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겐(DCST)

[센겐] Love도 Like도 중독성의 환상?

일상현대AU

제목없음 by 하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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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루에 1441번씩 보면서 쓰는 글 T-T👍👍👍👍👍

* 뭐든지 괜찮으신 분만. 일부러 일→한 번역투를 사용하려고 한 곳이 있는데 거슬리시면 피해주세요. 겐 말투는 일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


"전 가르치는 것에 흥미가 없다니까요."

센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그 행동은 분명 연장자이자 (준)고용주 앞에선 꽤 무례한 것이었으나 '이시가미 센쿠'라는 네임 밸류는 그의 연구실을 넘어서서도 꽤 큰 것이어서 이마의 땀을 훔치는 것은 머리가 홀랑 벗겨진 카세키 교수여야 했다.

"그래도 한번만 생각을,"

"전 그저 이곳의 연구 시설이 마음에 들 뿐입니다."

국내 최고의 대학을 고작 '이곳'이라고 칭하는 센쿠의 태도는 지나치게 뻔뻔했지만, 이시가미 센쿠의 이름으로 된 특허 수백 개와 나나미 재벌가의 전폭적인 후원, 그의 연구실 입성을 희망하는 수많은 석사들의 향연을 생각하면 더 강경하게 굴 순 없었다. 애초에 미항공우주국에서 일하는 부친을 따라가지 않고 국내에 남아 '집'을 지키겠다며 선뜻 미국행을 거절한 것만 해도,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에 있어서 크나큰 이득이었다. 이시가미 센쿠는 삶의 여러 관계에서 을이 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카세키 교수는 예상했던 매정한 반응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것보다 그 모델링 건인데요, 수정 사항입니다."

"조교에게 전해두게……."

"크롬 녀석, 어디 갔는지 연락도 안 된다고요."

그렇게 센쿠는 카세키에게 불친절한 설명을 몇몇개 덧붙였을 뿐인 USB를 떠넘기고선 가벼운 마음으로 연구실을 나섰다. 하여간, 만날 때마다 귀찮게 구는 영감이라니까. 이시가미 센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곧 그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게 분명한 크롬을 떠올렸다. 카세키가 정년퇴직할 나이를 앞두고서야 새로 들어온, 새파랗게 어린 연구원. 손도 빠르고 맡은 일도 잘 처리하는 데다가 호기심도 많고, 무엇보다 본인과 닮았기도 했다. 물론 관심 있는 분야가 아주 넓다는 점에 한해서 말이지만. 사실 센쿠가 크롬에게 있어 가장 마음에 든 점은, 그가 '이시가미 센쿠'를 대하면서 주눅 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 놈의 연애 뇌 정도이려나……."

* * *

이시가미 센쿠는 방금 자판기에서 굴러나온 몬스터 캔의 입구를 아랫니로 문 채로, 제 연구실 옆에 당당히 붙어있는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국내 최고의 멘탈리스트 「아사기리 겐」의 Love Like Magic Show……. 연애의 심리 매직……? 웃기지도 않는군. 오후 5시라는 애매한 시작 시간은 대학생들의 일과에 맞춘 것이 분명했다.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 정갈하게 붙여진 테이프를 뜯어 포스터를 손에 듦과 동시에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우와, 깜짝, 앗, 죄송해요, 교수님!"

"난 교수가 아니라고 했잖아."

"네, 이시가미……님! 그, 앗, 그거! 아까 내일 뗀다고 하길래 그냥 붙이라고 뒀는데, 바빠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참 죄송할 일이 많은 사람이네. 포스터 위엔 연구실 조교가 찍은 부착 허가 확인 도장이 착실하게 찍혀 있었다. 오묘한 표정의 남자가 끼고 있는 흰색 장갑 위로, 살짝 밀려 번진 'SENKU'라는 붉은색 도장 자국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아, 그리고 아까 제2연구실의 크롬이 왔었는데……."

"크롬이?"

"네, 4시쯤에요! 그런데 들어오기 전에 그냥 나가더라고요. 따로 연락 받으신 거 없으실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크롬은 원체 그런 녀석이다. 분명 한 가지 일을 하다가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곤 하지. 그러고 보니 앞에 있는 녀석도 손에 한가득 서류를 들고 있었다. 눈짓으로 물으니 제출 기간에 허덕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경비 지출 보고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서 가보라는 듯이 몸을 살짝 비키면 슬리퍼를 신고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뛰어간다. 휘날리는 흰 가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센쿠는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크롬이 왔었다고…….

