. 그렇지만 눈이 죽었는데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불안한 눈으로 보물고를 살피고 오겠다며 나가는 금랑을 뒤쫓았다. 동숙이 오늘은 자기도 동행하겠다며 따라나왔지만 금랑이 '혼자' 할 수 있다며 서둘러 가버렸다. 금랑의 짝사랑 상대야 트레이너들이 눈치 못 챘을 리 없으니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닌지라 조용히 한숨만 쉬었다. 하지만 보물고에서 돌아온 금랑의 상태를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갔어야 했다고 동숙은 후회한다.
금랑은 누가 뭐래도 베테랑이다. 특히 보물고 관리라고 하면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보물고는 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금랑이 관리인이 되고부터 그 질이 뛰어오른 것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모두가 안심하고 있었고, 금랑도 방심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 단델의 열애설로 마음이 싱숭생숭한 금랑이 해버린 실수. 보물고에는 일반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무언가에 씌인 것'을 들 수 있겠다. 사람을 홀린다던가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그 무언가에는 저주도 포함된다는 걸 베테랑인 금랑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책임은 온전히 금랑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저주 같은 건 사람의 감정에 잘 이끌리잖아. 이건 명백히 나님의 실수야. 관리인으로서 멘탈관리는 필수인데 자기 마음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니 부끄럽네."
금랑은 자기 같은 베테랑이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로 부끄러웠는지 멋쩍게 뒷목을 쓸어내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용길이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당장 병원에 연락을 해야 한다며 스마트 로토무를 꺼내는 걸 겨우 제지했다.
금랑의 오늘 운은 최악이었던 거에 비해 저주는 그 정도로 강한 물건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물건에 무언가 깃드는 일은 허다하고 사람을 홀려 그 힘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시간이 지나서 그 힘이 약해지고 무뎌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행히 금랑은 후자의 경우였다. 게다가 무슨 저주인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 어쩌면 오늘 금랑의 운은 좋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평소라면 하지 않은 실수를 하필 오늘 했다는 점에선 여전히 나쁠 수도 있지만.
금랑은 자신의 왼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금랑의 눈동자 색이랑 똑같은 예쁜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땐 반지가 이미 제 손에 들어와 있었노라고, 어쩌면 반지에 홀린 자신이 끼운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거일 수도 있고, 정말로 금랑이 모르는 새에 반지가 씌인거일 수도 있다. 어느 쪽도 금랑이 저주에 걸렸단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비누, 오일, 트린트먼트까지 반지가 안 빠졌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보았지만 반지는 정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용길 뿐만 아니라 레나, 동숙도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 반면 금랑은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아름다운 반지를 감상하고 있었다. '음, 이거 완전 시말서 감이네.' 관리인이 유물에 홀린 것도 모자라 어쩌면 이 반지는 자신을 마지막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서인지도.
"그 반지는 어떤 저주가 깃든건가요?"
용길, 레나, 동숙이 힘으로라도 빼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안되자 지친 기색으로 물었다. 저렇게 예쁜 반지에 어째서 저주가 깃든것인가.
"음. 나님이 처음 봤던 기록에 적혀있던 이야기는 이랬어."
- 남자는 자신의 연인에게 반지를 주고 죽게 된다. 연인은 그의 염원이 깃든 반지를 빼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울기를 반복하다 죽은 후에야 반지가 빠졌다고 한다. 이후 사연 많은 반지는 값어치가 높아져 여러 경매장을 떠돌며 많은 주인을 만났으나 대부분 가족이나 연인 같은 소중한 이를 잃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메말라 죽어갈 때쯤에야 반지가 빠진다고. 보존상태는 그럭저럭. 저주가 깃든 것은 맞으나 처음에 비해 힘은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다. 가장 마지막 반지의 주인도 살아남았으며 그의 자녀들이 기증. 보물고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면 몇십년 이내로 저주 소멸 가능할 것으로 보임.
그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슬픈 감정에 반응해 죽을때까지 울게한다니 그 반지 예쁘지만 정말 최악이네요."
그 말이 맞다. 저주는 대상이나 목적을 가진 주술. 남자가 처음부터 저주를 건 반지를 주었거나 죽어서 강한 원념이 의지가 되어 반지에 깃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쪽도 연인에 대한 배려는 없으니 최악이 맞다.
