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ee

No. S-8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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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방이 소란스럽다. 던전 깊은 곳에서 로프에 의해 당겨져 모습을 드러낸 수애가 센티넬의 품에 안겨 막사 앞으로 내려졌다. 웨이가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다가가자 무언가에 녹아내린 듯 살갗이 까져 피를 흘리는 수애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잔뜩 쓸린 작은 손바닥에서 뚝뚝 흐르는 피에 몸이 멈칫했다. 그 사이 구급팀이 다가와 수애의 피부에 스프레이를 분사하자 흐르던 피가 하얗게 얼어붙은 듯 멎었다. 덜덜 떨리는 숨을 억지로 삼키며 의식이 없는 수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듯 타는 기운을 진정하지 않으면 제 센티넬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혹여나 손이라도 닿아 그녀의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뼈와 살이 붙을까,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 걸음 물러났다.

“서울로 이동할 사람 제외하고 일단 물러나!”

“좌표는 센터 내 응급실 앞이에요. 바로 응급수술 들어가고 회복실로 넘길게요.”

“가이드! 아, 리 웨이 씨 같이 넘어가요.”

구급팀이 그녀의 위로 모포를 덮고 들것을 들어올렸다. 모포 틈으로 수애의 팔이 힘 없이 떨어졌다. 주먹을 쥔 손가락이 부러질 것 처럼 덜덜 떨렸다. 억지로 심호흡을 두어번 반복한 웨이가 말 없이 워프를 준비하는 센티넬의 어깨를 잡았다. 약간의 울렁거리는 시간 끝에 익숙한 실내로 인원이 이동했다. 호흡이 끊긴 수애의 얼굴 위로 앰부백이 덮혔다. 복도를 따라 달려가던 도중 간호사가 웨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이상은 들어오시면 안 돼요. 수술 끝나는대로 회복실로 같이 이동해주세요.”

“수술, 언제 끝나?”

“응급수술이라 오래는 걸리지 않을거예요.”

“어…얼마나 다친거야…?”

“일단… 열어봐야 알겠지만 늑골이 부러지면서 장기를 찔러 내출혈이 발생한 것 같아요. 던전 안으로 떨어지면서 한번 더 충격이 가해진 것 같은데, 본인도 모르게 치유 능력을 쓰는 바람에…. 안 쪽이 어떻게 재생됐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잘못 붙은 곳이 있으면 다시… 절개하거나 분리해서 접합시켜야해요.”

어려운 단어가 웨이의 귀로 잔뜩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모르는 말이 많더라도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는 간호사의 등 너머로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보였다. 뒷걸음질 치며 의자에 주저앉은 후에야 사정없이 떨리는 제 손이 보였다. 제 배에 날붙이가 꽂혔을 때에도 몸을 떨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였다. 여태 그녀에겐 아닌 척 굴었지만 자신이 그저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조직에 보살핌을 받으며 어두운 곳에서 가이드의 능력을 써왔다. 하지만 죽음 앞에만 서면 저도 모르게 도망치는 거지같은 성격에, 이번엔 그녀의 옆으로 도망쳤을 뿐이었다. 또 다시 제게 두려운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가 죽어버릴까봐 두려워졌다. 수술실 밖으로 나오는 네 몸이 차게 식어있으면 어떡하지. 우리의 집에 갔는데 영원히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더 이상 너를 끌어안고 잠드는 밤이 내게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세게 맞잡은 두 손의 손등에 제 손톱이 박히는 줄도 모르고 힘을 꽉 쥐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시선을 아래에 처박고 가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내 곁에서 다시 웃는 네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텐데.

“김수애 센티넬 담당 가이드, 리 웨이 씨 맞으시죠? 보호자로도 등록되어있으시네요.”

“…?”

“김수애 환자 수술이 거의 다 끝나가서요. 회복실로 바로 이동할거라 거기서 대기해주세요.”

“수술, 잘 끝났어…?”

“네. 다행히 치명적인 부분은 피해갔지만 센티넬이 아니였다면 큰일났을거예요. 이외에는 골절과 타박상 뿐이라 오늘 가이딩 진행해주시고 환자가 의식 찾으면 그 때부터 주기적으로 가이딩 신경 써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웨이가 마른세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회복실로 걸음을 옮겼지만 자리에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좁은 방 안을 돌아다녔다. 이어지는 초조한 움직임 끝에 저 멀리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수술실로 이어진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덜컹이며 들어온 베드 위에 수애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부러진 뼈나 내장의 상처는 며칠 이내로 모두 회복될거예요. 봉합은 해 두었지만 가이딩 염두에 두고 수술했으니 상처가 터지지 않게 주의해주세요. 자료에는 두 사람 단순 접촉으로도 순응도가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장기 손상이 있었으니 최대한 조심해서 진행해주세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웨이를 확인한 의사가 회복실 문을 열고 나섰다. 보조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들어 손바닥이 맞닿도록 살며시 잡았다. 살갗이 까여 속이 드러난 덕분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그녀의 손을 타고 많은 기운이 흘러들어갔다. 분명 일방적으로 제가 그녀에게 기운을 흘려보내는 방식이건만, 수애와 가이딩을 할 때면 포근하고 풋풋한 들꽃 향이 풍기는 느낌이 들었다. 제 속을 휘감는 풀꽃 향에 미간을 찌푸리고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되감기라도 하듯 독기에 녹아내린 그녀의 피부에 점차 새살이 돋았다. 눈에 보이는 외상이 사라지자 웨이가 수애의 손을 들어 손바닥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 내출혈이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간호사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입술이 닿은 직후 기계의 그래프가 눈에 띄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춰 모든 기운을 불어넣고 저 잠든 얼굴을 깨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수애의 손을 제 뺨에 맞댄 웨이가 몸을 숙여 침상에 고개를 기대었다. 이제 저 눈을 뜨고 날 바라보기를 기다려야지. 그리고 말해줘야지. 사랑한다고. 많이 보고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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