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얼굴 위에 가면을 쓸 순 없다

연극과 무대와 배우와 연기와 가면

조명이 켜진 방 안에서 햄릿을 익숙하게 관중을 향해 인사해보였다. 관객은 오직 한 명, 그의 대본가이다. 햄릿은 대본을 들고 읽으며 그에 따른 몸짓을 천천히 해내었다. 단테는 그 모습을 느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는 그의 모습은 꼭 심사를 하는 사람보다는 관음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햄릿은 제 연기가 깨지는 걸 싫어하는 그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연기를 계속했다. 오로지 무대 위 자신의 배역이어야만 아름답다는 신념은 그가 제 남편이 된 뒤에도 여전했다. 단테는 제 물건을 꺼내어 천천히 문지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계획해둔 대사 속에서 사내는 아름다웠다.


단테는 햄릿을 위한 희곡을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을 쓰고 그를 연기하는 남편을 보며 아주 아찔한 희열감을 느낀다. 그의 성실한 남편은 늘 배역에 충실하였고 단테는 그 점이 좋았다. 만약 그가 자신이 배역이라 생각하거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헷갈렸다면 그대로 싸늘하게 식었을지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게 단테가 내린 사랑의 정의이다.

보편적인 사랑이라 말하기엔 문제가 크겠지만 나름 사랑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테다.

"그 어떤 허구도 현실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단테는 끈적한 시선으로 햄릿을 훑어보다 천천히 더운 숨을 내뱉었다. 사내의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달해있었다.

결국 마지막 대사에 단테는 그를 끌어안고 엉겨붙었다. 느리게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하나가 되었다.

단테는 자신의 갈라테이아를 본다.

아, 이 경우에는 베아트리체가 더 옳겠다. 햄릿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 셰익스피어의 소설이 아니었으니까.

한참의 행위 끝에 단테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뻐끔, 연기를 내뱉었다. 햄릿도 재떨이에 제 담배를 지져 끄고 달큰한 숨을 내뱉었다. 담배를 자주 피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와 행위를 한 뒤엔 꼭 한 개비 씩 같이 피우는 편이었다. 대화를 나누기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본도 괜찮네."

"보긴 했어?"

햄릿의 말에 단테는 가볍게 웃으며 눈을 빙글 굴렸다. 당연하지, 를 의미하는 시선은 묘했다. 당연한 걸 묻는다는 낯은 '네 연기로 봤으니 당연하지' 라는 의미인지 '내 대본이 완벽하지 않으면 네게 연기 시키지 않았을테다' 인지 알 수 없었기에 햄릿을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괴었다.

"요즘 머글들은 기계가 대신 글을 써준대. 그걸 마법같다고 하던데?"

"마법사들은 그렇게까지 쓸모없는 기술을 만들지 않잖아."

"그렇지.”

햄릿이 키득거리며 웃는 새에 단테는 입에 담배를 한 입 더 물어 연기를 들이켰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가 원하는 걸 만들지 못할거야."

"혹시 모르지. 네가 원하는 것들을 몽땅 집어넣으면 그 기계들이 뚝따거리면서 네 갈라테이아를 만들어줄지 말이야. 너는 피그말리온을 표방하잖아.”

슬쩍 웃은 햄릿이 단테의 뺨을 쓸어내리자 그는 천천히 눈을 굴려 내렸다.

"싫어."

햄릿이 연기를 뱉는 걸 보던 단테는 딱 잘라 말했다.

"생각 밖에서 벗어난 대사가 나올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역겨워...."

"나도 네가 지정한 대사가 아니라 다른 대사를 하기도 하잖아."

"그 정도는 예상하니까."

단테는 느리게 햄릿의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지독하게도 무기질적으로 건조하여 아까까지 욕정에 젖어 자신의 아래에서 울던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널 햄릿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기분 나쁘네..."

"왜? 그 정도가 제일 좋아. 너는 내 뮤즈인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이상한거야."

햄릿은 단테를 바라보자 그는 그저 방긋 웃어보였다. 이해할 수 없으니 너도 내 손 안에 있어주는거겠지. 하는 말을 삼켰다. 어쨌든,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랑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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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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