"반지에 대한 다른 자료가 없는지 좀 더 찾아볼게요."
"이 분야와 관련된 전문가들한테 도움을 요청할까요?"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나님이 보기엔 이 저주는 이미 거의 끝물이야. 힘도 별로 안남았는데 나님한테 씌인것도 대단한거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빠질거야."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게다가 아무리 끝물이라도 저주는 저주. 금랑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순 없었다. 게다가 감정과 연관된 저주라니, 평소 악플에도 아랑곳않는 강철멘탈이라지만 더 조심해야만 했다.
"이 반지 주인 중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이 죽은 케이스도 많았으니까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야겠지? 조심해서 나쁠거 없으니까 당분간은 나님 단독 행동으로 한다. 불필요한 접촉은 삼가할 것. 다른 트레이너들에게도 확실하게 전해. 가능하면 보고는 메일로 올리거나 서면으로 제출해. 그럼 해산!"
그렇게 트레이너들을 쫓아내고 홀로 남은 금랑은 어쩐 지 벌써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원해서 혼자가 된 거랑 억지로 남과 떨어지는 건 기분이 다르단 말이야 기분이! 죽을 때까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저주라니. 정말 너무 명확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저주라면 기뻐서 흘리는 눈물도 있을 텐데 이 반지는 보아하니 명확하게 '슬픈 감정'을 끌어내는 듯 했다. 특정한 감정에 반응하고 그걸 극대화하는 힘이라고 보는 게 좋았다. 누구라도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텐데 거기에 반지의 힘까지 더해 슬픈 감정이 끊임없이 밀려와 정말 말라죽게 만든다니 분명 처음엔 강한 저주였을 거다.
이 상태면 단델에게 그 열애설은 대체 뭐냐고 해명해보라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지도 못한다(물론 그럴 용기도 없지만). 단델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분명 문제지만,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단델 앞에 섰다간 금랑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델 앞에서 눈물부터 쏟아낼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눈물은 금랑이 탈수 현상을 일으킬 때까지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단델 생각에 빠져 이 반지에 씌인 시점에서 굉장히 타당성이 있는 결론이었다. 우와, 생각만해도 죽어버리고 싶어! 그러니 당분간 절대 단델은 만나지 말자!
그리 다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용길이 뛰어 들어와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단델의 열애설은 사실무근, 상대 여성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관계이며 그녀는 약혼자까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는 무분별한 루머 확산은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NS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떠들며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금랑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당분간 단델을 만나지 못하는 건 똑같으니까. 너클짐 업무, 너클시티 및 와일드 에리어 순찰, 보물고 관리까지 금랑도 평소처럼 흘러갈 하루를 떠올리며 일을 시작했다.
* * *
금랑은 평소처럼 너클시티를 순회하며 순찰했다. 순찰하면서 맛집이나 간식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트레이너들 몫까지 챙겨서 돌아가곤 했다. 가끔 눈여겨본 곳은 기억해두었다 나중에 단델도 챙겨주었다. 금랑이 너클시티에 기여하는 것 정도야 직접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금랑이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며 SNS를 불태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악플에 익숙한 팬들은 먹는 모습이 귀엽다던가 저기는 대체 어느 맛집이냐며 또 다른 의미로 불태우기도 했다.
오늘은 신메뉴로 나온 마빌크 아이스크림을 보고 금랑은 망설임 없이 샀다. 콘에 올려진 새하얀 아이스크림에는 형형색색의 별가루가 예쁘게 장식되어있었다. 먹기 전에 사진부터. 로토무는 익숙한 듯 사진이라는 말에 반응해 주머니에서 튀어나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고 있는 금랑까지 찍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SNS창을 열었다. 금랑은 기특한 로토무를 칭찬하며 해시태그를 달고 사진을 올렸다. 좋아, 이제 맛을 보실까! 한 입 깨물려던 그 순간 금랑의 뒤통수로 무언가 날아들었고 그 충격으로 아이스크림은 철퍼덕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꽂혔다.
"너클짐 관장이라는 놈이 또 일은 안하고 놀고있냐!"
