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아키] 새장을 떠나서
새인간 토우야 x 인간 아키토
**
그 새장의 안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
**
중학교 1학년의 여름, 아키토는 평소와 달리 가족 여행에 따라나섰다.
별장 뒤 숲속에 난 작은 길을 걸으며 에나가 투덜거렸다.
“아키토, 너는 왜 따라온 거야. 평소에는 축구 해야 한다고 올 생각도 안 하더니.”
“축구 그만둔 지가 언젠데, 왜 자꾸 짜증이야 너는.”
“느긋하게 쉬고 싶었다고. 뭐, 네가 같이 있어서 편하기는 하겠네.”
“심부름 같은 거 안 할 거거든, 나도 쉴 거야.”
에나에게 베, 하고 혀를 내밀어 보이곤, 아키토는 처음 보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야 아키토!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저 멀리서 들리는 에나의 말을 무시한 채로, 아키토는 달리고 또 달렸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우왁!
아키토는 그만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으, 이게 무슨 일이야.
아키토는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먼지를 털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눈앞에는 다 무너져가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이미 천장은 일부분 무너져 있었고, 이끼가 끼고 덩굴이 자라나 그 으스스함이 배가 되어 보였다.
폐가인가?
그 맘 때의 소년이 그렇듯, 폐가란 소년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단어였다. 아키토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성당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문이 힘겹게 열렸다. 아키토는 헉헉 숨을 고르며 문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아키토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꿈만 같은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들풀과 꽃이 푸르게 피어있었고, 무너진 천장 사이로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 있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데도, 아키토는 이곳이 마치 거대한 새장 같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조각 때문이었다.
아키토는 자신도 모르게 그 조각에게 다가갔다.
거대한 횃대에 앉아있는 그 조각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섬세했다.
그리고, 그 등에는 새하얗고 거대한 날개가 달려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 조각상의 모습이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천사 같아서. 아키토는 자신도 모르게 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천사...?”
그때, 낮고 아름다운 음성이 아키토의 귀를 때렸다.
“아쉽게도 난 천사가 아니야.”
“...!”
짙고 옅은 푸른 머리가 아키토의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밝게 빛나는 듯한 회색 눈이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가깝게 다가온 신이 정성 들여 빚어낸듯한 그 단정한 얼굴에 아키토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은 아키토를 바라보며 푸른 머리의 천사가 눈을 깜빡였다.
“아, 놀래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아, 괜찮.....괜찮아요....”
“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그를 바라보던 아키토가 멍하니 제 이름을 중얼거렸다.
“... 시노노메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 구나.”
“만나서 반가워. 아키토.”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아키토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그의 천사를 만난 순간이었다.
**
자신을 천사가 아니라고 말한 남자는, 자신을 아오야기 토우야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릴 줄 몰랐다며, 조금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아키토를 향해 다시 문을 가리켜 보였다.
“저 밖에서 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는 문 밖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저 멀리서 여러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 엄마. 아빠. 에나...”
‘셋 다 날 찾고 있구나.’
가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그때, 아키토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아키토는 초조한 눈빛으로 문과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키토는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흘끔흘끔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남자, 아오야기 토우야가 잘가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
“아키토! 그렇게 혼자서 멀리가면 어떡하니!”
아키토의 어머니가 아키토를 보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화를 냈다. 아키토는 별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야, 이건 자신이 잘못한 게 맞았으니까.
“죄송해요...”
“정말이지, 여기 주변은 위험해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듣긴 한 거니?”
“...”
“... 빨리 돌아가자. 해가 지면 위험해.”
그렇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키토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그 남자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다시 한번 그를 만나고 싶었다.
‘몰래 다녀오면 괜찮지 않을까?’
혼난 것이 무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키토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키토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어제 달렸던 길을 더듬어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조금 더 걸은 다음에.... 그리고 아마 여기서 굴러 떨어졌던 것 같은데.
