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ee

No. S-7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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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째 내리던 폭우가 드디어 그쳤다. 그 동안 비추지 못한 태양빛을 몰아서 내리쬐기라도 하듯 매일이 뜨거운 여름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수애가 양 손에 짐을 가득 들고 막사로 들어왔다. 덥고 습한 저수지 바로 앞에 세워진 이 막사는 작년 가을부터 이 곳을 지키고 있었다. 저수지 한 가운데에 생겨난 가로 30M, 세로 25M의 저 거대한 던전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에 생긴 저 던전은 생물을 녹여내는 가스를 분출하더니, 지난 겨울부터는 겨울잠이라도 자는 듯 뿜어내던 가스도 모조리 흡수하고 고요하게 자리만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던전 입구를 탐지하던 기계의 수치가 이상하게 흔들려 본부에서 파견을 나온 것이 어제였다. 짐더미 위에 엉킨 로프를 주워들고 팔에 감아 정리하던 수애에게 직원이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야간 당번은 너지?”

“네. 저랑 여기 지부 센티넬이 같이 있기로 했어요.”

“네 가이드는?”

“중국 쪽에 일이 생겨서요. 아마 지금쯤 서울에 도착했을텐데 그냥 센터에 있으라고 했어요.”

“하긴, 어차피 너도 해 뜨면 서울로 돌아갈거잖아.”

“그 사람이 오는 것 보다 제가 아침에 가는 게 더 빠를걸요. 이 밤에 굳이 이동형 센티넬 도움 받기도 그렇고….”

“그래. 이상한 점 있으면 호출하고. 대기하고 있을테니까.”

“네, 주무세요.”

천막을 들추고 나가는 직원의 등을 보던 수애가 다시 고개를 돌려 로프를 마저 정리했다. 둘둘 감은 로프를 허리춤에 매고 손에 장갑을 끼우고 나서야 밖으로 나섰다. 반대편 막사에서 나온 야간 당번을 확인한 뒤 수애는 뒷짐을 지고 느리게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언젠가 보았던 절벽보다 더 깊고 어두운 던전 내부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안 쪽을 확인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원칙적으로 던전 내부 진입은 금지되어있다. 하나의 던전에서는 일정 이상의 몬스터를 뱉어내면 자동으로 닫히는 습성이 있었다. 굳이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문제 해결이 가능했으며, 던전 내부 탐색을 시도한 인원은 모두 실종된 이력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저 컴컴한 안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 멀리 러시아에도 몇 십 년 간 잠들어있는 장기 미처리 던전이 있다고 하니, 이 던전 역시 비슷한 곳이리라. 수애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제 반대쪽 허리에 달린 계기판이 이렇게 요란한 진동을 울리며 반응하지만 않는다면….

“……!”

제 허리에 매달린 기계를 움켜쥔 수애가 급하게 수치를 확인했다. 탐지기의 수치가 60이 넘었기에 파견을 나온 것이었는데, 지금 계기판이 가리키는 숫자는 90을 넘은 상태였다. 이미 몬스터가 쏟아져나와 포효한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숫자다. 다급하게 무전기의 전원을 켜고 잠들어있는 인원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탐지기가 이상해요. 제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요. 저수지의 수면이 이상하게 떨리는데 비슷한 영향 같아요.”

“이미 몬스터가 나와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수치가….”

“저기…! 던전에서 뭔가 날아오르고 있어요!”

누군가의 외침에 일제히 던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수지 깊은 아래에서 조금씩 거대한 형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나비같은 날개를 매단… 비행형 몬스터였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날개를 파르르 떨자 성인 남성 다섯명은 합친 것 보다 커다란 날개가 등에 펼쳐졌다. 기지개를 펴듯 길게 뽑아낸 다리에는 독수리와 같은 발이 달려있었다.

“다,당장 본부에 지원 요청해! 대기 중인 사람은 센티넬, 가이드 가리지 말고 보내라고!”

“단일개체예요.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유형인…!”

날개를 파드득거리며 내는 몬스터의 기괴한 비명소리에 수애가 귀를 틀어막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성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떠오른 몬스터를 바라만 보았다. 그 아래로 저수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러 센티넬의 모습이 보였다. 제각기 능력을 이용해 공격을 퍼부어보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날개짓으로 상처를 내는 몬스터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수애가 밀려오는 부상자를 붙잡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병상 사이를 뛰어다니며 능력을 쓰는 도중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 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설마, 계속 느껴지는 시선이….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부상자의 팔에 신경을 집중했다. 잘린 신체를 붙이는 것은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했기에 겨우 붙여낸 팔을 내려놓고 의자에 걸터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해!”

“…대피 ……야!”

“……잡아!!”

멍해진 귓가에서 울리는 외침에 고개를 들자 막사의 입구로 들어온 몬스터의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리에 꽂아둔 권총을 뽑아들었다. 몬스터에게 겨누려던 찰나, 매서운 발톱이 밀려들어와 안을 헤집었다. 천장을 지지하던 쇠파이프와 함께 발길질에 채인 수애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밖에서 센티넬들이 몬스터의 등에 공격을 퍼붓자 안을 휘젓던 발이 빠져나오고 날개를 움직여 높이 날아올랐다. 채이는 것을 대충 움켜쥐었는지 몬스터의 발에 막사의 찢어진 천과 수애의 모습이 보였다.

