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아키] 너에게 삶을, 우리에게 미래를 (샘플)

24. 7 디페 O18

A5 / 떡제본 / 약 106p / 10,000

요괴 퇴마 AU 책으로,

예전에 풀었던 썰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원작과는 설정들이 매우 다릅니다!

아래 샘플입니다, 수정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 : @s_crocodile_c


 언제였더라.

 시끄러웠던 소리가 떠오르지 않으니 화창한 날이었겠고, 감싸 잡아주는 게 아닌 잡아준 만큼 같이 잡아줘야 하는 손에 온도를 주고받으며 항상 걷던 길을 모험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누나라는 이유로 반대의 손에는 귀엽지 않은 무늬의 장바구니가 부풀어 있고 동생의 손에는 작은 동전 몇 닢이 체온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잃어버리면 안 된단다, 아주머니께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자답게 꼬옥 쥐어선 이끄는 손을 따라 같은 모양의 타일을 밟으며 걸어갔을 때, 이제 다 왔다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엔 빨간 미끄럼틀, 파란 기둥, 노란 그네…. 집에 가까이 있던 놀이터는 곧 도착임을 알려주는 장소였지만 그만큼 시선을 뺏어 아이들을 부르기 좋았다. 딱 한 번만 타고갈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알게 된 남매는 얼른 네가 먼저 말하길 바라며 긴장을 삼켰다. 아. 그 소리에 딴 곳을 보게 시킬 생각이지? 같은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 때 작은 손가락은 놀이터 모래장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강아지다.”

 엉망인 모래장 한 가운데에 멀뚱히 앉아있던 검은 강아지. 발에 모래 하나 묻지 않았던 강아지. 천천히 일어나 가까이 오던 그것. 

 이상한 기분에 어서 집에 가자고, 그렇지만 다리도 입도 움직이지 않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던 그것. 모래장을 넘어 그림자도 없이 다가온 그것의 코 끝이 소년의 배에 닿았다. 팅, 티리링... 엉덩방아를 찧어버렸지만 올라오는 통증보단 정면으로 마주친 그것의 시선이 훨씬 무서웠던 것 같다. 어찌 소리도 못 낼 때, 겨우 들렸던 목소리. 배고프면 이거 줄테니까..! 그것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식빵이 있었다. 그것은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곧 반대로 고개를 돌려 바닥을 훑곤 식빵 포장을 물곤 그대로 가버렸다. 모래장을 넘고 놀이터를 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빈 손은 방향을 바꿔 동생을 향했다. 일어날 수 있어? 끄덕이곤 힘을 주기 위해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을 때 자신의 몫이 제 손안에 없음을 깨달았다. 어, 어디갔지.. 주변을 살펴보면 조금 떨어진 곳에 1엔 한 닢 굴러져있을 뿐이었다. 그 손도 잊고 급히 일어나 1엔 앞에서 얼마나 둘러봤는지.

 결국 한 손에는 1엔과 반대 손에는 아까와 같이 누나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왔을 땐, 울지 않으려고 힘껏 얼굴에 힘을 줬다. 어서오라는 말 뒤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부모님의 질문에 두 사람 다 펑펑 울어버렸지만 말이다. 

 두 사람을 안아주며 다행이라고 하셨다. 몇 번이고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아주셨던 팔이 떨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TV에 나온 토스트 해준다고 사달라고 부탁했던 빵 잃어버려서 미안해. 돈 잃어버려서 미안해.. 1엔, 그래도 찾았어.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딸꾹질 사이로 겨우 뱉은 말에 우리를 더욱 껴안으며 괜찮다고 하셨다. 

 잔뜩 울고 커다란 손으로 목욕까지 끝난 후에 장하다는 상으로 쇼파에 앉아 플라스틱 그릇과 포크로 치즈 케이크를 먹던 중, 우리에게 말씀하셨지. 수상한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눈도 마주치면 안된단다. 남매는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람 아냐, 강아지였어. 귀여운 검은 강아지였는데 느낌 이상했어. 귀엽지 않았는데, 무서웠는데 라며 옆에서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셨는지 옆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 같다. 치즈 케이크를 다 먹고 이는 닦고 자야하는데, 그런 생각으로 아슬하게 잠에 들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가져온 치즈 케이크를 받아 한 입 드셨던 어머니께서 결심한 듯 말씀하셨다. ‘공부를 해야겠다.’

