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테르페의 소설

[BL]거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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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BL 자캐 페어 - 『거래, 그 이후』

Keywords : 연구원 / 실험체 / AU

에우테르페의 소설 中 겨울 타입 글 커미션

i**님 연성 교환 ⓒ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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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아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거래, 그 이후

코이즈미와의 거래 아닌 거래를 하게 된 지도 어언 1개월. 연구소 내부를 탈출하게 도운 대가로 얻게 된 것은 부자유였다. 사토 유즈루는 연구소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처지에 놓였다. 당연했다. 피실험체의 도주를 돕는 연구원이라니.

그 연구소의 규칙대로 ‘처리’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었다. 물론, 그전에 자신이 먼저 도망친 결과이기도 했겠지만. 이 녀석과 엮이면서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가족을 운운하며 계약을 논하는 그 입에 총구라도 겨누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아무래도 억울한데. 뭔가 이 상황을 이용해서 녀석에게 한 방 먹일 수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컨대, 연구소를 이용해 둘 다 엿 먹이는 일타쌍피 작전이라던가.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없다면 만들면 되지.”

사토 유즈루는 임시 거처로 마련한 숙소에서 느른하게 퍼져있을 낯짝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래, 없다면 만들어주면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가지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코이즈미 료는 연구소 내부의 사정을 한정적으로만 알고 있다. 연구원들이 그의 앞에서 입 밖으로 떠들어댄 사실까지가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였다. 그리고 연구소는 지금 료의 위치를 모른다. 그 둘의 머리 위에서 뛰놀아줄 방법이 생각났다.

*

“이제야 들어오시네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마. 지금 여기서 그나마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니까.”

“알아, 알고 있어요. 말 한번 잘못했다고 사람 하나 죽이겠네.”

그 정도로 사나운 기세는 아니었건만, 떠들어대는 세가 불량하기 그지 없었다. 사토는 어느덧 그런 료의 태도에 익숙해진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를 지나쳐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낡은 잿빛의 1단 냉장고의 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제안할게 하나 있는데.”

“...?”

“연구소 내부 구조에 대한 지도가 내게 있거든.”

코이즈미 료는 자신이 연구소에 쫓기는 몸이라는 걸 아직 모른다. 그야, 자신이 협박으로 인질 겸 데려왔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사실은 사토 또한 연구소에게 쫓기는 몸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는데요.”

“네가 원할 것 같아서.”

너라면 그 연구소에게 앙갚음을 해주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뒷말은 속으로 삼키고 천천히 뒤를 돌아 료를 마주했다. 소파에 늘어지듯 앉은 료가 자세를 바로하며 이쪽으로 고개를 고정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에 맥주캔을 든 사토가 집요한 시선을 무시하고 검지로 뚜껑을 당겨 땄다. 경쾌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거품이 살짝 맺혔다.

“나오면서 급하게 챙기느라 좀 훼손되었긴 하지만, 아직은 쓸만할 거야. 이걸 너에게 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

“...”

“연구소로부터의 내 안위를 보장해줘.”

그 말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료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역시, 나를 수중에 두는 것만 생각했지 나 또한 쫓기는 상황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건가. 말을 들은 료가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허공을 좇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 그 지도가 진짜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죠.”

“그래.”

생각보다 쉬이 승낙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불안한 기운이 심장을 스쳤다. 너무 일이 잘 풀려도 문제다. 뭐, 일단은 한 건 해결한 상태니까... 이제 남은 건, 연구소 쪽의 동태다. 사토는 한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울렁이고, 묘한 긴장으로 숨이 저절로 들이켜진다. 그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만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

날이 좋은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거리를 달구는 시간. 정오가 지나 조금 한산해진 거리에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을 안고 지나간다. 식재료가 든 봉투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걷는 여성, 부모의 손을 잡고 뛸 듯이 걷는 아이.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듯 눌러쓴 모자를 잡고 종종걸음으로 한 카페로 들어가는 남성. 사토 유즈루였다. 카페 뷔네(Vuine)라 쓰여진 나무 간판에 매달린 종이 문 열림에 따라 작게 딸랑거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카페 내부의 분위기가 사토를 맞이했다.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구석진 창가 자리 쪽으로 가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이미 어느 여성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사토가 한참이나 말이 없자 결국 여성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어.”

“...먼저 불러놓은 것치고는 말이 없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여성─리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맞춰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가족이었다. 한참 만에 얼굴을 보여준 동생은 그 상태 그대로 한동안 더 침묵을 유지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리칸. 혹시, ***연구소하고 아직 연락해?”

“***? 네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잖아. 아직 연락은 가능하지. 나도 한때는 그쪽에서 일했었으니까. 그런데 왜?”

“거기에다 말 좀 흘려줄 수 있을까. 실험체 AQ032-17가, 여기 시즈오카 누마즈에 숨어들었다고.”

“엥?”

그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의외의 말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실험체가 연구소 밖을 탈출했어? 언제? 그리고 누마즈 시에 있다고? 뜬금없이?”

“...연구소 자체가 이즈노쿠니에 있었으니 탈출했다면 누마즈에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그건 그렇지. 가까우니까... 그럼, 네가 연구소 밖에 나와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야? 탈출한 실험체를 포획하려고?”

“좀 사정이 있긴 한데... 뭐, 비슷해.”

