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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별똥별(2020.04.29)

dnkb, 공식에서 풀리기 전에 금랑 과거 날조, 퇴고X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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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앞으로 행복해질거야. 그러니 살아남아."

팔도 다리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오던 밤이었다. 아이를 찾아온 손님은 어둠에가려 제대로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다정히 토닥여주며 희망을 속삭여주었다. 그의 뒤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아이는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이의 아버지가 자살했다.

* * *

"전화받아 단델, 제발. 나님 좀 살려줘."

스마트 로토무가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금랑을 보고 눈이 쳐졌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로토. 메시지 남길거야로토?"

"아니."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로토무도 알고있다. 금랑이 이미 몇시간 전에도 메시지를 남겼다는걸. 그뿐인가. 금랑은 요근래 끊임없이 먼저 연락을 취했다. 답장은 한참 뒤에 오거나 그마저도 성의없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단델 이 나쁜자식! 개자식..." 

금랑은 갈라진 목소리로 로토무에게 전원을 끄라고 명령했다. 로토무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랑이 혼자있고 싶다고 말하자 순순히 말을 들었다. 

단델이랑은 연인사이였다. 비밀연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필드 위에서는 서로를 물어뜯는 라이벌이지만 둘이 있을땐 다정히 손을 잡고 키스도 하고 그이상의것을 탐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단델이 챔피언에서 내려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오늘 금랑은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지만, 특히 오늘은 더 심했다. 단델이 챔피언에서 내려온 뒤 금랑은 평소보다 더 심한 악플과 조롱을 받았다. 가라르를 위험에 빠뜨린 그 사건에 대한 문책이 내려오고 너클시티에서부터 일어난 일을 정말 몰랐는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뜨고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파파라치는 일거일투족을 감시하며 먹이를 기다리듯 항상 주위를 멤돌아 금랑을 예민하게 했다.

위로받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연인 단델에게. 그거면 충분했다. 악플이나 조롱도 자신을 향한 악의적인 기사와 비난도 파파라치도 처음이 아닌걸. 단델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거다. 오늘처럼 살의를 갖고 덤벼드는 안티팬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도 단델에겐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자신이 로즈의 계획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정정보도를 내는데 트레이너들도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덕분에 일은 일대로 밀리기만하고 야근을 밥먹듯이하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다들 죽을맛이다. 금랑은 제대로 잠을 못잔지 한참이나 되었다. 일이 많은것도 한몫 했지만 최근엔 불면증으로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단델 목소리를 들으면 잘 수 있을거 같았지만 그마저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단델 네 목소리를 듣고싶었어. 단지 그거뿐인데. 어째서 넌 나님이 필요할 땐 달려오지않아? 옛날엔 길을 잃어도 얼굴정돈 보러 와줬잖아. 이젠 우연히 마주치는 일 조차 일어나지 않아.'

빨갛게 충혈 된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등으로 소매로 끊임없이 닦아도 계속 흘렀다. 억지로 웃어도 보았지만 머리가 아플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겨우 눈물이 멈추고나서야 금랑은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은 말라붙은 눈물자국으로 지저분해보였다. 눈밑은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와있고, 머리는 다 헝클어져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더는 억지로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머리는 차가워지고 심장은 머리로 따뜻한 피를 전해주고 싶어서 더빨리 뛰기 시작했다.

옷장 위에 금랑이 아니면 손이 닿지 않을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램프나 손전등, 동굴탈출용 로프같은 평소엔 잘 쓰지않는 비상용 물품이 들어있었다. 몬스터볼을 전부 탁자 위에 올려두고 밧줄만 챙긴 뒤 집 밖으로 나왔다. 그저 굳어버린 머리로 포켓몬들이 있는 집에서 죽을 수 없다는 생각만 했더랬다.

과거의 자신이 목도했던 그 광경을 보여주기 싫다는 본능이었을거다. 

