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겐(DCST)

[센겐] 시간여행 소재

제목없음 by 하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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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소재, 성인(3n) 센쿠와 고등학생 겐이 등장합니다.

* 제목 나중에 바꿈

* 위의 모든 사항이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또한 일부러 일→한 번역투를 사용하려고 한 곳이 있는데 거슬리시면 피해주세요. 겐 말투는 일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ㅡ 센쿠쨩, 죽음이라는 건 그렇게 두려운 게 아니래. 삶과 죽음은 이어지는 과정인 것이잖아. 어느 날 찾아오는 재앙이라기보단 상태 변화! 익숙하지?

ㅡ 비가역적이며 영구적인 모든 변화는 어떤 의미로는 상실에 가깝지 않나? 뭐 물질적으로야 그렇겠지만,

ㅡ 만약 죽는다고 해도 우리는 디지털 속이나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테고. 그러니까 죽음을 너무 두려워해선 안 된대. 요즘 우쿄쨩이 추천해준 만화를 보고 있는데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구~ 감명 깊지 않아?

ㅡ 아아, 그런 거였냐…….

2,382번째로 실패한 결과물을 눈앞에 두고, 센쿠는 언젠가 나눴던 겐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생각해보면 겐은 유독 그런 것에 관심을 보이곤 했다. 사후세계라든가, 상실과 죽음과 인간의 생명력에 관한 것들.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겐이 처음 그런 말을 했었을 땐, 센쿠도 겐의 어깨를 쥐고 흔들며 "네놈, 병이 있으면 빨리 내게 말하고 같이 병원을 가." ㅡ따위를 말했더란다. 겐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2년에 한 번 받는 건강검진을 착실히 받고 있다며, 천재 과학자이자 발명가이자 교수의 유일한 옆자리에서 호사를 누리는 삶을 질릴 때가지 이어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센쿠는 그 포부가 기꺼워 한숨 같은 웃음을 작게 흘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겐은 그저 생각보다 빨리 질려버렸던 것뿐일지도 몰랐다, 이 세계에.

아사기리 겐의 사인은 과다 출혈이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교통사고. 겐은 로드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타 있었고 그날은 기록적인 폭설로 4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는 속보가 온 공중파 채널에 울리고 있던 날이었다. 센쿠는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축제 분위기인 연초였지만 센쿠만은 늦은 밤까지 홀로 연구실에 남아서 학생들의 볼품없는 졸업논문을 찌푸린 표정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밤늦게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도 반사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겐을 생각했다. 겐이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곳으로 로케이션 촬영 스케줄을 나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겐의 귀가는 분명 이틀 후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안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겐은 떠나기 전 연말과, 연초와, 연인인 센쿠의 생일을 한 번에 스킵하는 게 미안하다며 온갖 난리를 쳤다. 가장 대단했던,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이스했던' 것은 겐이 센쿠의 실험용 가운을 빌려 그것만을 걸친 채 섹스를 했던 일이었다. 연인으로서 사랑스러운 연인의 애교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센쿠도 웃으면서 색다르고 긴 밤을 함께 보냈긴 했지만 센쿠는 사실 처음부터 겐의 '도이히한' 스케줄에 마음 상해하지도 않았었다. 센쿠만 해도 연구나 출장으로 연에 서너 달씩 겐의 곁을 비우는 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작 일주일 가는 출장에 이렇게까지 하는 연인이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다.

빨간 표시가 가득한 논문의 여덟 번째 장을 넘겼을 때 센쿠는 마시고 있던 에너지드링크를 떨어뜨렸다. 팅ㅡ 티그르, 하고 캔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속에 남아있던 액체가 바짓단에 튀었다. 속보 위로, 추돌사고 차량엔 연예인 '아사기리 겐'의 개인차량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글자가 덧입혀졌다.

센쿠는 정신 없이 달려 자동차에 올라탔다. 겐의 업무용 핸드폰과 개인용 핸드폰에 번갈아 끊임 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착신하는 이는 없었다. 이시가미 센쿠와 아사기리 겐은 분명 오랜 연인이었지만 그 관계를 아는 것은 센쿠의 오랜 친구와 센쿠와 겐이 주기적으로 함께 봉사를 가는 보육원의 관계자 일부 정도가 다였다. 세간에서 그저 둘은 가십난 구석에 있는 '연예계! 의외의 친분!' 코너에서 41위 정도를 차지하는 소소한 관계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한낱 친구에 지나지 않은 이시가미 센쿠에겐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게 당연할 것이다.

