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을 떠나서

[토우아키] 이별을 말하지 말아줘

새인간 토우야 x 인간 아키토

*새장을 떠나서의 후속 소설.

새장을 떠나서

*성애적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주의해주세요.

**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혔다.

곤히 잠들어 있던 토우야는 드디어 잠에서 깬 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듯 눈을 깜빡이는 그 모습에 이미 한참 전 깨어있던 아키토는 몸을 일으켜 토우야를 내려다 보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푸른 머리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맨 어깨, 때묻지 않은 새하얀 날개가 그를 성스럽게 까지 보이게 했다.

한때는 이 모습을 보며 천사 같다고 생각했었다. 뭐, 그것도 옛날이야기지만. 아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콧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토우야가 돌아온지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4년이란 시간 동안, 토우야는 아키토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같이 아키토를 만나러 왔다. 역전된 상황에 어색해 하던 것도 잠시였을 뿐, 어느새 아키토는 토우야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가끔씩 그가 찾아오지 않는 날에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보면서, 아키토는 자신이 어느새 토우야에게 길들여졌음을 자각했다.

아키토는 생각했다.

'다시 이별하고 싶지 않아.'

그를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야 매일 자신을 찾아오지만 어느새 나에게 질려 찾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그를 찾아갈 방법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은 제가 시작했지만, 이제 이 관계의 끝은 그가 쥐고 있었다.

아키토는 그에게 더욱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관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던 그날, 아키토는 토우야에게 입을 맞췄다. 토우야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금의 관계에 이르게 되었다.

언제나 함께 있고, 가끔씩 입을 맞추고, 몸을 겹치기도 하는 그런 관계.

사랑한다는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아키토는 내심 생각해버렸다.

잔뜩 쉰 목소리로, 아키토가 토우야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까지 잘 생각이야. 이제 일어나지 그래?"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토우야는 그대로 손을 뻗어 아키토를 제 품에 끌어 당겼다. 갑자기 그의 품속에 안기게 되어 당황해 굳어있는 아키토의 몸을 토우야의 날개가 감싸 안았다.

"...조금만 이대로 있을까?"

착하지... 그렇게 말하며 토우야는 아키토의 맨 등을 토닥였다. 어린아이 다루듯 어루만지자 아키토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이 녀석은 날 어린애 취급할 생각인 거지?

웃기지도 않았다. 내 목덜미에 어제 네가 남긴 흔적만 몇 개인 줄 알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키토는 다시 상체를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내가 어린앤줄 알아? 이런다고 다시 잠들게?”

짜증이 섞인 그 말투에 토우야는 자신도 모르게 하하. 웃고 말았다.

“왜 웃어?”

“아키토가 고등학생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잖아. 분명...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그때 아키토, 귀여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토우야의 입을 아키토가 다급히 틀어막았다.

“시끄러워!”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한참동안 성을 낸 아키토는 갑자기 어디선가 기분이 상한건지 한쪽 눈을 찡그러트리며 토우야를 쏘아보았다.

“아, 그래서 그때의 내가 귀여워서 좋았다. 뭐, 그런 얘기라도 하고 싶어?”

갑작스레 표정을 찡그러트리는 아키토의 모습에 토우야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응? 아키토는 지금도 귀엽다고 생각해.”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토우야의 대답에 짜증이 나다가도 식었는지, 아키토가 토우야를 툭 건드렸다.

“아무튼, 일어나.”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퉁명스럽게 내뱉어진 말에 토우야가 아키토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쉬는 날 아니었어?"

"쉬는 날이어도 늦잠 자면 습관 돼."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이 늦잠꾸러기야.

아키토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티셔츠를 대충 꿰어 입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토우야도 침대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불이 날개에 끌려 질질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키토는 여전히 가차 없네."

주섬주섬 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집어 넣던 아키토가 그 소리에 어이 없다는 듯 대꾸했다.

"발로 안 찬걸 다행으로 여겨."

땡.

토스트기에서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맞춰 고개를 든 아키토가 다 구워진 빵을 꺼내 들었다.