금랑은 와일드 에리어로 나가지 않았다. 그 곳은 언제나 관리자들이 지키고있다. 입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금랑이라고해도 포켓몬을 소유하지 않고 가도록 내버려둘리가 없었다. 하여 너클시티 뒷편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거긴 제대로 된 길이 없다. 그저 슛시티로 갈 수 있는 열차를 위한 레일과 터널만이 유일무이하게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너클시티에 금랑이 모르는 길 따위는 없다. 파파라치가 따라붙은 거 까지 계산해서 골목길로 들어가 단숨에 그들을 따돌리고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은 와일드 에리어와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그보다도 조용하고 스산한 곳이다. 가운데 터널이 뚫려있는 거대한 바위산이 그늘져 어둠이 더 짙은 곳이었다. 금랑은 깨끗하게 다듬어진 레일을 벗어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폭포 근처까지 갈 셈이었다. 거기라면 사람이 올 리가 없겠지. 그래, 만약 시체가 발견되더라도 한참이 걸릴거라고 믿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밧줄을 손에 쥐고 산 길을 오르자 모든것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조용하고 또 숨어있는 야생포켓몬 지나가는 소리마저 잘 들릴정도로 고요했다. 밤하늘의 별은 무수히 많았고 게 중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금랑은 생각했다.

어릴적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뼈저리는 후회와 자신이 불행해진 원인을 돌이켜보았다.

* * *

금랑의 어머니는 와일드 에리어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야생포켓몬에게 공격당했고 발견되지 못한채 오래 방치되어 죽었다고했다. 물론 어머니의 친척들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녀에게 목이 졸리거나 싸운 흔적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체가 늦게 발견되어 훼손이 심해 이에 대한 증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랑도 사고가 아니라고 믿었다. 어머니는 금랑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강한 트레이너였고, 어머니의 포켓몬들을 발견하지 못한것도 이상했기 때문에 자신이 트레이너가 되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반드시 알아내리라 다짐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허공에 대고 욕짓거리를 내뱉거나 화를 내고 울기를 반복했다. 이웃들은 사랑하던 이를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이라고 심심한 위로를 던졌다. 그들이 모르는 곳에선 아직 작고 어린 금랑에게 직접적인 폭행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날 금랑은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싶어요. 강한 트레이너가 되게해주세요."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진심이 안쪽에서 비집고 올라왔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 빨리 떠나고싶어요. 차라리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별똥별은 마치 금랑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듯 떨어지다가 여러 조각이 되어 하늘에서 흩어지듯 사라졌다. 금랑은 맞아서 멍이 든 팔과 다리를 감싸안으며 울다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나 아침을 맞이했을때 아버지는 목을 달아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이웃들은 사랑하는 이를 따라 죽었다고 믿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른 의심도 없이 자살로 종결지어졌다. 그저 홀로 남은 어린 금랑을 가여이 여겼을 뿐이다.

금랑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다는걸 알았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채 살았다. 트레이너가 되고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으면 무너져버릴것만 같았기에. 무수한 악플에 시달리면서 별달리 해명을 하지도 대응을 하지도 않았던 이유는 그저 이 모든게 자신의 업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건 벌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던 나쁜 아이에게 내려지는 벌. 응당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래서 욕은 먹어도 마음은 평안할 수 있었다.

죽음을 생각한건 충동적이었고, 밧줄을 보자 자신도 아버지처럼 목을 달아 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의 포켓몬들에겐 도저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바보같아. 단델을 만나고 나님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했어.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폭포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금랑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졌다. 자신의 포켓몬들은 보호소에 맡겨질테고 야생에서 살아가거나 다른 좋은 트레이너를 만날 것이다. 너클짐도 보물고도 당장은 더 힘들어지겠지만 결국 후임자를 찾고 어떻게든 굴러가도록 시스템되어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당장은 충격에 빠지겠지만 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것이다. 단델도 바쁜 삶을 살면서 그렇게 잊어갈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무책임해서 미안해. 그래도 도저히 못 버티겠어."