여기가 맞나?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토는 짧은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풀풀 날리는 흙먼지를 털어내며, 아키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성한 숲속, 다 무너져가는 성당이 눈 앞에 있었다.
찾았다! 아키토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성당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아키토는 다시 토우야와 마주했다.
토우야는 아키토의 존재에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너는...”
“토우야 씨, 맞죠?”
아키토의 물음에 토우야가 답했다.
“토우야. 로 괜찮아.”
“그럼... 그 토우야.”
아키토는 슬쩍 토우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여기 있어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지만, 여기에 있다 보면 가족이 걱정하지 않으실까.”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가 다급히 대답했다.
“해지기 전엔 돌아갈 거에요. 편지도 남기고 왔고, 어제 같은 일은 없을 거 같...은데...”
“...그렇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토우야의 대답에 아키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쫓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일 뿐, 숨 막히는 침묵에 아키토는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색하게 앉아 여전히 그를 보고 있는 아키토에게, 토우야가 말을 걸었다.
“아키토, 곧 해가 질거야.”
“어, 어. 벌써요?”
좀 더 있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아키토는 크게 동요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열려있는 문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토우야에게 외쳤다.
“그... 내일 봐요!”
내일은 꼭!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아키토는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런 아키토를 바라보며, 토우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도 온다는 걸까?
이상한 아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토우야는 몸을 웅크려 날개로 제 몸을 감쌌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
그 이후에도 아키토는 빠짐없이 성당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하던 두 사람은 아키토의 방학이 끝나고, 그가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어느새 스스럼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아키토덕분에 언제부터인가, 토우야도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이별의 날, 아키토는 토우야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말았다.
토우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때부터, 아키토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방학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별장으로 향하는 아키토를 보며, 아키토의 가족들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별장의 열쇠를 아키토에게 내어주기까지 했다.
수년이 흐르고도, 두 사람의 기묘한 만남은 계속되고 있었다.
**
“바다?”
“응, 물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바람에서도 소금 냄새가 나.”
“상상이 잘 가지 않아.”
“음.. 사진이라도 가져와야 할까.”
“그것보단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해.”
“그걸로 충분한 거 맞아?”
“응.”
“나 참. 그러니까 바다는 말이야...”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설명해주려고 하는 그 모습에 토우야는 아키토 몰래 웃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다.
**
“나,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
이제 중학생이 아니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아키토를 보며 토우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등학교?”
“거기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거냐고...”
뭔가 허탈한 기분으로 바닥에 털썩 앉은 아키토가 그대로 토우야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횃대에 앉아있던 토우야가 아키토를 내려다 보았다.
“아무튼,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키토를 보며 토우야가 작게 웃었다.
“그렇네, 이제 아키토도 나랑 비슷해졌구나.”
그 시선이 여전히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아키토는 어쩐지 심통이 났다.
“그러는 토우야는 그때랑 똑같네.”
“아무래도 그렇지?”
“... 그러고 보니까 너는 나이가 어떻게 돼?”
“나이? 잘 모르겠어. 여기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눈치채기 힘들거든.”
“알고 보니 엄청 늙었다던가 그런 거 아냐?”
아키토가 반쯤 농담으로 내뱉은 말에 어쩐지 심각한 표정이 된 토우야가 턱을 괴곤 중얼거렸다.
“... 그럴지도 몰라.”
“어이, 농담이였거든요.”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아키토는 그렇게 말하곤 바닥에 털썩 누워버렸다.
“나이가 어떻든 넌 토우야잖아,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아키토는 스스로 되뇌이듯 그렇게 말하며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무시하려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
“토우야는 내가 없을 땐 보통 뭘 해?”
그 말에 날개로 아키토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던 토우야가 두 눈을 깜빡였다.
“보통, 잠을 자.”
“그리고 아키토가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해.”
그 대답에 아키토가 황당하다는 듯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보통 새도 겨울잠을 자던가?”