금랑을 향해 무엇인가를 발로 찬 남자는 삿대질을 하며 껄렁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막상 가까이 와보니 이메다가 크긴 큰 지 조금 움찔거리긴 했지만 이미 사람들의 주목도 받아버렸고 도망가기엔 늦었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더욱 큰 목소리로 욕하기 시작했다. 네가 이러니까 너클시티가 안전하지 않고 매일이 시끄러운 거라고. 금랑은 남자때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보며 '아 저거 한정판인데 아깝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금랑이 아무 반응도 없자 자신감을 얻었는지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며 금랑의 어깨를 밀쳤다. 사람들은 말려야 되는 거 아니냐며 수근거리며 손에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신고하려고 든 사람도 있었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금랑의 얼굴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
정작 눈물을 흘린 당사자도 어깨를 밀친 사내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던 시민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이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던 그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랑도 놀랐는지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다. 금랑은 맹세코 눈물을 흘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저 남자가 어깨를 밀치는 순간에도 금랑이 했던 생각이라곤 '아~ 정말 나님 아직 한 입도 못 먹었는데! 오늘은 역시 운이 나쁘네! 그래도 사진이라도 건져서 다행이다!'였으니까. 이는 자신의 의지로 흐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손가락에 거슬리는 장신구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한 아이가 "금랑님 괴롭히지 마!"라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반응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따가운 시선이 껄렁한 사내의 목을 움츠리게 했다. 한 여성은 금랑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지팡이를 든 어르신은 금랑의 어깨까지 손이 닿지 않자 허리께를 두드려주며 위로해주었다.
'이건 평소랑 반응이 다르잖아?'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을 얼떨떨해하며 생각했다. 나님의 눈물까지 뽑아놓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게 틀림없다고. 아마도 슬픈 기분이나 감정을 주변에 공유시킨 거라 판단한 금랑은 여기에 있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을 짓자 바로 몬스터볼로 플라이곤을 불러냈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자! 몬스터볼에서 포켓몬이 나오자 움찔한 사내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방어적인 태세를 했지만 정작 플라이곤의 날갯짓에 바람만 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조심스레 팔을 내렸다.
금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당분간 너클시티 순회는 사람이 없는 곳을 위주로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금랑은 지친 기색으로 짐으로 돌아왔다. 걱정어린 트레이너들의 시선에 괜찮다며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늘어졌다. 제 생각과 다르게 눈물이 흘렀던 건 반지의 소행이 틀림없다. 말하자면 머리보다 감정이 반응해버린 거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의 장면을 보면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오거나, 드라마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더 부끄러워지는 그런 상황.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조절되지 않는 문제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였던 이유도 반지 때문이리라.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게 된 속상함이 반지의 힘으로 조금 극대화된 상태가 주변에 공유된 거다! 말하자면 금랑의 감정에 이입해 슬픈 기분이 들어서 아이가 울거나 주변에서 금랑을 위로해준 거다. 만약 이 사실이 안티팬들에게 알려지면 아이스크림 얼마나 좋아하는 거냐고 신나서 달려들 생각을 하니 안색이 나빠졌다. 이건, 이건 정말 할 말이 없잖아! 절대로 비밀이다. 절대로 안티팬들에게 들키지 않을 거야! 저주에 대한 거 입도 뻥긋 안 할 거라고!
"그나저나 이 반지 대단하긴하네. 지금에야 힘이 없어서 겨우 이정도 수준이라지만, 이런식으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
어쩐지 가족이나 연인처럼 소중한 이를 많이 잃었던 반지 주인들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식으로 이 반지는 수많은 사람을 죽여왔을 거다. 그리고 소중한 이를 모두 잃었던 사람들은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일 눈물만 흘리다가 그렇게 메말라 죽어갔을 거다. 만약, 나님이 단델을 잃는다면 정말로 못 견디겠지. 아냐아냐아냐 이런 감정은 안돼. 반지한테 먹이만 주는 셈이라고. 이대로 반지에게 농락당하면 오히려 역으로 반지에게 먹힌다! 그러면 반지는 점점 더 힘을 키우고 또다시 주변에 폐를 끼친다. 이 반지는 반드시 나님 선에서 끝낸다!
그러니까 슬픈 기분 따위 느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것과 무색하게 금랑은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이 되었다.