 

 아침에 맛있는 냄새에 일어나 인사를 하고 TV 켜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리모컨을 찾아 거실을 헤맸다. 소변보고 세수하고 와야지! 어머니의 말에 가기 싫었지만 아직도 거실에서 찾는 아버지를 보면 얼른 갔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닦아 남아잇는 손의 물기는 잠옷에 쓱쓱 닦고 거실에 오면 이미 누나는 입에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물고 쇼파 중앙에 앉아 TV에 시선을 고정시켜 둔 후였다. 아키토도 가져가렴, 얼른 부엌에서 토스트를 들고 이미 앉아있는 누나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치사하게 혼자 중간에 앉고. 화면에서는 일요일 아침마다 하는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고 있었다. 작은 동물 친구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애니메이션이 끝날 때에 거실 테이블엔 우유와 부모님들의 토스트, 커피들이 놓아져있고, 쇼파에는 부스러기 잔뜩. 커다란 조각은 입에 넣으며 우유를 마실 때 어머니가 TV를 꺼버렸다. 정적을 한숨으로 깨시곤 머뭇거리시다 남매의 이름을 불렀다.

 에나, 아키토. 공부를 해야해.

 토요일인데!? 

 그런 공부가 아니라... 어머니는 준비한 작은 꽃잎들 한 장 한 장 나눠 손바닥에 열 장 정도 올렸다. 이쁘다. 누나가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할 때, 바람이 불 듯 꽃잎들은 날아.. 공중에 떠 있다? 두 세장으로 뭉칭 꽃잎들이... 자세히 보면 투명한 인형..? 에 붙어 날고있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눈을 비벼보아도 투명한 인형들이 기분 좋게 공중을 날아 어머니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한 두 마리는 누나나 동생의 머리카락 위를 가볍게 쓸며 잠시 닿았다가 어머니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요정이 있다면 이렇게 생겨서 평소에 알지 못 하게 눈에 안보이는 것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식신... 아니 너희들을 지켜주는 친구같은거야.”

 “이쁘다!”

 “그렇지? 이제 이 친구들을 부르는 공부를 할거야.”

 이쁘니까 좋아! 하는 누나 옆에서 지지않기 위해 따라 집중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꽃잎. 두 손 위에 올려 기를 써봐도 바람 하나 불지 않아 얌전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꽃잎 요정은 저렇게 날아다니는데... 그 때 껄껄 웃는 아버지에 창피해져 남매가 같이 나뭇잎을 잔뜩 묻히곤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는 전혀 볼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눈엔 가족 셋이 꽃잎과 나뭇잎 안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떻게 보여졌을지. 그랬던 과거가 언제였더라.

 눈이 내린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계속해서 내렸다. 그런 눈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며 손을 다시 움직이려고 할 찰나 아래에서 소년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키토, 집 앞 좀 쓸으래

 겍. 다시 창문 밖을 보면 물론 쓸어야 할 정도의 눈이 쌓이긴 했다. 아- 아직 더 적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나, 하고 그나마 가벼운 외투를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 창문으로 보면 아버지는 이미 제설 작업을 시작한 후였다. 운동화를 구겨 신고 문고리를 돌렸다.

 “식신 쓰지 그래?”

 “아까워. 그냥 몸 쓰는게 나아.”