센쿠는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대학교에서 출발한 센쿠는 고속도로에서 환자를 운송하는 구급차 몇 대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센쿠는 온몸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경험했다. 폭설과 사고. 연초의 고속도로. 정체 현상. 끼익, 쾅.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사고현장이 눈 앞에 그려졌다.

겐의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 로드 매니저와 아사기리 겐 네 명은 모두 그 사고로 죽었다.

연예인의 객사로 TV는 연일 시끄러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시가미 센쿠는 소속 대학에 병가를 냈다.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미국의 동료들에게도 사정을 전했다. 아사기리 겐에겐 아무런 혈육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소속사가 모든 일을 떠맡아야 했다. 센쿠는 겐이 생전에 써둔 유서ㅡ잊고 있었지만,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겐도 몰랐을 것이다. 센쿠와 겐은 겐의 권유로 유사시를 대비한 유서를 작성해 함께 보관했다.ㅡ를 들고 변호사를 대동해 겐의 소속사에 찾아가서야 여러 권한을 양도받을 수 있었다. 센쿠는 겐의 시신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미 발인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소속사에서 겐을 담당하고 있던 팀은 센쿠가 겐의 장례 등의 권리를 주장했을 때 나쁘지 않은 안색을 보였다. 다만 어떤 눈초리가 비쳤을 뿐이다. 예를 들어 겐과 그저 친구 사이라기엔 제법 각별하게 굴지 않나, 혹시 스캔들이라도 난다면 우리가 대응을 해야 할까, 하는 표정. 센쿠는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센쿠는 겐의 유골함을 인계 받으며 겐의 소지품 몇 가지도 함께 전달받을 수 있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핸드폰, 피가 묻은 지갑, 반지 같은 것들. 현실을 인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겐의 사인이 과다출혈이라는 점만은 끝내 마음이 쓰였다. 병원에 빨리 도착했다면 살 수 있었을까. 겐이라면 상처를 지혈하는 것쯤은 쉬웠을 텐데. ……아, 정신을 잃은 상태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너무 외롭고 아팠을 테니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센쿠에게도 더 편했다. 추운 눈 속에서 피를 흘리며 점차 흐려져 가는 의식에서 그는 무엇을 봤을까. 대체 무엇을.

오랜 친구인 타이주와 유즈리하의 도움 끝에, 센쿠의 병가가 끝났다. 납골당에는 까마중이라는 이름의 흰색 꽃과, FISM의 수상기록, 즐겨 사용하던 트럼프 카드와 몇몇 팬레터가 장식됐다. 센쿠와 둘이 찍은 사진은 아주 작게 인화되어 겐의 반지와 함께 안쪽 깊은 곳에 비치됐을 뿐이었다. 센쿠는 일처리를 도와준 둘에게 건조한 감사를 표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선 밀린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그리고 사직계를 작성했다. 개인적인 사유로 더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새 학기를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인수인계는 비교적 빠르게 끝났고, 센쿠는 팀 프로젝트에서도 하차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노에게 전했다. 제노는 센쿠의 사정을 알기에 더욱 만류했지만 그의 태도는 퍽 완고했다.

센쿠는 연구를 시작했다. 터무니 없게도, 그것은 '아사기리 겐'을 만들기 위한 연구였다. 겐의 시신이라도 온전히 내게 있었다면,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는 시도가 더 가치 있었을까. 과학으로 생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도 한 7세쯤부터.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그 이유를 고작 '신의 권능' 따위로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복제도 아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학계에 보고된 바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센쿠는, 이런 것에라도 매달리지 않고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센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언컨대 성인 남성의 시체조차도 만들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기초 상식만으로도 장기의 위치는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창조해낼 수 있을 정도로 구조를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뇌를 만드는 법도, 심장을 만드는 법도 모른다. 우심실과 판막과 동맥을 알아도 그것을 만들 순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이란 세상에 없을 것이었다. 생명이란 참 덧없어서 소중한 것일까. 그래서 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낮과 밤이 수없이 흘렀다. 한계까지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는 비정상적인 삶이 반복됐다. 삼천 번의 시도, 삼천 번의 실패. 그리고 그 끝에, 센쿠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ㅡ 센쿠쨩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다른 선택을 했겠다~ 싶은 거 없어?