어찌저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마음만으로 열쇠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 허전하다는걸 깨달았다. 잃어버렸다. 열쇠고리. 그냥 열쇠고리가 아니다. 챔피언 단델 굿즈 열쇠고리라고! 이제 더이상 판매도 안하는건데 대체 어디서 잃어버렸지? 반지냐? 이것도 반지의 소행이냐? 이제 단델은 챔피언이 아니니 같은 굿즈가 나올리 없다고 개새끼야 듣고있어? 금랑은 반지를 낀 손을 들어올리며 욕을 해댔다. 젠장 또 눈물이 나오잖아. 주르륵 흐른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이제와서 찾을 수 있을리도 없었다. 평정심. 그래 평정심을 가지고 내일 너클짐이나 다시 찾아봐야지. 집으로 들어가 더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금랑은 그저 퍼지게 자고 싶다는 마음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깨어나면 후폭풍이 기다릴 예정이었다.
* * *
[제목: 금랑님 울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SNS 시끄러워서 찾아봤는데 금랑님 울었대ㅠㅠ 지금 영상은 삭제됐는데 봤던 사람들 말에 따르면 금랑님한테 뭐 던지고 욕하고 난리였다더라. 우는거 사진만 봤는데 진짜 너무 슬프게 우셔서 진짜 나까지 눈물이 나ㅠㅠㅠㅠㅠ 아 진짜 금랑님한테 무슨 일 있는거아니야? 평소에 안티팬 만나도 여유롭게 웃던 사람이 갑자기 울어?
ㄴ 맞고 욕먹는데 웃는게 더 이상한거 아니냐
ㄴ 금랑님도 사람이다 XXX들아!
ㄴ 솔직히 금랑님 악플은 도를 넘긴 했지. 진짜 너무하다 정말.
[제목: 금랑님 시비턴 안티팬 신상털었음ㅋㅋㅋ]
미안하다 오늘자 금랑님 셀피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아이스크림 너무 작은거 아니냐. 귀여워.
응~안티팬은 죽던가~
ㄴ 금랑님도 귀여워
ㄴ 죽던가222
ㄴ 저기 어디임? 아이스크림 완전 예쁘네.
ㄴ 금랑님 손이 큰거임ㅋㅋㅋㅋ
ㄴ 근데 손에 저거 반지임?
ㄴ 응?
ㄴ 아이스크림 들고있는 손.
ㄴ 헐?
ㄴ 헐???
ㄴ 헐???????
[제목: 방금 파파라치가 올린 사진 봤냐?]
금랑님 현관에서 반지를 애틋하게 보면서 눈물 흘리고있어.
평소에 반지 안끼던 사람인데 반지 낀것도 그렇고, 오늘 금랑님 안티팬 만나서 울었다는것도 좀 이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티팬 때문에 운 게 아닌거 같아. 아무리봐도 반지랑 관련있는 거 같음.
ㄴ 내 생각엔 비밀연애하던 중이었는데 상대방 죽어버린거아님? 그래서 평소에 안끼던 반지도 끼고 울고 그러는거.
ㄴ 님뇌피셜작작좀;
ㄴ 근데 저건 진짜 너무 슬프게 우는거 같은데?
ㄴ 시발 관장들은 사생활없냐? 저딴 찌라시 들고오지말라고!
ㄴ 근데 반지 보면서 우는거 너무... 아무리봐도 이상하잖아.
* * *
"일어나라로토! 마지막 알람이야로토!"
번쩍 눈을 뜬 금랑은 로토무의 마지막 알람이란 소리에 점프하듯 일어나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머리 정돈에도 공을 들이지 못하고 급하게 후드를 뒤집어썼다. 아 큰일이다. 애들한테 연락을, 아니 지금 뛰면 맞출 수 있어!
하품하며 나온 미끄메라와 이미 눈을 뜨고 있던 다른 포켓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식사는 짐에서 챙겨주겠단 약속을 하고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뛰는 것이 살길이라 현관문을 벌컥 연 순간 플래시가 터졌다. 어? 금랑의 집 밖에서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있단 걸 파악하자 금랑은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몬스터볼을 꺼냈다. 미안해 플라이곤! 지금 비상사태니까!
너클짐으로 급히 날아온 금랑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숨을 돌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지? 모르는 새 또 무슨 장작을 저들에게 준건지 생각하는 사이 발 빠른 트레이너들이 달려와 태블릿의 화면을 띄워주었다.