 에나의 식신이 꼬리를 우아하게 흔들며 인사해준다. 펫이 아니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집 앞으로 나왔더니 한 칸 정도 제설 작업이 끝나있었다. 한 칸 말이지. 보름 전에도 잔뜩 쌓여서 문 옆에 둔 밀대를 들어 아버지와 다른 칸으로 가 잔뜩 쌓인 눈에 박아 쓸었다. 득, 그르륵. 그르르륵.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리에 긁히는 소리만 가득. 눈이 뒤에 있는 사람까지 삼켜 홀로 남겨진 기분을 들게 하는 것 같아 힐끗,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기계적인 움직임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거는 친근한 성격이 아니신 건 알지만...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속도가 오른다거나 반대로 손을 멈춘 채 바닥을 본다거나 무의미하게 바닥만 긁는다거나 하는게 머릿속으론 여러 영감을 찾고 있는게 아닐까? 급히 할 얘기도 없으니 방해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며 아키토는 다시 밀대를 밀기 시작했다. 득, 드득. 그르륵. 한 쪽으로 밀린 눈덩이들은 바닥의 색을 따라 더러워진다. 작은 언덕이 하나 둘 쌓이고 회색의 도로가 제 색이 가려지려는 것을 드르르륵 하며 긁어주었을 때 아키토도 약간의 추위가 느껴졌다. 후, 숨을 토하고 하, 하고 뱉으니 하얀 입김이 작게 형태를 그리다 사라진다. 

 아버지, 슬슬 들어가자. 

 이제는 아예 밀대의 끝에 깍지를 끼어넣어 턱을 괴고있는 모습이었다. 겨울에 위험하지 않나, 추운 날씨에 굳은 몸은 감기 걸리기에 딱 좋지, 조심히 기척을 내며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이 돌아 아키토를 보았다. 벌써 다 했나. 이 정도면 충분하지. 더 있으면 감기 걸릴테니 들어가자. 벽에 밀대를 두고 눈을 털어 들어가니 달콤하고 진한 초콜렛 향이 아키토를 맞이하였다. 

 고생했어, 아키토. 당신도.

 받은 코코아 잔이 기분 좋게 손의 차가움을 녹여준다. 코코아 위에 띄어진 고양이 모양 마시멜로는 에나가 사두고 다이어트 한다고 방치한 거였던가. 호록, 따뜻한 달콤함이 온 몸을 돌아 녹인다. 어머니의 웃음소리와 함께 천천히 마시렴, 그 소리조차 달콤했다.

 

“이 상태면 조금 뒤에 다시 쌓이겠는걸.”

 “일기예보엔 밤에는 멈춘다고 했는데...”

 호로록. 내일이면 멈추려나. 기대도 않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방은 춥진 않았지만 책상 앞의 의자는 차게 식어있었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차가운 온도에 괜시리 입김도 불어보곤 아직 마무리 되지않은 책상을 쓱 바라봤다. 반듯하게 잘려있는 흰 종이들과 붓펜. 옛날에는 먹을 직접 갈아 먹물로 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붓펜이 있어 편하다고 했다. 거기에 더 가면 매직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있다고. 성의도 성의지만 마음가짐의 문제지, 아키토는 흩어진 정신을 다잡고 붓펜을 들었다. 

 영력을 담아 획을 긋는다. 이론으로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아키토는 눈을 감고 신체 안의 기운을 잡아 손 끝으로 밀어 이동시켰다. 넘치는 영력도 아니고 흐름이 부드러운 것도 아니라 달래듯 톡톡 두드리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펑, 하고 비눗방울이 터진 이미지가 터득 떠올랐다. 실패했나, 인상을 구기며 다시 비눗방울 모습의 영력을 이동시킨다. 어깨를 통과해 팔을 내려와 손목, 손가락. 좋아, 이제 이 비눗방울을 펜에 이동시켜... 펜의 끝으로 담는다. 간단한 일이지만 온 몸은 금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찬 공기의 방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종이에 □의 획을 그리니 붓 끝에 아슬하게 남아있던 영력도 사라진 듯 했다. 

 어머니는 이런 표시 없이 나뭇잎이나 꽃잎으로 바로 식신을 부를 수 있었지만 아키토와 에나는 아니었다. 매개체에 바로 영력을 담아 부를 수 있다면.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대체법으로 적은 영력을 끌어모아 적어내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어머니께선 자신도 나이가 찬 후에 가능했다고 했지만 전혀 위로는 되지 않았다.