ㅡ 인간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해.

ㅡ 에에, 타임머신이라든가? 왜 SF에 많잖아.

ㅡ F는 Fiction. 크크크, 타임머신 같은 게 있었다면 진작 히틀러는 암살됐겠지. 고흐도 결코 가난한 삶을 살지 않았을 테고 말이야. 아니면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싶네, 내 먼 조상을 죽임과 동시에 내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거야. 타임 패러독스의 비밀을…… 흥미로운데, 이거.

ㅡ 하아, 이럴 땐 센쿠쨩 낭만이 부족하다니까~ 요즘 SF물엔 절대 흐름을 바꿔선 안 된다는 규칙을 넣는다고.

ㅡ 뭐야, 그럼 돌아간다 해도 아무 것도 못 하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잖아?

ㅡ 어…… 그렇게 되는 건가?

센쿠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생명을 만드는 것보다, 너를 닮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 내가 네가 존재하는 시간선으로 가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그 순간 타임 패러독스, 양자역학, 광속 같은 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센쿠의 새로운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센쿠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감각도 정상, 신체도 정상.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제 가설에 따라 실험이 성공한 것이라면 시간대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이번엔 무려 사천 번에 가까운 트라이였다. 수많은 에러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개선하고…… 그 과정에서 몇 년이란 시간이 낙수처럼 흘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린 지금, 그 과정들은 모두 값진 시간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ㅡ비록 여기가 도저히 어딘지 모르겠는 길바닥이라는 것은 센쿠에게도 당황스러운 요소였지만, 그나마 모든 간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걸친 흰색 가운과 그 안의 평상복 외에 가지고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아무런 화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센쿠는 몇몇 간판을 넘기고 익숙한 대형마트 표식을 향해 달렸다. 으레 가전제품 코너에선 시대를 막론하고 상시 디스플레이중인 TV가 있다, 까지 생각이 미친 참이었다. 

"어?"

막대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학생은 먼저 소리를 내서 센쿠를 알아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ㅡ그것이 아니었다면 센쿠는 무단횡단을 했을 것이었다. 소년은 천천히 센쿠에게로 걸어왔다. 뚜렷한 방향성을 띤 걸음, 분명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한 얼굴이었다.

온통 검은색인 머리, 앳된 얼굴, 가쿠란 차림의 고등학생, 하지만 반짝반짝한 눈.

그리고 익숙한 체향.

그건 틀림 없는, 과거의 '아사기리 겐'이었다.

'겐…….'

이시가미 센쿠는 누군가의 연인이었지만, 동시에 동시대 최고의 과학자였다. 정신 나간 과학자란 소리를 들으며 연구를 진행했을 때 숱하게 찾아보았던 논문 속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타임 패러독스' 같은 어휘들이 경고음처럼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울렸다. 하지만 센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였는지 어떤 강제력이었는지 판가름할 수도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네가 죽은지 7년이 지났는데, 나는……. 센쿠는 필사적으로 생리적 반응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숨을 참는 것과도 비슷한 행위였다. 어느덧 소년은 센쿠의 앞에 서있었다.

"저기요, 형."

"……."

"……설마 우리말을 모르는 건 아니죠? English?"

"……그건 아닌데,"

억눌린 목소리가 나왔다. 센쿠는 그것마저 신경쓰였지만 소년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휴, 다행이다. 영어 회화엔 아직 그렇게까지 자신 있지 않거든요~ 그것보다 형, 시간 여행자죠?"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센쿠 자신조차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뭐?"

"이마 위에 그 표식이요! 시간 여행자들은 모두 몸 어딘가에 독특한 문양을 가지게 되거든요. 'S 프로토콜'을 이용한 사람들의 표식인데, ……어, 보통 이용하기 전에 말해주지 않나?"

"어떻게……, 어떻게 그런 걸 알아?"