"금랑님 지금 실시간 반응을 보세요!"
거기엔 #금랑님_울지마세요! 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사람들이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제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서 울었던 사진이 SNS에 퍼져있었다. 젠장, 역시 퍼졌구나! 그치만 울어도 잘생겨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보는데 어째서인지 어제 안티팬의 시비와 공격이 금랑이 눈물을 흘린 원인으로 알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이스크림 때문이라는 건 역시 좀 그렇잖아? 잘은 모르겠지만 안티팬에게 속으로 치얼스를 외치며 용길이 이어서 보여주는 기사를 읽었다. 거기엔 금랑이 어제 현관에서 챔피언 열쇠고리를 잃어버려 반지에다가 울면서 화내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거기에다가 기사 내용은 더 기가 막혔다. 금랑도 모르는 오랜 연인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다는 내용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걸 누가 믿어?
"지금 당장 정정보도 내라고 압력해! 루머는 강경대응으로 상대한다고도 꼭 얘기하고."
나님이 이불을 뻥뻥 차기 좋은 저런 사진들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주겠어! 잘생기게 나왔지만 우는 이유가 너무 나님답지 못하잖아? 들키기 전에 없애야 한다며 또 다른 태풍이 들이닥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를 갈았다. 곧이어 레나도 옆에 서서 반지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걸 넘겨주었다.
"금랑님, 비슷한 이야기나 반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이 자료에선 반지의 주인들은 대부분 반지를 갖기 전에 이미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어요.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을 잃고 반지를 구매한거에요!"
"뭐? 그렇다면 이 반지가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없어요!"
흥분하며 대답한 레나의 대답에 금랑은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럼 어제 아이가 울고 자신을 위로해준 사람들은? 슬픈 감정이 공유된 게 아니었다고? 지금 이 해시태그의 물결들은 대체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잠깐만요! 위원장님! 기다려주세요!"
트레이너의 다급한 외침과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쳐다보자 얼굴을 모자로 감춘 단델이 금랑 앞에 섰다.
"네가 왜 여기에? 배틀타워는?"
"금랑. 기사 내용이 사실인가? 너에게 연인이 있었어?"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이 반지는?"
단델이 금랑의 왼손목을 쥐고 들어올렸다. 아야야 아파 아프다고! 금랑이 말릴새도 없이 주먹을 꽉쥐는 바람에 식겁한 트레이너들이 양쪽에서 붙어서 단델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반지는 사정이 있어서 끼고있지만 연인이라던가 전혀 관련 없으니까 놔봐 좀!"
그제야 팔에 힘이 풀리고 손을 빼냈다. 앗, 팔에 자국 생겼잖아! 떨어져 나간 트레이너와 빨갛게 눌린 손자국을 보며 동숙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지금 고작 애인 유무를 물어보러 여기까지 왔다고? 금랑은 설마, 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단델의 열애설이 떴을 때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비집고 나와 물어보고 싶은 걸 겨우 참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자신이 단델을 짝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럼 단델은, 나님을 좋아하는 거야?
그에 화답하듯 단델은 주머니에서 작은 벨벳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것은 노란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 두 개였다.
"갑작스레 놀라게해서 미안해, 금랑. 네가 다른 연인이 없고 나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 반지를 빼고 이걸 껴줄래?"
대답은 Yes, 무조건 OK! 이쪽은 10년동안이나 좋아했다고! 여기서 거절할 이유따위 존재하지않아.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반지를 뺄 수 없다는거다.
"역시 나는 안되는건가."
단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 빛나던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자 금방이라도 방금 프러포즈는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까 봐 금랑이 다급히 외쳤다.
"아니아니아니 돼! 무조건 된다고. 근데 이 반지가 사실 저주받은 거거든? 그래서 안빠져서…"
금랑은 울먹이며 손가락을 뽑을 기세로 반지를 빼내려고 했다. 근데 안 빠진다. 저주? 단델은 인상을 찌푸리며 금랑의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론 반지를 잡아당겼다.
"금랑님!" 옆에서 트레이너들이 비명을 지른 것과 동시에 반지가 빠졌다. 응? 빠졌어?!
단델의 분위기가 더 차가워지며 빼낸 반지를 짓이기듯 주먹으로 쥐었다.