 세대가 바뀔수록 약해지는 영력. 얇아지는 시노노메 가의 핏줄. 그리고 확실히 큰 손실이였다던 몇 세대 위의 부재. 가문의 일이 싫다며 이 업을 뒤로 했고, 이미 시대가 시대인지라 요괴나 퇴마의 업이 옛과 같지 않아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존재가 보이지 않으면 그 힘도 허상인 것. 간혹 힘이 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보통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몇 요괴의 퇴마나 핏줄로 인해 그것들을 보게 된 시노노메 가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배운다고 하였다. 이미 약해진 힘이라 아키토나 에나에겐 영향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자녀들이 요괴를 보았다 하였을 때 충격이라 했었지. 에나는 몰라도 아키토는 썩 불만은 없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원인을 자신은 알 수 있었으며 별 거 아니지만 막을 방법도 자신에게 있었으므로. 

 표식이 그려진 종이가 늘어난다. 눈에 띄게 쌓인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이 주 정도는 넉넉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땀을 닦고 한숨을 내쉬곤 창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더 거세진 눈. 이런 날씨에는 배달 기사도 오지 않을 것이다. 폭설. 역시 일기 예보는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라면 내일이나 그치겠네. 고개를 뻗어 바닥을 보면 열심히 정리한 길이 다시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누군가 지나가다 발바국을 남긴다면 금방 사라지겠지. 

딩-동. 마무리 되어가는 거실을 통과하는 벨소리. 누구야? 누구 올 사람 있어? 에나, 너 뭐 시켰냐?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한번 울리는 벨소리에 아버지가 일어나려고 하자 아키토가 내가 나갈게 라며 일어났다. 

 “누구세요?”

 「아오야기입니다. 시노노메 씨 댁 맞죠?」

 누구? 수화기를 놓고 부모님께 물어봐도 전혀 모르는 듯 하였다. 목소리도 어른의 목소리가 아닌데.. 내 친구가? 이런 겨울에 잘못 왔다기에는 우리 집을 알고있는 것 같고. 문 밖에 멀뚱히 서 있으라고 하기엔 미안해져서 잘못왔다고해도 우선 안으로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만요, 문을 열었더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한겨울이라 일찍 어두워진 밤하늘. 그 색과 차이가 없는 머리색을 반만 가진 사람. 탁한 눈의 색의 눈동자가 올리브 색 눈동자를 마주한다. 

 “누...누구?”

 “아오야기입니다만..”

 

 그 놈의 아오야기가 누군데. 이런 반반 머리의 친구는 사귀었던 적이 없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특징인데 사귀었다면 잊었을 리가 없다, 곤란해하는 아키토의 표정을 읽었을까,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알거라고..”

 뭔데? 뭔 유명한 연예인의 집안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인사하진 않을거다. 내 주변에 이런식으로 인사할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데. 아오야기, 아오야기. 그렇게 찬 바람만 잔뜩 집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몰라 시선을 회피하며 녀석의 뒤를 보니 어느새 눈이 멎어있었다. 

 “미안한데, 누군지 모르겠어서. 무슨 일로 왔는데?”

 “아, 아오야기 군!!” 

 