“글세, 그건 잘 모르겠네.”
근데, 가족들도 잠을 많이 자긴 했어. 여긴 정말 할게 별로 없거든.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는 눈을 크게 떴다.
“... 가족?”
“응, 가족.”
아키토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토우야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야.”
“이전에는 가족들이 함께 있었어.”
토우야한테도 가족이 있었구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아키토는 그런 생각을 하며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며 토우야는 말을 이어갔다.
“내 기억은 이곳에서 시작했지만, 가족들은 아니었어.”
“언제나 저 밖을 그리워 하셨지.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도 해주셨어.”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 말하셨지. 하늘을 발 밑에 두게 된다면 어디서든 우린 돌아갈 수 있다고.”
“그리고 천장이 무너지던 그날, 모두 하늘을 향해 날아갔어.”
토우야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키토는 말없이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높은 곳이 무서워서.”
“날개를 접어버리고 말았어.”
그래놓곤, 그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거야.
“한심하지?”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의 눈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토우야가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괜찮아. 아키토가 있잖아.”
아키토가 있으니 이제 외롭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를 만나러 와 줄 거지?”
토우야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 표정에 아키토의 심장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그걸로 정말 충분한 걸까? 너는 정말로 그걸로 괜찮은 거야?
꺼내지 못한 질문을 품은 채로, 아키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서와 아키토. 오늘은 빨리 왔네.”
아키토는 언제나처럼 자신을 반겨주는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토우야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겠지.
내가 나이를 먹어 죽더라도, 그는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릴 것이다. 영원히.
얼마나 유혹적인 상황인가. 아키토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입안을 꽉 깨물었다.
그러니,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그런 따스한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아키토는 토우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랑 함께 여길 나가자.”
“아키토?”
토우야는 눈이 크게 뜨곤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날지 못하는 게 어때서. 그럼 걸어서라도 가면 돼.”
아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열린 문을 가리켰다.
“걸을 수 있는 두 발만 있다면 문제없어, 저 문 너머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아키토...”
토우야는 망설이는 듯이 머뭇거렸다.
그런 토우야에게 아키토가 말했다.
“사실 알고 있잖아 토우야. 널 막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남은 건 네가 결심하는 것 뿐이야.”
아키토의 단호한 말에 토우야가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래도 될까?”
여기서 그들을, 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렇게 묻는 듯한 그의 말에 아키토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네가 여기 있지 않더라도 너를 보러 갈 테니까.”
그 말에 토우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결심한 듯 토우야는 내밀어진 아키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미 무너진 새장에서, 새가 파드득, 하고 움직였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
처음 보는 풍경 투성이었다. 익숙한 것은 언제나 올려다보았던 하늘뿐.
신선한 숲속 내음도, 맨발에 밟히는 흙의 축축한 감촉도 새로워서, 토우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감탄이 섞인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 토우야의 손을 꼭 잡은 아키토는 멈추지 않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아키토의 옆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날개로 슥 막아준 토우야는 아키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키토,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런 토우야의 물음에 아키토는 발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러 갈 거야."
그 말에 토우야는 눈을 깜빡였다. 바다라면 알고 있었다. 분명 이전에 아키토가 설명해준 그곳이었다.
"바다라면, 전에 말했던 그곳일까?"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네."
"아키토가 열심히 설명해줬으니까. 네가 말한 건 전부 기억하고 있어."
"아니, 전부 기억 안 해도 되거든. "
중학교 시절에 자신이 떠들어 댔던 이야기들이 생각나는지 아키토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아키토의 표정을 바라보며 토우야가 걱정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토우야의 그런 얼굴에 아키토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아무튼, 그건 됐고. 여기서 좀 걸으면 바다가 나와. 우린 이제 거기까지 걸어 갈 거야."
"조금 멀긴 한데... 버스를 타고 가고 싶어도... 그건 무리일 거 같으니까."