그 사이 침대를 정리하고 다가온 토우야가 아키토의 맞은편에 앉았다.

갓 구워진 빵을 한입 물며, 그를 흘끔 바라보는 아키토에게, 토우야가 말했다.

"아키토. 오늘 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그 말에 아키토가 의아한 표정으로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여행?"

토우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겨서."

토우야가 어디를 먼저 가자고 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아키토는 여전히 의문인 표정으로 토우야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디길래 그래?"

"바다에 가고 싶어."

그 순간, 아키토의 행동이 뚝, 하고 멈췄다.

방금까지 분명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빵이 돌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아키토는 애써 웃으며 토우야를 쳐다보았다.

"... 미안,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줘."

그런 아키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우야는 제 앞에 놓여진 빵에 잼을 바르곤 아키토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키토의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졌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키토가 처음 보여줬던 그 바다에, 가고 싶어."

토우야가 던진 돌덩이는 아키토의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남겼다. 아키토는 토우야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거기는 왜? 별로 볼 것도 없잖아."

"그건... 도착해서 알려줘도 될까?"

"...왜, 지금 말하긴 힘든 이유야?"

"그건 아니지만..."

어쩐지 망설이는 듯한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키토는 마저 이야기 하려는 듯한 토우야의 말을 끊어버렸다.

"...됐어. 나갈 준비나 해."

거기, 생각보다 멀어서 갈 거면 지금 출발해야 해.

그렇게 말한 아키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방으로 돌아가려는 아키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토우야는 아키토에게 나직이 말했다.

"갑작스런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아키토."

그 말에 아키토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알면 뒷정리는 네가 하고 나와."

그 말이 그저 심술에 불과하다는 것은, 토우야는 눈치 챘을까?

아니, 그 녀석이 알리가 없지. 아키토는 굳게 닫힌 방문에 등을 기댔다.

그사이 깔끔하게 정리해둔 방안의 모습이 어제의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뜻이 아니겠지만, 마치 너와 나도 이렇게 쉽게 정리될 관계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

아키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

바다는 그에게 이별의 장소였다.

토우야에겐 어떨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아키토에겐 그랬다.

날지 못하는 그가 언제든지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있는 장소.

그런 생각에 토우야와 함께 있을 때는 하늘이 비치는 물가는 피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아키토의 행동을 눈치챈 건지, 토우야도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그에게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토우야가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그것도 우리가 작별했던 그 장소에.

이건 나에게 질렸다고 말하는 걸까.

버스 안에 앉아서, 아키토는 별장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 버스는 가족 여행이 없는 날, 별장에 가기 위해 아키토가 매번 타던 버스였다.

그때의 아키토는 토우야를 만나러 간다는 기대에 가득 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별장의 열쇠를 만지작 거리곤 했다.

별장에는 토우야가 자신을 만나러 오게 된 이후부터 가지 않았지만, 이 열쇠는 아직도 아키토의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 열쇠에는 토우야를 만나러 가던 그 시절의 자신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기분이 울적해질 때 이 열쇠를 쥐고 있다 보면 기운이 났다. 물론, 지금은 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당연했다. 지금 아키토의 기분을 울적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토우야였으니까.

나쁜자식... 아키토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아키토는 열쇠를 다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토우야에게 들키면 안 되는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못 봤겠지? 아키토는 어느새 제 옆자리에 앉은 토우야를 흘끔 바라보았다.

토우야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에서 미안함이 느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 꽤 기다리게 한 것 같네."

토우야가 그렇게 말하며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키토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아까 부딪힌 사람이랑 티켓이 바뀐 걸 어떡하겠어. 찾아왔으니 다행이지.

아키토는 그렇게 말하며 좌석에 등을 기댔다. 그러면서도 옆자리의 토우야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어이, 토우야.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왜 바다로 가자고 한 거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질문을 꾹 눌러 담은 채로, 아키토는 눈을 감았다.

**

버스가 도착한 곳은, 별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정류장이었다.