 잠깐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춥지, 어서 들어와. 어머니의 당황감이 가득 담긴 말에 녀석은 실례합니다, 라고 짧게 대답하며 들어왔다. 녀석이 지나간 잠깐의 공기가 바깥인 듯 양 차가웠다. 눈은 그쳤을텐데. 하얗게 칠해진 길에 녀석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저건 지워지지 않겠네, 그런 생각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니까, 얘기를 들어보면 이랬다. 시노노메 가문에서 했던 일은 요괴 퇴마, 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시노노메 가와 진득하게 엮여있던 아오야기 가. 퇴마사로 유명한 시노노메 가문에 어느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자신에게 뻗은 요괴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어떠한 일을 행했는지 그런 저주에 걸렸는진 몰라도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고 했다. 당주가 나서야 겨우 봉인이 된 요괴의 저주는, 시간이 지나 그 남자의 자녀에게 이어 발현되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다시 시노노메 가로 찾아와 자녀를 살려달라고 했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온 관계라고 했다. 시노노메 사람이 없어도 자신들이 저주에 삼켜지지 않도록 힘을 배우고 기른 아오야기 가와 협력해 어느 시기에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전설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성이 안 맞는지 저주를 없애거나 봉인할 수 없었던 이유로 계속 두 가문의 관계는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 요괴의 존재가 약해지고 시노노메 가의 힘도 약해졌을 때, 아오야기 가 역시 저주의 힘이 약해져 둘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다고 한다. 어쩌다 찾아와 봉인을 해주면 다음 세대가 될 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면, 전 세대, 즉 이 녀석의 아버지 대에서는 저주의 힘이 매우 미미해 흔적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제 저주의 끝이 보인다고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고 기뻐했을 때. 장남도 차남에게도 없던 저주가 막내인 이 녀석에게 내려졌다는 거다, 지금까지 힘을 모으고 있었단 듯이 엄청난 존재감을 뿜으며. 당연히 아오야기 가 쪽에서는 그동안의 기술과 힘으로 재울려고 했지만 약해진 힘으론 소용없었고, 그제서야 시노노메 가에 찾아와 힘을 빌려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약해진 힘으로는 예전같이 봉인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힘을 축적한 저주를 시노노메의 사람이 정기적으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와서? 갑자기 방문했느냐, 하면. 원래는 어머니의 형제분이 하던 일이었는데 최근 힘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분의 자녀들은 힘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이 일을 이어서 하기에는 불가능했고, 목숨 걸려있는 당사자 가문은 발을 동동 굴리다가 동생, 즉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 그러니까 이 녀석의 인사말로 ‘아오야기입니다-’ 라고 했던 건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럼 오늘 봉인술이 필요한걸까?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방문한 아오야기의 사람을 위해 급히 펼쳐진 저녁 찻상. 정리하는 건 다른 가족이 한다고 해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했다. 

 “오늘은 인사하러 왔습니다. 아직은 괜찮거든요. 항상 여유를 갖고 부탁드리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그럼 나도 준비를 해둘테니, 연락처 알려줄래?”

 

 연락처를 교환하고 찻잔의 바닥이 보이게 되었을 때 그 자리는 정리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실례했다는 말과 잘 먹었다는 말을 하며 돌아가려는 녀석에게 이쪽 길은 아직 모르지 않냐며 배웅을 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키토는 간단히 외투를 챙겨 나갔다. 안 그래도 괜찮은데, 말 끝을 맺지 못한 녀석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한창 내린 뒤의 하늘을 매우 맑아있었고 녀석이 올 때 남겼던 발자국은 여전히 홀로 남아있었다. 덕분에 그 발자국을 따라 한 발자국 앞서갈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정신 없어서 물어보지도 못했네. 이름이?”

 “아오야기 토우야.”

 “난 아키토야. 시노노메 아키토.”

 뭐 내 이름이야 아까 대화하면서 계속 어머니가 말했을테니 알겠지만. 나이도나와 같다는 걸 듣긴했는데, 대화를 하고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냥 묵묵히 걸었다. 폭설 이후라 사람들이 외출을 안했는지 발자국이 길게 남아있었다. 길을 핑계로 이 침묵을 깰 순 없겠네. 무슨 말을 해야하지 고민하다 결국 고른 말은 집안 이야기였다.

 “그 저주 때문에 이사 오기 힘들었겠다. 부모님 직장도 걸려있는 거잖아.”

 “아니, 나 혼자 왔어.”

 “어.. 그래? 밥은.. 먹었겠지.”

 “아직이지만 괜찮아.”

 그럼 저 녀석은 빈 속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거냐고.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대로 보내면 불이 꺼진 집에서 가스 불을 올리고 식사를 차려먹을까? 슬쩍 봐도 그럴 놈으로 보이진 않았다. 괜찮다는 건 거르겠다는 거겠지. 아키토는 한숨을 푹 쉬고 이어진 발자국을 밟지 않았다. 이 쪽으로 가자. 그 쪽 길이 아닌데... 기본적인 거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 편의점 알려줄게. 발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직 하얀 길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나간다.