아키토는 슬쩍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토우야의 등 뒤에서 날개가 펄럭였다. 아키토는 펄럭이는 날개를 바라보고 고개를 젓곤 시선을 돌렸다.
그런 아키토의 시선에 토우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키토. 지금 바다를 보러 가는 이유가 있을까?"
그 말에 아키토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 보여주고 싶은 경치가 있어."
"보여주고 싶은 경치?"
"... 가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의 표정에 어쩐지 그늘이 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토우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빨리 가자."
아키토는 다시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토우야도 그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숲을 해치고 나왔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하염없이 걸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기도 했다.
아키토는 먼 길이라고 했지만, 토우야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짧다고 느끼기 까지 했다. 그야,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키토와 하는 첫 여행처럼 느껴졌으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그곳에.
바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쏴아아. 바다가 움직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포말이 부스러지며 햇빛을 으스러트리고, 조각난 햇빛은 물에 비치며 반짝인다.
찰랑이는 물결이 발을 간지럽혔다.
“이게 바다구나.”
“그래서 소감은 어때.”
“하늘이 발밑에 있는 것 같아.”
마치 높은 곳에 서있는 것 같네. 그렇게 말하며 토우야는 작게 웃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무섭지 않아.”
“이래서 아키토가 여기에 오자고 한거구나.”
그렇게 읊조린 토우야가 아키토를 돌아보았다.
토우야의 푸른 머리가 바닷바람에 휘날린다. 품이 큰 옷 자락이 펄럭였다. 그 단정한 눈매 아래에서 옅은 회색빛 눈동자가 보석처럼 영롱히 빛났다. 그 얼굴에 걸린 미소가 아름다웠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것 같은 풍경에 아키토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아래에 하늘을 본뜬 바다가. 그리고 그곳에 눈부신 네가 있다.
그 순간, 토우야의 날개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펼쳐졌다.
아키토는 지금이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지 마, 라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지금 토우야는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줘서 고마워. 아키토.”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거야.
이런 풍경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겠지.
그렇게 말한 토우야가 아키토에게 웃어 보였다.
“다시 만나자.”
그렇게 날지 못하는 새는 발밑으로 내려온 하늘을 밟고 날아올랐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 모습을 아키토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안녕, 토우야.”
정말로 안녕.
불어오는 바람에서 눈물의 맛이 났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의 청춘에 이별을 고했다.
**
.
.
.
“그러고 보니 너 요즘 거기에 안 가네?”
방학이면 항상 들리지 않았던가?
에나가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가게에서 산 물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아키토는 그런 에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걸 알면서 오늘 심부름을 시켜?”
“된다고 한 건 아키토였잖아? 설마 이제 와서 내 탓하는 거야?”
“하?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가던가. 아직 버스 남아있을걸.”
“됐어 ... 이제 갈 필요도 없고.”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아키토의 대답에 표정을 찡그린 에나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나는 스마트폰으로 온 연락에 표정을 활짝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이제 약속 있으니까. 가볼게. 짐은 내 방에 알아서 두고 가.”
그렇게 말한 에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키토를 두고 휙 나가버렸다.
그렇게 카페에 혼자 남겨진 아키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에나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말 제멋대로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아키토는 턱을 괴고 카페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다들 무리 지어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할 것도 없겠다 그냥 집이나 갈까.’
빈 잔을 트레이에 올리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누군가 아키토의 앞에서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자리 비어있을까요?”
‘옆에 빈자리 많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키토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 네. 어차피 이제 갈 거라서 편하게 앉으시면 돼...”
고개를 들어 말을 끝마치려고 한 아키토는 끝내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아키토를 바라보는 회색 눈동자를 품은 눈매가 아름답게 휘었다.
“앞에 앉아도 될까?”
아키토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 멍한 표정에, 다시 한번 남자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만나러 왔어, 아키토.”
그렇게, 소년의 천사는 웃음 지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