금랑은 근처의 메마른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높이가 적당한 나무 앞에서 사람 얼굴이 들어갈만한 매듭을  지었다. 이제 이걸 나무에 달기만 하면 된다. 적당히 단단해보이는 나뭇가지를 찾기위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아름답게 쏟아져 메마른 가지에 장식된거 같았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벌써 사진을 찍고 자랑했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금랑은 그저 멍하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오다 흩어지는 별똥별은 어릴적 빌었던것과 닮아있었다.

'아 어머니가 죽은 이유를 직접 알아내고 싶었는데'

금랑이 너클짐 관장이 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관장이 되면 와일드 에리어를 자주 순찰할 수 있으니 언젠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믿어서였다. 그리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에 더욱 힘을 썼다. 몸을 사리지않고 구조요청에 협력했으며 관리인을 더 많이 배치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이제 그조차 불가능하겠지만.

그 때 어디선가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리가 없는데. 여긴 사람의 발길이 닫는 곳이 아니다. 아이가 있을리가 없다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울음소리는 더욱 가까워지는거 같았다. 이건 사람을 홀리려는 고스트 포켓몬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아주 적은 확률일지라도 진짜 아이가 울고있는 걸수도 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금랑은 포켓몬도 너클짐도 사람들도 모두 등돌린채 죽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무시하자. 무시해야해. 

하지만 진짜 아이라면 나님이 구해주면 살 수 있어. 나님은 죽더라도 아이는 살아야지. 고스트 포켓몬이면 뭐 어때. 어차피 죽을거라면 상관없잖아.

결국 하던 행동을 잠시 중단하고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야. 소리는 큰 바위 뒷 편에서 나고있었다. 금랑은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곳엔 아이는 없고 빛나는 돌이 떨어져있었다. 소리는 거기서 흘러나왔다.

아, 이건 혹시. 금랑은 그 빛을 손에 쥐었다.

* * *

눈을 깜빡이자 외곽의 작은 마을에 있는 평범해보이는 집 마당에 서있었다. 금랑이 트레이너가 되기 전 살았던 곳이라 눈에 익었다. 허나 이 곳은 몇 년 전 이미 개발에 들어갔다. 이런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을리 없다. 그말은 즉, 과거에 있다는 뜻이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집. 이는 환상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정석대로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꿈은 아니라는건가? 익숙한 문고리를 잡아당겼으나 철컥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뒷마당으로 가 문을 당겼다. 열렸다. 여기는 자주 잠그는걸 깜빡하곤 했었지. 부엌이랑 연결된 뒷 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어두운 거실에 홀로 빛나는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야 새벽일테고 날짜는,

아버지의 기일이다.

아. 금랑은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했다. 왜 하필 이 날이지? 그건, 어쩌면 과거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죽은 그 해의 그 날로 돌아온게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안방 문 앞에 섰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 곳을 여는건 떨리는 일이다. 소리가 나지않게 숨을 죽이고 문고리를 천천히 열었다. 창가론 달빛이 들어오고 침대에는 누군가 고른 숨을 쉬며 이불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보였다. 불을 킬 수 없어서 부딪히지 않게 조심스레 곁으로 걸어갔다.

아버지가 살아있다.

자신을 학대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죽고 괴로운 나머지 술에 손을 대고 자신에게 손찌검을 했지만 그마저도 다 잊을 정도로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정말 과거라면 돌이킬 수 있지 않을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님이라면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는 못 된 소원을 빌었던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 모든 생각이 스치자 다시 눈물이 나왔다. 흡. 소리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코가 시큰거리고 훌쩍이는 소리까지 막을 수 없었다.

우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 사내는 침대 맡에서 울고있는 금랑을 보았다. 그리고 잠에서 덜깬듯 눈을 깜빡이다 비명처럼 일어났다.