 딸랑거리는 소리에 알바생이 쳐다보지도 않고 어서오세요라 인사하는 걸 뒤로 하고 끌고 주먹밥 코너로 데려왔다. 눈 때문에 아직 재고를 보충하지 않았는지 듬성듬성 있는 주먹밥들이었다.

 “좋아하는 거 있어? 아니면 도시락?”

 “무난한 거면 돼.”

 

 무난한 거라. 그건 종류가 많아야지 고를 수 있는거지. 대충 보이는 구운 연어 주먹밥을 들었다. 치즈 케이크가 있던가. 겍, 하나 밖에 없어. 에나 녀석이 화낼테니 참자.

 동전 넣고 거스름돈을 받고선 녀석에게 건넸다. 내가 사도 되는데, 고마워. 외투의 큰 주머니에 삼각 주먹밥이 들어간다. 먹고 가도 괜찮은데. 그럴 생각 없다는 듯 먼저 편의점을 나선다. 

 저벅저벅 눈을 밟는다. 왔던 길이라고 기억을 하는지 조금 앞 서 걷는다. 살짝 빠른 속도같긴 한데, 간격이 벌어질 속도도 아니니 추운가보다 생각하며 아키토는 따라갔다. 

 시노노메는.

 응?

 시노노메는 왜 이렇게까지 챙겨주는거야.

 앞 사람이 멈췄다. 그에 따라 아키토도 같이 멈췄다. 뒤를 돌아 눈을 맞추며 답을 요구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봐도, 할 말이 없는데.

 “계속 볼 얼굴인데, 그냥 아는거 알려주는거지. 넌 여기 길 모르잖아.”

 겨우 길안내다. 큰 뜻을 담을 행동은 아니다. 요즘은 맵 어플만 봐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감사 받을 일도 아니고. 물론 아들이랑 동갑인 애가 타지에서 밤에 돌아간다는게 걱정된 어머니의 배려였겠지만 말이다.

 “그렇구나... 고마워. 그래도 다 왔으니까 시노노메도 더 늦기 전에 돌아가는 게 좋겠어.”

 “어어 그래. 봉인 준비 다 되면 보자.”

 작게 인사하는 녀석이 앞을 보고 걸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발자국이 잔뜩 생겼다. 춥네, 얼른 돌아가야지 하고 이제 질척이게 된 눈길을 걸었다.

 계속 볼 얼굴이라고 했다지만, 이렇게 자주 일정까지 짜서 만날 얼굴이 될 줄은 몰랐다며 아키토는 남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까지나 봉인을 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온 아오야기를 볼 예정을 얘기했던 것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 이상이라면... 이대로 아오야기가 학교를 전학온다면 같은 학교나 다니는 사이? 

 하지만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그 아이는 어떤 것 같아, 라고 물어보셨고 그냥 나쁘지 않아, 라고 대답한 아키토는 그 날부터 예비 담당이 되었다. 

 

 내가? 왜!? 

 아키토와 잘 맞을 거 같아서?

 나쁘지 않다고 했지 잘 맞을거라고 하지 않았는데.. 성격도 완전 다른 것 같고.

 엄마가 보기엔 잘 맞을거 같던데? 그리고 엄마 형제가 그렇게 됐다는 건 곧 엄마도 영력이 사라진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아키토가 미리 준비하고 해보는게 앞으로를 위해서 좋지 않겠어?

 에나는??

 본인이 말해놓고 됐다, 라며 회수했다. 야간 학교에 다니는 에나라며녀 아오야기와 시간이 안 맞을테고... 개인적인 일로도 바쁘니까 아오야기의 일에 신경을 쏟으면 스트레스를 더욱 받을테니...

 “알겠어, 내가 할게.”