아키토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토우야에게 툭, 말을 던졌다.

"지금 출발하면 아마 해가 질때쯤 도착할걸. 차라리 오늘은 별장으로 가서 자고, 내일 출발하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건 핑계였으니까. 그것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 틈에 토우야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하는 저열한 핑계.

아키토의 말에 토우야는 조금 고민을 하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이어야 할 것 같아."

아키토만 괜찮다면, 오늘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를 보며 아키토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랑 하루라도 더 같이 있는 게 싫은 건가? 그렇게 빨리 떠나고 싶은 거야?

들리지 않는 원망을 쏟아 부으며, 아키토는 홱 몸을 돌렸다. 그리고 토우야에게 말했다.

"... 최대한 빨리 걸어가면 되겠지. 따라와."

버스를 타면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아키토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차라리 도착했을 때 어두운 밤이 되어서, 하늘이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토는 토우야와 함께 한적한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

하지만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해는 아직 질 때가 아니라는 듯,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맨발에 닿는 바닷물의 감촉이 차가웠다.

한 손에 신발을 든 채로, 아키토는 멍하니 해변을 걷고 있는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그때 그대로네."

토우야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아키토는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하려 애썼다.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뭐, 사람이 잘 안 오는 곳이니까. 당연한 걸지도."

"그런가. 그럼 날개를 꺼내도 괜찮으려나?"

"...상관 없겠지."

아키토의 허락에, 토우야가 날개를 꺼냈다. 날개가 펼쳐지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휙 불어왔다.

점점 그때와 닮아가고 있었다. 아키토는 초조해 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 순간, 그때처럼. 토우야가 아키토를 돌아보았다.

토우야의 입이 열리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키토는 토우야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그날처럼, 그가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붙잡아 둘 핑계라곤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결국 아무 관계도 아니었을 뿐인데.

아키토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 눈물에, 토우야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제 손에 들고 있던 신발도 내던지곤 아키토에게 다가왔다.

"아키토?"

자신에게 다가오는 토우야의 모습에, 아키토는 제 손을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날 떠날 거면서, 왜 그런 표정을 지어?

토우야가 손을 뻗었다. 눈물자국을 훔치는 다정한 손길에 아키토는 숨겨두려 했던 진심을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너는 헤어지기 전에도 왜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거냐?"

"뭐?"

"헤어진다는 말도 우습긴 하네. 우린 그런 사이도 아니었잖아."

아키토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말에 지어질 토우야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표정이 곤란에 잠겨있다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키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 뿐이라는 듯, 토우야의 옷깃을 잡았다.

토우야가 뭐라고 말하려는 그 순간,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혹시 있잖아."

한 글자 한 글자, 금방이라도 멈출 듯, 내뱉는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너는 가지 않을까?"

마지막에 와서야 그렇게 토해낸 진심은 생각보다 더 꼴사나워서, 아키토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 나 정말 꼴사납네."

붙잡아서 미안. 그렇게 말하며 아키토는 토우야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 순간, 놓지 않겠다는 듯, 아키토의 팔을 잡는 손이 있었다.

그 손길에 아키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숨 막힐 듯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키토, 나는 떠나지 않아."

그 말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대답하지 못하는 아키토를 바라보며 토우야가 말했다.

"여기로 온건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야."

"..."

"사람들은 영원을 맹세할 때, 의미 있는 장소에서 말을 전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여기는,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왔던 곳이니까.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아키토는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하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건 마치, 그가 자신에게 청혼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아키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토우야가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아키토의 손을 잡았다.

"... 사랑해, 아키토."

"영원히 네 곁에 있고 싶어."

"... 그러니까 네 옆에 남는 걸 허락해 주지 않을래?"

이별의 바다에서 쏟아진 것은, 새로운 이별이 아닌 평생을 약속하는 고백이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꺼내고 싶은데,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키토는 말을 하는 대신 토우야의 손을 꽉 마주 잡기로 했다.

그것도, 다시 놓지 않겠다는 듯 아주 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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