“…하, 윽… 아악!!”

거센 힘에 파이프에 부딪히며 갈비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흉부에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거기에 더해 강하게 움켜쥔 몬스터의 발 탓에 뼈가 틀어져 이 상태로는 치유 능력을 사용 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수애가 손을 들어 몬스터를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매달린 채 쏜 탓에 반동이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지금 공격하면 수애 떨어져요! 떨어지면 바로 던전이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그냥 두면 죽어. 무슨 방법을 찾아야… 쟤 지금 총 쏘는거야…?”

다섯 번의 총성이 더 울리자 몬스터가 다리에 피를 흘리며 날개를 주춤했다. 세게 쥔 발의 힘이 풀리자 덜컥이며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몸에 박힌 몬스터의 발톱이 빠지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대로 수애가 몬스터의 발목에 팔을 감아 매달렸다.

“흐으, 으윽…”

떨리는 숨을 내쉬며 머리를 굴렸다. 총알은 이제 다 떨어졌고 이 손을 놓으면 자신은 아래로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운 나쁘면 던전, 운 좋으면 저수지. 저수지에 떨어진다 해도 이 속도면 수면에서 몸이 터질지도 몰랐다. 내려가면서 쇼크사 할 수도 있겠네. 뭐 하나 희망적인 경우의 수가 보이지 않아 헛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자 저 아래 모여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 다급하게 달려오는 커다란 형체. 먼 거리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리 웨이였다. 걱정할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흔들리는 시야에서도 애써 그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괴성과 거센 날갯짓 탓에 들리지는 않았다. 부러진 뼈가 내부를 세게 찌른 듯 몇 번의 기침에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가 온 것을 보아하니 본부에서도 지원이 온 듯 했다. 수애는 깊은 숨으로 두어번 호흡하며 허리춤에 단 로프를 꺼내들었다. 한쪽 끝을 제 허리에 감고 남은 부분을 길게 늘여 몬스터의 발목에 휘감았다.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한 뒤 주머니에 넣어둔 무전기를 꺼냈다. 조금 부서져 작동할 지 의문이었으나 전원을 켜고 훅, 바람을 불어보았다.

[ …치칙, …아, …들리… ]

“수애야, 김수애. 괜찮아?”

무전기를 부서질 듯 세게 쥔 웨이가 떨리는 숨을 누르고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다.

[ …여기… 안… ]

“멀어서 잘 안 들리는 것 같아요. 지금 수애 씨가 너무 높이 있어서….”

옆에서 중얼거리는 직원의 말에 웨이가 무전기를 들고 저수지 가까이로 다가갔다. 위험하다며 말리는 팔들을 뿌리치고 하늘 높이 있을 제 센티넬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 들… 치직, … 려요… 웨이? 내 목소리 들려요? ]

“응, 들려. 말 해.”

[ …나 뛰어내릴거에요. 로프로 몬스터 발목에 감았고 나 뛰어내리면 공격해달라고 해주세요. ]

“그럼 너는…?”

[ 몬스터가 쓰러지면 나랑 같이 아래로 추락할거예요. 내가 완전히 빠지기 전에 구해주세요. …그리고 나 많이 다쳤어요. 그러니까 웨이가 치료해줘요. ]

무전기 너머로 태연하게 웃는 목소리에 속이 타들어갔다. 제 센티넬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성격이었지만 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 현장마다 덜덜 떨던 손과 두근거리던 심장을 알기에 지금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걱정할까봐 고통도 꾹 참고 멀쩡한 척 하고 있겠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응. 내가 해줄게. 그러니까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오기만 해.”

[ 웨이. 나 당신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건 진짜예요. 남이 알려준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느낀 감정이요. ]

“…笨蛋. 알고있어. 그러니까 얼굴 보고 다시 말 해.”

지직거리는 음성이 옅게 웃다가 작게 콜록인다. 손에서 미끄러졌는지 하늘 높이서 무전기가 저수지 아래로 추락했다. 깊이 가라앉은 무전기를 뒤로하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수애가 세운 계획을 모두에게 공유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저수지 주변을 둘러싸며 공격을 준비했다. 가운데에서 이들을 지휘하던 직원이 몸을 띄운 센티넬에게 당부했다.

“김수애가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대로 공격을 퍼붓는다. 지금 저 놈 얼마 남지 않았어. 몬스터가 추락하면 그 즉시 비행형 센티넬들이 김수애를 구조하는거야.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돼. 몬스터랑 같이 던전으로 추락하면 그대로 죽거나 실종이니까. 알겠어?”

수애가 팔을 느슨하게 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옛날에 그 절벽보다 훨씬 높네. 양 팔에 기다란 로프를 단단하게 감았다. 허리가 부러지는 것 보다는 팔이 빠지는 것이 훨씬 낫겠지. 심호흡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로 뒤로 몸을 눕혀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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