센쿠는 손에 든 포스터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남자의 얼굴이 센쿠를 비웃는 표정인 것 같았다.

이놈의 연애 뇌에 절여진 사람들은, 어째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해.

* * *

시간만 보자면 공연인지 강연인지 모를 것은 이미 시작한 지 오래, ㅡ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대강당의 밖에서 귀를 기울여 봐도 내부는 꽤 조용한 듯했고, 아무도 밖을 지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듯 보였다. 이미 빈 캔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힌 포스터를 뇌 속으로 천천히 되짚어봐도 분명 입장료 같은 게 써있진 않았다. 당연하겠지, 학교 관계자가 거금 들여 초청한 강연일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시가미 센쿠는 양문형의 문 한 쪽을 조심스레 열었고, 안타깝게도 그 노력이 무색하게 모든 시선이 갑자기 열린 뒷문으로 집중되었다.

센쿠는 인상을 찌푸린 채 교내 대강당이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따위를 체감하며 제일 끝에 있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제서야 몇몇 시선이 거두어졌다. 하아, ……이 상태라면 크롬을 찾는 건 아마 무리일 것 같은데.

"그럼 지금 들어온 학생이 한번 말해볼래요?"

'학생'? 이시가미 센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가, 여전히 몇몇 시선들이 자신에게 못박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강당에 서 있는 남자ㅡ강당의 끝에선 잘 쳐줘야 만년필 크기 정도로 보였다.ㅡ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어떤 피할 수 없는 기분도. 사실 그의 뒤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계속 비치고 있던 남자를 제치고, 하얀 가운을 입은 본인이 등장했을 쯤부턴 센쿠는 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마이크가 돌아왔다. 진행요원 같은 것인가? ……이럴 거면 출입을 통제하는 용도로 문밖에도 세워두라고. 센쿠는 어색한 기분으로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무대 위의 남자가 다시금 말했다.

"학생은 사랑(愛)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사랑?"

곤란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들어오기 전의 상황을 모르니 어떤 맥락에서 이런 대화가 나왔는지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상황에 따라선 효심, 가족애라거나 아가페 따위일 수도 있었다. 센쿠가 미간만 좁히고 도통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높낮이가 있어,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노래하는 듯한, 하지만 협상가 같은, 한편으로는 협박 같지만, 또 어떤 면에선 은근한 유혹 같은.

"학생의 옷차림을 보니 분명 과학 계통일 것 같네♪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설명해도 괜찮다구~? 사랑을 하면 어쨌든 인간은 변화하잖아?"

"아아, 흔한 '연애 뇌' 이야기로군……."

"'연애 뇌'?"

고개를 까닥이며 센쿠가 내뱉은 말을 반복한 남자는 무대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이시가미 센쿠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멍한 정신으로 입을 열었다.

"……무언가에 홀렸을 때에 인간의 뇌에선 페닐에틸아민, 엔돌핀,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 후 애착 과정에 접어들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분비되어 마치 상대에게 모성애나 부성애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성욕이나 식욕이 충족되었을 때도 우리는 분비되는 도파민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보상 효과를 느껴. 그리고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사랑'을 할 때도 같아지는 것뿐이야. 상대와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몸을 맞대는 간편한 행위만으로도 욕구가 충족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언뜻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

"응응, 고이스한 설명이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다는 말이 있듯, 연애 뇌가 되면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고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편도체 뒤쪽이 비활성화되기도 해. 결국 사랑은 그런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뇌의 착각', 적절한 사고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독성 물질이 보여주는 환……,"

"아하~ 여기 나보다 더 사랑에 능통한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이 학교의 대학생은 특별한 걸까나♪"

기껏 답해줬건만 놀리는 거냐? 센쿠는 인상을 찌푸렸다. 관객석의 계단을 천천히 따라 오른 그는 어느덧 센쿠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옷차림을 훑는가 싶더니 가운의 가슴팍에 노란 실로 수놓아진 이름을 입 모양만으로 덧그리듯 읊조린다. 이시가미, 구나. 이시, 하고 되뇌는 입술이 언뜻 웃음기를 담고 있었다.