소년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까닥이더니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그곳엔 포스터가 하나 붙어 있었다. 고등학생 최강의 영장류 '시시오 츠카사'. 갈라진 얼굴의 금. 그리고 그 밑에 써진 '미래에서 나타난 고등학생'. 이게 뭐야? 센쿠는 포스터로 가까이 다가갔다. 포스터의 하단엔 작은 글씨로, '202X년의 미래에서 도달한 고등학생 소년. 그의 격투기 종목 제패는 기록적인 일로 사람들은 타임 트레블러(시간 여행자)들의 스포츠 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따위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듯 들어오는 것에 센쿠는 이마를 짚고 살짝 비틀거렸다. 대체 이게 뭐야?

"……여기가 몇 년도지?"

"나왔다~ 그 질문. 지금은 201X년이라구요♪ 형의 반응을 보니 제대로 안내 받은 게 아니죠? 조금 수상하긴 하지만…… 뭐, 같이 구청에 가드릴게요. 시간 여행자들은 모두 신분을 새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아."

센쿠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거침 없이 손을 뻗어놓고는 겨우 가운 끝을 붙잡았다. 그 모습은 영락 없이도 이시가미 센쿠가 낱낱이 알고 있던 아사기리 겐 같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소년은 가슴팍에 자수로 새겨진 이름을 보더니 멋대로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이시가미, 센쿠? 이렇게 읽는 거 맞나?"

"……그래. 네 이름은?"

"전 아사기리 겐이에요. 이시가미 형. 구청까지 걸어가는 거 괜찮죠? 여기서 가까워요."

"그래."

센쿠는 여전히 멍한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분명 이 소년은 아사기리 겐이 맞았지만, 세계가 주는 정보값이 너무 방대하고 상식과 달라 어지러웠다. 센쿠는 소년에게 이끌려 도보를 걸으면서 문득 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인지 물어봤다. 이 시대의 겐은, 아직 센쿠와 어떠한 인연도 닿지 못한 시점이었다. 센쿠가 겐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분명 성인이 된 이후였다. 그러니 질문엔 연륜으로 덧칠된 어떤 염려가 들어 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도 평범한 고등학생의 것이어서 센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봉사시간 받으려고요!" 어딘가 쾌활하기까지 한 익숙한 그 말투에 센쿠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들었다가 황급히 관두었다. 앞에서 걷고 있는 한참 어린 겐은 바깥에서 거리를 청소하는 것보단 시원한 구청에 앉아 있는 게 더 좋다며, 이번 여름에 몇 차례고 미화 봉사를 빼먹었다는 이야기까지 해주었다. 겐, 과거의 넌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네. 아니, 언제나 귀여웠긴 했지만…….

세상은 분명 지나간 과거였지만 센쿠가 기억하는 것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과학의 수준도 그렇고, 시간 여행이라는 문화가 팽배한 것도 그랬다. 사실 센쿠는 '고등학생 겐'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가 거대한 트루먼 쇼라고 믿었을 것이었다.

애초에 이 시대는 센쿠가 살던 그 시대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1n년 전이라 센쿠의 기억이 퇴색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분명 세계의 여러 것들이 다르다. 센쿠가 살던 시간대에는 단 한 순간도 시간 여행자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시오 츠카사의 얼굴에 그런 금이 있는 사진 또한 단 한 장도 보지 못한 것이다. 시간 여행이라기보단, 이곳은 패러렐 월드에 가까운 것인가? 그렇다면 이 시대의 아사기리 겐은 평행세계의 아사기리 겐이라고 보는 게 더 가까운 것일까…….

센쿠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이래서는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주식 동향이나 복권의 당첨 번호를 외우는 게 무용지물이잖아, 라는 가볍고 흔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구청에 도착한 센쿠는 간단한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 새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뒷면에 쓰인 주소는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면……, 이 시대라면 분명, 중학생인 나와 바쿠야가 있을 것 같은데. 센쿠는 옆에서 팔자 좋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겐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건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처음 보는 어른에게 이것저것을 질문 받으면 아무리 네 녀석이라도 곤란하겠지. 센쿠가 무언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챘는지 겐은 근처 편의점에라도 가자며 센쿠를 이끌었다.

소년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콜라 한 캔을 마셨다. 편의점 내에서 겐은 내내 뭐라도 먹어야하는 것 아니냐며 센쿠에게 친절히 이것저것을 권유했지만, 센쿠는 고등학생ㅡ이자 미래의 연인ㅡ에게 뭘 얻어먹어야 하는 처지인 자신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 끝끝내 고개를 저었다. 결국 겐은 생수 한 병을 구매해서는 센쿠에게 내미는 게 전부였다.

