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SS

20240101

- 공식 일러스트 기반 사이버펑크 세계관 날조 낙서글 

- CP 요소 미포함 (NCP)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멈추고 일순에 굳어버린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 정도로 커다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 했다면 마땅히 그럴 수밖에. 커다랗다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장신에 덩치가 좋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존재감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감지한 깊이는 달라도 자리에 있는 전부가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는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리라.

“흐음.”

그는 문 앞에 서서 본인을 바라보는 얼굴 네 개를 쑥 훑었다. 하나 같이 당혹스러워하는 기색과 대조적으로 그는 몹시도 태연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센쿠는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빠르게 허리로 손을 가져다 댔다.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인 남성 하나를 제압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였다. 남자는 위협을 느낀 정도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저격당할 가능성을 깨달았는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거기에서 손 떼는 게 좋을걸.”

남자는 아주 살짝 커졌던 눈을 반대로 휘고, 옅은 웃음기를 섞어 말했다.

“총을 겨눌 수 있는 건 본인도 겨누어질 각오가 된 사람뿐이거든.”

굉장히 천연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 또한 무장된 상태라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게다가 단순한 직감이긴 하나, 그는 이 전자식 권총을 다루는 데 상당히 능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센쿠 본인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렇지 않나?”

그는 이제 오롯이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주었다.

“S2A-4 기동부대 올빼미조 식별코드 000AF65 사이온지 우쿄.”

이 자리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에 가장 익숙할 사람에게.

“어떻게….”

“그리고 이시가미 센쿠, 아사기리 겐….”

당사자가 경악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훑어 옮기며.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물처럼 흐르던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두 가지 경우겠지. 사─ 내 정보통이 실수로 누락된 정보를 전달했거나, 네가 주민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불법 밀입국자거나. 하지만 전자일 가능성은 결단코 없어. 즉 너는 이 도시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뜻이지. 내 말이 틀렸나?”

크롬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머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곤혹스러운 감정에 엄습 당해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무엇도.

“걱정하지 마, 고발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으니.”

남자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대치하고 있는 넷에게 다가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가 관심을 준 것은 뜻밖에도, 또 긴장감이 낮게 흐르는 이 상황에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방 한편에 놓인 냉장고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를 열어 안에서 음료수 한 캔을 꺼낸 뒤, 옆에 있는 테이블에 과할 만큼 편한 자세로 앉았다.

“내 콜라….”

그가 캔을 따자 겐이 낮게 읊조렸다. 의식하고 내쉰 말은 아니었다. 단지 물가가 불안정한 이 도시에는 저 작은 음료수 캔 하나도 큰맘 먹고 사게 되는 물건이라는 점이 그를 슬프게 했다.

“너 뭐야?”

그래도 그 덕분에 센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말한 대로 총을 쏠 마음도 맞을 각오도 당장은 없었기 때문에 허리에서 손은 뗀 상태였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묻는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속에는 날이 서 있었다. 남자도 그것을 느끼지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변함없이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 그는 꿀꺽꿀꺽 소리가 나도록 음료수를 들이켠 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보름 전에 C지구와 F지구 내 기밀문서를 폭로한 거 너희지? 이튿날에는 해당 구역을 거점으로 한 기업들이 기술 관리 사업에서 어떤 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공개했고. 덕분에 그 동네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와 폭동이 이어졌지.”

마지막 마디에서 남자는 우쿄에게 시선을 주었다. 우쿄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어두워진 안색이 무엇을 표하는지는 명백했다. 그는 남은 음료수를 입에 털어 넣은 뒤 덧붙였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난처해지는 입장이거든, 나는.”

남자는 이미 몇 번이고 충격을 주었지만, 단언컨대 이 말이 가장 큰 공포였다. 역시 정부의 개, 끄나풀이었나?

“원하는 게 뭐야?”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우쿄였다. 반역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가장 곤란해질 처지니 급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남자도 이를 읽었는지 “훗….”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너희 하는 일에 나도 끼워줘.”

그러고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내쉬었다. 내용에 담긴 무게에 비해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말을 꺼낸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사람 얼굴에 직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경악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방금 난처해지니 어쩌니 하지 않았어?”

지적한 것은 겐이었다.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기는 한데 상관없어. 너희가 날 받아주기만 한다면.”

대조적으로, 또 여전하게도 남자는 태연했다.

“이해가 안 되는데….”

겐과 같은 얼굴로 크롬이 말했다.

“우리가 너를 받아들여서 얻는 이점이 뭔데?”

와중에 센쿠는 누구보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현실을 보았다.

