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랑 로그
하루쯤은 놀아도 괜찮잖아요!
사각사각, 펜으로 글씨를 쓰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 안을 채워나간다. 시험 기간인 만큼 더욱 열심히!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왜인지, 이번 시험은 어려울까? 케이크가 먹고 싶어, 집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안 되는데, 교실에서도 집중이 잘 되는 건 아니지만…. 뭐 이런 생각들 말이다. 손은 충실히 문제집을 빽빽이 채운 문제들을 풀어 나가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옆자리의 남자친구와 데이트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니 미칠 지경이다, 렌즈를 낀 눈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뻑뻑하게 느껴지는지, 하나하나가 거슬린다. 상쾌하지 않은 교실의 꽉 막힌 공기도, 먼저 목소리를 내기 뭐한 답답한 적막도. 물론 빈 교실엔 자신과 남자친구 둘 뿐이었지만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서는 먼저 말을 꺼내기가 뭐하단 말이지. 땋인 머리 끝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펜을 내려놓는다. 탁, 하는 작은 소리가 적막을 깨뜨린다.
“왜 그래?”
“집중이 잘 안 되네요….”
“평소에는 집중 잘 했으면서.”
“아하하, 그런가요?”
-컨디션 안 좋아? 남자친구의 물음에는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민준, 이건 그저 공부하기 싫다는 표현일 뿐이에요. 하면서. 공부를 즐겨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다면 하는 타입이었는데, 오늘따라 집중력은 왜 이리 와르르 무너지고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괴물의 입 속처럼 새파란지. 모든 것이 공부는 나중에 해! 라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주님, 제게 빛을 주시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를 악에서 구하소서…. 속으로 짧은 기도문을 외우며 검지 손가락에 끼워진 묵주반지를 한 바퀴 돌린다. 아, 이것도 공부를 하기 싫어서 하는 행동 같잖아. 생각하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바라보면 뭔가 안절부절해 보이는 남자친구의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앗, 신경쓰이게 해 버렸어. 하며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공부하기 싫은데 이야기나 나눌까요?”
“그럴까?”
오늘은 렌즈가 초록색이네, 렌즈 색의 변화를 알아챈 남자친구의 말에 앗,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알아채 주시네요? 하면서. 파랑색 렌즈 사용 기한이 지나서 초록색으로 껴 봤어요. 오랜만에 파랑색 렌즈 말고 다른 색 렌즈를 보니까 새롭지 않아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 원래 눈 색도 예뻐, 남자친구의 말에는 작게 음-. 하는 소리 낸다. 머리도 눈도 전부 새하얀 색이면 좀 그런 것 같은데, 어릴 때는 유령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니까요. 원래 눈 색이 예쁘다고 해 준 사람도 민준이 유일해요. 쫑알쫑알 내뱉고, 남자친구는 그런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
“이제 공부하기 싫은 건 좀 괜찮아?”
“아니요!”
“아니구나.”
나도 그래, 이어 들려오는 말에 푸스스 웃는다. 우와, 민준도요? 저희 이렇게 앉아 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요. 덧붙이면서. 날씨는 좋고, 하교 시간이 꽤 지나서 다른 학생들은 학원에 갔을 거고, 그래서 거리는 한적하겠죠?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말에 남자친구가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민준.”
“응?”
“여기 재미없죠, 나갈까요?”
양 손을 책상에 올리고 턱을 괸 채 사르르 웃는다, 넘어갈 수밖에 없는 미소. 공부는 내일 하고, 오늘은 저랑 놀아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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