"그보다 말이야, 물어보고 싶은 게 두 개 있는데,"

"네에. 원조교제 제의라거나, 가출 청소년으로 의심한다거나, 기타 등등이 아니라면 대답해드릴게요!"

겐은 아까 구청에서 발급받은 봉사활동 확인서를 달랑달랑 흔들며 웃었다.

"어떻게 내가 시간 여행자인 걸 알았지?"

"아? 그건 아까도 말했지만 얼굴에 표식이……,"

"아니, 다른 시간 여행자들도 이곳에서 멀쩡히 살아가고 있잖아. 나도 시간 여행자…긴 하지만, 어쨌든," 센쿠는 어색한 표현에 살짝 말을 더듬었다. "난 이곳에 도착한 직후였어. 네가 때마침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 했을 거야."

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한번 까닥였다.

"음, 그건 말이죠, 저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 그제서야 센쿠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너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 타인을 잘 관찰하고, 그의 기분이나 심리를 제멋대로 파악하는 녀석. 하지만 그걸 무기로 휘두르지 않고 상냥하게 사용하는 녀석. 그걸 본업으로 삼을 정도로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스스로 사랑하는 녀석.

"뭔가 당황하는 것 같았고, 길을 잃은 사람인가~? 싶기도 했고, 그런데 마침 얼굴의 표식도 보였고……. 병원이나 경찰서나 구청이나 어느 한 군데는 데려다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뿐이니까~"

그 선택지에 병원도 있었던 거냐, 라고 말하기엔 스스로 내려다보아도 흰 가운이 묘하게 보이긴 했다.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어."

"네에~ 원조교제는 사양이지만,"

"넌 어떻게 시간 여행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음," 겐은 무언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부모님이 시간 여행자예요."

"……부모님이?"

센쿠가 기억하기로는, 겐은 센쿠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홀로 살고 있었다. 사귄 이후에도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만 말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 같은 건 하지 않아서, 꺼내고 싶지 않은 화제라 생각해 굳이 더 묻지도 않았던 것이다. 역시 이 시대는 센쿠의 '과거'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간 여행자라는 것은……,

"어느 날 미래의 부모님이 짠, 하고 오셨지요. 물론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따로 살고 있지만,"

빈 캔이 살짝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가만 이야기를 듣던 센쿠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파악했다. 이 시대의 겐의 부모님이 미래에서 과거로 온 것이라면, 원래 존재하던 겐의 부모님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아니, 그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이시가미 센쿠'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잠시만, 그러면 원래의 네 부모님은?"

"네?"

"그분들을 네가 만난 거면, 너랑 지내고 있던…… 부모님은?"

겐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형,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거예요?"

어딘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겐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다른 시대에서 시간 여행자가 오면, 이 시대에 있던 원래의 그 사람은 사라져요."

"뭐?"

사라진다고? 센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다면 겐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 건…….

겐은 빈 콜라 캔을 쓰레기통에 가볍게 던져 넣었다. "이제 정말 가봐야겠어요," 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천진난만한 것이었지만 분명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센쿠는 겐을 붙잡으려다 그만두었다. 겐은 매정하게 등을 돌려 걸어가다 한숨을 푹 쉬곤, 잰걸음으로 센쿠에게 돌아왔다.

"아까 받은 ID카드에 써진 주소로 가요. 그리고 가족들이 있다면 사과를 하세요. 잘못한 게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도 말이에요."

"응, 그래, 그럴게, 꼭."

센쿠는 어딘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이거 고마웠어요."

겐은 예의 그 봉사활동 확인서를 팔랑팔랑 흔들며, 멀어져갔다. 그래서 센쿠는 정작 고맙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참 웃기지, 그저 죽은 너를 한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그 일념 하나로 훌쩍 시간을 넘었더니 졸지에 사과할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생각해보면 식음을 전폐하고 이 이상한 이론에만 매달리고 있었을 때도 센쿠는 친구도 가족도 전부 저버리곤 연락조차 하지 않았었다. 결국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사과 한 마디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왔으니, 여기서라도 사과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 친구 타이주와, 집에서 중학생 센쿠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바쿠야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느 순간 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너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면…… 분명 무턱대고 끌어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주먹을 말아쥐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에 센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문득 이 시대의 아사기리 겐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예감보다 예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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