“N사 알아?”

남자는 한층 흡족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이런 반응을 기다렸어, 그리 말하고 싶은 것처럼.

“그, 유통하고 물류 사업을 하는 해외 기업?”

“이 도시에서는 그런 걸 주로 하지. 실제로는 범주가 훨씬 넓지만.”

진정 대단한 것은 해외 기업이라면 독이라도 풀린 것처럼 다 죽어 나가는 이 도시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는 점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정보가 아니었다.

“내가 거기를 잘 알거든.”

남자는 이제 고개는 고정한 채 눈동자만 굴려 방 전체를 쭉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기계 부품과 그것을 만지고 조립한 공작 흔적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업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이에 대해 너희가 물질적으로 치를 대가는 없고 말이지. 오히려 필요하다면 금전적 지원도 가능해.”

센쿠는 혹한다는 기분이 어떤 맛인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근래 유달리─자금에 관련된 것은 항상─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었으니. 마른 땅에 때마침 쏟아진 비라는 게 이런 건지도 몰랐다.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늘 가능한 것도 아니고 범위 역시 다소 제한적이기는 하겠지만, 정보를 구하는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너희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또 너희 신원을 어떻게 알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이 정도는 쉽게 가능하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크롬에 대해 말할 때 정보통이 어떻다고 했지. 배경은 알 수 없어도 그 정보통이라는 사람도 범재는 아닐 게 분명했다. 도시를 장악한 기업과 그 기업이 부리는 유능한 수하들도 쫓지 못 한 우리를 겨우 한 사람이 찾아낸 것이라면, 또 그 한 사람이 저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남자와 척지는 것은 미련한 행동일 터였다.

“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너희보다 구애받는 것도 적어서 다방면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이 역시 두루뭉술하게 설명해도 결코 헛말은 아닐 터였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센쿠가 말하자 그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목에 걸친 헤드셋 위로 금색 머리카락이 쏟아지듯이 흘렀다. 고려할 점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점이었으나 애초에 그런 것을 신경 썼다면 나머지 동료들도 모으지 못 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이게 중범죄라는 자각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왜 하고 싶어 하는 거야?”

가장 근본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었다. 센쿠는 나머지 동료들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졌던 때를 회상했다. 대답은 각기 달랐다. 센쿠짱을 혼자 두고 싶지 않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덜 불합리하게 살게 할 것 같으니까, 내가 추구하는 정의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으니까…….

“난 이 세상 모든 것을 원해.”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목소리는 오늘 들려준 어떤 소리보다 기개 넘치고 강직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어. 그렇기에 나는 그저 바꾸고 싶을 뿐이다.”

이제 그는 고개를 바로 들어 마주 선 네 사람을 올곧이 보았다. 다색 눈동자는 확신에 넘쳐 빛나고, 절대 꺾이지 않을 것처럼만 보였다.

“이는 너희들도 마찬가지지, 아닌가?”

네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잔잔히 웃을 뿐이었다.

조금 뒤 대표로 나선 것은 센쿠였다. 이제 그는 허리에 찬 총집이 아닌 마주 선 남자가 보는 앞으로 손을 움직였다. 어서 와, 잘 부탁해. 판에 박힌 인사말은 재미없고 필요도 없었다. 남자도 틀림없이 똑같이 생각하리라고 어째서인지 믿을 수 있었다.

“뭐, 네가 누군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대단하고 이상한 놈이라는 건 알겠어. 이름이….”

“나나미 류스이.”

류스이는 손을 가볍게 맞잡은 뒤 놓았다. 센쿠가 한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 던진 말은 그게 다였다. 대신 입가에 번진 미소를 거두지 않고 바라다보았다. 이제는 동료라고 칭할 수 있게 된 존재들을.

 

“그래, 나나미 류스이….”

처음 되뇐 것은 의식 없이 행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나나미?”

하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그 이름, 구체적으로는 성이 영문 모르게 익숙하고 어디에서인가 분명 들어본 적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을 때, 바로 직전에도 언급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센쿠는 크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N사?”

의문을 구체화해 말한 것은 뒤에서 듣고 있던 우쿄였다.

“맞아.”

류스이는 어김없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동료들이 얼이 빠진 눈으로 바라보든 말든.

“너 뭐야?”

같은 질문을 같은 사람에게 반복했다는 것은 물론, 답을 알아차렸으면서도 묻고 말았다는 자각 같은 건 지금 센쿠에게 없었다. 그 정도로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류스이도 느낀 것이 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웃을 뿐이었다. 이 상황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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