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ee

No. S-9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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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쳐진 커튼을 투과한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혔다.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웨이가 팔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폈다. 견갑골에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자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차라리 바닥에 모포를 깔고 잘 걸 그랬나. 뻑뻑한 눈동자를 돌려 곤히 잠든 수애를 바라보았다. 입원실로 병상을 옮긴 이후 진행된 정밀검사에서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회복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던전에 떨어진 영향인지, 충격을 받으며 능력을 쓴 탓인지 아직 그녀는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이제 겨우 삼일이 지났을 뿐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의사의 말에도 매일 밤 눈을 감으면 귓가에 일직선으로 곧게 이어지는 기계음과 같은 환청이 들렸다. 그럴 때면 몸을 일으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위 아래로 요동치는 그래프를 확인해야지만 다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녀가 자가호흡을 하고 심장이 온전히 뛴다는 사실만이 스스로를 버티게했다. 가끔 규칙적인 기계음과 서늘한 적막이 자신을 미칠듯 외롭게 만들 때면 수애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어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가늘게 호흡하는 숨소리와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심장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손을 맞잡으면 마른 땅에 단비가 닿은 것 처럼 제 기운을 열심히 삼키는 그녀의 몸 역시 자신을 안심시켰다.

“……. …으음….”

“…수…?”

“…ㅇ…웨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수애가 희미하게 이름을 뱉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그녀를 끌어안은 웨이가 덜덜 떨리는 팔로 작은 등을 토닥였다.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수애가 눈동자만 데록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장면을 회상해보았다. 몬스터의 발에서 떨어진 뒤… 공격이 이어졌고 몬스터와 함께 던전으로 추락했다. 분명 그랬었는데… 꼼짝도 못하고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리 웨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제 말은 들리지 않는 듯 그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웨이의 뺨을 감싸 눈을 마주보았다. 어쩐지 조금 젖은 것 같은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이 남자는 제가 잠든 동안 얼마나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했을까. 가늠도 되지 않을 고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부가 그새 거칠어졌나. 뺨을 쓸어보다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리 웨이. 나 봐요.”

“…….”

느리게 눈을 깜빡인 웨이가 제 뺨에 닿은 그녀의 손을 겹쳐쥐었다. 제 손 안에 폭 들어온 작은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겹쳐 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말랑한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던 웨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몸…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

“응. 괜찮아요. 오래 누워있었더니 뻐근한 거 빼고는, 발 끝까지 당신 기운으로 가득차서 오히려 좋은걸요.”

불안해보이는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수애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주 얇은 도자기를 만지듯 웨이의 손가락 끝이 수애의 얼굴에 닿았다. 동그란 이마부터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가지런히 뻗은 콧대와 말랑한 입술까지. 그제서야 그녀가 살아숨쉬는 것이 실감이라도 났는지 옅게 웃음을 지었다. 작은 미소를 확인한 수애가 웨이의 손을 들어 손등에 길게 입을 맞추었다.

“보고싶었어요. 많이요.”

“나도. 너 계속 보고싶었어.”

“계속 보고있었으면서. 나 얼마나 자고 있었어요?”

“삼 일. 계속 잠만 잤다.”

“어쩐지… 몸이 뻐근하더라니….”

팔을 뻗어 호출벨을 누른 웨이가 겨우 간이의자에 몸을 앉혔다. 얼마 되지 않아 의료진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단한 진찰을 하더니 밝은 표정으로 펜라이트를 주머니에 넣었다.

“회복속도가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대단하네요. 그래도 지속적인 추적검사는 필요하니 그 동안 가이딩 신경 써 주세요. 추가검진 진행할테니 결과 보고 이상 없으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빠르게 이어진 여러 검사들에 웨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직원의 만류에도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 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에 수애가 웃음을 터트렸다. 검사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다시 병실로 돌아온 수애가 제 손등에 달린 수액 줄을 정리하며 말했다.

“리 웨이…. 나 어디 안 가요. 같이 가도 밖에서 대기해야하는데, 이따가는 여기서 기다려요. 응?”

“이제 너 혼자 안 보내.”

“저 혼자서 아무데도 못 가요?”

“응. 절대 안 떨어져.”

“지난주에도 중국 다녀왔으면서….”

“이제 너 두고 갈 일 없다. 다 마무리 하고 왔어.”

“…뭘요…?”

“옛날에 했던 일. 과거. 깨끗하게 정리하고 왔다.”

그가 평생 양지에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그녀를 걱정한 변호사가 그에 대한 정보를 제게 알려주었을 때 그의 어린 시절은 빈말로라도 밝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그 때를 말 한 것일까. 수애는 말 없이 웨이의 손을 잡았다.

“…너 만나기 전까지 계속 도망쳤어. 도망치고, 도망치고.”

“…….”

“근데 이제 더 도망칠 곳 없다.”

“왜요?”

“너 두고 아무데도 못 가겠어. 너 데리고는 도망 못 친다. 그러니까 도망칠 수 있는 곳 이제 없어.”

“…리 웨이.”

“…?”

“그걸 좋아한다고 하는거래요.”

“…아닌데.”

웨이가 씰룩거리는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뜬 수애가 금방 눈꼬리를 축 내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작은 강아지처럼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웨이가 소리내어 웃었다. 병실 안을 가득 울리는 그의 웃음에 수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리 웨이…!”

“나 너 좋아하는 것 보다, 사랑해.”

“…!”

“너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지. 너랑 나, 이제 연애하는거야.”

내려간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이내 환하게 웃은 얼굴을 한 수애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웨이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我没有你不行。 我能肯定。 我们结婚吧。 언젠가 그녀에게 들려줄 말을 속으로 외워보았다. 입 안에서 굴러가는 간지러운 고백에 마음이 떨렸다.

“웨이. 나 빨리 집에 가고싶어요.”

“의사가 가이딩 신경써서 하라고 했다. 내가 똑똑히 들었어.”

“그래요? 그러고보니 병가가….”

“한 번, 두 번, 세 번. 가이딩 열심히. 많이.”

“…웨이…?”

“그래야 너 빨리 낫지.”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 그의 얼굴에 수애의 머리가 아득해져왔다. 듣기로는 병가가 한 달이 나왔다던데…. 하얗게 질린 수애의 뺨을 웨이가 톡톡 건드렸다.

小姐, 왜. 나랑 하기 싫어?”

“…! 그럴리가요….”

“좋다고 한거지? 허락한거야?”

“당연하죠….”

“계약서에 있는 내용. 나 기억해. 원치 않는..접촉은 일절, 금하며….”

“그건….”

“너 분명 좋다고 했다. 무르는 거 없어.”

앞으로의 한 달이 꽤나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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