이해할 수 있다. 어수룩한 새벽에 2미터나 되는 모르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훌쩍훌쩍 우는 모습이라니. 귀신이라도 본듯 놀라서 일어나 허둥대는 꼴은 당연한거다. 금랑은 자신이 댁의 아들이라고, 물론 모습은 많이 자랐지만 당연히 알아봐줄거라고 믿었기에 그가 조금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려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

"죽었으면 곱게 갈것이지 이제 꿈에서까지 나타나? 얼마나 더 나를 괴롭히려는거야?!"

그러니 그런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으니까. 정확힌 그렇게 믿었으니까.

"왜 두고간게 너무 많아서 미련이 남아? 네 몬스터볼은 역린호수 밑바닥에 던졌으니 곧 만날 수 있겠지. 물포켓몬이 한마리라도 있었다면 운이라도 걸었을텐데 안타깝네. 아니면 우리 아들이 걱정돼? 걱정마. 네 포켓몬도 재수없을 정도로 널 빼다박은 아들놈도 곧 곁으로 보내줄테니까.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제발 좀 사라져! 꺼지라고!"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침대 옆 탁자를 더듬거리며 아무거나 잡히는걸 귀신을 향해 던졌다. 진짜 귀신이었다면 나지 않을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사내는 이성이 돌아오는거 같았다. 금랑은 비틀거리며 사내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어두워도 묵직한 걸음이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컥,

누구냐고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목이 졸렸다. 그 힘은 점점더 강해지고 있었다. 죽는다. 진짜 죽는다. 사내는 눕혀진채 버둥거리며 금랑의 팔을 밀어내려 했지만 꿈쩍도 안했다. 다리의 힘도 빠졌는지 점점 움직임이 느려졌다. 금랑은 반대편 손에 쥔 밧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았다. 

사내의 눈이 뒤집히기 전 기도로 다시 숨이 들어왔다. 헐떡이며 가벼워진 제 목을 확인한 사내는 아직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마지막 생존본능이 도망치라고 외치는대로 기어가다시피했다. 바닥을 짚고 기어가 의자에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어떻게든 문가까지 다다랐다.

문고리를 쥐는 순간 자신의 목에도 고리가 걸렸다. 그리고 단숨에 문가에서 멀어져갔다.

-

금랑은 2층 계단을 올랐다. 어린시절을 보냈던 자신의 방에 가까워질수록 숲에서 들었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울음을 참듯 들썩이는 아이가 있었다. 금랑은 침대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앉아 이불 위를 토닥거렸다.

"넌 앞으로 행복해질거야. 그러니 살아남아."

들썩이던 움직임이 멈추고 조심스럽게 이불이 내려가더니  머리카락이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더 아래로 내려왔다. 눈에서 코, 입까지 아이의 얼굴이 드러나자 눈이 마주쳤다. 금랑은 다정하게 웃어주며 토닥여주었다. 아이가 잠이 들때까지.

날이 밝아오기전 마지막 별이 떨어졌다.

* * *

눈을 뜨자 하늘이 아닌 천장이 보였고, 차갑고 딱딱한 땅바닥이 아닌 하얗고 부드러운 침대에 눕혀져있었다. 손등에 꽂혀있는 가느다란 선을 눈으로 따라가던 중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란 눈과 마주쳤다. 그렇게나 보고싶었던 눈이다.
여긴 꿈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병원이구나. 금랑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몸을 일으켰다. 

"금랑. 몸은 어때? 너 쓰러졌었어. 의사말로는 과로랑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잘 쉬어야한대."

단델의 목소리는 쉰듯 갈라져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잔듯 눈밑이 검었고 피부도 푸석해보였다. 자세히보니 눈가가 빨갛게 충혈되었다.

"나님을 어떻게 찾았어?"