"그럼 가르쳐줘, 닥터.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 뭐지?"

그는 일부러 애매한 호칭을 사용했다. 몇몇 사람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센쿠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남성이라면 상대에게 끌림을 느낄 때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낮아지고, 반대로 여성은 에스트로젠 수치가 낮아져. 서로가 이성과 비슷해지려는 효과를……,"

"흐응, 센쿠쨩은 그럼 이성간의 사랑만 인정한다는 걸까나?"

"인정? 인정이라는 표현도 웃기지만, 사회 통념상 그렇지는 않겠지, 다만……."

"다만?"

"……나는 사랑 자체를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

"헤에, 바이야한 말이네."

연출된 쇼의 한 부분처럼 갑자기 강당 내의 모든 불이 켜졌다. 남자는 주위를 환기하듯 손을 들어 박수를 두 번 쳤다. 흰색 장갑으로 감싸인 손 치고 박수는 모두의 이목을 환기할 수 있을 정도로의 큰 소리를 만들어냈다.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환해진 내부에 센쿠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한참 앞쪽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크롬과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저 녀석, 역시 여기 있었잖아! 센쿠가 인상을 찌푸리고 크롬을 노려보자 크롬은 의자 밑으로 고개를 숙여 숨어버렸다. 그의 옆엔 아니나다를까 루리가 있었다. 센쿠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는 루리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더는 이시쨩의 신변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리-무겠지? 최고의 연애 특강은 아쉽게도 여기서 종료☆네. 쇼는 쉬는 시간을 가지고 10분 후에 이어서 하도록 할게요♪"

남자는 센쿠의 시선이 먼 곳에 있는 걸 알았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와 몸을 숙여선 손에서 마이크를 빼 들었다. 센쿠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봤을 땐 이미 부드러운 몸짓으로 점점 멀어져간 뒤였다. 센쿠의 눈동자 속에, 그가 입고 있는 연미복의 끝자락이 팔락이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것도 '제비'의 형상이군. 센쿠는 그렇게, 한참이고 연구실의 제비 샘플과 남자의 뒷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다.

"……ㅡ쿠! 센쿠? 센쿠!"

"……아, 크롬."

어느새 다가온 크롬이 팔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슬쩍 크롬의 뒤를 보니 루리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센쿠는 자신이 이 곳에 온 목적을 드디어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크롬, 너 말이야. 대체 왜 아까 안 온 거야? 덕분에 카세키에게 직접 전달했잖아. 그리고 제비 샘플 말인데 새로운……,"

"뭐? 돌아가면 난 죽었다……. 아니! 그것보다, 그것보다 방금 뭐야? 무슨 일을 한 거야? 중간에 어떻게 들어왔어!"

"밖에 아무도 없던데? 문도 잠겨 있지 않았고,"

"뭐, 그런 거야? 아니, 그래도 완전 화난 거 아니야, 저 사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으, 한 번에 하나씩만 질문해, 제발. 센쿠는 인상을 찌푸리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너. 이렇게 놀러 다닐 시간도 있고, 말이야? 일감이 없나 보지, 크롬?"

그리고 크롬의 팔을 잡고 뒷문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표정의 크롬이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지만, 센쿠는 별로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으악, 아직 안 끝났어! 그리고 그 '아사기리 겐'의 마술쇼라고! 몰라? 천재 멘탈리스트로 유명해서 해외 투어도 다녔던 연예인……."

"알 것 같냐?"

"그야 그렇겠지만……, 잠깐만, 진짜? 진짜로? 나 이것만 다 보고,"

"업무태만이다."

"으악, 루리! 살려줘!"

센쿠는 연구실로 돌아가며, 아까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분명 잘못 말한 점도, 사실과 다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지? 그의 말투, 아니면 눈빛이려나. 명백하게 느껴졌던 그의 불쾌함과, 그를 잘 포장해놓은 장난기 같은 건 이쪽에서도 충분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함께 건네졌던 배려 덕분에, 아, 배려……라. 센쿠는 대수롭지 않게 한쪽 귀를 후볐다. 전혀 흥미롭지 않은데. 센쿠는 언젠가 그에 대한 것을 한번쯤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역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잊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시가미 센쿠는 훗날, 이 날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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