 내키지 않지만 어머니 말이 맞다. 곧 사라질 날이 가깝다는 걸 아는 시점에서 완벽하지 않은 술로 봉인을 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보다 앞으로 할 날이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매듭을 짓는게 낫겠지. 고맙다며 아키토를 껴안아준 어머니가 곧 비술서를 들고 와 아키토에게 줬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괜찮았을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안고 방으로 가려고 방향을 틀었을 때 아키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 어깨에 뭐가 앉아있는거? 눈을 몇 번 깜박이고선 책들을 내려놓고, 한 권을 잡아 조심히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벌레를 잡는 것처럼. 

 왁!!

 책을 내려치니 안개처럼 사라지듯 싶더니 아키토를 보곤 당황하며 사라진다. 겁도 없이 어딜 들어와. 책을 탁탁 터니 놀람과 고통에 아무 말 못하는 아버지의 시선. 

 사과와 변명을 하며 방에 돌아왔을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요괴에 깜짝 놀라버렸다. 낮에?? 집 주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빠르게 창문을 열어 책으로 흩어지게 했다. 예부터 내려오는 비술서라 그런지 요괴들이 흩어지는 효과가 빨랐다. 조상님 미안. 대충 노크를 두 번 하고 멋대로 아키토 방에 들어온 에나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손가락질 했다. 저것들 뭔데 떠다니냐고.

 힘이 조금 있던 요괴 녀석은 죽을 때 에나가 멱살을 잡아 물었더니 ‘이녀석을 잡아 먹어라, 라고 계속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라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고민하니 아오야기의 저주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답에 도달했다. 이 답이 정답인지 확실히 하기 위해 어머니께 연락처를 물어 메시지를 전송했더니 우리의 당혹감이 이해 안간다는 느낌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 시노노메 가에서는 순찰하며 퇴마일을 하지 않는가?」

 그 말에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기분에 아무 답변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눈에 띄는 녀석만 하굣길에 퇴치하거나 가아끔 공격하러 온 녀석들만 정리해 순찰한다거나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수의 요괴가 있던 건 아니지만... 변명이지 않은가! 힘이 있는 요괴가 힘을 키우기 전에 순찰을 했다면.. 누군가 피해를 보기 전에 원인을 제거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결정했다, 밤에 순찰을 돌자.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오야기 녀석도 순찰을 돈 다는 것이었다. 

 “길은 알겠어?”

 “대충 기억해. 몇 번 더 다니면 여기 길은 다 알게 될거야.”

 그거 다행이네. 괜시리 돌맹이를 발로 차며 걸었다. 아오야기는 살펴보듯 아키토의 뒤에 서서 걸었다. 수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키토도 에나도, 아오야기도 며칠동안 퇴치에 집중했더니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발에 치일 정도는 아니게되었다. 밤 산책과 같아서 다음엔 트레이닝 복으로 입고 나와 밤 조깅이라도 할까, 그런 계획까지 구상하게 된다.

 “시노노메,”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눈 앞에 흑색의 액체가 뿌려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뒤에있던 아오야기가 아키토를 당겨 아키토가 있던 곳에 거대한 입을 벌린 요괴를 저주가 담긴 팔로 내려치지 않았다면, 흑색의 피가 아니라 붉은 인간의 피가 뿌려졌을 것이다. 그것을 인지한 아키토의 심장이 잠깐 쉬더니 주인에게 공포를 알리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잡아당겨져 안기지 않았다면 이미 주저앉았을지도, 옷을 쥐어 잡고 진정을 하지 못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의식을 돌려도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시노노메, 잠시만.”

 등을 받쳐주는 품이 사라져 아키토는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회피해선 안 돼, 그 정신력을 받아들였는지 뛰는 심장을 쥐어잡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소매 밖으로 보이는 손이, 검붉은 색으로 뒤집어졌다. 징그럽다, 그런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핏줄이 뒤집어져 피부를 덮은 것처럼, 역했다. 어찌 본다면 파괴되는 요괴보다 더 요괴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구나. 그것이 요괴의 저주.

 파괴되어가는 덩어리와 그 사이에 흑색의 액체가 아오야기를 감싸며 달을 가린다. 무엇이 요괴인지 구분이 안되며, 아오야기는,

 “시노노메는 약하구나.”

 “... 하?”

 대뜸 아키토에게 시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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