"저주? 너는 그런 변명을 할정도로 내가 싫었던거야? 나와 반지를 나눠끼는게 싫다면 차라리 거절을 해줘."
그럴 리가. 싫어할 리가 없었다. 마치 아까 반지를 빼내려던 금랑은 거짓 연기를 한 꼴이 되었으니 단델 입장에선 오히려 화가 났을 수도 있겠지만. 끄응. 금랑은 억울해졌다. 나님이 너랑 반지를 나눠 끼는걸 왜 싫어하겠냐고! 너랑 연인이 되는 건 나님이 10년이나 바라온 일인데!
응? 잠깐만.
반지. 으레 연인이라면 주고받을 한 쌍의 반지. 그래, 연인이 준 반지라면 원래 준비된 반지는 두 개여야 한다. 그런데 저주받은 반지는 하나다. 나머지는 반지를 준 남자가 가지고 죽었겠지. 단델이 화가 나고 불안한 이유는 아직 우리 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처음 이 반지를 나눠 낀 당사자들은 아니다. 이미 반지를 나눠 낀 순간부터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사랑하는 이의 반지에 저주를 건다니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할리가 없다. 죽어서 염원을 담았다면 이 저주는 사람의 영혼을 먹고 더 강해졌겠지. 그렇지만 이 반지의 힘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진다. 대상도 목적도 더이상 불분명해진 게 원인이라면 이건 예상과 달리 이 반지를 처음 준 남자가 건 저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왜 살아남은 연인은 본인의 반지에 저주를 걸었는가? 레나 말대로 이 반지를 가졌던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이 반지를 선택한 거라면. 그들은 소중한 사람을 잊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슬퍼하는 쪽을 고른 거야. 누군가 죽는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감정이 영원하지는 않지. 언젠가는 웃으며 살아가니까.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슬퍼지게 만드는 저주를 걸었구나!
"반지의 저주는 연인의 죽음을 계속 슬퍼하려고 살아남은쪽이 걸었던거야! 결과적으론 같이 죽는쪽을 선택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걸었던게 아니라서! 보고서를 새로 써서 검토받아야겠어! 전부 단델 네 덕이야, 고마워!"
손을 맞잡고 기쁘게 이야기하는 금랑의 모습에 단델은 얼떨떨해져 쥐었던 주먹을 살며시 폈다. 그리고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저주였다고? 미안해! 그 반지 내가 쥐고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단델이 당황해하며 바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세게 쥐고 있었으니 흘렸을 리도 없고, 만약 흘렸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못 봤을 리도 없었을 테니 반지는 사라진 게 맞았다.
"그건 괜찮아. 게다가 나님한테 어울리는 반지는 네가 가지고있잖아."
단델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단델은 답지 않게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조심스레 꺼내 금랑의 손가락에 끼웠다.
"하하, 사이즈가 딱이네. 치수는 어떻게 안거야?"
"10년이나 계속 생각해오던 거니까. 그 정도는 알아."
금랑이 남은 반지를 꺼내 이번엔 단델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한 쌍의 반지가 제자리를 찾았다. 노란 보석이 둘을 담고 있었다. 금랑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단델이 무서운 표정으로 너클짐을 쳐들어왔던 게 소문이 나고도 충분할 시간이다. 해프닝으로 딱 좋지 않은가.
"좋아, 단델. 기자회견 하러가자!"
"지금?"
"그래. 나님 지금 행복해서 울거같거든. 가라르는 소문이 빠르니까. 서둘러 알리자고!"
아침의 그 요란한 소동도 기자회견 하나로 새로이 들썩일 걸 예상하니 웃음이 났다. 음, 그래도 결혼식엔 울어도 되겠지? 팬들에게는 이 정도로 말해둘까. 그 해시태그는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될 터였다.
곧이어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트레이너들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래서 반지는 갑자기 왜 빠진 거죠?"
"말했잖아. 단델님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니까."
"그런 건 보고서에 올릴 수 없잖아요?"
"그럼 사랑의 힘이라고 쓸까? 원래 이런 건 형식이잖아."
그런 게 통할까요? 용길이 아까 단델을 말리다 구겨진 옷을 털면서 입을 비죽 내밀자 옆에 있던 동숙과 레나가 웃었다.
"의외로 고전적인 게 잘 먹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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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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