물음에 힘빠지듯 어깨를 늘어트리는 단델에 여기 누워서 수액을 맞는게 자신이 아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도 이녀석을 억지로 침대에 눕혀서 재운 사람이 없는가 금랑은 살짝 따지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가 밤에 뛰쳐나가는걸 본 사람이 있었어. 신고가 들어왔고."

금랑은 그 신고자가 자신을 뒤따라온 파파라치라는걸 알았다. 과연 그가 양심에 의해서 신고를 했는지, 가장 먼저 특종을 내걸고 싶어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 그건 꿈이었을까? 이렇게 생생한데? 금랑은 식은땀이 나는 손으로 이불을 쎄게 말아쥐었다.

그건 꿈이 아니다. 분명 울음소리를 따라가 빛을 손에 쥐었다. 그 빛은 금방 사그라들더니 평범한 돌이되었다. 그래, 그건 분명히 소원의 별이다. 

제 손으로 아비의 목을 조르고 밧줄을 걸어 매달아버린 그 생경한 감각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어린시절의 기도를 들어주었던 소원의 별은 어머니의 복수도 제 손으로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유년기의 죄책감에 살지않아도 괜찮다. 금랑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진심으로 웃음이 났다.

"금랑?"

단델이 웃고있는 금랑을 불안하게 불렀다. 이제 나님에게 남은건 단 하나. 금랑은 예의 그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단델, 나님한테 할 말 없어?"

아니면 나님이 먼저 말할까? 금랑에겐 포켓몬을 제하면 남은 관계는 단델뿐이다.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하지만 금랑은 앞으로 행복해지기로 어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러므로 단델이 자신의 행복에 방해물이라면 여기서 끊어져야한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줘, 금랑." 단델은 무릎에 올려둔 주먹을 쥐었다폈다하다가 깊게 숨을 내쉬고 겨우 입을 열었다. "배틀타워에선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배틀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금랑 너는 더블배틀을 정말 좋아하니까. 네가 연계하는 더블배틀은 어렵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배틀타워에서 그걸 도입하느라 바빴어. 빨리 네게 보여주고 싶어서."

금랑이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눈을 찌푸렸다. 그걸본 단델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라면 이해해 줄거라고 그래서 소원해졌다고 변명하는 자신에게 그래, 뭐 바빴겠네? 그래서? 라고 말하는 금랑에 단델은 입을 다물고 얼굴을 손에 묻었다.

"미안해, 금랑. 내가 나빴어. 너를 위한다는 핑계를 대며 네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신경을 못썼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네가 연락한것도 몰랐어. 아니, 아니야 내가 미안해. 몰라서 미안해, 금랑."

단델은 울음기어린 목소리로 금랑의 손을 잡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과를 했다. 

"왜 사과하는거야?"

단델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름다운 눈이 죽은듯한 눈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마치 집을 뛰쳐나가기 전에 보았던 거울에 비친 자신과 닮아있었다. 

"너를 사랑해. 헤어지고 싶지 않아, 금랑."

단델이 떨리는 손으로 금랑의 손을 잡았다. 금랑은 그 손을 마주잡아 깍지를 꼈다.

"정말?"

단델이 반질반질한 얼굴로 나타났더라면 주먹부터  날렸을텐데 아쉽네. 한번쯤은 기회를 주고싶은 저런 얼굴로 고개를 겨우 끄덕이면 고민된단 말이지. 

"그치만 배틀타워를 개장하면 지금보다 더 바빠지겠지?"

"바쁘긴 하겠지만 이번같은 일은 없을거야."

단호하게 대답하는 말은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반가웠다. 

"약속 꼭 지켜."

금랑이 팔을 벌리자 단델이 그 품에 조심스레 안겼다. 떨리는 등을 토닥여주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보다 가장 높은곳에서 빛나는 단델이 떨어뜨리는 눈물도 별똥별과 닮지않았을까.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다.

거봐, 행복해질거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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