실상은 그 탈출한 실험체가 연구원 하나를 인질로 삼아 밖으로 끄집어냈고, 그 연구원에 해당하는 자신이 거기에 끌려다니는 중이지만 리칸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알아봤자 걱정만 더할게 분명하니까.

“내가 도와줘?”

“아니. 그럴 필욘 없어. 너는 그냥 내 말만 흘려주면 돼.”

“근데, 왜 굳이 네가 직접하지 않고 나한테... 으음. 사정이 있는 거겠지? 굳이 묻지는 않을게.”

“...고마워.”

“언젠가는 네가 나한테 말해줄 걸 아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부탁받은 대로 하는 거야. 유즈루,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니지?”

“너무 걱정하진 마. 잘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

리칸이 아까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손잡이를 엄지 끝으로 살짝 쓸고는 동생의 안색을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써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옷도 흰 가운이 아니라 평상복이어서 그런지 왠지 어색한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연구복만 입은 모습을 봤었으니까. 그가 말하지 않아도, 리칸은 그가 심상치 않은 일에 말려들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을 바깥에서 조용히 만나는 것도 그렇고, 연구소 쪽에 탈출한 실험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을 흘려달라는 것도 그렇고. 여기서 눈치채지 못하면 사토 유즈루의 누나가 될 자격이 없지.

리칸은 손을 뻗어 탁자 밑으로 내려가 있는 동생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무슨 의미인지 서로 알고 있는 행위. 리칸이 반듯이 올려진 동생의 두 손을 포개어 잡고는 쓰다듬었다.

“유즈루. 요즘 사는 건 어때.”

“......”

“...지금 네 꼴을 보면 짐작은 간다만... 너무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끼어들지는 마.”

위험한 일. 지금 자신이 벌이는 일이 무모한 짓이란 걸 사토 유즈루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얻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둘 다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이니 기분만은 최고조에 달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텨온 바깥에서의 생활이었다. 코이즈미의 한방 먹은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연구소는 그저 덤에 불과했다.

“알았어. ...이만 가 볼게.”

“응. 몸조심하고.”

“...”

“또 보자.”

마주 잡은 손이 스르륵, 떨어진다. 아쉬운 듯 온기가 남은 손바닥 안을 매만지며, 리칸은 먼저 자리를 떠나는 동생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이 위태로운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그리 생각했다. 지금은 이 사소한 복수에 집중하자. 여기에라도 몰두해야 다른 건 다 잊고 그 녀석에 대한 증오심 만을 키울 수 있으니까.

료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표적이 된 주제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도망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일단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임시 거처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료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런 꼴이 된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차라리 도망칠까. 기회를 찾는다면 지금 밖에 없었다.

문 쪽을 흘끗 쳐다보다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둔탁한 통증과 함께 팟, 하는 작은 소음이 들렸고. 있는 줄도 몰랐던 TV가 켜졌다. 리모컨을 밟은 것이다.

「...연구소가 괴한에게 습격당해 반파되었습니다. 현재 연구원들의 생사는 확인 불명입니다. 현지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

“...뭐야?”

우연히 틀어진 뉴스에서 보게 된 소식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다. 연구원들이 생사불명이라는 키워드가 귀에 시리게 박혔다. 그 순간, 연구원들에게 정보를 흘린 출처에게로 생각이 이어졌다.

─리칸. 그녀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향해 달려갔다. 손잡이에 손을 얹고 돌리려는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큭!”

“이럴 줄 알았어. 틈만 주면 도망치려고 하지.”

몸이 뒤로 밀려나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버텨 섰다. 눈앞에는 삐딱하게 선 자세로 료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 상황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사토 쪽이었다.

“어딜, 다녀온거지...?”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침이 절로 삼켜져 목울대가 울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리칸은 무사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녀석의 모습에서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료가 한 발짝, 사토에게로 다가왔다. 눈에 띄게 동요하며 어깨를 떠는 모습에도 주저함 없이 느리게, 포식자처럼 상황 위에 군림하며 한 발씩 움직이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당신을 살려두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

“그 엿 같은 연구소 놈들을 싹 다 몰살시키고 오는 참인데.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더러워지기만 하더군요.”

“...”

“아, 그 딱히 여자 때문은 아니고.”

“...!”

먼저 리칸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저도 모르게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마주하는 것이 느껴졌는지, 료가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 가족을 건드릴 생각은 없어요. 건드렸으면 당신을 건드렸지.”

“......”

“...이렇게.”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가 검지로 명치를 툭, 건드린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는 자신에게 이제는 싫증마저 났다. 세세한 반응 하나하나를 눈에 담겠다는 듯이, 료의 시선이 전신으로 꽂혀 들었다. 그건, 탐색하는 시선이었다. 먹잇감을 포획하기 직전의 움직임. 느릿하고, 탐미적인 시선.

“어떤 시간선에 있어도.”

“...”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도.”

“...”

“내가 할 말은 이거 하나예요. 당신은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설령 그 끝이 나락이라고 해도.”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건, 영혼을 묶는 주문이었다. 설령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모습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고 하여도. 너는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하나의 언령. 사람을 묶어두는 방법은 아주 많다. 물리적인 방법이야 차고 넘쳤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정신적으로 유린하는 것도 존재한다.

코이즈미 료는 사토 유즈루에게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집착하고 증오하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 그와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이 관계가 오래갈지도 모르겠다고. 그리 생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곧이어 등이 벽에 부딪혔고. 그와의 거리는 여전히 같았다. ...이후는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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